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무지개는 다른 사람의 무지개일 뿐이야
하루 종일 흐리고 보슬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아이들의 저녁밥을 준비하려고 무거운 엉덩이를 떼고 부엌으로 향했다.
"어? 하늘이 갑자기 노래졌어?"
첫째 아이의 말에 주방 창으로 밖을 내다보니 저 멀리 무지개가 보였다. 가끔 무지개를 보긴 했지만 이건 정말 크고 뚜렷했다.
"우와! 너무 예뻐. 얘들아 빨리 와봐, 얼른!"
세 아이가 내 말에 우르르 모두 창문으로 몰려들었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우리는 더 큰 화면으로 감상할 방법을 궁리했고, 아파트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신나 하는 아이들도 귀엽고,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몽실몽실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 여자 사람 넷은 사진도 찍고 호들갑을 잔뜩 떨며 무지개를 감상하고 돌아왔다. 이 감동을 공유하고픈 마음에 엄마와 동생, 남편에게 사진을 전송했다.
동생도 자기 아파트 단톡방에 무지개 제보가 떴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네이버 동네 카페에 들어가 보니 거기에도 무지개 사진들이 몇 개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내가 본 무지개보다 훨씬 크고 뚜렷한 모습의 사진들을 보니 예쁘다 싶다가도 갑자기 왜인지 조금 전의 감동이 시시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모네 집에서도 보인데!"
하며 사진을 보여줬더니 애들의 반응이 나랑 비슷했다.
"와....! 에이..."
아마 이런 말이 생략된 것 같다.
"와 저 사진은 정말 멋지다. 에이, 내가 본 무지개는 별거 아니었네. 큰 무지개를 봤다고 좋아했는데."
이상했다. 우린 분명 무지개를 보고 들떴고, 그건 불과 5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고, 다른 사람의 무지개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내가 본 무지개가 최고라고 생각하며 충분히 행복해했다. 물론 무지개를 나만 본건 아닐 거라는 사실도 당연히 알고 있었고.
그런데 왜였을까. 6살 꼬맹이부터 40살 어른이까지 비슷한 반응을 보인건.
글쓰기를 시작하면서도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글을 쓰는 게 좋았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꾸준히 해보며 새로운 일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설레기도 하고 자신감도 생겼다.
그런데 막상 글쓰기에 관한 유튜브나 책을 보면서 자꾸 느껴지는 감정은 두려움에 가까워졌다. 저렇게 멋진 글을 나도 쓸 수 있을까, 이렇게 대단한 작가들이 많은데 내가 과연 여기서 무언가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수많은 글과 책들 속에서 누구 하나 관심을 가져주기는 할까? 그저 학창 시절 백일장 경험뿐인데 과연 내 글이 괜찮기는 한 걸까?
그러다 김필영 작가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의 목표는 글을 쓰는 겁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간다면 나다운 글을 쓰는 거예요. 우리가 다 다르게 생겼는데, 같은 글을 쓴다는 건 좀 이상한 것 아닐까요. (중략) 글쓰기는 하나의 큰 배에 사람들을 1등부터 100등까지 순서대로 줄 세운 뒤, 배에 태워서 같은 목적지로 가는 여정이 아니에요. 우리 모두 각각의 돛단배가 여기 있는 거예요. 돛단배가 100개 있는데 100명이 다 다른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게 글쓰기입니다. 그러니 잘하고 못하고 가 있을까요? 각자의 길을 가는 거죠. 다른 사람의 글은 다른 사람의 글일 뿐이에요."
- 김필영, <글쓰기로 한 달에 100만 원 벌기> 중
작가의 말대로 다른 사람의 글은 다른 사람의 글일 뿐인데, 나는 여전히, 또다시, 비교하며 쫓기고 있었다.
MKYU 에세이 글쓰기 수업에서 정여울 작가도 말했다.
(같은 말도 어쩜 저리 멋지게 할까)
"경쟁이라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과대평가되어 있다. 경쟁이 우리의 황금빛 머리카락을 자라게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 같다. (중략) 글쓰기는 경쟁이 큰 의미가 없다. 그냥 내가 내 안에 들어있는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꺼내서 쓰는 거다."
다른 사람의 무지개 사진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밝게 빛나던,
나의 무지개를 보며 느낀 감동과 환희.
무지개는 그저 예쁜 무지개일 뿐. 상대적 기준에 의해 얼마나 더 크고 더 뚜렷한가는 중요하지 않다. 작가의 말처럼 줄을 세울 필요도 없고 그저 무지개 다우면 되는 것이다.
선물 같은 무지개를 우연히 발견했고 직관했다. 그리고 무지개처럼 예쁜 나의 아이들과 그 순간을 소중히 누렸다. 그런 추억을 하나 쌓았고, 이렇게 깨달음까지 얻었으니 부러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앞으로도 글을 쓰며, 인생을 살아내며, 자꾸 나의 것이 남의 것과 비교해 순위에 밀리는 것 같은 괜한 패배감에 휩싸일 때면 무지개 사진을 보아야겠다.
다른 사람의 무지개는 다른 사람의 무지개일 뿐이다.
이렇게 다시 만든 문장을 되뇌며.
더군다나 정여울 작가는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다며 '굿 리스너'가 '굿 라이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잘 듣는다는 칭찬은 항상 내가 들어온 말이었는데, 상담가만이 아니라 작가로서도 좋은 자질이라니. 왠지 '너도 할 수 있어'라고 격려받는 기분이 들었다.
나 다운 글.
나만의 무지개를 바라보자.
그리고 굿 리스너가 되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