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과 진실사이

사랑의 언어

by 우연우

"오늘 뭐 했어?" "그냥 집에 있었어."

거짓말이었다. 친구들을 만났다. 별일 아니었는데도 거짓말을 했다. 왜 그랬을까. 친구 만난 게 잘못된 일도 아니었는데.

아마도 귀찮아서였을 거다. "누구 만났어?" "뭐 했어?" "재밌었어?" 이런 추가 질문들이 이어질 게 뻔했으니까. 그래서 그냥 "집에 있었어"라고 했다.

이게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끊임없이 거짓말을 한다. 작은 거짓말, 하얀 거짓말, 때로는 커다란 거짓말까지.


사랑의 첫 거짓말

연애의 시작부터가 거짓말이다.

"어, 나도 그거 좋아해!" (사실 관심 없음)

"와, 진짜 재밌다!" (하품 참는 중)

"아니야, 화 안 났어." (속으로 부글부글)

우리는 이걸 '배려'라고 부른다.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것. 하지만 본질은 거짓말이다.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해보면,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쿨하고, 이해심 많고, 취미도 다양하고, 화도 잘 안 내는 사람. 물론 다 연기였다. 진짜 나는 예민하고, 집순이고, 가끔은 짜증도 잘 낸다.

근데 그런 진짜 모습을 보여주면 떠날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계속 연기했다. 사랑받을 만한 나를.


거짓말의 해부학

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많이 거짓말을 할까.

낯선 사람에게는 솔직할 수 있다. 어차피 다시 안 볼 사이니까. "저 오늘 기분 별로예요" "그거 별로 재미없던데요" 이런 말들을 편하게 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다르다. 그를 잃고 싶지 않으니까. 그래서 포장하고, 숨기고, 거짓말한다.

거짓말의 종류들:

보호의 거짓말 - "괜찮아, 나 안 아파"

평화의 거짓말 - "응, 네 말이 맞아"

회피의 거짓말 - "깜빡했어, 미안"

위장의 거짓말 -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 중에서 가장 위험한 건 위장의 거짓말이다. 자신의 진짜 생각과 감정을 숨기고, 상대가 원하는 답을 주는 것. 이게 쌓이면 결국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된다.


침묵이라는 거짓말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도 거짓말이다.

전 애인이 연락 왔을 때, 굳이 말하지 않는 것. 상대가 마음에 안 들 때, 그냥 넘어가는 것. 서운할 때, 괜찮은 척하는 것.

"말하지 않은 건 거짓말이 아니야"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하지만 상대는 느낀다. 뭔가 숨기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느낌이 불신의 씨앗이 된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이것도 오래전 일이긴 한데) 우연히 전 썸남을 만났다. 카페에서 마주쳐서 잠깐 인사하고 헤어졌다. 별일 아니었다. 정말로.

근데 말하지 않았다. 왜? 설명하기 귀찮아서. "누구야?" "어떻게 아는 사이야?" "왜 만났어?" 이런 질문들이 쏟아질 게 뻔했으니까.

한 달쯤 지나서 들켰다. 공통 지인을 통해서. 그때 그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배신감에 가득 찬 눈빛.

"왜 말 안 했어?"

"별일 아니라서..."

"별일 아니면 더 말했어야지."

맞는 말이었다. 숨길수록 더 의심받는다는 걸, 그때 배웠다.


진실의 무게

그렇다고 항상 솔직한 게 답일까?

"솔직히 말해줘"라고 하지만, 정작 솔직한 말을 들으면 상처받는다.

"그 옷 어때?"

"음... 별로인 것 같은데."

"..."

진실은 때로 잔인하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적으로 진실을 말한다. 상대가 들어도 괜찮을 만한 진실만.

하지만 이것도 일종의 거짓말 아닐까. 편집된 진실, 순화된 진실.


근데 또 생각해보면, 모든 진실을 다 말해야 하나?

"오늘 지나가다가 진짜 내 스타일인 사람 봤어."

"회사 동료가 너보다 일을 잘해."

"가끔 네가 지겨울 때가 있어."

이런 것들까지 다 말해야 할까? 아마 관계는 하루도 못 갈 거다.


거짓말쟁이들의 사랑

역설적이지만, 거짓말도 사랑의 표현일 수 있다.

엄마가 아파도 "괜찮다"고 하는 것

친구가 못생긴 애인을 자랑할 때 "잘 어울린다"고 하는 것

연인이 실패했을 때 "잘될 거야"라고 하는 것

이런 거짓말들은 상대를 위한 거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믿는다.

문제는 경계가 모호하다는 거다. 어디까지가 배려이고, 어디부터가 기만일까.

"오늘 야근이야" (사실은 친구들 만남)

이건 명백한 거짓말이다.


"오늘 피곤해서 일찍 잘게" (사실은 대화하기 싫음)

이건? 애매하다.


"사랑해"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이건? 더 애매하다.


몸이 말하는 진실

재밌는 건, 우리 몸은 거짓말을 못 한다는 거다.

말로는 "괜찮아"라고 하면서 표정은 굳어있고 목소리는 차갑고 눈은 마주치지 않는다

상대는 다 안다. 괜찮지 않다는 걸.


그래서 연인들은 말보다 비언어적 신호를 더 예민하게 읽는다. 한숨의 깊이, 침묵의 길이, 대답의 속도. 이런 것들이 진짜 감정을 드러낸다.

"왜 화났어?"

"화 안 났는데?"

"화난 것 같은데..."

"아니라니까!"


이미 목소리에서 화가 묻어나는데도 부정한다. 왜일까. 인정하면 질 것 같아서? 아니면 스스로도 왜 화가 났는지 몰라서?


디지털 시대의 거짓말

메신저는 거짓말을 더 쉽게 만든다.

"지금 봤어" (한 시간 전에 봄)

"폰 없었어" (그냥 대답하기 싫었음)

"ㅋㅋㅋㅋ" (전혀 안 웃김)

"ㅇㅇ" (전혀 동의 안 함)

특히 이모티콘은 거짓말의 도구가 됐다.


� (실제로는 무표정)

� (전혀 안 슬픔)

❤️ (그냥 대화 끝내고 싶음)


한 번은 이런 실험을 해봤다. 하루 동안 이모티콘 없이 대화하기. 진짜 힘들었다. 이모티콘 없으면 차가워 보일까 봐, 오해받을까 봐.

근데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왜 진짜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면 안 되는 걸까? 왜 항상 밝고 긍정적인 척해야 하는 걸까?


사랑해라는 주문

"사랑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이자, 가장 많이 듣고 싶은 거짓말.

처음엔 진심이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감정을 담아서 "사랑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습관이 된다. 전화 끝날 때, 잠들기 전, 아침 인사로.

기계적으로 "사랑해"를 반복한다.


그럼 이건 거짓말일까?

완전한 거짓은 아니다. 하지만 완전한 진실도 아니다. 어제의 사랑과 오늘의 사랑은 다르니까. 처음의 그 뜨거움은 없지만, 대신 익숙함과 편안함이 있다.

근데 우리는 그걸 구분하지 않는다. 그냥 "사랑해"라고 한다. 마치 주문처럼. 반복하면 진짜가 될 거라고 믿으면서.


진실 게임의 위험

가끔 연인들은 '진실 게임'을 한다.

"전 애인이랑 나랑 누가 더 예뻐?"

"내가 못생겨지면 어떡할 거야?"

"다시 태어나도 나 만날 거야?"

위험한 질문들. 진실을 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특정한 대답을 원한다.

"너가 더 예뻐"

"그래도 사랑해"

"당연하지"


만약 솔직하게 대답하면?

"비교할 수 없어" (= 전 애인도 좋았다)

"모르겠는데..." (= 외모도 중요하다)

"글쎄..." (= 다른 사람 만나볼 수도)

관계는 금이 간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가 원하는 답을 준다. 그게 거짓말이어도.


거짓말의 눈덩이

작은 거짓말은 큰 거짓말을 낳는다.

"어제 뭐 했어?"

"집에 있었어." (거짓말 1)

"혼자?"

"응." (거짓말 2)

"뭐하고 있었어?"

"그냥 TV 봤어." (거짓말 3)


한 번 거짓말을 시작하면 계속해야 한다. 그리고 그 거짓말을 기억해야 한다. 나중에 들키지 않으려면.

근데 결국 들킨다. 거짓말은 완벽할 수 없으니까. 어딘가에서 모순이 생기고, 그 틈으로 진실이 새어 나온다.


정직한 이기심

결국 거짓말도 이기심이다.

상대를 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나를 위한 거다.

귀찮은 설명을 피하기 위해

싸움을 피하기 위해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모두 나를 위한 거다.

진정 상대를 위한다면, 아픈 진실이라도 말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그럴 용기가 없다. 상처받은 상대를 마주할 용기, 불편한 대화를 이어갈 용기, 관계가 깨질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수할 용기.

그래서 거짓말을 선택한다. 더 쉬우니까.


사랑의 네 번째 정의

1화: 사랑은 이기적이다

2화: 사랑은 투사다

3화: 사랑은 질투다

4화: 사랑은 거짓말이다

충격적인가? 하지만 사실이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그 거짓말들이 관계를 유지시킨다.

만약 모든 연인이 100% 솔직하다면? 아마 대부분의 관계는 일주일을 못 갈 거다.


"오늘 회사에서 매력적인 사람 봤어."

"네 친구가 더 재미있어."

"가끔 혼자 있고 싶어."

"네 엄마 진짜 별로야."

이런 진실들을 다 견딜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실을 갈망한다.

거짓말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진짜 나를 알아주길 바란다. 포장된 내가 아닌, 날것의 나를 사랑해주길 바란다.


이 모순덩어리 인간이여!

어쩌면 사랑의 본질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거짓과 진실 사이를 줄타기하는 것. 상처주지 않으면서도 솔직한 것. 포장하면서도 진정성을 잃지 않는 것.

불가능한 미션이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시도한다.


왜? 사랑하니까.

아니, 사랑한다고 믿고 싶으니까.

그것마저도 거짓말일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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