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발견한 새로운 방법
우울이 미친 듯이 감쌀 때는 서둘러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잘 지내냐는 흔한 인사말과 미약한 온기에도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새어 나왔고 마음이 울렁거렸다.
가슴속에 무언가로 가득 차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툭 터져버리는 이런 상태가
나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것 같다가도 불쑥 가슴을 누르는 느낌이 밀려왔다.
아무리 심호흡을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터져버리는 눈물 후에는 늘 찜찜한 마음만이 남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하지만 쉬지 않고 무언가를 계속해야 했다. 돌봄이 필요한 세 아이의 요구도, 허송세월을 보내면 안 된다는 성실한 부모님의 가르침으로 무장한 나 자신도 나를 가만 두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과의 갈등과 쌓인 기억들도.
계속되는 둘째의 짜증스러운 행동과 목소리에 그나마 버틸 힘마저 사라져 버렸던 날이었다.
화낼 힘도, 뭐라고 말할 기운도 없이 침대에 늘어져 있었다.
밤늦게 갑자기 막내가 계란이 먹고 싶다며 냉장고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냉장고에 생달걀만 있어. 제발 꺼내지 마. 일 만들지 말아 줘."
들리지도 않을 목소리로 애원해 보았지만 역시나.
잠시 후 아이는 결국 계란을 깨뜨리고 말았다.
당황스러운 표정의 아이에게서 남은 계란의 파편을 받아 들고는 싱크대에 던져 넣었다.
"계란 꺼내지 말라니까..."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개수대를 짚은 채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까짓 계란 깨진 게 뭐 대수라고.
그런데 그까짓 계란 때문에 나는 나머지 계란도 치워줘야 하는 의무까지도 잊은 채 마구 울었다.
울면서도 생각했다. 창피하게 지금 뭐 하는 걸까. 애들 놀랄 텐데.
하지만 그냥 놔뒀다. 눈물도 콧물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탈출할 수 있는 거냐고 말도 안 되는 원망까지 마구 쏟아냈다.
뒤에선 첫째가 나머지 계란을 수습했고, 둘째는 미안하다며 내 곁을 왔다 갔다 했다. 막내는 아마 당황스러워 멈춰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그냥 계속 울었다.
휴지로 닦아낼 필요도 없이, 코가 꽉 막히게 될 필요도 없이, 침을 삼킬 때마다 귀가 막힐 필요도 없이, 그냥 막 토해냈다.
그러고 나자 이상하리만큼 시원하고 차분한 마음이 되었다.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도와줘서 고마워. 엄마가 갑자기 그래서 놀랐지? 미안해. 계란 때문은 아니고, 엄마가 오늘 좀 힘들었나 봐. 늦었으니까 자고 계란은 내일 꼭 삶아줄게. 알았지?"
"아냐 엄마. 이해해. 우리가 미안해. 우리도 더 노력해 볼게."
세 아이는 돌아온 엄마가 다행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빙 둘러싸고는 차례로 나를 껴안아주었다.
돌봐야 하는 대상으로만 봤던 아이들에게 오히려 나를 도와주고 이해해 준다는 말을 들으니
미안하기도 하면서도 든든했다. 나의 짐이 조금은 나누어진 것 같았다.
어린아이들에게 짐을 떠넘기는 미성숙한 어른이라 누군가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조금은 다르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아이들도 나누어질 수 있다고. 엄마라고 꼭 혼자만 다 감당해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누워서 혼자 몰래 숨죽여 우는 것 대신 가끔은 개수대나 세면대 앞에서 울어보자.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닦아내려 애쓰지도 말고. 실컷 울고, 찬물로 쓱쓱 세수하고 나오자.
그러고 나서 설명도 하고, 도와달라고 요청도 하면 된다.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미안하지만, 최악의 엄마가 되지는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어필해 본다.
그래도 되지 않을까. 그래야 숨쉴 수 있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