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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Oct 13. 2024

시소 놀이

 모래밭에 덩그러니 놓여진 하나의 시소. 웬일인지 그네도 미끄럼틀도 보이지 않으니 놀이터라고 보긴 어렵지 않을까. 색깔은 짙은 초록 색. 꽤 오래되어 페인트 칠이 부분부분 까져 있지만 타는데는 무리 없다. 그러니 시소 놀이를 시작해 보자. 



시소는 왼쪽으로 기울어 있다. 발을 구르며 함께 맞춰줄 사람은 없다. 

자리에 앉는다. 

점프하듯 두 발을 살살 내딛는다. 슬쩍 뜨는 것 같더니 이내 제자리로 복귀한다. 

조금 더 강하게 내딛어 본다. 슝 뜨더니 찰나에 공중에 정지한 후 되돌아간다. 

있는 힘껏 내딛어 본다. 시소가 반대쪽으로 기운다. 오른쪽 끝부분이 땅에 닿는 순간 엉덩방아를 찧은 듯 충격이 전해져 온다. 그리고 다시 서서히 내려온다.


시소는 왼쪽으로 기울어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시소의 가운데 축 앞에 서서 마치 양팔 저울을 사용하듯 시소를 조작해보기로 한다. 


가벼운 물건을 위로 던지듯 시소의 왼편을 잡고 들쳐냈다 놓아본다.  슬쩍 뜨는 것 같더니 이내 제자리로 복귀한다. 

더 힘을 줘서 들었더 놓는다. 슝 뜨더니 찰나에 공중에 정지한 후 되돌아간다. 

시소의 팔이 오른쪽으로 기울 정도로 강하게 들었다 놓아본다. 텅. 소리를 내더니 꽤나 빠른 속도로 시소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시소는 오른쪽으로 기울어 있다. 


이번엔 움직이는 시소의 팔에 브레이크를 걸어보기로 한다.


 물건을 위로 던지듯 시소의 오른편을 잡고 들쳐낸다. 시소가 왼쪽으로 살짝 기우는 순간 바로 시소의 왼 팔을 잡아 움직임을 멈춘다. 힘을 내자마자(운동에너지가 최대인 상태에) 억지로 막아버리니, 그 움직임을 제어하는데 상당한 힘을 필요로 했다.


 물건을 위로 던지듯 시소의 오른편을 잡고 들쳐낸다. 강도는 시소가 왼편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정도.  이번엔 시간을 좀 두고 시소가 잠시 동안 수평을 이룰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소의 왼 팔을 잡아 움직임을 멈춘다. 이미 움직임이 멈춰 있어(위치에너지가 최대인 상태에) 가볍게 손을 갖다대어 왼쪽으로 기우는 흐름을 막을 수 있었다. 


 물건을 위로 던지듯 시소의 오른편을 잡고 들쳐낸다. 시소가 한번에 왼편으로 다시 기울 정도로 세게. 시소의 왼 팔을 잡을 겨를이 없었다. 잡았다고 해도 무리가 갈 것이 뻔했다. 


마지막으로, 시소의 균형을 잡으려고 해보았다. 하지만 양 팔은 자꾸만 한 쪽을 택하여 기울었다. 오른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그 방향을 유지하려 했고,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관성() 이다. 


반대편에 누군가 앉아 나를 도와줄수도, 방해할수도 있다. 여러 명이 앉는다면 내가 아무리 힘껏 발을 굴러도 크게 움직이지 않을 거다.  



시소 놀이는 나의 마음 같다. 어느 쪽으로든 기울기 마련이고, 한번 기울기 시작하면 막기가 어렵다. 반대로 굳게 멈춘 마음을 움직이려 해도 이내 살짝 떴다가 되돌아간다. 그리고 기움에는 언제나 끝이 있다. 그리고 너무 급하게 기울어버린 결과로 나에게 충격을 준다. 



지금 내 마음 속에 있는 여러 가지의 시소에 무언가가 올려져있는지 한번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무엇 때문에 움직이는지, 무엇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지. 한가지 중요한건 불꽃의 기세로 기우는 시소를 막는건 어리석은 짓이다. 


마음은 선형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묵직한 관성으로 나를 신중한 사람으로 완성시킨다.


남루함이 시계 12시 정각처럼 주기적으로 돌아올 때마다 일상의 재미를 찾아다니며 간신히 해소하거나, 그냥 그대로 안고 살아갈 때도 있지만,

 터널에 진입할 때마다, 중도에 뒤돌아보지 않고 행동하는 이 모습은 불안과 걱정이 신나게 날아가 버리고는 당분간 내몸에 덕지덕지 붙을 일이 없다는 증거인 듯 하다. 그래서 평온함을 감사히 하며 저녁으로 맛있는거나 먹으러 가야겠다. 


마음은 선형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묵직한 관성으로 나를 신중한 사람으로 완성시킨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지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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