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럴 땐 엄마를 부르자
'갈 땐 잘 가더니 오늘은 문턱을 못 넘고 ㅋㅋㅋ'
동생이 메시지와 함께 동영상을 보내왔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갈색 체크무늬 바지와 아기호랑이 조끼를 입은 조카가 보였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내려 지하 주차장으로 가는 길.
휘적휘적 통통거리며 걷던 아이는 '헤, 헤' 웃음소리까지 내며 신나게 가다가 갑자기 멈춰 섰다.
은색 문턱에 한 발을 올려보았다가 내리고, 옆을 짚어 보았다가 또 포기했다.
넘어갈 듯 말 듯, 작은 몸이 계속 머뭇거리더니, 결국 안 되겠는지 엄마를 불렀다.
"도와줘?"라는 동생의 목소리에 눈을 깜빡이며 끄덕.
앗, 방심했다. 아침부터 심장 어택을 당했다.
"아악~ 귀여워~~~!!"
왼쪽 가슴을 움켜쥔 채 입 밖으로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푼수니 콩깍지니 하는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었다. 영상을 몇 번이고 반복 재생했다.
하나뿐인 내 조카는 이제 막 19개월이 된 아가다. 17개월부터 걷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조금씩 늦는 아이를 모두 걱정하지만 자기만의 속도로 잘 크고 있는 아이가 그저 기특하고 대견하다. 그리고 인형처럼 깜찍해서 움직이고 반응하는 걸 볼 때마다 신비롭다(그렇다. 우리 집에는 이미 세 명의 아이가 있다. 엄마 13년 차. 근데 뭐? 왜?).
이 영상의 진짜 포인트는 마지막이다.
"도와줘?" 할 때 세상 순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
미안함, 수치심, 죄책감이나 민망함 혹은 간절함 따위도 전혀 없다. 그냥 하려다 안 되겠으니까 옆에 있는 엄마에게 도와달라 요청할 뿐이고, 도와달라는 게 맞아?라는 질문에 응 이라고 답할 뿐이었다.
사실 문턱은 그다지 높지도 않았다. 높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그냥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걸 못 넘고 머뭇거리는 조카를 보고 있자니 보도블록을 높은 절벽처럼 조심스레 내려가던 딸들의 과거도 생각이 났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옆에서 볼 때는 아무리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도 당사자에게는 매우 높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보통 아이들이 그럴 때는 모두 귀여워한다. 하찮고 같잖다 하면서도 결국에는 미소가 함께 한다. 그런 머뭇거림과 과도한 심각함조차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문득 스스로를 바라볼 때도 그리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앞에 놓인 많은 문턱과 거리의 보도블록들 앞에서 머뭇거리고 넘어서지 못하고 있을 때, 응원이나 사랑스러운 눈빛은커녕 한심해하고 답답해하기 십상이다.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만 넘어가는데?
그리고 어서 훌쩍 넘어서라고 재촉한다. 할 수 있다고. 해야 한다고.
아니다. 할 수 있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분명 있다. 하면 좋겠지만 못한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다. 어떤 날은 아무렇지 않게 넘어 다녔던 문턱도 그날은 못 넘어갈 수도 있는 거다.
그냥 그런 날도 있고, 그런 일도 있는 거다. 그리고 어쩌면 못 넘어가는 날이 더 많을 때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이 아이처럼 도와달라고 하면 된다.
자책도, 창피함도, 혹은 다음엔 혼자서도 잘하겠다는 굳은 다짐이나 언젠가 은혜를 갚겠다는 약속도 없이.
그냥 엄마를 부르고 고개를 끄덕이면 그만인 것이다.
그다음은 그다음의 일이다.
그냥 부르고, 그냥 손을 내밀자. 그래도 정말 괜찮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