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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May 14. 2022

아버지, 막국수가 좀 맵네요?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에 대한 깨달음

  대외적으로 만연한 사회 현상은 차치하고, 뉴스에 나올 만한 사건들은 대부분 흔하지 않은 일들이다. 특별하거나 이상한 정도가 지나쳐 기사거리가 되기 때문에 우리가 미디어로 소식을 접하게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 두 번째로 눈물을 흘린 이야기를 꺼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내 생에 특별한 이벤트이기 때문에, 기록할 만한 가치를 느끼기 때문에 씌여지는 것이다. 동시에 이 단락은 '나는 눈물을 자주 흘리지 않는다'는 문장을 표현하고 싶은 나의 괜한 자존심이 담긴 서론이다. 


 전날에 같이 스터디를 꽤 오래 한 분 중 한분이랑 맛있는걸 먹었었다.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 참 많이 위로가 되었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아닌데 자꾸 내가 꺼내는 이야기가 상대방의 위로를 유발하는 말들이라 뭔가 미안하기도 했다. 게다가 과카몰리라는 음식도 알게되어 좋았다. 아보카도와 많이 토마토, 양파 등 여러 재료들을 넣은, 그냥 먹어도 맛있고 나쵸에 얹어 먹어도 맛있는 음식. 나중에 직접 해먹어봐야지.


맛있겠지?

 




어찌 됐건 그 자리가 마무리되고 그분이 나에게 격려를 해주시면서, '무리하지 말고 여유를 갖자'는 이야기를 건네줬는데 크게 와닿아서 진짜 그래야겠다 싶었다. 남아있던 일도 내려놓았다. 


 그래서 오늘은 아무것도 안하기를 계획에 넣었다. 밥먹는것조차 귀찮아하기(그렇다고 안먹은건 아니다). 

그렇게 누워있는데 아버지가 날 불렀다. 나가서 먹자고. 나는 아버지가 먹고싶은 거 먹자고 하며 OK했다. 먹고싶은 걸 선택하는 게 귀찮다는 마음과, 그동안 양보했던 아버지가 먹고싶은 걸 먹자는 배려심 이 반반씩 담긴 멘트다. 


 그래서 먹으러 갔다. 메뉴는 막국수. 아빠는 비빔막국수 나는 물막국수. 


아버지가 '막걸리 한잔 할까?' 라고 하신다. 나는 사양한다. 술을 웬만하면 마시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드시면 짠만 해드리겠다고 한다. 


아버지는 내가 소신이 있어서 오히려 좋다고 하신다. 음.. 아직까지는 함께하는 사람에 따라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완벽하지 않은 소신이지만 그래도 소신은 소신이지.


아버지는 내일 골프를 치러 가신다고 한다. 골프치러 다니는 모습 행복해 보이신다. 보기 좋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골프치면서 이따금씩 싸운다. 아버지는 좋은게 좋은거지 하며 지내려고 하시는 게 있는데, 그게 어머니의 눈에는 이따금씩 배려 없이 혼자 신나있는 것 처럼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이랑 있을 때 행동을 제재하려는 게 있다. 그러다 보니 싸움이 나는 것이다. 그래도 이정도면 잘 지내는거지 하면서 피식 웃으신다. 



나는 내가 생각해왔던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내가 돈을 모으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아버지는 결혼자금 모으는거 좋다고 호응해 주신다. 언젠가 어머니가 '아들들이 결혼을 안하면 어떡하지?' 라며 자기 전에 걱정하신다는데, 확실히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고 싶다. 그게 나뿐만이 아니라 부모님의 기쁨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으니까 굳이 사회적인 틀을 거부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그동안 웃음을 많이 잃은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아버지는 '맞다, 네가 그래보인다'고 한다.  


나는 그래서 앞으로는 웃음을 좀 되찾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아버지는 내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네가 진짜 집안의 분위기메이커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고 하는 애기는 아니고, 내가 사춘기와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나름의 고충이 있었겠지' 하고 생각한다고 하신다.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연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는지 분위기가 좋아지는지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그렇게 하고싶지 않나봐요.'

아버지는 형과 어머니를 언급하며 그런 유쾌한 얘기를 받아주는 티키타카가 어려운 DNA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널 이해한다고 한다. 

형이 걱정이 된다고 한다. 그래도 엄마 아빠는 이제 옛날사람이라 도움을 줄수 있는 사람이 너밖에 없으니, 네가 도움을 주고 있어서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한다.



...


갑자기 숨어있던 눈물이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아직 아빠가 눈치는 못챈것같다.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시니 얼른 딴생각을 하면 된다.




...


아니, 안된다.

가속도가 붙은 듯 점점 차오른다. 

아버지에게 중학교 이후로 보인 적 없던 모습을,

20대 후반을 바라보며

처음 보이고 있다. 

걱정시키기 싫어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중력에 이끌려 흘려내려 오는 물을 손바닥으로 막을 수 없듯

내 불완전한 방어막의 빈틈 사이사이로 울컥울컥 뒤엉킨 감정들이 말을 듣지 않고 솟구쳐 내려왔다. 


나는 놀란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하며 간신히 '아, 나 왜이러지' 이렇게 외치며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식당을 나오며 지난날의 후회를 고백하고 아버지에게 또 한번 위로를 받아버렸다. 이 후회에 관한 이야기는 나의 다른 기록장에 별도로 기록해 두기로 한다.


모든 걸 혼자 감당하려고 했고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게

오히려 만나는 사람들마다 위로를 유발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건가? 

이기적인 나도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를 한번 더 느끼는 바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항상 숨기고 있었던 감정을 에라 모르겠다 하고 드러내고 나니 후련하고 카타르시스도 느꼈다.





아침에 높이뛰기 선수 우상혁 선수가 다이아몬드 리그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도쿄 올림픽 경기를 챙겨보지는 않았지만 이 선수에 대한 영상과 기록들은 상당히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보기만해도 진심에서 우러나온 웃음을 짓게 되고, 드라마나 영화로는 느낄 수 없는 찡한 감명을 받았었다.


 '즐기는 자' 의 표본. 


세계 최고이기에 내가 소식을 접한 게 맞지만, 그보다 빛나보이는 웃음을 잃지 않고 경기에 임하는 태도.

나에게 있어 그런 것들이 그의 실력보다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저 선수가 정상의 자리에 올라오기까지의 과정, 높이뛰기를 시작할때의 마음가짐도 모두 어렴풋이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서 얼렁뚱땅 결론을 내보려고 한다. 눈물을 흘린다는 건 그사람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동안 너무 강했던 탓이라는 말을 기억한다. 피나는 노력과 진지한 태도도 좋지만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한 건 웃음인 것 같다. 여기저기 하는 말들과 자기계발적 명언 같은 거에 흔들릴 것 없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 적용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잖아? 옛날 TV 프로그램 '무한도전' 을 보면서, 노홍철 형님께서 했던 말처럼 웃어서 행복한 거다. 집 나갔던 웃음을 다시 찾아 손잡고 들어와야 겠다. 지금까지 그래도 나쁘지 않았어. 정말이야. 미소 띈 얼굴로 거울 속의 너와 주변 사람들을 대해도 괜찮아. 그러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어. 



웃자. 

웃음이 안나오면 웃음이 나도록 놀자.

내 안에서 잠식되었던 사랑들을 다시 길러 내자. 

그러고 나서 다시 바라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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