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가 하는 일에 대하여
동기부여를 떠올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긍정적인 감정을 연상한다.
자아존중감, 낙관적인 마인드, 긍정의 힘. 서점에 가면 '긍정이 답이다', '마인드셋이 전부다' 류의 책이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 유튜브를 열면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동기부여 영상이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한다.
우리 사회에서 동기부여의 공식은 이렇게 정해져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좋은 감정을 유지하라. 그러면 움직일 수 있다. 부정적 감정은 극복 대상이지, 활용 대상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공식의 반례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이번에도 반례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불안하면 움직인다. 자존감이 떨어지면 어떻게든 올릴 방법을 찾는다. 분노의 힘으로 추진력을 얻는다. 그리고 그 힘으로 목표 달성에 가까워진다. 평온할 때보다 궁지에 몰렸을 때, 오히려 행동 반경이 넓어진다. 부끄러움도 줄고, 망설임도 적어진다. 악에 받치면 체면이 꺼지고, 체면이 꺼지면 평소 같았으면 하지 않았을 일들을 해낸다.
그런데 그게 필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한다.
- 분노는 '접근'의 감정이다
텍사스 A&M 대학의 심리학자 Eddie Harmon-Jones 연구팀은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기존 심리학에서는 긍정적 감정은 뇌의 좌측 전두엽을 활성화시켜 ‘접근 동기(approach motivation)’를 만들고, 부정적 감정은 우측 전두엽을 활성화시켜 ‘회피 동기(avoidance motivation)’를 만든다고 봤다. 쉽게 말하면, 기분 좋으면 앞으로 나아가고, 기분 나쁘면 뒤로 물러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분노를 연구해보니 이 공식이 깨졌다. 분노는 분명 부정적 감정인데, 뇌에서는 좌측 전두엽이 활성화됐다. 즉, 분노는 우리를 멈추게 하는 감정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감정이었다. 불안이나 슬픔이 우리를 얼어붙게 만든다면, 분노는 오히려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 긍정이 항상 좋은 건 아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더욱 흥미롭다. 미국 사회심리성격학회(SPSP)에서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대학생들의 감정과 학습 행동을 추적했더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학업 진척에 대해 긍정적 감정을 느낀 학생들은 다음 날 오히려 공부 시간이 줄었다. ‘잘 하고 있으니 좀 쉬어도 되겠지’라는 심리가 작동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를 관성주행이라고 불렀다. 반면, 부정적 감정을 느낀 학생들은 다음 날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긍정의 함정인 것이다. “잘 되고 있어!”라는 감정이 오히려 발을 멈추게 하고, “이러면 안 돼”라는 감정이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 분노는 어려운 과제에서 빛난다
2024년에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APA)에 발표된 'Anger Has Benefits for Attaining Goals'라는 연구는 이를 더 구체적으로 입증했다. 총 7가지 실험을 통해, 어려운 퍼즐 풀기나 게임 점수 획득 등 장애물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분노가 수행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점을 보여줬다. 분노는 단순히 기분 나쁜 상태가 아니라, 도전적 과제에 직면했을 때 끈기와 노력을 이끌어내는 심리적 자원으로 작용했다.
다만 한계도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분노의 동기부여 효과는 실제로 극복해야 할 어려운 장애물이 있을 때만 유의미하게 나타났다. 해결하기 쉬운 과제에서는 성능 향상이 없었다. 즉, 쉬운 일 앞에서의 분노는 그냥 짜증
이지만, 어려운 일 앞에서의 분노는 연료가 된다는 뜻이다.
- 분노는 연료다. 단, 조건이 있다.
그렇다고 분노가 만능 동기부여라는 것은 아니다. SPSP의 같은 연구에서 중요한 단서가 하나 더 있었다. 자기통제력이 낮은 학생들은 부정적 감정을 느꼈을 때 오히려 과제 수행 시간이 줄었다. 부정적 감정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핵심은 이것이다. 분노 자체가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분노를 행동으로 전환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동기부여가 된다. 분노에 머물면 소모된다. 그러나 분노를 써먹으면 추진력이 된다. 감정의 종류가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 결과를 바꾼다.
요즘 필자는 아주 높은 성능으로 돌아가는 PC 같은 기분이 든다. 언제나 ‘이너피스’와 ‘남들과는 다른 방향’을 외쳐왔지만, 어쩌면 현실을 자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너피스 또한 삶이 평온해야 할 수 있는 것이며, 남들과 다른 방향 또한 스스로가 아주 성공했을 때만 가능한 공식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실 삶은 치열한 전장이며, 분노하지 않으면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없다.
당신의 동기부여는 어디에서 오는가. 혹시 지금 분노하고 있다면, 그 감정을 나쁘다고만 생각하지 말길. 어쩌면 그것이 당신을 가장 멀리 데려다줄 연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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