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50가지 그림자
기억을 더듬어보니 중학교 때였다. 좋아하는 애가 다른 애랑 웃으면서 얘기하는 걸 봤을 때. 가슴이 뜨겁게 타오르면서 동시에 차갑게 식었다. 그때는 이 감정이 뭔지 몰랐다. 그냥 기분이 나쁘고, 속이 뒤틀리고, 그 애가 미웠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 애와 웃고 있는 다른 애가 미웠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다. 나는 그 애와 사귀는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제대로 대화도 나눠본 적 없었는데. 그런데도 마치 내 것을 빼앗긴 것처럼 분노했다.
이게 사랑의 그림자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 뒤에는 언제나 질투와 소유욕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질투는 정확히 무엇일까.
어디선가 읽었는데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기억 안 남) 질투는 세 가지 감정의 조합이라고 한다. 분노, 슬픔, 그리고 두려움.
분노 - "어떻게 감히 내 사람에게"
슬픔 - "나는 충분하지 않은가"
두려움 - "그를 잃을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 두려움이 가장 컸다. 잃을까 봐 무서웠다. 아직 내 것도 아닌데 잃을까 봐 무서워하는 이 모순.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벌써 오래전 일이지만) 그가 전 여친 얘기를 꺼냈다. 그냥 지나가는 얘기였다. 어디서 우연히 마주쳤다는. 그게 다였다.
근데 나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어떻게 생겼어?"
"뭐라고 했어?"
"예뻤어?"(아. 이건 정말 묻지 말았어야 한다! 금기다.)
끝없는 질문. 그는 대답하기 귀찮아했고, 나는 그런 그의 반응에 더 불안해했다. 왜 대답을 안 하지? 뭔가 있는 건가? 아직도 마음이 있나?
지금 생각하면 정말 한심하다. 그 질문들로 내가 얻고자 했던 게 뭐였을까. 그가 "아니야, 너가 더 예뻐"라고 말해주길 바랐나? 그런 말을 들어도 믿지 않을 거면서.
우리는 사람을 소유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내 남자친구"
"내 여자친구"
"내 사람"
이런 표현들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우리는 상대를 소유하려 한다. 그의 시간, 그의 관심, 그의 마음, 심지어 그의 과거와 미래까지도.
"어제 뭐 했어?" "누구랑 있었어?" "몇 시에 잤어?"
이런 질문들은 사실 사랑이 아니다. 통제다. 하지만 우리는 이걸 사랑이라고 포장한다. "네가 걱정돼서 그래" "사랑하니까 그런 거야"
진짜 그럴까?
내 경험상, 이런 질문을 할 때 내 마음속에 있던 건 사랑이 아니라 불안이었다. 그를 통제할 수 없다는 불안. 그가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
질투의 본질은 사실 열등감이다.
질투가 심했던 시기를 돌아보면, 그때가 내 자존감이 가장 바닥이었던 때다.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 상대방 주변의 모든 사람이 위협으로 보였다.
그의 여자 동료가 나보다 똑똑해 보였고 그의 친구가 나보다 재미있어 보였고 심지어 그가 좋아하는 연예인조차 질투의 대상이었다.
웃긴 건, 정작 그는 나를 떠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거다. 내가 혼자 시나리오를 쓰고, 혼자 불안해하고, 혼자 미쳐가고 있었다.
"너는 왜 자꾸 너를 다른 사람이랑 비교해?"
그가 한 번 그렇게 물었다. 대답할 수 없었다. 왜 그러는지 나도 몰랐으니까. 아니, 알면서도 인정하기 싫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요즘은 질투할 거리가 더 많아졌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카톡. 온라인에서의 모든 활동이 감시의 대상이 된다.
"왜 그 사진에 좋아요 눌렀어?"
"그 스토리는 누구 보라고 올린 거야?"
"카톡 프로필 왜 바꿨어?"
한 친구는 남자친구의 인스타그램 팔로잉 목록을 매일 체크한다고 했다.(세상에!)
새로 팔로우한 여자가 있는지, 누구 사진에 좋아요를 눌렀는지. 그러다가 모르는 여자 계정을 발견하면 그 사람의 프로필을 샅샅이 뒤진다.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나보다 예쁜지.
"미친 짓인 거 알아. 근데 안 하면 불안해."
그녀의 말이 이해됐다. 나도 했던 짓이니까.
온라인은 질투를 증폭시킨다. 예전엔 몰랐을 것들을 이제는 다 알 수 있으니까. 그가 새벽 2시에 온라인이었다는 것, 내 메시지는 읽씹하면서 다른 사람 스토리는 봤다는 것, 전 여친 사진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는 것.
알고 싶지 않은 것들까지 다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앎은 고통이 된다.
질투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된다.
질투 때문에 상대를 의심하고 의심 때문에 싸우고 싸움 때문에 사이가 멀어지고 멀어지니까 더 불안하고 불안하니까 더 질투한다
이 악순환의 고리.
실제로 한 관계가 이렇게 끝났다. (아, 이건 친구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다.)
처음엔 작은 의심이었다. 그가 약속을 취소했을 때, 혹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은근슬쩍 확인했다. "아, 그럼 집에서 쉬어?" "친구는 안 만나?"
그는 눈치챘다. "나를 의심하는 거야?"
"아니야, 그냥 물어본 거야."
거짓말이었다. 의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는 나의 의심에 지쳤고, 나는 그의 차가운 반응에 더 불안해했다.
결국 그가 말했다.
"네가 나를 믿지 않는데, 이 관계가 무슨 의미가 있어?"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만든 질투가 결국 내가 두려워했던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런 일을 겪고 나서 깨달았다. 사람은 소유할 수 없다는 걸. 아니, 소유하려 할수록 더 멀어진다는 걸.
연애는 소유가 아니라 공유다.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고,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것. 하지만 그것도 일부분일 뿐이다.
상대에게는 나와 공유하지 않는 영역이 있다. 그의 과거, 그의 친구들, 그의 관심사, 그의 혼자만의 시간. 그리고 그건 당연한 거다.
근데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싶어 한다. 다 가지고 싶어 한다.
"무슨 생각해?"
"그냥"
"그냥이 뭐야, 말해봐"
이런 대화, 다들 해봤을 거다. 상대의 모든 생각까지 알고 싶은 마음.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도 내 모든 생각을 공유하지 않는다. 아니, 공유할 수 없다. 어떤 생각은 너무 사소하고, 어떤 생각은 너무 부끄럽고, 어떤 생각은 그냥 나만의 것이고 싶다.
진짜 사랑은 거리감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우리가 연인이어도, 부부여도, 그건 변하지 않는다.
칼릴 지브란이 뭐라고 했던가. (정확한 문구는 모르겠지만)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고. 사랑의 바람이 그 사이를 춤추게 하라고.
처음엔 이 말이 이해가 안 됐다. 사랑하면 더 가까워져야 하는 거 아닌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제는 안다. 너무 가까우면 서로를 질식시킨다는 걸.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서로를 그리워할 수 있고, 그리워해야 사랑이 지속된다는 걸.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질투가 전혀 없는 것도 문제다.
한 번은 이런 실험을 해봤다. (실험이라기보다는 그냥 지쳐서 포기한 건데) 아무것도 묻지 않기. 확인하지 않기. 그냥 믿기.
그랬더니 상대가 불안해했다.
"요즘 왜 아무것도 안 물어봐?"
"나한테 관심 없어?"
웃기지 않나. 질투하면 "왜 나를 못 믿어?" 하고, 안 하면 "관심 없는 거야?" 한다.
어쩌면 적당한 질투는 사랑의 증거일 수도 있다. 네가 소중하기 때문에 잃고 싶지 않다는 신호. 하지만 그 '적당한'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질투를 하면서 발견한 건, 내 안의 추악함이었다.
평소엔 쿨한 척, 이해심 많은 척했지만, 질투할 때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치사하고, 비겁하고, 집착적이었다.
그의 휴대폰을 몰래 보고 싶은 충동
그의 일정을 다 알고 싶은 욕구
그의 과거를 다 캐내고 싶은 호기심
이런 것들과 싸우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인간인지 깨달았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나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상대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질투를 안 할 수는 없다. 그건 인간의 본능이니까.
대신 질투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나 지금 질투하는 것 같아."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 처음엔 쪽팔렸다. 질투한다는 걸 인정하는 게 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숨기는 것보다는 나았다. 숨기면 곪고, 곪으면 터진다.
그리고 질투의 원인을 들여다봤다. 대부분은 나의 열등감에서 왔다. 내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남들이 다 위협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를 채우기 시작했다. 운동하고, 책 읽고, 일하고, 친구들 만나고. 내 삶이 충만해지니까 질투도 줄어들었다. 그의 삶에 덜 매달리게 됐다.
소유욕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형태를 바꾼다.
예전엔 그의 시간을 소유하려 했다면 이제는 그와의 추억을 소유하려 한다
예전엔 그의 관심을 독차지하려 했다면 이제는 그와의 특별한 순간을 독차지하려 한다
이것도 소유욕이긴 하다. 하지만 좀 더 건강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아닐 수도 있지만)
우리만의 장소, 우리만의 노래, 우리만의 농담. 이런 것들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요즘은 생각한다.
질투와 소유욕은 사랑의 그림자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듯, 사랑이 있으면 질투가 생긴다.
그림자를 없앨 수는 없다. 대신 그림자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가 질투하는 인간이라는 것 내가 소유욕이 있다는 것 내가 불안하고 이기적이라는 것
이걸 인정하는 게 시작이다.
그리고 상대도 마찬가지라는 걸 이해하는 것. 그도 질투하고, 불안해하고, 소유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인간이니까.
1화에서 사랑은 이기적이라고 했다. 2화에서 사랑은 투사라고 했다.
이제 3화에서 추가한다.
사랑은 질투다.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질투한다. 아니, 질투하기 때문에 사랑을 확인한다.
"질투는 사랑의 증거야"라는 말을 싫어했다. 유치하고 미성숙해 보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질투하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더 이상 상대가 특별하지 않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물론 병적인 질투는 다르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고, 상대를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한 거다.
하지만 가끔씩 스치는 질투, 살짝 느껴지는 소유욕. 이런 것들은 오히려 관계에 활력을 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여전히 중요한 존재라는 증거니까.
문제는 그 선을 지키는 거다. 질투는 소금 같아서, 적당히 있으면 맛을 낸다. 하지만 너무 많으면 전부 망친다.
완벽한 사랑은 없다. 질투 없는 사랑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서로의 그림자를 인정하고 함께 걷는 것뿐이다.
"나도 가끔 질투해"
"나도 네가 내 것이었으면 좋겠어"
"나도 불안할 때가 있어"
이런 고백들이 오가는 관계. 그게 진짜 친밀함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이기적이고, 질투하고, 소유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사랑의 그림자를 없애려 하지 말자. 대신 그림자도 우리의 일부라고 인정하자. 그림자가 있기에 빛이 더 빛난다는 것을 기억하자.
어차피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완벽하지 않은 사랑을 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니, 그것이 진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