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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Mar 09. 2022

팔굽혀펴기 하다 울어본 날

2022년 1분기 회고록

저녁 8시가 좀 넘은 시각. 산책을 다녀와 집 안에서 방문을 살짝 열어 바람이 들게 하고, 목 마름을 대비해 500ml 물통을 옆에 두고, 웃통을 벗고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었다. 그뿐이었다. 



 나는 요즘 취업연계 코스에 참여하고 있다. 목표로 하는 좋은 회사도 한 군데 있다. 나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빨리 취업을 하고싶다가 아니라, 인정받고 스스로 일어서고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욕구. 

그게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 나의 가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가고 있다고 믿는다. 나를 필요로 하는 회사는 많다. 내 성에 차지 않을 뿐이다. 


한국 나이로 나는 올해 28살, 하나뿐인 형님은 올해 30살이다. 신림동에서 고시생으로 지내던 형님은 5급 일반행정 시험을 이제 그만두기로 했다. 1차 시험을 한 번도 패스하지 못한 채로 몇 년을 보내었으니, 다시 도전하겠다고 하면 뜯어말렸을 것이다. 그런 형에게 나는 몇십 번의 퇴고 끝에 가족들이 모두 보는 방에서 장문의 편지를 보냈었다. 시험에 떨어져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도 답답해서. 내가 잘났다는 게 아니라, 형은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잘 모른다. 내가 알려주어야 한다. 그것 하나만큼은 단언할 수 있다.  


 지난 2021년 아버지의 사업은 코로나로 인해서 꽤 힘들어졌었다. 옛날에 집을 잘 사서 그 집이 재건축을 하고, 다시 재입주하여 부대시설 잘 갖춰진 좋은 집에서 총자산은 상승하고 있으나, 현금이 많이 없어서 내가 퇴사하기 전에 모아뒀던 돈을 어머니께 드려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었다. 하지만 나도 아직 취준생인지라, 내 코가 석자였다. 어머니는 결국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이제 코로나고 뭐고 다 활동 잘하니까, 점점 나아지겠지. 아니 뭐 나아지지 않아도 내가 벌면 되니까. 다들 웃으면서 지내고 골프도 잘 치러 다니시고 일상이 무너질 만큼 심각한 상황까지는 아니니까.


 어쨌건 나는 그저 현실을 살아가고 있었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돈을 아껴야 했다. 카페 가서 사 먹는 커피값을 아끼려 집에 있는 날이 많아지고, 시켜먹고 사먹는걸 그리도 좋아했는데 많이 줄었다. 앞으로 모아야 할 돈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상황에 맞게 욕망하게 되었다. 여행을 가고 누구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많이 없다. 얼마 전에 형이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 더더욱. 최근 몇 개월간 단 하루도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식과 함께 자신감이 충만해져 가고 있다. 정말이다. 


최근에 친구네 경조사에 다녀온 이후로 항상 감사한다. 부모님이 건강하신 것.


코로나는 전 국민이 다 한 번씩 걸려야 종식이었나 보다. 그 와중에 부모님이 걸려서 집에서 마스크를 쓰고 계신다. 걸리기 싫다.. 걸리면 공부도 제대로 못할 텐데 하루하루가 아깝다. 


어제는 어머니가 아파서 방에만 계시길래 미분당 쌀국수를 사 와서 대접했었다. 나를 포함한 고생한 누군가를 위해 가벼운 정성을 주고 싶을 때 찾는 음식이다. 너무너무 맛있다. 

먹고 맛없다고 느끼는 자 나에게 돌을 던져라.

오늘 해야 할 일을 얼추 마치고 밖에 나가 산책을 했다. 어제 턱걸이를 제대로 했는지 등에 알이 배겨서 잘 안되더라. 집에 돌아와 팔굽혀펴기를 했다. 건강하기 위해서 적당히 하는 운동들이지만, 어찌 보면 주변에 자극이 없어 이런 자극이라도 찾는 건지 모를 일이다. 


나는 왼쪽의 거울로 나의 몸통이 내려갔다 올라가는 걸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한 세트가 끝날 때마다 유튜브로 예능 프로를 보면서 짬을 즐기고 있었다. 4세트째에 근력이 한계를 느끼고 몸통이 올라가려다 힘이 빠져 앞으로 엎어지고, 다시 한번 이를 악문 채로 픽 하고 널브러진 순간,

 나는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최근 몇 개월간 눈물이 결핍되어 있었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겁이 많고 잘 울던 나였지만, 옛날에 놀러 갔던 칠레의 사막처럼 건조한 나의 삶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나의 눈물샘이 메말라가고 있었다. 눈물이 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데에 필요성을 논하다니, 스스로에 대한 연민 섞인 실소가 터져 나온다. 내 안의 무의식이 울고 웃고 흐느끼는 자연스러움을 사치라고 치부해 버리는 기전이 돌아가고 있을까 하는 영양가 없는 상상도 해봤다. 

  어쨌든 나는 왼쪽 팔에 얼굴을 엎드린 채로, 별다른 옷가지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방 안에서 눈물을 흘렸다. 순간 밖에서 TV를 보고 있는 부모님이 소리를 들을까 봐 의식했다. 그리고 나의 지금 이 장면이 촬영되고 있었고 확인한다면 참 볼만하겠다고 생각했다. 팔 굽혀 펴기를 하던 와중 몸을 들썩거리며 우는 20대 후반의 청년.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그 와중에 내 모습이 웃기고 처량하다고 느끼는 나. 봇물 터지듯 눈가에 홍수가 나겠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메말라 있던 데 익숙했던 눈물샘은 1분도 되지 않아 그쳤다.  

 내가 알 수 있는 이 눈물의 원인은 그저 내가 스스로를 억제하면서 살았구나 정도였다. 이외에 나조차도 예상할 수 없었던 뜬금없는 타이밍에 터져버린 이 눈물의 의미를 시간이 오래 지나도록 반추하며 되새기게 될 것 같다. 


영화 같은 삶, 현실적인 영화.

그림 같은 풍경, 사진을 찍어낸 듯한 그림. 

아이러니하게도 비슷하지만 다른 속성을, 서로 얼마나 잘 묘사하고 모방했는지에 따라 객체는 다르게 평가된다.

그리고 칭찬한다. 너의 삶은 영화 같다고. 이상과 맞닿아있다는 이야기일까?


어쨌든 오늘은 내 인생의 서사에 있어 기록할 만한 날이고, 이 글은 나에게 있어 더더욱 의식의 흐름으로 기술하고 있는 새로운 시도다. 나의 2022년 3월 9일 마음, 생각, 기분, 감정 모두 반영하고 있다.


사실 나는, 오늘 이 글을 마치며 내가 울었던 이유를 얼추 다 알게 되었다. 


부끄러운 것들에는 굳이 남들에게 공개하지 않고 묻어갈 것들이 있고, 공개함으로써 치유되는 게 있다. 오늘의 일들은 후자의 경우라고 믿고, 이렇게 내가 지금 관계를 형성하고 있고 앞으로 맺어 갈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바이다.


과거의 나는 이런 글을 보고도 그대로 살았겠지? 현실이 나의 마음을 좁게 만들지 않았으니. 우리가 숨을 쉬며 공기에게 감사해하지 않듯 나도 고마움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겠지?


내일은 면접이 있는 날이다. 이름만 대면 다들 알만한 회사지만 목표로 하는 회사가 아니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예정이다. 


 나는 지금 버티거나 무언가를 계속 참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꿈에 그리던 회사에 취업하게 되어도 내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힘들다고 느끼는 날도 많이 없지만 그러면 오늘처럼 슬퍼하고 한숨 자고 나면 그만이다. 그러니 이 글을 보고 내가 힘들구나 하고 느끼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저 우리네 사는 웃픈 해프닝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하지만 그래도 힘내라는 말, 파이팅하라는 말을 듣고 예민하게 반응하지도 않겠다. 주변에서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는 걸 아니까. 미리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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