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와 전이의 심리학
네이버에 로그인하면 가끔 '11년 전의 순간'이라는 알람을 준다.
그때 클릭해서 들어가보면, 나도 모르는 내 과거의 사진이 있다. 그때는 '네이버 클라우드'였고, (지금은 MYBOX지만) 나는 내 모든 순간을 거기에 업로드했다. 그래서 모든 과거가 거기 있다. 거기서 나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묘하게 비슷하다는 것. 눈매가 비슷한 건 아니고, 코가 닮은 것도 아닌데, 뭔가 그들이 주는 '느낌'이 비슷했다. 차갑고 무심한 듯하면서도 가끔 보여주는 따뜻함.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거리감.
나는 왜 늘 같은 유형의 사람에게 끌리는 걸까.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 번째, 네 번째가 되니까 이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정해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나는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었다. 다가가고, 매달리고, 불안해하고, 결국 버려지는. 그 시나리오를 쓴 건 누구였을까. 아마도 나 자신이었겠지.
심리학 책 어디선가 봤는데, 우리는 첫사랑의 그림자를 평생 쫓는다고 한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처음 느꼈던 그 감정의 강렬함을 다시 찾아 헤맨다는 것.
나의 첫사랑은 중학교 시절이었다. 그때는 누군가 내게 조금만 다정하게 말해줘도 사랑에 빠지던 시기였다. 그때 나는 그 애와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었다. 그저 복도에서 스치고, 급식실에서 멀리 바라보고, 하교길에 뒤를 따라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 애는 내가 좋아한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후로 내가 사랑한 사람들은 모두 그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나를 제대로 보지 않는 사람들. 내가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혹은 알아차리고도 모른 척하는 사람들.
(잡소리지만, 이런 걸 깨닫는 순간이 제일 허무하다. 아, 내가 지금까지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이 그저 과거의 복사본이었구나.)
첫사랑이 각인이 되어버린 걸까.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된, 어린 시절의 무언가가 나를 조종하는 걸까.
불편한 진실 하나. 내가 사랑했던 남자들은 대부분 아버지를 닮았다.(역설적으로 나는 아버지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외모가 아니라 성격이.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에 서툴고, 일에 매몰되어 있고, 가끔씩만 다정한.
어릴 때 나는 아버지의 관심을 받기 위해 애썼다. 백점 맞은 시험지를 들고 가면 "그래, 잘했네" 한 마디. 상장을 받아와도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래서 더 노력했다. 더 완벽한 딸이 되려고, 더 사랑받을 만한 아이가 되려고.
그런데 웃긴 건, 연애할 때도 똑같은 짓을 한다는 거다. 무심한 사람 앞에서 더 애쓴다. 반응이 없으면 없을수록 더 매달린다. '내가 더 잘하면 날 봐주겠지' 하면서.
프로이트가 뭐라고 했던가. 우리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반복한다고. 맞는 말인 것 같다. 나는 아버지에게 받지 못한 인정을, 아버지를 닮은 남자들에게서 받으려고 했다. 당연히 실패했지만.
한 번은 그런 적이 있다. 카페에서던가, 술을 마시다가 그랬던가.
"너는 왜 맨날 내 눈치를 봐? 내가 무서워?"
순간 아버지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퇴근하면 그의 표정부터 살폈던 나.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파악하고, 그에 맞춰 행동했던. 그 패턴을 나는 연애에서도 그대로 반복하고 있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수많은 것을 투사한다. 내 욕망, 내 환상, 내 상처, 내 기대. 그리고는 그 투사된 이미지를 사랑한다고 착각한다.
한 친구 이야기다. (이번엔 정말 친구 이야기다.) 그녀는 만날 때마다 남자친구 자랑을 했다. 얼마나 로맨틱한지, 얼마나 다정한지, 얼마나 배려심이 깊은지. 그런데 실제로 그를 만나봤을 때, 나는 당황했다. 그는 그녀 말과 전혀 달랐다. 무심하고, 자기중심적이고, 심지어 약간 무례하기까지 했다.
나중에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그 사람, 네가 말한 거랑 좀 다른 것 같은데?"
그녀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알아. 근데 내가 그렇게 믿으면, 언젠가는 정말 그런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
이게 사랑의 비극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보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모습을 상대에게 덧씌우고, 그 환상을 사랑한다. 그리고 상대가 그 환상에서 벗어날 때마다 실망하고 상처받는다.
나도 똑같았다. 무심한 사람을 다정한 사람으로 믿으려 했고, 차가운 사람을 따뜻한 사람으로 해석하려 했다. 한 번의 미소를 백 번의 사랑으로 확대해석했고, 작은 관심을 큰 애정으로 부풀렸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상대방도 나에게 무언가를 투사한다는 거다.
한 번은 오래된 친구(연인은 아니었다)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다.
"나는 네가 밝고 긍정적인 사람인 줄 알았어. 근데 넌 생각보다 어둡고 복잡하더라."
웃겼다.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밝고 긍정적이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가 그렇게 보고 싶어 했을 뿐이다. 아마 그에게는 밝은 사람이 필요했겠지. 자신의 어둠을 밝혀줄 누군가가.
우리는 서로에게 거울이 된다. 하지만 그 거울은 왜곡되어 있다. 마치 놀이공원의 마법 거울처럼, 어떤 부분은 확대되고 어떤 부분은 축소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왜곡된 상을 진짜라고 믿는다.
사랑이 끝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내가 사랑했던 건 상대가 아니라 내가 만든 이미지였다는 것을. 상대가 사랑했던 것도 나라는 사람이 아니라 그가 원했던 이미지였다는 것을.
가장 지독한 건 전이다. 우리는 과거의 관계를 현재에 반복한다. 같은 대본으로 다른 배우와 연극을 한다.
내 경우에는 이렇다.
1단계: 무심한 사람에게 끌린다
2단계: 그의 관심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3단계: 작은 관심에도 과도하게 기뻐한다
4단계: 더 많은 것을 바라기 시작한다
5단계: 상대는 부담스러워한다
6단계: 나는 불안해한다
7단계: 관계가 끝난다
이 시나리오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배우만 바뀔 뿐, 줄거리는 똑같다.
왜 바꾸지 못하는 걸까. 알면서도 반복하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이 패턴이 나에게는 '사랑'의 정의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아프고, 불안하고, 애타는 것. 그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랑의 모습이라서, 그것만을 찾아다니는 건 아닐까.
때로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 내가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는 사람이 아닐까.
실제로 그런 적이 있다. 나를 정말 사랑해준 사람이 있었다. 다정하고, 따뜻하고, 안정적인 사람. 그런데 나는 그와 함께 있으면서도 불안했다. 아니, 정확히는 지루했다. 드라마가 없었다. 롤러코스터가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싸움을 만들었다. 질투를 유발했다. 밀고 당기기를 했다. 그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심했다. '아, 이 사람도 날 정말 사랑하는구나.'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었다. 나는 내가 받았던 상처를 그대로 그에게 대물림했다. 내가 싫어했던 모습을 내가 하고 있었다.
그와 진창으로 싸우면서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너는 사랑을 전쟁으로 만들어. 난 지쳤어."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계속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내가 그들을 같은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을.
내가 불안해하면, 상대도 불안해한다. 내가 의심하면, 상대도 의심한다. 내가 매달리면, 상대는 멀어진다. 내가 밀어내면, 상대는 다가온다.
관계는 거울이다. 내가 보내는 에너지가 그대로 반사되어 돌아온다.
한 번은 이런 실험을 해봤다. 새로 만난 사람에게 평소와 다르게 행동해보기. 불안해하지 않기. 매달리지 않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매 순간 옛 패턴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의 휴대폰을 확인하고 싶었고, 어디서 뭘 하는지 캐묻고 싶었고, 왜 연락이 늦는지 추궁하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가 먼저 다가왔다. 먼저 연락했다. 먼저 불안해했다.
아, 이게 관계의 역학이구나. 내가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상대의 반응을 결정하는구나.
철학자 누군가가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타인은 지옥이면서 동시에 구원이라고.
맞는 말이다.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나는 내 상처를 본다. 내 패턴을 본다. 내 투사를 본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순간, 변화의 가능성이 열린다.
혼자서는 절대 알 수 없었을 것들을 연애는 가르쳐준다. 내가 얼마나 불안한 사람인지, 얼마나 통제하려 하는지, 얼마나 상처받기 쉬운지.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지도.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러 온 스승이 아닐까. 나의 어떤 면을 보여주기 위해, 나의 어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나의 어떤 가능성을 열기 위해.
물론 그 과정은 고통스럽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추하고 비겁하고 초라할 때가 많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직면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나리오를 반복할 뿐이다.
1화에서 나는 사랑을 이기적이라고 정의했다. 이제 두 번째 정의를 추가하고 싶다. 사랑은 투사다.
우리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게 아니다. 우리의 욕망과 상처와 환상을 투사해서 사랑한다. 그리고 그 투사가 깨질 때, 우리는 실망하고 원망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투사를 통해서만 우리는 자신을 알 수 있다. 내가 무엇을 투사하는지 알아차리는 순간, 나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내가 무엇을 갈망하는지, 무엇이 두려운지, 무엇에 상처받았는지.
그래서 연애는 가장 강력한 자기 탐구의 도구다.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친 왜곡된 나를 보면서, 역으로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
물론 대부분은 거울이 깨질 때까지 그것이 거울인 줄 모른다. 이별을 하고 나서야,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아 내가 환상을 사랑했구나 깨닫는다.
그래도 괜찮다. 깨달음은 언제나 뒤늦게 온다. 중요한 건 깨닫는 것 자체다. 그리고 다음 번에는, 조금 덜 투사하고, 조금 더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기를.
아직도 나는 투사를 한다. 여전히 과거의 패턴을 반복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내가 투사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알면서 하는 실수는, 모르고 하는 실수보다 덜 아프니까.
타인은 거울이다. 때로는 잔인한 거울이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거울이다. 그 거울 없이는 우리는 영원히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없을 테니까.
사랑하고, 투사하고, 깨닫고, 성장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어쩌면 그게 사랑의 진짜 선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