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에필로그. 여자 점원의 이야기.

에필로그2

by 박하준

나는 죽지 않는다. 빌어먹을. 이제는 이 삶이 지긋지긋하다.

소중한 인연을 만나도 그 인연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인간의 수명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500년 동안 아무 인연도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신경 쓰이는 사람이 생겼다.

망했다. 이게 다 그 멍청한 인간 남자 때문이다.

그 남자의 직업은 국화빵 장수였다. 그 남자와 어쩌다 만나게 되었을까.


1930년 일제강점기. 모두가 바쁜 경성의 아침.

그 국화빵 장수는 남들보다 1시간은 일찍 출근해서, 1시간 늦게 퇴근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낡은 천막에서 국화빵을 팔았는데, 그곳에선 항상 달콤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천막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천막에 꼭 들리게 하였다.

그래서 천막엔 항상 사람들이 몰렸다.


“10원어치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여보슈. 팥 좀 듬뿍 넣어주시오!”

“헤헤. 어머님 배터지게 먹을 수 있게 듬뿍 넣어드릴게요.”


사람들은 그 낡은 천막의 따뜻한 온기를 좋아했고, 그 국화빵 장수의 인심을 좋아했다. 그래서 허름한 낡은 천막에 자꾸 방문하게 되었다.

출근길에 그곳을 들리면 장소의 온기 때문인지, 그 남자의 정 때문인지 따뜻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퇴근길에 그곳을 들리면 지친 심신에 조그마한 위로를 받았다.

서울 사람들에게 국화빵 장수의 낡은 천막은 단순히 국화빵을 사먹는 곳 이상의 장소였다.


“아저씨 조심히 들어가세요.”

“어머님 오늘도 장사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으이구.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다 애들아. 아저씨가 국화빵 2개 더 넣었다.”


그는 자신의 일에 만족했다. 사람들이 이 천막에서 조금이라도 희망과 위로를 얻고 간다면 그는 그걸로 좋았다.

그리고 희망을 얻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언젠간 다가올 조국의 독립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에게 국화빵은 현실에 지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조그마한 행복과 희망이었다.


국화빵 반죽이 거의 다 떨어져 퇴근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한 여자가 천막을 찾았다.

그 여자는 어디서 굴렀는지 아니면 다쳤는지 다리를 쩔뚝이고 있었다. 그리고 팔에는 총상을 당해 피를 흘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몰골은 몇일을 굶었는지 볼이 볼품없이 앙상해져 있었다. 붕어빵 장수가 이 여자는 대체 누굴까 생각할 때 쯤.

그 수상한 여자가 말을 먼저 꺼냈다.


“헉헉…. 잠시만 숨겨주세요. 사례는 꼭 하겠습니다.”

“숨겨달라고요? 누구한테 쫓기고 있나요?”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일단 먼저 신세 좀 질게요.”

“아니 이 처자가…!”

그녀는 천막 안쪽 반죽이 있는 곳에 숨었다.


얼마 뒤 일본 순사 3명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서툰 조선말로 절뚝이는 여자를 본 적 있냐고 물었다.

나는 그 여자가 반대편으로 뛰어갔다고 말했다. 순사 3명은 알겠다고 하고 반대편 방향으로 사라졌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여자가 숨은 쪽을 보았다.

“이봐요. 순사들 다 갔어요! 이제 그만 숨고 나와도 돼요.”

“…….”

여자는 말이 없었다. 나는 서둘러 여자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몇일동안 잠을 못 잤는지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앙상하게 마른 채 잠들어 있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워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연민이 갔다.

딱 봐도 갈 곳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그녀를 푹 재우고 푹 먹여주고 싶었다.

순사들이 눈치채고 다시 돌아오기 전에 서둘러 퇴근 준비를 하곤, 곤히 잠든 그녀를 업었다.

사람이라 하기에는 정말 가벼웠다. 국화빵 장수는 양손에 짐을 챙기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국화빵 장수는 그녀를 자신의 집에 데려온 후 정성스레 간호했다. 평소 연민이 남들보다 한 국자 반 정도 더 많은 그였지만, 지금만큼은 연민이 아니었다.

그녀가 궁금했다. 대체 그녀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평소 여름에는 덥게 겨울에는 춥게 사는 것이 익숙한 그였지만, 사연이 있어 보이는 손님을 위해 간만에 장작을 베었다.

장작을 얼마나 넣었을까. 그의 온돌방은 오늘 그가 판 국화빵처럼 금새 따뜻해졌다.


얼마나 잠들었을까. 닭도 아직 잠들어 있을 시간. 그녀는 눈을 떴다.

따뜻한 온돌바닥 덕분인지 아니면 정말 오랜만에 푹 자서인지 몸이 가벼웠다.

눈을 뜨자 낯선 풍경에 그녀는 당황했다.

“여…여긴 어디지…?”


그녀는 마지막 기억을 더듬어봤다. 분명 일본 순사를 피해 달아나고 있었다.

순사들의 추격을 따돌리려 국화빵 냄새가 가득한 천막에 숨었다. 그녀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분명… 천막에 숨었던거 같은데….”


그때였다.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자신의 겉옷에 숨겨둔 단검을 꺼냈다. 그리고 숨죽이고 있었다.

발걸음이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터벅터벅.

그녀는 침을 삼켰다. 그녀가 숨죽이며 침을 2번째 삼켰을 때쯤 방문이 열렸다.

“저기… 몸은 괜…… .”

그녀는 날쌔게 남자에게 달려가 그의 목에 칼을 겨눴다.

국화빵 장수는 당황하며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살… 살려주세요!”

“내가 왜 여기에 있지?”

“기…깊은 잠에 빠져있는 것 같아 제가 업고 데려왔습니다. 팔에 상처도 있었고….”

“그냥 외면할 수는 없었어요. 우리, 같은 조선 사람이잖아요.”

그녀는 남자를 겨누던 칼을 내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그제야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그쪽을 한번 더 데려오면 제 간이 멀쩡하지 않겠어요….”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근데 제가 아직 할 일이 남아서……. 그럼 이만.”


그녀는 자신이 오늘 했어야하는 일이 떠올라 서둘러 떠날 채비를 했다. 그런 그녀를 국화빵 장수는 잡았다.

그녀의 손에는 굳은살이 가득해 웬만한 억세풀보다 더 거칠거렸다.

“잠시만요. 오늘 하루만 있다가요.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잖아요.”


국화빵 장수는 진심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동자는 차가운 시베리아 벌판 같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봄날의 햇살 같은 따뜻함을 되찾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단호했다.

“괜찮아요. 아직 할 일이 남아서….”


그녀는 아까 했던 말을 반복하며 겉옷을 챙겨 밖으로 향했다. 국화빵 장수는 그녀를 따라 마당으로 나갔다.

그리고 혹여나 그녀가 길을 잃을까 봐 마을 지도를 건네주었다.

그때였다. 그녀가 웃었다.

“감사합니다. 오늘의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요.”


잠깐이지만 그녀의 얼굴에서 봄날의 햇살이 보였다. 국화빵 장수는 무언가 직감했다.

오늘 이 여인과 또 만날 것 같았다.

국화빵 장수는 봄이 되어, 서울에 벚꽃이 핀다면 그 벚꽃 꽃말을 그녀에게 주고 싶었다.

이 벚꽃처럼 당신은 아름답다는 마음을 담아서.


국화빵 장수는 그녀와의 다음을 기약하며 잠에 들었다. 언제 또 그녀와 만날 수 있을까.

다음에는 꼭 그녀의 사연을 들을 것이다.


한 남자가 열심히 국화빵을 굽고 있을 때 당시 나는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다.

평소 세상일에 간섭하는 걸 싫어하지만, 이번만큼은 간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독립군에 들어가 투쟁했다. 하지만 무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일본군의 기습으로 어제까지 함께 웃고 울던 전우들이 죽었다.

나는 그들의 복수를 위해서라도 꼭 살아남아 독립을 외치고자 하였다.

추격군을 피해 연변에서 함경도, 함경도에서 평양, 평양에서 개성을 지나 경성에 당도했다.


두 번째 일은 독립 투사들에게 폭탄이나, 권총을 몰래 전달하는 역할이었다.

내가 전달한 폭탄과 권총으로 독립투사들은 독립을 부르짖으며 투쟁했다. 그리고 그들의 희생을 기억했다.

마침내 하나의 폭탄이 남았다. 나는 그 폭탄을 들고 원래라면 오늘 조선총독부를 향해 던지고자 하였다.

하지만 계획은 발각되었고, 일본 순사들을 피해 도망쳤다. 그 과정에서 팔에 총을 맞았다.

죽지 않는 이 지긋지긋한 삶이 이제 드디어 끝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쯤 천막이 보였다. 천막에서는 국화빵 냄새가 났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한 게 언제였을까. 나도 모르게 그 천막으로 향했다.

그때 그 국화빵 장수를 만났으면 안되었다.

나는 그날 의도치 않게 그 남자를 내 운명에 끌어들였다.


어쨌든 그 남자 덕분에 지긋지긋한 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독립을 외칠 수 있었고, 동지들의 복수를 할 수 있었다.

그 남자에게 먼저 든 감정은 고마움이었다. 일본 순사들의 경비가 삼엄해져 폭탄을 던지는 일은 뒤로했다.

국화빵 장수에게 고마움을 전달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그 낡은 천막에 향했을 때 그 남자가 보였다.


“어서오세요. 어? 맞죠?”

“저…저기. 크흠. 그러니깐.”

“몸은 어때요? 이제 다 괜찮아진거에요?”

“네…. 뭐…. 덕분에.”

“휴. 다행이다.”

국화빵 장수는 나를 보곤 환하게 웃었다.

“그날 그렇게 사라져서 걱정을 얼마나 많이 했다고요.”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함이었다.

“저… 저기. 그 그러니깐…”

“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어요?”

“그… 그게. 가.. 감사… 감사합니다.”


나는 그 말을 하고 볼이 빨개졌다. 얼마나 빨개졌을까.

국화빵 장수는 내 볼을 보더니 귀여운 듯 웃었다.

“에이 뭘요. 같은 조선인끼리 돕고 사는거지.”

“이 은혜 제가 꼭 값을게요.”

“음…. 그러면 일단 이 국화빵 하나 먼저 먹어줘요.”

“국화빵이요?”

동지 팥죽이 생각나는 팥앙금이 가득 들어간, 먹음직스러운 국화빵이었다.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구가 든게 얼마만일까.

나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그 먹음직스러운 국화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뜨거웠다.

“하……. 호….”


그런 내 모습을 국화빵 장수는 흐뭇하게 보았다. 국화빵은 달고 맛있었다.

서둘러 나머지 남은 부분도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그리고 그를 보았다.


“저…. 여기 국화빵 20원어치 주세요!”

“네? 그렇게나 많이요?”

“네.”

“으이구. 손님 다 못먹어요. 5원어치만 드릴게요.”

“앗….”

“대신 앞으로 맨날 와줘요.”

“네?”


그 이후로 다음날이고 그 다음날이고 나는 그 천막에 향했다.

분명 따뜻한 다른 가게도 많았지만, 이상하게 그 천막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은 달랐다.

그 의미를 생각하려고 하다 보니 어느덧 단골이 되어있었다.

단골이 된 나를 그 국화빵 장수는 항상 반겨주었다.

이제 국화빵 천막은 나의 아지트가 되었다. 추운 겨울을 그 천막 덕분에 따뜻하게 보냈다.


어느덧 봄이 되고 거리에 벚꽃이 조금씩 피기 시작했을 때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그 천막에 방문했다.

“어서오세요. 오늘은 20분 늦으셨네요. 단골손님?”

“아…. 일이 조금 있어서. 오늘도 5원어치 주세요.”

주문한 국화빵이 나오고 그 국화빵을 한입 베어 물었을까.

국화빵 장수가 평소와 달리 어딘가 경직되어 있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 아뇨? 아무 일도 없어요. 헤헤.”

“음? 무슨 일 있으시죠.”

“아 그게…. 손님. 그 혹시….”

“네?”

“내일 뭐하세요?”

국화빵 장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손님들에게 국화빵을 전할 때처럼 조심스럽게 내게 말을 전했다.

“내일…. 음. 내일도 이 시간쯤 여기에 국화빵 사러 오는 것 말곤 뭐 없어요.”

“그래요? 저 내일은 하루 쉬려고요 손님.”

“아 그래요? 어쩔 수 없네요….”


하루의 즐거움이 사라져 아쉬워하던 나에게 국화빵 장수는 다시 조심스럽게 진심을 전했다.

“내일은 손님하고 벚꽃 구경 가려고요.”

“네… 네에?”

그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그 당황스러움은 곧 내 볼의 색깔을 빨갛게 바꿨다.

그 당시 음식으로는 얼큰한 비빔국수 색깔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내일 저랑 벚꽃 구경 가요. 손님.”

“그… 그게.”

“저 벚꽃만 피길 기다렸어요.”

“아… 알겠어요! 저 일이 있어서 오늘은 먼저 갈게요.”


내 대답에 국화빵 장수는 흐뭇하게 웃었다. 서툰 시골 총각이라 하기엔 나름의 연애 고수였다.

그리고 천막을 뛰쳐나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달리던 중 그와의 약속 시간을 잡지 않은 게 생각났다.

그때는 무슨 용기였을까. 그와 정말 벚꽃 구경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다시 천막으로 돌아갔다.

“어? 뭐 두고 갔어요?”

“내일 청계천에서 1시쯤 만나요!”


그 말과 함께 나는 다시 천막에서 나와 무작정 달렸다.

그날은 볼의 색깔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 전까지 달렸었다.

내일이 기다려지는 건 100년 만이었을까.

그와의 벚꽃 구경 때문은 절대 아니었지만 예쁘게 하고 가고 싶었다.

그래서 시장에서 예쁜 살구색 머리삔도 샀다.


그녀는 내일 약속에 늦을까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나라를 뺏기고 떠돌이 생활을 반복하는 그녀는 여인숙에서 지냈다.

그 여인숙은 웬만한 호텔보다 아늑하고 따뜻했다.

벚꽃 구경을 위해 빨리 잠에 들고 싶었지만, 오랜만에 설레임을 느껴서일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녀의 가슴은 계속 두근거렸다. 이는 국화빵 장수도 마찬가지였다.

태어나서 여자랑 첫 벚꽃 구경. 국화빵 장수의 마음속은 장작불을 마구 뗀 온돌방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다음날이 밝았다. 국화빵 장수는 2시간이나 일찍 나갔다.

평소 느긋하고 여유로운 성격을 가진 그였지만, 벚꽃 구경만큼은 그에게 달랐다.

4월 초 청계천의 벚꽃 나무는 예쁘게 만개하였다. 그녀가 언제 올까 예쁜 벚꽃 나무를 보며 국화빵 장수는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였다. 서쪽에서 강한 바람이 불었다. 벚꽃잎이 휘날려 시야가 잠깐 가려졌다.

시야를 가린 벚꽃 잎을 치우자 국화빵 장수는 깜짝 놀랐다.

바로 앞에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헉.”

국화빵 장수는 그대로 코피를 흘렸다.

“어…. 이봐요! 괜찮아요?”

“아…. 네. 헤헤.”

바보처럼 웃음이 자꾸 나오는 국화빵 장수였다.


그녀의 뒤엔 예쁜 벚꽃잎이 흩날리고 있었고, 살구색 머리삔은 그녀에게 잘 어울렸다.

분홍 벚꽃을 뒤로 한 그녀는 무대 속 여주인공 같았다. 그리고 그녀 주변의 흩날리는 분홍색 벚꽃잎 모두 그녀의 미모를 돋보이기 위한 무대장치 같았다.

하지만 이건 연극이 아니었다. 그녀 역시 무대 속 여주인공이 아니었다.

오늘 나와 함께 벚꽃 구경을 할 우리 가게의 단골이었다.

“저… 저기. 오늘 예쁘세요. 저 벚꽃처럼.”

“네?”

“마치 연극의 여주인공인줄 알았어요. 반했어요. 그 짧은 순간에.”

“킥킥. 어제 밤새 멘트 준비하신거 아니죠?”

“아…아니에요! 진심이에요!”

“흐음.”


연애와는 오랫동안 담쌓고 지내 국화빵을 맛있게 굽는 법밖에 모르는 그 남자의 서툰 고백에 그녀는 피식 웃었다.

첫 반죽에서 나온 국화빵처럼 삐뚤삐뚤 서툰 그가 귀여웠다.

나는 첫 만남에 코피를 흘린 남자와 함께 청계천을 따라 예쁜 벚꽃을 구경했다.

동지들의 복수. 그리고 독립. 오늘 하루만큼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이 남자와 벚꽃 구경에 집중하고 싶었다.

청계천을 따라 한참을 걸었을 때쯤 국화빵 장수는 내게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봤다.

“저…. 궁금한게 하나 있어요.

”뭐에요?“

”그날…. 저희가 처음 만난 날. 무슨일이 있었던 거에요?”


나는 그의 질문에 한참 동안 국화빵 장수를 빤히 쳐다봤다. 아마 그의 눈을 계속 봤었던 것 같다.

그의 눈동자는 넓은 바다 같았다. 고요하지만 거대한 바다.

모든 비밀을 말해도 괜찮을 속 깊은 바다.

“말하자면 길어요. 오늘 밤새 얘기할지도 몰라요.”

“괜찮아요! 저 손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싶어요!”

“내일이 아니라 모레 끝날지도 모르는데요?”

“일주일이 걸려도 상관없어요! 알려주세요!”

“음…. 저는 사실…….”


이 사람이 파는 국화빵이 왜 인기가 많은지 알 것 같다. 아마 그 빵엔 그의 순수함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500년 전쯤이었나. 그 당시 소중한 사람에게 내 비밀을 털어놨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소중한 사람은 나를 괴물이라 여겼고, 곧 내 곁을 떠났다.

그 이후로는 절대 나의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500년이 지난 오늘. 이 사람한테만큼은 말해도 될 것 같았다.


정말이지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의 탄생. 그리고 죽지 않는 이 저주.

지금까지 많은 소중한 사람들을 보냈던 이야기. 그리고 국화빵 장수인 당신을 만나기 전 독립운동을 위해 힘쓴 날들. 그리고 나의 마지막 계획.

우리는 이야기에 얼마나 몰입했을까 해가 저물 때쯤 내 길고 긴 이야기는 끝났다. 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그는 내가 편히 말할 수 있게 열심히 경청해 주었다.

그 사소한 배려는 유자차처럼 따뜻해서 내 속 얘기를 모두 꺼내게 하였다.


“끝이에요. 정말 길죠? 믿지 않아도 좋아요. 사기꾼이라 생각해도 좋고”

그는 침묵을 이어갔다.

아 이 사람 역시 나를 떠나려나 보다 생각할 때쯤 그의 푸른 바다 같은 눈동자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한 방울 한 방울. 그 방울들은 모여서 거대한 장마 구름을 형성했다.

예상과는 다른 그의 눈물에 나는 당황했다.

지금까지 내 이야기를 듣고 불쌍하다 한 사람은 있었어도 운 사람은 없었다.

그의 눈물은 나에 대한 단순한 연민일까?

“흑흑…. 흑….”


나는 당황해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고장 났다.

일단 그의 바다같이 푸른 눈에서 눈물이 그치길 기다렸다.

눈물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을 때쯤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많이…. 많이… 힘들었겠다.”

“많이…. 많이… 외로웠겠다.”


300년 전을 마지막으로 운 적이 있었을까? 일본군의 독립으로 동지들을 잃었을 때도 울기보단 분노의 감정이 앞섰던 나였다.

그만큼 오랜 세월 눈물에 많이 무뎌진 나였다. 하지만 이 남자의 말에 무너졌다.

메마를 때로 메마른 내 감정에 정말이지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눈물이 계속 떨어졌다.

한번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오랫동안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단순한 공감이 아니었을까.

그 단순한 말이 500년이 걸렸다.


그는 내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울음이 그쳤을 때 나를 안아주었다.

그의 품은 따뜻했다. 그가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굽는 국화빵처럼.

우리는 그날 단순히 단골과 사장 사이라 부르기엔 애매한 관계가 되었다.


동지들을 위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내 마지막 계획 실행까지 5일 정도 남았다.

그동안 쉬지 않고 국화빵 냄새가 나는 그 낡은 천막을 찾았다. 이제 이 사람을 못 본다고 생각하니 이상했다.

어느 순간부터 허락한 적은 없지만 내 일상의 일부가 된 사람이었다.

가난한 사람이 쌀밥을 먹을 때처럼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했다.

벚꽃 개화와 함께 날씨는 조금씩 따뜻해지고 있었고, 내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밥은 먹었어요?”

“아 오늘은 바빠서 아직이요…. 헤헤.”

“으이구. 이따 끝나고 나랑 잔치국수 먹으러 갈래요?”

“에? 잔치국수 좋죠! 만두도 시켜요. 우리!”


이따 그녀와 저녁을 함께 먹을 생각에 국화빵 장수는 퇴근까지 버틸 힘이 났다. 그녀 역시 국화빵 장수의 밝아진 표정을 보고 기분이 좋았다. 이상했다. 왜 그가 웃으면 나도 웃고 그가 기쁘면 나도 좋을까. 이 감정은 대체 무엇일까. 일단 중요한 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슬슬 그와의 만남도 정리해야 한다. 하지만 계속 보고싶다. 당연히 욕심인 걸 안다. 하지만 계속 욕심내고 싶다. 어짜피 마지막이니깐 지금만큼은 조금 이기적이어도 되지 않을까?


“킥킥. 국수도 곱빼기로 시켜요.”

“곱빼기요??? 그 말 무르시면 안됩니다!”


우리는 그날 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건 그가 곱빼기 국수를 두 그릇이나 먹었다는 것과 집 가는 길 내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그 남자의 손은 그가 파는 국화빵처럼 따뜻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훌쩍 지나갔고, 어느덧 마지막 날이 되었다.

이제는 정말 그에게 이별을 고해야 한다.

평소 천막에 갈 때면 항상 발걸음이 가벼웠지만, 오늘만큼은 무거웠다.

“이제 이 천막도 익숙한 국화빵 냄새도 마지막이구나….”

천막에 들어가기 전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어떤 중요한 일을 하기 전 숨을 들이마시는 것은 지난 900년 동안 이어진 나만의 의식이다.

“이별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900년 전 그녀의 인생에 첫 이별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다음 이별. 그 그다음 이별. 그렇게 9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왔다.

이별은 신기하다. 숱한 이별을 해왔던 그녀도 이별 앞에서는 여전히 어린아이가 된다, 천막 문을 열자 국화빵 장수가 보였다.

국화빵 장수는 나를 보고 환히 웃었다.

“어서와요! 이제 완전 봄 날씨에요!”

“그렇네요.”


평소 따뜻하기만 했던 그의 미소였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나를 조금 아프게 하였다.

이제는 국화빵 장수의 웃음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마지막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오늘 국화빵 많이 팔았어요?”

“갑자기 뜬금없이 뭐에요. 킥킥. 제 살림 걱정 해주는거에요?”

“아니 그냥….”

“적당히 팔았어요. 날이 따뜻해져 겨울만큼 많이 팔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먹고살만큼은 팔았으니 걱정 마요.”

“걱정 안 했거든요.”


이제는 진짜 마지막 작별을 고해야 한다.

하지만 그와의 마지막 대화니깐 조금은 아주 조금 정도는 더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아 끼니는 거르지 말고 잘 좀 챙겨먹어요.”

“에? 허허. 걱정 마요. 장사 끝나면 남들보다 3배로 먹고 있어요.”

“그리고 아직 밤에는 추우니깐 외투 챙겨 다니고요. 감기 걸리니깐.”

“에? 허허. 오늘 무슨 날인가요? 여자한테 걱정 처음 받아보는데 생각보다 좋네요.”

“알겠냐고요!”

“알겠어요. 알겠어! 허허. 걱정 마요.”

“그리고…. 아….”

“네?”


이제는 진짜 말해야지 하고 운을 띄웠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별이라는거 쉽지 않구나. 그래도 해야 한다.

이 사람 덕분에 잠깐이지만 행복했으니깐. 잠깐이지만 이 사람이 내 일상이었으니깐.

“잘 지내요.”

“…….”

국화빵 장수는 내 작별 인사에 말이 없었다. 말없이 밀가루 반죽을 틀에 넣고 굽기만을 반복했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 중인걸까. 어쨌든 인사도 했으니 이제 가봐야겠다.

아 마지막으로 이 사람 이름을 물어보고 싶은데 욕심이겠지.


“그럼 이만….”

“저기요!”

그때였다. 국화빵 장수가 소리쳤다.


“나도 할 말이 있어요! 있잖아요. 나도 그쪽 덕분에 행복했어요. 그쪽을 만나고 매일매일 그쪽이 언제 올까 기다렸어요!”

“아….”

“그쪽은 저에게 있어 잊지 못할 단골손님이었어요!

“…….”

“아니 어쩌면 단골손님 그 이상이었어요. 잘 지내요…. 그쪽도.”

나는 뒤를 돌아 그를 볼 수가 없었다. 눈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계속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뒤를 돌아 그를 보고 싶었다. 이대로 뒤돌지 않으면 후회할 걸 안다. 그래도 가야 한다.

“그쪽도 저에게 국화빵 장수 그 이상이었어요….”

“….”

눈물을 겨우겨우 집어삼키며, 목 안에 있던 말을 힘껏 내뱉었다.

내 마지막 인사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배려이자 그에게 고백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마지막 말과 함께 서둘러 낡은 천막을 나왔다.

그리고 하염없이 어디론가 뛰어가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골목에서 펑펑 울었다.

추운 겨울 갓 나온 국화빵처럼 항상 따뜻했던 당신. 이젠 진짜 안녕.


나는 감정을 추스르고 최후의 계획을 위해 여인숙으로 향했다. 폭탄을 들고 이제 동지들의 복수와 조국의 복수를 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지긋지긋한 이 삶도 내 사명과 함께 끝낼 때가 되었다.

여인숙에 당도했을 때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폭탄. 가장 중요한 폭탄이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 차리고 침착해 생각해보았다.

“내 계획을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구지?”


동지들은 모두 죽었다. 그리고 마지막 폭탄은 오직 나를 위한 폭탄이다. 다른 독립투사 누구도 폭탄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생각에 생각을 반복하던 중. 한 기억의 파편이 내게 떠올랐다.

벚꽃 구경 당시 나와 함께 있었던 한 남자. 바로 국화빵 장수였다.

난 그 남자에게 내 마지막 계획을 말했다.

“설마…. 안돼!”


되찾은 기억의 파편과 함께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갔다.

만약 그 남자에게 폭탄이 있다면 그 남자를 말려야 한다. 그 남자만큼은 이 일에 휘말리게 해서는 안된다.

숨도 쉬지 않고 총독부 앞으로 달렸다.

달리면서 국화빵 장수가 제발 무사하기를…. 그가 무모한 짓을 하지 않았기를 바랬다.

총독부에 거의 다 왔을 때쯤 사람들이 모여 바글바글했다.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이 불길한 예감이 제발 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머어머…. 저거 국화빵 장수 아니여?”

“에구머니. 저걸 어째….”

“아니 저 사람이 대체 왜…. 어째서….”

“잠시만요! 저 좀 지나갈게요! 잠시만요!”


사람들을 뚫고 총독부 앞에 당도했을 때 그녀가 가장 보고 싶지 않았던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폭탄은 빗맞아 터졌는지 총독부의 담장만 무너져 있었다. 그리고 국화빵 장수는 그 앞에 쓰러져있었다.

몸에 총알이 얼마나 박혔는지 피범벅이었다. 그는 숨을 쉬는 것조차 버겁고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힘든 그 호흡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국화빵 장수에게 뛰어갔다. 그리고 그를 안고 울었다.

나를 보자 그가 웃었다.


“흑…. 바보. 당신은 바보야. 대체 왜 이런 선택을 한거야…. 흑흑.”

“헤헤…. 다… 다행이다….”

나를 보자 그가 웃었다.

그 미소는 내가 낡은 천막에 방문할 때면 항상 나를 보고 웃었던 그 미소였다.

“이 바보야! 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당신하곤 상관없는 일이잖아!”

“헤헤. 미… 미안해요.”

“대체 왜… 왜! 흑흑.”

“그…그래도. 헉헉….”

“말하지마! 내가 당신 병원 데려가서 어떻게든 살릴거니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자신의 끝이 되었음을 직감한 것 같았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지만 이제 정말 끝이 왔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힘을 쥐어짜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내뱉었다.

국화빵을 만들 때처럼 진심에 진심을 담아서 외쳤다.


“저기… 여…여어. 헉헉.”

“제발 말하지마요. 병원가서 치료 받고 그때 말해요.”

그는 내 손을 꼬옥 잡았다. 그의 손은 그날 국수를 먹고 집가던 길 잡았던 손하고 달리 정말 차가웠다.

국화빵 장수는 이제 정말 마지막이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서둘러 그녀에게 말해야 했다.

“여… 여…. 여연… 연모…. 헉. 연모…. 헉헉. 연모합니다.”

그 말과 그는 눈을 감았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흑흑…. 나도…. 나도 연모해요….”


총독부 앞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우릴 보며 안타까워했다.

시간이 흘러 밤이 되고 많던 사람들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총독부 앞에서 그를 안고 울었다.

내 슬픔에 하늘도 슬펐을까 내가 국화빵 장수를 만나고부터 비가 계속 내렸다.


울고 또 울었다. 지치면 잠깐 멈추었다.

그리고 기력이 조금이라도 돌아오면 다시 울었다.

나를 가엾이 본 낡은 천막의 또 다른 단골이었던 국밥집 이모가 우리 근처로 왔다.

“아이고…. 색시. 슬픈거 다 알아.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아마 국화빵 장수도 그걸 바랄거여….”

“…….”

“얼릉 나랑 같이 가자 이사람아!”

국밥집 이모는 나를 자기 가게에 데리고 갔다. 그리고 뜨끈뜨끈한 국밥을 내주었다.

“자 얼릉 먹어! 얼릉!”

“흑. 가… 감사합니다. 흑흑.”


뜨끈뜨끈한 국밥은 지칠대로 지치고, 모든걸 포기하려 했던 내 마음에 다시 불씨를 살려 주었다.

그리고 국밥집 이모의 순수한 마음은 나를 다시 움직일 수 있게 해주었다.

정신을 차린 나는 일단 그의 시체를 일본 순사가 욕보이지 못하게 화장했다. 그리고 재가 된 국화빵 장수의 뼈가루를 산언덕에 올라가 멀리멀리 뿌렸다.

그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게 뿌렸다.

“거기서는… 부디 행복해요.”


국화빵 장수를 떠나보낸 그녀는 이제 삶과 이 땅에 미련이 없어졌다. 그래서 멀리 떠나려고 하였다.

여인숙에 남아있는 짐을 정리하던 중 한 편지가 떨어졌다.

편지를 열어보자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국화빵 장수가 남긴 편지였다.


그날, 같이 예쁜 벚꽃을 본 당신에게.


처음에 당신을 보았을 때 당신은 무슨 사연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괜히 신경 쓰였습니다.

그땐 단순한 호기심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금세 호기심 그 이상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벚꽃 나무 아래서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당신의 계획을 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을 연모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어떤 남자가 자신이 연모하는 사람을 먼저 보낼 수 있을까요?

많이 이기적인 사람이어서 미안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저를 이어서 국화빵 장수가 되어 주세요. 저 대신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주세요.

마지막까지 이기적인 부탁을 하고 가서 미안합니다. 그리고 연모합니다.

아 참 제 이름은 정 길손입니다. 우리 통성명도 안 했네요.

만약 다음 생에 또 만난다면 그때는 꼭 이름을 알려주세요.


그녀는 편지를 껴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나지막히 말했다.

“흑…. 흑. 연이에요 내 이름은 김연이….”


시간이 흘러 낡은 천막에는 국화빵 말고 새로운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붕어빵 냄새였다.

비록 파는 음식은 달라졌지만 따뜻한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추운 겨울이 되면 사람들은 따뜻한 마음이 가득한 이 낡은 천막에 방문한다.

처음엔 국화빵 장수의 부탁에 시작한 일이지만 이제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누는 이 일이 즐겁다.

그녀는 오늘도 밀가루 반죽에 팥과 슈크림을 가득 넣는다.

이 붕어빵을 먹는 사람들이 행복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도 가득 담는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 때문일까? 천막은 오늘도 따뜻한 온기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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