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천이 더러우면 안경알은 깨끗해지지 않는다

안경천이 하는 일에 대하여

by 우연우


안경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안경알이 뿌옇게 흐려져서 안경천으로 열심히 닦는다. 그런데 닦아도 닦아도 깨끗해지지 않는다. 더 세게 닦아본다. 더 오래 닦아본다. 그래도 안 된다.


원인은 단순하다. 안경천이 더럽다.


더러운 천으로는 아무리 닦아도 깨끗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닦을수록 기름이 번진다. 문제는 안경알이 아니라 천이었는데, 우리는 대부분 안경알만 들여다본다.


커리어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나는 왜 이것밖에 못 하지.'

'이 나이에 이 위치면 실패한 거 아닌가.'

'남들은 다 잘 하는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들 때,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를 더 닦으려고 한다. 스펙을 더 쌓고, 자격증을 하나 더 따고, 자기소개서를 열 번째 고친다. 그런데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


안경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닦고 있는 천, 즉 자기를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오염돼 있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 비교(social comparison)'의 문제로 본다. 페스팅거(Festinger)가 1954년에 제시한 사회비교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자기 능력과 의견을 평가할 객관적 기준이 없을 때, 주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을 판단한다. 문제는 비교 대상의 선택이 체계적으로 왜곡된다는 것이다.


특히 SNS 시대에 이 왜곡은 극단적이다. 링크드인에서는 승진 소식과 이직 축하만 보인다. 인스타그램에서는 모두가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비교 대상이 상향 편향돼 있으니, 자기를 닦는 천이 처음부터 더러운 셈이다. 그 천으로 아무리 열심히 자기를 닦아 봐야 "나만 못하고 있다"는 얼룩만 번진다.


러트머(Luttmer)의 2005년 연구에 따르면, 자기 소득이 같더라도 주변 사람들의 소득이 높으면 행복감이 낮아졌다. 객관적 상태가 아니라 비교 기준이 행복을 좌우한다는 뜻이다. 안경알이 깨끗해도 천이 더러우면 뿌옇게 보이는 것과 같다.


그런데 진짜 위험한 건 SNS가 아니다. 더 깊이 박혀 있는 오염원이 있다. 자기 머릿속에 이미 설치된 기준이다.


'이 나이면 이 정도는 돼야지.'

'경력 몇 년 차면 연봉이 이만큼은 돼야지.'

'결혼했으면, 아이가 있으면, 집이 있으면.‘


이것들은 어디서 온 기준인가. 대부분은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니다. 부모가 말한 것, 사회가 반복한 것, 또래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자기 기준인 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빌려 쓰는 잣대다. 빌려 쓴 잣대는 내 안경에 맞지 않는 천과 같다. 규격이 달라서 아무리 닦아도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뭔가. 안경알을 더 세게 닦는 것이 아니라, 천을 바꾸는 것이다.

천을 바꾼다는 것은, 자기를 평가하는 기준을 점검한다는 뜻이다. 지금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그 기준은 누가 만든 것인가. 내가 직접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어디선가 주워 온 것인가. 그 기준으로 나를 닦을 때 실제로 깨끗해지는가, 아니면 오히려 더 흐려지기만 하는가.


이전 칼럼에서 "별거 아닌 것이 진짜 강점일 수 있다"고 썼다. 그런데 더러운 천으로 자기를 닦고 있으면, 그 강점이 보이지 않는다. 남의 기준으로 보면 부족한 것투성이고, 내 기준으로 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안경알이 안 깨끗하면 안경알을 의심하기 전에 천을 의심하라. 천이 더러우면 닦을수록 흐려진다. 자기를 평가하는 기준이 자기 것이 아니면, 아무리 노력해도 만족은 오지 않는다.


천을 바꿔라. 그러면 안경알은 생각보다 깨끗하다.

다음에 또 쓴다. 천부터 빨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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