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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Nov 12. 2020

<방패론>

이상을 좇는 현실의 존재, 나이에 따른 사회적 기대와 인식에 관하여.

나이에 따라 기대되는 사회적 역할에 관해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나는 그것에 꼭 따르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삶을 영위하고 싶다는 이상주의적 사고를 하면서도, 

사회적 틀 안에 남들보다 비교적 빠른 속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갖는, 이중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불쑥불쑥 나의 세계가 현실을 마주할 때 나는 이상에 다가가기를 잠시 멈추곤 한다.


어떤 일이든 기준을 높게 설정하는 나는 당장 실행에 옮길 능력과 의지의 유무, 외부적인 상황에 따라,


    (a) Now or Never마인드의 추진력을 갖고 나아가거나,

    (b) 생각만 가지고 실행에 옮기지 못해 어쩔 줄 몰라 조급해하는,


 크게 이 두 가지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최근 졸업할 시기가 다가오면서 용돈을 꼬박꼬박 받아쓰는 내 모습이 싫고 얼른 자립하고 싶어서,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는 (b) 번의 상태였다가, 기회가 와서 충동적으로 들이박았고 그 열정이 좋게 비쳐 한 회사에 입사했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게 된 둘도 없을 행운이지만, 선택의 과정을 되돌아보면 나의 조급함을 해소해 줄 치료제이자 현실적인 명분이라는 방패였을 뿐, 진정 내가 원했던 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웹툰 <죽음에 관하여>의 한 장면.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자’고 외치며 살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실제로 전혀 의식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그 외침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자’는 공익적인 성격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위축된 나의 마음속 자유의지에 관한 연민, 그 억울함에 대한 표출, 또는 그것을 극복해 낸 당당한 본인의 모습에 대한 자부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물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이다).

 나는 나만의 속도로 나아가고자 했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 했지만, 현실과 타협했다. 어찌 보면 우리는 모두 현실을 살고 있는 것이기에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상은 말 그대로 이상이다. 가까이 갈 수 있을지언정 100% 이뤄낼 순 없다. 아, 유토피아~


 하지만 내 마음속의 이상을 향한 동경은 멈출 수 없다. 그 생각이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더 이상 세계에 가까이 살 수 있도록 해준다고 믿는다. 만약 내가 생각하는 이상에 나보다 조금 더 가까이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누군가는 철없고 세상 물정 모른다고 손가락질해도, “당신은 그 누구보다도 강하고 멋진 사람이다”라고 진심 어린 말 한마디를 건네고 싶다. 스스로를 믿고 헤쳐나가는 자세로, 조급해하지 않고, 현실에 굴복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건 정말이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방패를 장만한 만큼 나의 자유는 줄어들 것이다. 일단 방패는 무겁고, 무엇을 하든 내 몸과 함께하기 때문에,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적어도 나의 방패의 크기가 남들보다 조금 더 작다는 것은 느낄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나는 예전보다 조금은 강해졌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당신을 막아주는 방패는 어떠한가?

    (1) 그 누구보다도 당신을 아껴 주는 사람이 대신 들고 막아주고 있다면, 그 안전한 자리에서 성장할 것인가.

    (2)   무겁지만 주체성을 지니기 위해 방패를 새로 장만해 스스로 들고 다닐 것인가.


 난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며 조급함을 이겨내지 못해 (2)를 택했지만, (1)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최대한 지속하는 것을 추천한다. 언젠가 (1) 번 선택지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 앞으로는,


    (3)   커다란 방패 하나를 장만해서 하루하루 그 쉼터가 마련되어 있음에 감사하며 살 것인가.

    (4)   천천히 강해지며 방패막을 서서히 걷어낼 것인가.


 선택은 본인의 몫이며 특정한 삶의 방식을 비하할 의도가 없음을 알린다. 단, 당장 지켜내야 할 것이 있다면 (4)의 선택지는 고르기 어려워진다. 방패는 짧은 시간 안에 마련할 수 있지만 강해진다는 건 상당히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 현실이 당장 눈앞에 닥친 분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겠다. 나는 다행히도 (4) 번을 선택할 수 있는 엄청난 행운을 얻었다. 이 매력적인 선택지를 스스로 저버리고 싶지는 않다.


이 글을 읽고 나서, 굳이 험한 길인 (4) 번을 선택한 자 나에게 말해달라. 


지금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언제든 좋다.


 나는 당신과 위대한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있다. 



언젠가 방패가 필요 없을 만큼 떳떳하고 강해진 우리의 모습을 그리며. 


움츠렸던 자유와 행복의 날개를 펼칠 그 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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