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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Jan 05. 2022

무언갈 꾸준히 좋아하는 것도 능력이야

가수 '윤하'의 오래된 팬이 쓰는 좋아함에 대한 고찰

'너는 어떤 스타일 좋아해?'

이따금씩 듣는 질문에 항상 일관된 답변을 하지 않는 이유는 '일관되어야 한다'는 사고로부터 시작된 생각 회로의 부자연스러움에 대한 거부감일 거다. 뭐 떠오르는 대로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나의 생각이 금방 변할 것만 같아서 필터링하게 된다. 속으로 생각하게 된다. 스스로도 답답한 부분이 있지만 막상 실전 대화에서 한 박자 느린 채로 화제가 넘어가서 한 모금 삼키게 되는 그런 이야기다.



 나는 가수 윤하를 좋아한다. 좋아하게 된 지는 꽤 되었다. 올해로 10년 차인 것 같다. 그냥 노래만 알면서 윤하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2012년 들었을 때였던 것 같다. 라디오에서 4차원적인 모습으로 매력 발산을 맘껏 해주며 좋은 노래도 들려주는 파릇파릇한 DJ가 나 한 명쯤 팬으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2008년 '타블로와 꿈꾸는 라디오' 2009년 '태연의 친한 친구'도 방 책상에 앉아 개구리 모양의 카세트 오른쪽 눈알을 요리조리 돌리며 91.9 MHz로 주파수 맞춰 들었었지. 

 아, 또 딴생각했다. 어쨌든 그때가 고 2였는데, 같은 반 친구 중에서 가수 윤하 팬이어서 그 친구 영향도 많이 받았었다. 그리고 그 해에 4집 앨범이 나왔었는데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친구가 대신 주문해줘서 앨범을 손에 넣었던 기억이 한 군데 웅크려 있다 기지개를 켠다.

4집 supersonic

 공교롭게도 집에 포인트로 inkel사의 CD player를 갖고 있었다. 이걸 사서 처음으로 트랙 하나하나를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해서 들었을 때, 20년이 안 되는 생에 가장 강렬한 충격 중 하나로 다가왔던 것 같다. 5번 트랙의 No limit을 들으며 잠이 들고 6번 트랙의 소나기로 이어지는 그 방 안의 고요함을 가득 채우는 스피커 사운드를 잊지 못한다. 그리고 마지막 12번 트랙의 Hope.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 세 곡이었다. 

 MP3로, 가벼운 터치 하나로, 곡을 재생하는 것보다 설렘을 가득 안고 난롯불 켜듯 콘센트를 꽂고 화면에 전자시계 아날로그 숫자가 연둣빛 배경 속에 뜨는, 그리고 버튼을 딸깍 누르면 다음 트랙으로 넘어가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그 느낌이 왜 그리도 좋았을까. 이것도 그저 새로워서였을까? 아니면 CD 플레이어를 들고 다닐 수 없어 밖에서 일상을 보내며 갖고 있던, 그 앨범에 대한 커져가는 마음을 한순간에 그 앞에서 터뜨려 버리는 바람에 기분도 간헐천 마냥 솟아올랐던 것일까?

그리고 가사집. CD 커버를 장식하고 있던 가사집. 그걸 빼어 들어 가사를 음미하며 감상하는 것이 나에게는 MP3 열 개를 사준대도 부럽지 않았다(진짜다). 왜냐고 물으면, 그냥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그 느낌이 안나. MP3로 듣는 건 자꾸만 음악에 몰입을 덜 하게 돼.   



아, 너무 다 먹어치우면 향기마저 사라지니 이제 그만 다시 넣어두어야겠다. 



그리고 다음 해 겨울에 윤하가 또 앨범을 냈다(봄에도 낸 앨범은 입시 준비로 흐지부지 넘어간 듯하다). 당연히 샀다. 한정판이라고 했던 것 같았다. 그때가 2013년 겨울이었고 나는 수능이 끝나고 콘서트를 예매했다. 그때 내 나이가 19살, 윤하 누님의 나이가 26살. 콘서트 이름은 '스물여섯 그리고, '

 첫 곡으로 울려 퍼지는 'subsonic' 웅장한 사운드와 기운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학창 시절을 벗어나 그저 처음이라서 모든 게 새롭고 즐거웠던 시기에, 맛집 지도처럼 추억 하나가 떡하니 자리 잡으니 이것은 지울래야 지울 수가 없는 유성매직으로 써 내려간 기억이었다. 열렬한 팬처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야광봉을 박자 맞춰 흔들며 감동하고 기뻐해 본 경험, 나에게도 한 번쯤 있다. 

 

그 이후로 말 그대로 '입덕' 해서 커뮤니티 활동까지 해나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곧 대학 입학의 새로움에 의해 서서히 시들해졌지만. 

그리고 윤하가 얼마 전에 앨범을 냈다. 사실 그 전에도 꾸준히 활동을 했었다. 노래가 나오면 잊지 않고 찾아들었다.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변화하면서도 한결같은 그 음악. 나의 청춘이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그때 그 멜로디가 마치 옛 추억을 함께 간직한 손님처럼 예전 모습 그대로 찾아온 반가움은 다시금 나의 가슴을 뛰게 하기에 충분해 마지않았다. 

 나는 이제 좀 컸다고 앨범을 망설임 없이 주문했다. 그리고 방에는 브로마이드 하나가 떡하니 자리 잡았다. 

그리고 감사했다. 좋아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능력이 있음을. 






나는 사실 살면서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게 너무 힘들다. 이것저것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옮겨 다녔다. 그래서 남들이 인정하는 꽤 괜찮은 대학을 나왔지만 커리어의 줄기도 탄탄하지 못하다(그냥 하기 싫은 일은 안 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입증하는 흔적일지도 모르지만). 나도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게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스페셜리스트로 성장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기엔 나는 아직 나는 충분히 배고프지 않고 어렸나 보다. 그런데 사실 돌이켜보면 이렇게 한 가지에 좋아한다는 감정을 나도 모르게 계속 느껴왔던 거다. 


물론 팬으로서 좋은 것만 보고 듣고 느끼니 꾸준히 좋아할 수 있고, 일로서 무언가를 하는건 대부분 하기 싫은 일이 훨씬 많고 끈기를 훨씬 더 요구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그나마 더 좋아하고 오래 할 수 있을 듯한' 일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이상을 좇아 헤메었나 보다. 수많은 다른 것들에 질리는 와중에도 굳건히 좋아하는 마음이 무너지지 않았던 것들에 힌트를 얻고 희망을 품으며. 


좋아한다는 감정은 사실 나에게 어렵다. 좋아한다는 감정이 사실 무슨 감정인지 난 잘 모르겠다. 이따금씩 내가 '이것을 좋아한다'를 전제처럼 규정해놓고 그 모습에 안도감을 느끼며 '무언가를 꾸준히 좋아하는 내 모습'을 좋아해 왔을지도 모르겠다. 좋으면 그냥 좋은 거고 싫으면 그냥 싫은 것을, 뭐가 그리 어렵나. 아니 사실 싫은 건 쉽다. 좋은 게 훨씬 더 어렵다. 그냥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보다 보면 좋아지기도 하고 좋아한다고 되뇌이면 점점 그렇게 될 때도 있었던 것 같다. 싫은 것을 소거법으로 지워 나가는 게 나에겐 그나마 좀 더 속도를 낼 수 있는 방법이다. 하다 못해 점심 메뉴를 고를 때부터, 내 인생의 길을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까지.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거기서 '르상티망'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르상티망은 쉽게 말해 시기심인데, 사회적으로 이런 시기심에 의해 욕망이 발현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고 했다. 그리고 저자가 이야기하길, 무언가를 좇는 마음이 진짜 본인의 심연으로부터의 욕구인지, 아니면 사회적인 르상티망에 의해 발현된 것인지 내 '진짜'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쉽게 말해 단순히 부럽고 멋져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따라가지 말라는 얘기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하나의 존재로 살아가기보다는 둘 이상이 함께하며 사회를 이루며 상호 간에 영향을 불가피하게 주고받게 되었는데, '진짜' 좋아하는 그 마음이 존재할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 누군가 좋아한다고 하면 나도 관심이 가고, 누군가 싫어한다고 하면 청개구리처럼 내가 더 좋아해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하는데. 결국 결론은 진리의 '상대론'과 '정도의 차이'인 것인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오랫동안 좋아하고 싶다. 윤하의 앨범을 사고 콘서트를 가고 망설임 없이 새 앨범을 주문하는 것처럼. 

그저 나의 손과 발을 누군가가 잡고 이끄는 끌림으로 향해 가기엔 너무 도파민만 쫓아왔기에, 좋아함에 대한 규정을 해야 한다. 나는 새로움과 좋아함을 여태껏 여러 번 착각해 왔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구분해야 할 테니까. 


 오랜만에 두서없는 글이 나온 것 같다. 날것도 괜찮을 것이다. 나름의 방식으로 잘 요리된 생식이니까. 


오늘도 바라본다. 누군가 했던 말처럼, 하나의 노래를 꾸준히 여러 번 듣고 좋아하며 새로움을 찾는 것은 능력이라는 그 언어를. 사랑할 줄 알고, 좋아할 줄 알고, 권태 속에서도 새로움을 찾아내는 것. 그것들은 모두 어여쁜 능력이다. 잘 간직하고 인정해 주어야 또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지금 아주 사소하게라도 무언가를 좋아하고 있다면 그 마음을 새싹을 키우듯 잘 돌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물건이든 상관없다. 그것이 삶 속에 능력이고 자산이고 사랑이다. 그러한 깨달음을 얻고 나면, 나 스스로를 좋아하게 되는 햇볕 쨍한 날 부는 바람과 같은 선순환을 종착역 없이 돌게 될 것이다. 



먼지 수북이 쌓인 inkel CD 플레이어 이자 어린날의 추억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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