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줄 알았던 곳은 사실

열쇠는 이미 내 손안에 있었다

by 뤼더가든

드라마 <악의 꽃>.

어두운 분위기에 조금 망설였지만 이준기 배우에게 꽂혀 무작정 보기 시작했다.

배우의 연기는 물론, 많은 생각거리를 남긴 나의 인생 드라마 중 하나가 되었다.

여러 인상 깊은 장면 중 한 가지를 소개한다.


주인공 도현수가 철장에 갇힌 여자에게 열쇠를 건네며 말한다.

"이 자물쇠의 열쇠는 이거 하나밖에 없어요. 정미숙 씨가 스스로 이 문을 열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이 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정미숙 씨는 안전해요. (중략)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잖아요."
- 드라마 <악의 꽃> 15화 중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왜 도현수는 당장 문을 열어주지 않는지, 정미숙은 왜 열쇠를 받고도 뛰쳐나가지 못하는 건지. 그런데 잠시 후, 그 철장은 그녀를 죽이려는 사람으로부터 지켜주는 보호막이 되었다. 가두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감옥이 오히려 지켜주는 울타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감옥. 나의 오랜 관심사였다.

아이를 낳은 이후 줄곧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몸이 아파도 제대로 쉴 수 없었고, 엄마가 아닌 '나'로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잠을 줄이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조차 모성애의 부족처럼 스스로를 질책하면서. 그러면서도 나를 희생시킨 채 아이들을 위해서만 살고 있다고 억울해했다.


벗어나보려 운동도 하고 여행도 가고 사람들도 만났다. 하지만 순간일 뿐, 결국 돌아와야 하는 곳은 여전히 같았다. 몸부림쳐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한 나의 삶.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반복. 그런 나를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여겼다. 나는 매일 울었다.


나를 가둔 철장이 나를 지켜주는 보호막이 될 수도 있음을, 자물쇠를 열고 언제든 내가 원할 때 나갈 수 있음을 알았다면 훨씬 더 만족하고 자유로울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정작 열쇠가 주어졌음에도 밖으로 나서지 못하던 드라마 속 여자처럼, 원망과 불신에 사로잡힌 채.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들 때문에 시간을 써야 했고 온전히 공부에 집중하지 못한 상황을 한탄했지만,

아이들 덕분에 제대로 된 음식을 규칙적으로 챙겨 먹었고, 아이들을 데려다주며 밖으로 움직이고 햇볕과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우울 속에서도 억지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한 것은 그 버겁기만 했던 책임감이었다.


생각해 보면 모든 일이 통제 불가능했던 것도 아니고, 늘 불행하기만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갇혔다거나 얽매였다는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과연 나는 이 현실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행복할까. 그럴 것 같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더 큰 절망으로 다가왔다. 무망감, 그리고 정말 원하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막연함까지.

감옥이라는 단어에 자꾸 시선이 멈춘 건 아마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나는 불행한 인간이 아니다. 단지 불행한 순간이 있을 뿐이다.
나는 우는 인간이 아니다. 단지 우는 순간, 웃는 순간이 교차할 뿐이다.
'불행한 사람, 화난 사람, 과거의 어떤 사람'이 나라는 고정된 생각은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다."

- 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중


작가는 나에 대한 고정된 생각이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라고 말했다.

나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 열심히 하는 사람, 잘 참는 사람, 꾸준한 사람.

물론 나쁜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감옥이라면 나는 이제 그 문을 열고 나가고 싶었다.


완벽하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괜찮은 나. 너무 심각하지 않고 가볍게 즐길 수도 있는 나,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나, 혼자 있어도 함께 있어도 괜찮은 나,

힘들 땐 죽는소리 할 수 있는 나,

늘어지게 자는 걸 좋아하는 게으른 나, 드라마 몰아보기도, 책 보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하는 나,

감상적이고 따뜻한 글을 쓰다가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에는 차가운 눈빛이 나오기도 하는 나.

이런 모습도 저런 모습도 될 수 있는

말랑말랑한 나를 사랑하고 인정해주려 한다.


감옥과 보호막,

그 차이는 결국 그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누가 갖고 있는지에 달려 있었다.


나의 현실은 나를 제약하고 좌절하게 했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주기도 했다.

남들이 정한 기준대로 살던 나를 멈춰 세우고 어쩌면 나를 지켜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열쇠는 누구도 아닌 나에게 있었다. 언제든 나는 선택할 수 있었으므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 속에서도 어떻게 반응할지는 나의 결정이었다.

그걸 알지 못한 채 벗어나기만 원했던 건 결국 또 다른 모양의 구속이었을 뿐일 것이다.


감옥으로 느끼고 갇혀 있을 것인가, 보호막으로 여기고 감사해하며 자유로히 드나들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이제는 이해해 주고 기다려 줄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도 아닌 나 자신만이 열 수 있는 이 경계 안에서

나는 진정으로 자유롭다.


드라마 <악의 꽃> 15화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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