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속 정치학

이것은 권력게임인가?

by 우연우

"누가 더 사랑하는가?"

연애 초반에 친구들이랑 이런 게임을 했다. 둘 중에 누가 더 상대를 사랑하는지 따지는 거다. 전화는 누가 먼저 하는지, 만나자는 말은 누가 먼저 하는지, 선물은 누가 더 자주 주는지.

그때는 그게 그냥 재미있는 게임인 줄 알았다.

이제는 안다. 그게 권력 게임의 시작이었다는 걸.


사랑의 권력 법칙

"더 사랑하는 쪽이 을이다."

누가 처음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연락하고 더 사랑하는 사람이 참고 더 사랑하는 사람이 맞춰주고 더 사랑하는 사람이 불안해한다

그리고 덜 사랑하는 사람? 그는 권력을 가진다. 관계의 주도권, 선택권, 결정권.

잔인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밀당이라는 전쟁

밀당. 밀고 당기기.

말만 들으면 귀엽다. 하지만 본질은 권력 투쟁이다. 누가 먼저 무너지나, 누가 먼저 항복하나.

카톡이 와도 바로 읽지 않기 읽어도 바로 답하지 않기 만나자고 해도 한 번은 거절하기 좋아한다고 해도 쉽게 표현하지 않기

이런 것들. 우리는 이걸 '당기기'라고 부른다. 상대가 나에게 더 매달리게 만드는 기술.

반대로 가끔은 확 다가간다. 갑자기 다정하게, 갑자기 적극적으로. 상대가 "어? 얘가 왜 이러지?" 싶을 때쯤 다시 물러난다. 이게 '밀기'.

게임이다. 그리고 모두가 이 게임을 한다.

"나는 밀당 안 해" 라고 말하는 사람도 한다. 의식하지 못할 뿐.


읽씹의 정치학

읽씹. 읽고 씹기. 아니, 읽고 무시하기.

이것도 권력이다. "네 메시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라는 무언의 선언.

근데 웃긴 건, 읽씹당하면서도 또 보낸다는 거다.

"야" "뭐해?" "화났어?" "ㅠㅠ"

이렇게 연속으로 보내면서 비굴해진다. 그리고 상대가 답장하면?

"아 이제 봤네 ㅋㅋ"

쿨한 척한다. 전혀 기다리지 않았다는 듯이. 하지만 사실은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졌다.

이게 현대 연애의 비극이다. 서로 권력을 잃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는.


선물의 무게

선물도 권력이다.

비싼 선물을 받으면 부담스럽다. 왜? 빚진 기분이 들어서. 그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압박, 그만큼 사랑해줘야 한다는 의무감.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 선물을 거절한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아니야, 괜찮아. 선물 같은 거 안 줘도 돼."

하지만 속마음은 다르다. 받고 싶다. 단지 대가를 치르기 싫을 뿐.

반대로 선물을 주는 것도 권력 행사다. "내가 너에게 이만큼 투자할 수 있어"라는 과시. "너는 나에게 이만큼 중요해"라는 선언.

근데 이것도 계산이 있다. 너무 많이 주면 부담스러워하고, 너무 적게 주면 서운해한다. 그 적정선을 찾는 게 또 하나의 게임.


시간의 주도권

"언제 볼까?" "네가 편한 시간에 맞출게."

양보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것도 권력 게임이다.

시간을 양보하는 사람이 을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그게 더 강한 위치다. "난 언제든 괜찮아. 네가 나에게 시간을 내야 해."

반대로 바쁜 척하는 것도 전략이다.

"이번 주는 좀 힘들 것 같아." "다음 주도 약속이 많아서..."

사실 시간은 있다. 집에서 넷플릭스 볼 시간. 하지만 너무 한가해 보이면 안 된다. 그럼 만만해 보이니까.


감정 노동의 분배

연애도 노동이다. 감정 노동.

위로하기, 공감하기, 들어주기, 맞춰주기.

이 노동을 누가 더 많이 하느냐. 그것도 권력 관계를 보여준다.

한쪽이 계속 토라지고, 다른 한쪽이 계속 달래는 관계. 한쪽이 계속 불평하고, 다른 한쪽이 계속 들어주는 관계. 한쪽이 계속 요구하고, 다른 한쪽이 계속 맞춰주는 관계.

불균형하다. 하지만 한 번 이런 패턴이 생기면 바꾸기 어렵다.

"넌 맨날 내가 맞춰주길 바라잖아." "그게 아니라..." "맞잖아. 매번 내가 양보하고, 내가 참고."

이런 대화, 다들 해봤을 거다. 그리고 결론은 항상 똑같다. 또 참는다. 왜? 더 사랑하니까. 아니, 더 정확히는 잃는 게 두려우니까.


SNS 공개의 정치학

"우리 사귀는 거 공개할까?"

단순한 질문 같지만, 여기에도 권력 관계가 숨어있다.

공개하고 싶은 쪽과 숨기고 싶은 쪽. 보통은 더 사랑하는 쪽이 공개하고 싶어 한다. 온 세상에 자랑하고 싶으니까.

반면 덜 사랑하는 쪽은 숨기고 싶어 한다. 옵션을 열어두고 싶으니까. 아니면 그냥 귀찮아서.

"왜 네 인스타에는 내 사진이 없어?" "굳이 올려야 해?" "나는 맨날 올리는데..." "그건 네 선택이잖아."

이런 싸움. 본질은 "네가 나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확인이다. 그리고 그 확인 과정에서 권력 관계가 드러난다.


이별의 주도권

가장 극명하게 권력이 드러나는 순간은 이별이다.

떠나는 사람과 떠나지는 사람. 차는 사람과 차이는 사람.

말할 필요도 없이, 떠나는 사람이 갑이다.

"우리 헤어지자."

이 한 마디로 모든 권력 관계가 정리된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 함께한 시간들, 약속했던 미래들. 다 무의미해진다. 결정권은 떠나는 사람에게 있으니까.

남겨진 사람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매달리거나, 받아들이거나. 둘 다 비참하다.


권력의 역전

재미있는 건, 권력 관계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거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뭐라고 했더라.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게 더 안전하다고. 왜냐하면 사랑은 변하지만 두려움은 지속되니까.

근데 연애는 정반대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순간, 관계는 끝난다. 사랑은 두려움이 아니라 끌림으로 유지되니까. 그리고 그 끌림의 균형은 계속 변한다.

처음엔 내가 더 좋아했다. 매일 연락하고, 선물 주고, 시간 맞춰주고. 완전 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었다. 상대가 더 매달리기 시작했다. 왜? 나도 모른다. 익숙해져서? 나의 관심이 시들해져서? 아니면 상대가 뒤늦게 내 가치를 알아서?

이유가 뭐든, 권력은 역전됐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갑의 자리가 불편하다는 걸.

상대의 눈치를 보는 것도 힘들지만, 상대가 내 눈치를 보는 것도 부담스럽다. 매달리는 것도 싫지만, 매달림을 받는 것도 무겁다.


평등이라는 환상

"우리는 평등한 관계야."

그런 관계는 없다.

미세하게라도 기울어져 있다. 51대 49일 수도 있고, 70대 30일 수도 있지만, 정확히 50대 50은 없다.

그리고 그게 꼭 나쁜 건 아니다.

한쪽이 끌고, 한쪽이 따라가는 것. 한쪽이 기대고, 한쪽이 받쳐주는 것. 어쩌면 그게 더 자연스러운 관계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차이가 너무 클 때다. 90대 10이 되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종속이다.


사랑의 다섯 번째 정의

1화: 사랑은 이기적이다

2화: 사랑은 투사다

3화: 사랑은 질투다

4화: 사랑은 거짓말이다

5화: 사랑은 권력 게임이다


씁쓸한가? 하지만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도 권력을 추구한다. 덜 상처받기 위해, 덜 잃기 위해, 더 안전하기 위해.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권력을 쥔 순간 사랑은 시들기 시작한다. 긴장이 사라지면 설렘도 사라진다. 확신이 생기면 열정도 식는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게임을 한다. 밀고 당기고, 숨기고 드러내고, 다가가고 물러서고.

피곤한가? 그렇다.

하지만 이게 사랑의 본모습이다.


게임을 넘어서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게임을 그만둘 수 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가끔 "이제 게임 그만하자"고 선언해봤다. 솔직하게 다 드러내고, 밀당 없이 진심으로 대하고.

결과? 보통은 실패했다. 상대가 부담스러워하거나, 시시해하거나. 혹은 내가 먼저 불안해지거나.

게임 없는 사랑이 가능할까? 권력 관계 없는 순수한 사랑이?

어쩌면 그건 환상일지도 모른다. 인간관계에는 늘 권력이 존재하니까.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친구 사이에도, 연인 사이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게임을 잊는 순간들이 있다.

함께 웃을 때 함께 울 때 함께 침묵할 때

그 순간만큼은 갑도 을도 없다. 그냥 너와 나. 두 사람.


어쩌면 그 순간들을 위해 우리가 이 피곤한 게임을 계속하는 건지도 모른다.

권력도, 주도권도, 우위도 다 무의미해지는 그 찰나의 순간들.

그게 진짜 사랑일까?

아니면 그것마저도 또 다른 게임일까?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우리는 내일도 이 게임을 계속할 거라는 것.

사랑한다는 이유로.

혹은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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