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움에 대하여
어떤 일이 처음 재미있었던 순간을 떠올려 보자. 손이 저절로 움직이고, 시간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고, 끝내기 싫어서 조금만 더 하게 되는 그 감각.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감각이 사라진다.
똑같은 일인데 손이 안 간다. 해야 하니까 하고, 하고 나면 아무 느낌이 없다. 재미없다기보다는, 아무것도 아닌 느낌이다.
지겹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지겨움을 이렇게 해석한다. '이 일이 나한테 안 맞나 보다.' 그래서 그만두거나, 다른 걸 찾거나, 아니면 참고 버틴다. 그런데 지겨움의 정체를 정확히 들여다보면, 해석이 달라진다.
이 칼럼 시리즈 첫 회에서 "흥미로 점화하고, 관성으로 버티고, 오기로 끝낸다"는 공식을 세운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사이클이 한 바퀴 돌고 나면 무엇이 오는가. 지겨움이 온다. 점화 → 관성 → 완료 → 지겨움. 이것은 실패가 아니라 순환이다.
칙센트미하이(Csikszentmihalyi)의 몰입 이론이 이 구조를 설명한다. 그의 모델에 따르면, 몰입은 도전의 수준과 기술의 수준이 균형을 이룰 때 발생한다. 처음 어떤 일을 시작하면 도전이 높고 기술이 낮아서 불안하다. 연습하면 기술이 올라가면서 몰입 구간에 진입한다. 그런데 기술이 계속 올라가는데 도전이 그대로이면, 그 사람은 몰입 구간을 벗어나 지루함 영역으로 떨어진다. 지겨움은 실력이 도전을 추월했다는 신호다.
다시 말하면 이렇다. 지겨워졌다는 건 그 일을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잘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 신호를 오독한다. "이 일이 안 맞는다"고 해석하거나, "나는 끈기가 없다"고 자책하거나, "원래 다 이런 거지"하고 참는다. 세 가지 모두 지겨움의 본질을 놓친 반응이다. 지겨움은 끝내라는 신호가 아니다. 다음 난이도로 올라가라는 신호다.
실제로 조직심리학에서는 이와 관련된 현상을 '보어아웃(boreout)'이라 부른다. 로틀린과 베르더(Rothlin & Werder)에 따르면, 보어아웃은 업무량이 부족하거나 도전이 없을 때 발생하는 만성적 권태 상태로, 이직 의도와 심리적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보어아웃에 빠진 사람들 상당수가 겉으로는 바쁜 척을 한다는 것이다. 지겨운데 말하지 못하고, 도전을 원하는데 요청하지 못한다. 지겨움이 게으름과 혼동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겨움과 게으름은 정반대다. 게으른 사람은 아무것도 하기 싫다. 지겨운 사람은 뭔가 하고 싶은데, 지금 이것이 아닌 것 같다. 에너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가 갈 곳을 잃은 것이다.
그러면 지겨움은 무엇으로 전환되는가.
첫 번째 칼럼의 공식으로 돌아가 보자. 흥미로 점화하고, 관성으로 버티고, 오기로 끝낸다. 그리고 지겨움이 온다. 여기서 사이클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겨움이 다음 사이클의 점화 조건이 된다. 지겨움이 충분히 쌓이면 "이건 아닌데"라는 감각이 또렷해지고, 그 감각이 "이건 어떨까"를 불러온다.
필자가 관찰한 패턴은 이렇다. 지겨움을 견디는 사람은 멈추고, 지겨움을 연료로 쓰는 사람은 전환한다. 차이는 지겨움을 끝으로 해석하느냐, 시작으로 해석하느냐에 있다.
물론 모든 지겨움이 전환의 신호는 아니다. 단순히 피곤한 것일 수도 있고, 일시적인 슬럼프일 수도 있다. 그런데 같은 지겨움이 몇 달째 반복된다면,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 아무런 감각이 없다면, 그것은 몸이 보내는 메시지다. 여기서 더 얻을 것이 없다. 다음으로 가라.
정리하면 이렇다. 지겨움은 실패가 아니라 졸업이다. 당신이 지겨운 이유는 못해서가 아니라 다 해서다. 지겨움을 끝으로 읽지 말고, 다음 시작의 전조로 읽어라.
다음에 또 쓴다. 아직 지겹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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