희생이라는 이름의 거래

사랑은 투자다.

by 우연우

"난 너를 위해 다 포기했어."

이별할 때 나온 말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싸울 때였나.)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포기? 내가 부탁한 적 있나?

없었다. 그는 스스로 선택했다. 다른 도시의 직장 제안을 거절한 것도, 친구들과의 약속을 취소한 것도, 취미 활동을 줄인 것도. 다 그의 선택이었다.

근데 왜 이제 와서 그게 나를 위한 희생이었다고 하는 걸까.

아, 깨달았다. 그는 장부를 쓰고 있었구나. 희생의 장부. 그리고 언젠가는 그 대가를 받으려 했구나.


희생의 장부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장부를 가지고 있다.

내가 한 것:

생일 선물 20만 원

아플 때 간호 3일

싫어하는 영화 같이 봄 5번

새벽에 데리러 감 2번


상대가 한 것:

생일 선물 10만 원

아플 때 간호 1일

내가 좋아하는 영화 같이 봄 2번

새벽에 데리러 옴 0번


이런 식으로.

의식하든 안 하든, 우리는 계산한다. 그리고 균형이 맞지 않으면 서운해한다.

"나는 이만큼 했는데, 너는?"

말로 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묻는다. 표정으로 요구한다.


조건부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

아름다운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게 정말 있을까?

부모의 사랑도 조건이 있다. "착한 아이"라는 조건. "부모 말을 듣는 아이"라는 조건.

연인 간의 사랑은 더하다.

"나만 사랑해줘" (독점 조건)

"나를 최우선으로 해줘" (우선순위 조건)

"나를 변하게 하지 마" (현상유지 조건)

"나를 이해해줘" (공감 조건)

이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사랑이 식는다. 혹은 사라진다.


보이지 않는 계약서

연애는 계약이다. 보이지 않는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대가로 이것들을 받겠습니다:

관심

시간

안정감

성적 만족

정서적 지지"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이것들을 주겠습니다:

관심

시간

충실함

성적 만족

정서적 지지"


물론 이렇게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암묵적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상대가 계약을 위반하면?

"넌 변했어." "예전엔 안 그랬잖아." "우리 사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사실은 계약 위반에 대한 항의다.


희생 경쟁

가끔 연인들은 희생 경쟁을 한다.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많은 걸 포기했는지 알아?" "나도 포기한 게 많아!" "뭘 포기했는데?" "너 때문에 못 만난 사람도 있고..." "그게 포기야? 난 유학도 포기했어!"

누가 더 많이 희생했는지 겨루는 이 우울한 게임. 이기는 사람도 없고, 지는 사람도 없다. 둘 다 비참해질 뿐.


희생의 인플레이션

처음엔 작은 것부터 시작한다.

"오늘은 네가 먹고 싶은 거 먹자." "네가 보고 싶은 영화 보자."

별것 아닌 양보. 기꺼이 할 수 있는 희생.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요구가 커진다.

"이번 주말은 우리 부모님 집에 가자."

"네 친구 말고 내 친구들이랑 놀자."

"그 직장 그만두고 내 근처로 와."

그리고 어느 순간, 감당할 수 없는 희생을 요구받는다.


"나와 네 가족 중에 선택해."

"일과 나 중에 뭐가 더 중요해?"

이 지점에서 관계는 흔들린다. 희생할 수 없는 선을 넘어서는 순간, 사랑도 한계에 부딪힌다.


희생의 대가

모든 희생은 대가를 바란다.

"난 너를 위해 이것을 포기했으니, 너도 나를 위해 뭔가를 포기해."

명시적으로 요구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로는 기대한다. 그리고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원망이 쌓인다.

"내가 바보같이..."

"왜 나만 손해 보는 기분이지?"

"너는 나를 당연하게 생각하는구나."

이런 생각들이 관계를 좀먹는다.


거래의 불균형

문제는 각자가 생각하는 희생의 가치가 다르다는 거다.

나는 큰 희생이라고 생각하는데, 상대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대는 큰 선물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부담스럽기만 하다.


예를 들어:

"널 위해 금연했어!"

"...난 피우든 말든 상관없었는데."

"너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 티켓 구했어!"

"...난 그렇게 가고 싶지 않았는데."

서로 다른 화폐로 거래하는 것 같다. 환율이 안 맞는다.


희생이라 쓰고 투자라 읽는다

사실 우리가 희생이라고 부르는 것들, 대부분은 투자다.

상대를 위한 게 아니라, 관계를 위한 투자. 더 정확히는, 나의 미래를 위한 투자.

"내가 이만큼 투자했으니, 이 관계는 잘 될 거야." "내가 이만큼 희생했으니, 그도 날 떠나지 않겠지."

하지만 투자는 항상 위험하다. 원금 손실의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연애에서의 원금 손실은? 마음의 손실, 시간의 손실, 자존감의 손실.


진짜 희생은 말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희생은 말하지 않는다.

"내가 너를 위해 이것을 포기했어"라고 말하는 순간, 그건 이미 희생이 아니다. 거래다. 대가를 바라는 투자다.

진짜 희생은 조용하다. 상대가 모르게, 티 내지 않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지만 그런 희생이 얼마나 있을까.

나도 돌아보면, 내가 했던 모든 '희생'은 사실 계산이 있었다. 이만큼 하면 사랑받겠지. 이만큼 하면 인정받겠지. 이만큼 하면 떠나지 않겠지.


사랑의 여섯 번째 정의

1화: 사랑은 이기적이다

2화: 사랑은 투사다

3화: 사랑은 질투다

4화: 사랑은 거짓말이다

5화: 사랑은 권력 게임이다

6화: 사랑은 거래다


로맨틱하지 않은가? 그렇다. 하지만 현실이다.

우리는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거래한다. 사랑이라는 포장지로 계산을 숨긴다.


Give and Take. 주고받기. 이게 관계의 본질이다.


그럼에도 불평등한 교환

그런데 신기한 건, 때로는 불평등한 교환도 감수한다는 거다.

내가 10을 주고 5를 받아도 괜찮은 사람이 있다. 왜? 그 5가 나에게는 특별하니까. 아니면 그 사람이 특별하니까.

이게 사랑의 비합리성이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손해다.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이득이다.

"바보같이 왜 그렇게 퍼줘?"

친구들은 이해 못 한다. 나도 설명할 수 없다. 그냥, 그 사람이니까. 그냥, 좋으니까.


거래를 넘어서

이상적으로는, 거래를 넘어선 사랑을 꿈꾼다.

계산하지 않는 사랑. 대가를 바라지 않는 희생. 조건 없는 수용.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솔직히 모르겠다.

아니, 불가능할 것 같다. 우리는 너무 이기적이고, 너무 계산적이고, 너무 인간적이니까.

대신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거래여도 괜찮다. 계산해도 괜찮다. 대가를 바라도 괜찮다.

다만, 서로가 만족하는 거래였으면 좋겠다. 서로가 납득하는 계산이었으면 좋겠다. 서로가 기꺼이 지불하는 대가였으면 좋겠다.

그게 현실적인 사랑 아닐까.


영수증 없는 거래

사랑의 거래에는 영수증이 없다.

누가 얼마나 줬는지, 누가 얼마나 받았는지, 정확히 계산할 수 없다.

그래서 늘 논쟁이 생긴다.

"내가 더 많이 사랑해." "아니야, 내가 더 많이 사랑해."

귀엽게 들리지만, 본질은 이거다:

"내가 더 많이 투자했어." "내가 더 많이 희생했어."

영수증이 없으니 증명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주장하고, 계속 의심하고, 계속 불안해한다.


마지막 계산

이별은 최종 정산이다.

"내가 너에게 준 것들 돌려줘." "내가 너 때문에 잃은 것들 보상해줘."

물론 불가능하다. 시간은 돌아오지 않고, 감정은 회수할 수 없고, 추억은 삭제할 수 없다.

그래서 이별은 늘 미련이 남는다. 정산이 깔끔하게 끝나지 않으니까.

"내가 더 많이 사랑했는데..." "내가 더 많이 희생했는데..."

이런 생각들이 남는다.


새로운 거래의 시작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거래를 시작한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조건으로, 새로운 계약을 맺는다.

왜?

혼자보다는 둘이 낫다고 믿으니까. 불평등한 거래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니까.

아니면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이번에는 공정할 거라고 희망하니까.

희망.

그게 우리를 계속 거래하게 만든다. 계속 희생하게 만든다. 계속 사랑하게 만든다.

어쩌면 사랑의 본질은 거래가 아니라, 불공정한 거래도 감수하게 만드는 그 무엇인지도 모른다.


투자의 진짜 이익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가 사랑에 투자해서 얻으려는 이익이 뭘까?

처음엔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안정감

성적 만족

정서적 지지

외로움 해소

미래의 확신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니, 진짜 이익은 따로 있었다.

나의 가치 확인.


그가 나를 위해 시간을 쓸 때 → 나는 시간을 쓸 만한 사람

그가 나를 위해 돈을 쓸 때 → 나는 돈을 쓸 만한 사람
그가 나를 위해 뭔가를 포기할 때 → 나는 포기할 만큼 중요한 사람


결국 우리가 원하는 건 상대가 아니라, 상대를 통해 확인하는 "나의 가치"다.

1화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상대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사랑하는 나를 사랑한다.

그리고 이제 깨달았다. 우리는 상대의 희생을 원하는 게 아니라, 그 희생을 통해 증명되는 나의 가치를 원한다.


이기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불안한 존재니까.

그것이 사랑이라는 거래의 진짜 화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우리는 이 이익을 끝없이 추구한다는 거다.


심지어 결혼이라는 '결말'에 도달해서도.

"왜 나한테 관심이 없어?"

"왜 예전 같지 않아?"

"나 사랑해?"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우리는 계속 확인한다.

내가 여전히 가치 있는 사람인지. 여전히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지.


결혼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거래의 시작이었다. 더 긴, 더 복잡한, 더 끝이 없는 거래.


그래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투자하고, 계산하고, 확인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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