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우리 다시 시작할까? 기왕이면 처음부터

안녕하세요, 따뜻한 붕어빵 가게입니다.

by 박하준

겨울 햇살이 반가운 일요일 아침. 평소라면 12시까지 늦잠을 자는 영주였지만 오늘은 아니다.

아침 8시에 일어나 3개월 회원권을 끊고 한동안 가지 않았던 헬스장을 다녀왔다. 간만에 땀을 뺀 영주는 시원한 겨울 아침 바람이 반가웠다.

“역시 사람은 운동을 해야해.”


그리고 평소라면 넘어가는 아침도 오늘은 든든히 먹었다. 바로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1주일 동안 애타게 찾았던 그 남자. 오늘 드디어 그 남자를 본다. 영주는 어제 밤 일이 믿겨 지지 않았다.

어제 서하의 답장을 받고 처음에는 무척 놀랐다. 답장까지 30초도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주는 뒤늦게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생각했다. 그리고 꿈이 아니란 걸 깨닫고 서하의 문자를 다시 곱씹었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설렜다. 자그마치 4년이었다. 그 남자에게 문자가 오기까지.

영주는 서하에게 보낼 답장을 고민했다. 그때였다. 그 남자에게 전화가 왔다.

영주는 심호흡하고 그 남자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 속 그 남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따뜻했고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영주야 나 누군지 알겠어?”

“응...”

“나 너가 내 전화 안 받을까 걱정했어.”

떨고 있는 서하가 귀여웠다. 그래서 괜히 장난치고 싶었다.

“안 받긴 왜 안 받아 전화 온건 받아야지. 다행히 보이스피싱은 아니네.”

“보이스피싱? 아 ….”

서하는 내 썰렁한 농담에 긴장이 풀렸는지 웃었다.

“썰렁한 농담 여전하네. 서영주.”

“당연하지. 내가 8년 동안 누구한테 배웠는데.”

8년이었다. 서하와 함께한 시간이. 나의 행동, 습관들엔 모두 그 남자의 흔적이 묻어있었다.


“저 … 있지 영주야. 그 …. 내일 ….”

진정된 줄 알았던 그 남자의 떨림이 다시 느껴졌다.

“응? 내일 왜?”

“그…. 있잖아….”

이상했다. 분명 2년 넘게 연습한 그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치 그녀에게 처음 고백했던 그때 같았다. 서하는 침을 삼키고 다시 용기를 냈다.

“응.”

서하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영주도 덩달아 긴장했다.

“내일…. 내일 혹시 시간….”

서하가 떨고 있었다. 처음 나에게 좋아한다 고백했던 그때처럼.

영주는 그런 서하가 귀여웠다. 아무래도 이번에도 자신이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서하야 내일 나랑 데이트할래?”


서하는 영주의 직구에 잠시 벙쪘다. 정말이지 강한 직구였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

서영주가 어떤 여자였는지. 직구밖에 던질 줄 모르던 여자였다. 그래서 더 사랑스럽던 여자였다.

그 후에 나눈 대화는 기억나지 않는다.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갔던 것 같다.


“응? 응!!!!!! 좋아!”

“그럼, 내일 1시에 연남동에서 만나자.”

“연남동? 알겠어!”

“그럼 끊는다.”

“영주야! 잠깐만!”

“응? 할 말 더 있어?”

서하는 이번엔 자신이 용기를 내고 싶었다.

“그…. 잘자.”

“뭐야. 킥킥. 서하 너도 잘자.”

“내일 멋있게 하고 갈게!”

“알겠어. 이제 진짜 끊는다.”


5분이 채 안 되는 전화였지만 강렬했다. 그 강렬함은 일요일엔 집순이 모드가 당연했던 두 남녀를 오랜만에 설레게 해주었다.

서하는 영주를 만날 생각에 밤새 맛집, 분위기 좋은 카페 등을 찾아봤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준비하듯 그녀와의 데이트 코스를 열심히 짰다.

혹시 모를 변수까지 생각해 플랜C까지 만들었다.

4년 만에 영주와 데이트다. 서하는 빨리 오후 1시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일은 무슨 머리를 할까. 간만에 가르마를 타볼까. 아니면 머리를 넘겨볼까.

옷은 뭐가 좋지. 롱코트? 무스탕? 서하는 계속 고민하다 새벽 2시쯤 잠들었다.


지난 4년 동안 일요일은 약속을 만들지 않았던 영주였다. 하지만 오늘은 빨리 집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나가서 그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영주는 오랜만에 고데기를 꺼내 열심히 머리를 만져봤다.

아직 녹슬지 않은 자신의 고데기 실력에 만족했다. 그리고 무슨 옷을 입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고민하는 자신의 모습에 그만 웃음이 나왔다.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했던게 얼마만이지.

옷을 8번 정도 바꿨을까. 처음이 가장 나은 것 같았다.

겨울하면 빠질 수 없는 코트에 목도리였다.


일찍 일어난 덕분인지 시간이 많이 남은 영주는 30분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일요일 오전 연남동은 사람이 많았다. 그 중 대부분이 커플들이었다.

영주는 얼마 안 된 커플부터 오래돼 보이는 커플들을 구경했다.

10번째 커플을 구경하고 있을 때. 멀리서 서하가 뛰어왔다.

머리를 예쁘게 만진 서하였다. 영주는 그런 서하를 보자 괜히 장난치고 싶어졌다.

“저…. 누구세요?”

그녀의 장난에 서하는 웃었다. 그리고 8년 바이브로 자연스럽게 받아쳤다.


“아 저 오늘 서영주씨랑 데이트하기로 한 사람입니다. 반가워요.”

“아 네…. 되게 잘생기셨네요.”

“아 그 오늘 잘 보이려고 머리 좀 만져봤습니다. 히히. 중간에 잘 안되서 3번이나 깜았지만요.”

“킥킥. 3번이나?”

“응. 간만에 머리 만질려니깐 쉽지 않더라.”

“으이구 바보. 빨리 안내나 해주시죠.”

“네! 처음 갈 곳은 소금빵이 유명한 카페입니다.”

“소금빵이요? 오예!”

8년의 세월 덕분이지. 영주의 취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서하였다.

앙버터 소금빵과 그냥 소금빵. 서하는 영주가 먹기 좋게 잘라주었다.


“되게 친절하시네요?”

“아 네. 습관이죠. 뭐”

“모든 여자한테 친절한 건가요?”

“아뇨. 한 명한테만 친절해요.”

“오 이서하 안 넘어가네? 합격.”

영주는 서하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소금빵을 입 안에 넣었다. 소금빵은 겉바속촉이라는 말 그대로였다.

서하는 소금빵을 오물오물 먹는 영주를 보며 햄스터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에게 냅킨을 건넸다.


“바보. 입에 다 묻었다.”

“이게 인간미거든요?”

서하는 영주의 말에 빵 터졌다. 우리가 어떻게 8년을 만났을까.

일단 하나는 유머 코드 아니었을까?

“인간미 넘치시네요.”

“제가 쫌. 인간미도 넘치고 매력도 넘쳐요.”

“오 지금 보니 자신감도 넘치신데요?”

그녀와 실없는 농담을 계속하다. 가만히 그녀를 빤히 보았다.

영주는 서하의 시선에 자신의 입에 또 뭐가 묻었나 생각했다.

“왜 내 입에 또 뭐 묻었어?”

“아니. 예뻐서. 자꾸 보고 싶어.”

오늘만큼은 직구만 가지고 온 서하였다. 서하의 직구에 영주의 볼이 빨개졌다.


“이서하 멘트만 늘었네? 완전 선수야?”

서하는 영주의 말에 피식 웃었다.

“영주야.”

“응?”

“오늘 하루 내가 엄청 재밌게 해 줄게.”

“뭐야 이서하 완전 느끼해.”

“히히.”

“나 오늘 완전 재밌게 해 줘야한다?”

“당연하지!”


점심은 영주가 좋아하는 파스타에 뇨끼를 먹으러 갔다. 영주는 뇨끼를 보자마자 입이 벌어졌다.

그런 영주가 서하는 사랑스러웠다. 입에서 살살 녹는 뇨끼와 파스타 덕분에 둘은 배가 빵빵해졌다.

빵빵해진 배를 소화시키기 위한 다음 장소는 방탈출 카페였다. 오는 길에 공략집을 열심히 외운 서하였지만 막상 실전이 되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이것저것 만져봤지만,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지지 않았다.

서하가 살짝 당황할 때쯤. 영주는 뜻대로 되지 않아 잔뜩 당황하고, 긴장한 서하가 귀여웠다.

아까 선수 같은 서하도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 서하는 귀여워야 제맛이다.


“이서하 지금부터 이 누나만 믿어라?”

“영주 너 이거 할 줄 알아?”

“자 가만 보자 이걸 읽으면 이렇게 되고….”

영주는 문제를 술술 풀었다. 드디어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게 되었다.

서하는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게임에 집중한 영주의 모습은 정말이지 사랑스러웠다.


“서영주 너 잘한다?”

“히히. 나만 믿어!”


2라운드까지는 영주 덕분에 술술 풀었지만, 관건은 3라운드였다. 어쩔 수 없이 남은 힌트를 몽땅 썼다.

힌트 덕분에 우리는 초고속으로 탈출했다. 얼떨결에 탈출한 영주와 나는 서로를 보고 한참을 웃었다.

점원은 탈출했으니 기념사진을 찍어준다고 했다. 쭈뼛쭈뼛 서 있는 우리를 보고 답답했는지 점원은 우리의 손을 이어줬다.

4년 만에 잡은 영주의 손이었다. 영주의 손을 잡자, 나의 심장은 계속 요동쳤다.

혹여나 심장소리가 들릴까 침을 계속 삼켰다. 영주는 어떨까.

나는 영주를 살짝 쳐다봤다. 그녀 역시 나처럼 계속 침을 삼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는 영주의 손을 좀 더 꼬옥 잡았다. 지금 우리 사이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잘 나온 사진을 보고 영주는 흡족해했다. 시간은 어느덧 6시. 해가 지자 밖은 더 추워졌다.

그녀는 추운지 떨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용기를 냈다. 그녀의 손을 잡은 것이다.

그녀는 나를 빤히 봤다. 그리고 웃었다.


“다음 코스는 어딘가요 이서하씨?”

“에이 저만 믿으세요.”


우리는 마지막 코스인 모츠나베가 맛있는 선술집에 왔다. 추위에 국물이 절실했다.

“모츠나베 소자 하나하고요. 이슬처럼 한 병 주세요.”

주문을 마친 나를 영주는 빤히 쳐다봤다. 나는 당황해 그녀의 눈을 피해 주문표를 봤다.

“어디 또 먹을만한 사이드 안주가….”

“서하야.”

“으…응?”

“있지. 오늘 엄청 재밌었어. 히히.”

영주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영주의 미소는 주변 사람을 기분 좋게 해준다.

영주와 사귈 때, 힘든 일이 있으면 항상 나에게 비타민이 돼준 그녀의 미소였다.

그녀와의 추억을 생각할 때쯤 주문한 음식과 술이 나왔다. 우린 서로의 잔을 채워줬다.

“짠!!!!!”

“크으!!!”

“서영주 아저씨 다됐네 킥킥.”

“치. 이서하씨도 만만치 않거든요?”

“근데 영주 넌 그 붕어빵 가게 어떻게 안거야?”

서하는 문득 그 붕어빵 가게를 알게 된 영주가 궁금했다.


“퇴근하고 그날따라 붕어빵 생각이 엄청났거든? 그래서 붕어빵 생각을 계속 하며 길을 걷고 있었더니 어디선가 붕어빵 냄새가 나는거야.”

“그래서 그 냄새를 따라 쭉 가보니깐 발견했지. 허름했지만, 무언가 들어가고 싶은 신비로운 가게였어.”

“맞아. 나도 처음 그 가게 봤을 때, 여긴 맛집일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킥킥.”

우리는 우리를 만나게 해준 그 가게의 첫인상을 떠올렸다.

무척 허름했지만, 그래서 더 아늑하고 따뜻해 보였던 가게였다.


“솔직히 거기서 서하 너를 만나게 될 줄 몰랐어.”

“아 진짜? 나는 알았는데…. 그래서 그 가게만 갔어. 여기라면 너를 꼭 만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엥 진짜로?”

“응 그래서 너 만나는 날만 기다렸다? 할 말이 있어서.”

영주는 서하와 만난 그날을 생각했다. 무척 당황스럽고 어색했던 날이었다.

“거기 사장님 진짜 좋으신 분 같아.”

“맞아! 나 첫날에 서비스 주셨다?”

“와 진짜? 나도!”

“사장님 그렇게 팔면 아무것도 안 남을 텐데. 좀 걱정이야.”

“그러게…. 우리가 더 많이 팔아드리자!”

“난 안 그래도 이미 vip거든요?”

“잠시만. 영주야 난 사장님도 인정하는 단골이야.”

“와…. 사장님한테 진짜 물어본다?”

“킥킥. 누가 할 소리?”


우리는 계속 웃고 떠들었다. 4년 동안 계속 그리웠던 순간이었다.

내 앞에 영주가 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영주가.

“암튼 난 그 가게 정말 고마워.”

“왜?”

“영주 널 다시 만나게 해주었잖아.”

서하의 갑작스러운 직구에 영주의 볼이 빨개졌다. 서하는 빨개진 그녀가 귀여웠다.

“아 맞다. 이서하 너 붕어빵 취향 바뀐거야? 저번에 팥붕 시키던데.”

“아…. 그건…. 사실. 널 이해해보려고.”

“이해?”

“응. 팥 붕어빵을 먹어봐야지만, 4년 전 그때의 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

“아…. 실은 나도 슈크림 붕어빵 먹어봤는데.”

“뭐???? 어땠어? 맛있지?”

“뭐…. 나쁘지 않더라.”

“쳇 싱겁긴.”


사실은 서하와 같은 이유였다. 슈크림 붕어빵을 먹어야지만 4년 전 서하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주를 두병 째 마실 쯤. 취기가 살짝 올랐을 쯤 이었다.

“영주야. 그 있잖아….”

“응?”

“4년 전에 바쁘다는 핑계로 너 맨날 외롭게 혼자 둬서 미안해.”

일본노래가 나오는 선술집. 그 노래들 사이로 영주는 가만히 내 말에 경청했다.

“그날 너 그렇게 떠나니깐, 항상 온기가 가득했던 우리 집이 엄청 춥던거 있지?”

“그제야 깨달았어, 이 공간을 따뜻했던 건 영주가 있어서였구나. 우리 둘이 함께여서였구나.”

“그 이후로 4년 동안 계속 후회했어. 그때 내 행동에.”

영주는 말없이 나를 쳐다봤다.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4년 전 그날 일들을 꺼냈다.

“그리고 계속 혼자 둬서 미안해 영주야. 항상 일보다 너를 우선시 했어야 했는데…. 8년 사귀니깐 당연하다고 여겼어….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었던 것 같아.”


4년 전 항상 나를 기다려줬던 그녀에게. 그래서 항상 혼자였던 그녀에게 사과를 전했다.

그 당시 많이 외롭고 힘들었을 영주에게 지금이라도 내 진심이 닿기를 바랬다.

“영주야 혼자 많이 외로웠지? 혼자 많이 아팠지? ”


영주는 내 말에 눈물을 흘렸다. 열심히 참으려고 했지만, 이내 무너졌다. 영주는 펑펑 울었다.

지금만큼은 4년 전 영주가 내 앞에 있었다. 그리고 내 말에 위로받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휴지를 건넸다. 그리고 그녀가 감정을 다 털어놓을 수 있게 기다려주었다.

10분 정도 울었을까 이내 진정된 그녀가 감정을 추스르며 말했다.

“흑…. 그때 나…. 정말 힘들고 외로웠어. 어느 순간 한계였던 것 같아. 그래서 그날 식당에 안 온 너가 정말 미웠어.”


나는 영주를 빤히 쳐다봤다. 내 눈앞에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을 나는 외롭게 했었다.

그때 내 자신이 정말 미웠다.

“그래서 그날 붕어빵 가게에서 너를 봤을 때, 4년 전 그때가 떠올라 도망칠 수밖에 없었어…. 그날 갑자기 도망쳐서 미안해.”

나는 그녀의 말에 손사레 쳤다.

“아니야!!!!! 나라도 그랬을거야.”

영주는 이내 감정이 진정된 듯 나에게 빈 소주잔을 내밀었다.

“더 안 마실 거야?”

“더 마셔야지!!! 잠시만!!”


나는 그녀와 술잔을 부딪혔다. 소주가 4병쯤 넘었을까. 영주의 볼은 떡볶이처럼 빨개져 있었다.

“떡볶이.”

“응?”

“영주 너 볼. 떡볶이처럼 엄청 빨개. 킥킥.”

“치. 이서하 너 볼은 완전 닭볶음탕이거든요?”

“엥 진짜로???”

“킥킥. 바보.”


가끔 생각해봤다. 영주 말고 다른 여자를 만나 평범한 연애를 할 수 있을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떡볶이처럼 새빨개진 볼을 한 그녀를 보고 그때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었다. 나에게 여자는 서영주가 마지막이다.

나는 그녀에게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영주야 있잖아….”

“응?”


막상 진심을 전하려 하니 떨렸다. 그녀에게 처음 고백을 했던 12년 전 그해 겨울처럼.

지금 생각해보면 항상 그녀가 먼저 내게 손 내밀어줬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그녀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싶었다.


“나…. 너랑 헤어지고 4년 동안 무척 후회했어.”

“그리고 한가지 깨달은게 있다? 서영주라는 사람은 나에게 엄청 소중한 사람이라는 거.”

“지금이라도 가능하다면 그 후회를 바로잡고 싶어. 일이 안 바쁠거라 장담할 순 없지만 바빠도 항상 영주 네 곁을 지킬게. 이번만큼은 절대 외롭게 안 둘게.”


영주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어느 때보다 떨렸다. 그녀에게 차인다면 깔끔하게 포기하겠다.

하지만 후회하고 싶진 않다.

“영주야. 괜찮으면 나랑 다시 시작할래? 절대 익숙함에 속지 않을게. 소중함을 잃지 않을게.”


영주의 대답을 기다리며 나는 침을 삼켰다. 그녀는 뭐라고 대답할까.

날 찰까. 아니면 받아줄까. 1분간의 침묵을 깨고 그녀가 말했다.


“나 아직 너가 미워.”

“응? 아…. 그치 당연하지. 내가 너여도 많이 미울거같아….”

“그래서 다시 시작하긴 싫어. 우리 이미 서로를 너무 많이 알고 있잖아.”

차인건가. 깔끔하게 인정하자. 그녀와 친구사이로 지내도 뭐 아무렴 좋다.

다시 적당한 때를 봐 고백을….

“근데 나도 이서하 없는 나를 생각해 봤는데 안되겠더라. 이서하는 서영주 옆에 있어야해.”

“응???”


깔끔하게 인정하고 물러나려 할 때 반전이 일어났다. 상황은 순식간이었다.


“다시 시작하지 말고, 처음부터 시작하자. 12년 전 그때 겨울처럼.”

“처음부터…?”

“응. 처음부터. 다시 잘 부탁해. 이서하.”

“그러면 영주야 우리 다시 사귀는 거지?”

“으. 두 번 말하게 할래?”

“히히 아니야! 내가 잘할게!”


가끔 그녀는 종잡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게 그녀의 매력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를 사랑한다.

4년 전에도. 4년이 지난 지금도. 술집을 나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4년 동안 정말 잡고 싶던 손이었다. 그녀는 떡볶이가 되었고, 나는 닭볶음탕이 되었다.

“영주야 정말 보고 싶었어.”

“나도. 보고 싶었어.”


인연은 돌고 돌아 다시 만나게 된다고 하였다. 영주와 나는 많이 엇갈려 4년이 걸렸지만, 결국 다시 만났다.

“그럼 이제 우리 어디가지?”

“음…. 우리 집?”

“저기 이서하씨. 큰 착각을 하고 계시는데 우리 이제 1일이거든요?”

나의 농담에 영주는 나를 따끔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아 장난이야 장난. 진짜.”

“치. 한 번만 봐준다. 다음엔 얄짤없어.”

“음…. 아! 붕어빵! 붕어빵 어때?”

“콜!”


영주와 나는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해준 그 장소로 향했다. 추운 겨울 우리를 따뜻하게 해준 그 공간.

그리고 서로를 만나게 해준 그 공간. 팥과 슈크림을 항상 듬뿍 넣어주는 인심 좋은 그 공간.

오늘 데이트의 마지막 목적지는 그 붕어빵 가게였다.

항상 혼자 가는 길이어서 조금 추웠지만 오늘은 춥지 않다. 내 손을 잡고 있는 그녀가 있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 이 손을 놓지 않을 거다.

사계절이 지나 다시 붕어빵 생각이 나는 계절이 오면 이 손을 잡고 이 길을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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