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리가 살아남는 법

불가사리가 살아남는 법에 대하여

by 우연우


불가사리는 정말 신기한 생물이다.


뇌도, 피도 없는데 바다 생태계에서 엄청난 생존력을 자랑한다.

가장 신기한 점은, 어마어마한 재생능력이다. 불가사리는 팔이 잘려도 다시 자라난다. 심지어 팔이 잘려 나갈 때 중심부의 조각이 조금이라도 함께 붙어 있으면, 그 파편 하나에서 새로운 불가사리 한 마리가 통째로 재생되기도 한다.


커리어에도 비슷한 순간이 있다. 오래 다니던 회사를 떠나거나, 익숙한 역할이 사라지거나, 갑자기 '내가 뭘 할 수 있는 사람이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되는 순간. 팔이 잘려 나간 느낌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상태를 '끝'이라고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가사리의 입장에서는 아니다. 재생 가능한 순간일 뿐이다.


그런데 불가사리의 재생에는 조건이 하나 있다. 중심부의 일부, 즉 중심 디스크(central disc)의 조각이 남아 있어야 한다. 팔만으로는 재생되지 않는다. 핵심이 살아 있어야 전체가 돌아온다.

사람에게 이 중심 디스크는 무엇일까. 필자는 그것이 '내가 반복해서 선택한 것들의 패턴'이라고 생각한다.

리처드 테데스키(Richard Tedeschi)와 로렌스 칼훈(Lawrence Calhoun)이 제시한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개념에 따르면, 심각한 위기를 경험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자기 인식, 대인관계, 삶의 우선순위 등에서 주관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보고했다. 이들은 위기 이후에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며, 대인관계의 깊이가 더해졌다고 응답했다. 원래대로 돌아가는 회복이 아니라,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다시 자라나는 것이다.


불가사리의 재생이 정확히 그렇다. 잘려 나간 팔이 다시 붙는 게 아니다. 완전히 새로운 팔이 자라난다. 복원이 아니라 재구성이다.


필자의 경우를 돌아보면 이렇다. 자산운용사에서 경영관리를 했던 사람이 글을 쓰고, 링크드인 캐러셀을 만들고, 뉴스레터를 쓰고, AI 도구를 다루고 있다. 이전 커리어와 지금의 모습은 연결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패턴을 보면 하나의 중심이 있다. 복잡한 것을 정리해서 사람이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일. 재무제표를 정리하던 것과 스타트업 운영 시리즈를 쓰는 것은 형식만 다를 뿐 같은 중심에서 나온 가지다.


갤럽의 강점 연구(CliftonStrengths)에 따르면, 매일 자신의 강점을 활용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업무 몰입도가 6배 높았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강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강점이 발현되는 맥락을 바꾸는 것이다. 불가사리가 새로운 팔을 만들 때 DNA가 바뀌지 않는 것처럼.


물론 재생에는 시간이 걸린다. 불가사리의 팔 재생에는 종에 따라 수개월에서 1년 이상이 걸린다. 빠르지 않다. 다만 확실하다. 중심이 살아 있는 한 재생은 진행된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


커리어의 재생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 완성된 형태가 아니어도 된다. 팔이 세 개뿐인 불가사리도 바다에서 멀쩡히 먹이를 먹고 산다. 다 자랄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있는 팔로 먼저 움직이면 된다.


정리하면 이렇다. 중심이 뭔지 확인하고, 새로운 맥락에서 다시 자라나게 하고, 완성되기 전에 움직인다.


그러면 팔은 다시 자라있다.


다음에 또 쓴다. 내 중심이 그대로 있는 한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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