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후회와 한여름밤의 추억
오랜만의 가족 여행.
전주에서 출발해 목포까지, 그리고 배를 타고 제주 전역. 5박 6일을 휘젓고 다니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바닥에 주저앉았던 둘째가 울려다 말고 "앗 뜨거워!" 하며 통 튀어 오를 만큼 뜨거운 여름이었다. 5인 대가족의 짐을 가득 싣고 그래도 편히 다녀왔다고, 이런 방식도 괜찮다고 이야기를 나누던 참이었다.
배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옅어졌다. 목포에서 출발하는 제주 편 배는 워낙 커서 흔들림의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바다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혼자 멀미약에 취해 비몽사몽 했지만 분명히 기억한다. 반짝거리던 윤슬과 부드러운 바닷바람. 꿈은 아니다. ... 아니겠...지?
문제가 발생한 건 목포에서 다시 전주로 향하던 길에서였다. 휴게소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각자 간식을 들고 차에 올랐다. 원래 밥 배와 간식 배는 따로니까. 그런데 자동차 시동이 한 번에 걸리지 않았다.
"엄마, 왜 그래? 카이 이상해? 우리 집 못 가??"
푸른색이라 '스카이', 이름까지 붙여준 아이들은 차의 상태를 걱정했다. 나 역시 느낌이 안 좋았지만 아이들의 불안을 괜스레 가중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괜찮아. 봐, 시동 걸렸잖아."
일단 출발. 하지만 얼마 못 가 남편의 한숨소리가 나오고야 말았다.
"하.. 차 세워야겠는데?"
속도 계기판 바늘이 80을 넘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갓길은 위험하니 졸음쉼터를 찾았다. 겨우 멈춰 선 차의 보닛에서 하얀 연기가 폴폴 났다.
여름밤이었다.
생각보다 어두웠고, 더웠다. 쌩쌩 달리는 차 소리는 무서울 만큼 컸고, 날벌레들은 극성이었다. 신용카드로 어렵게 인증해 가며 들어간 졸음쉼터 내 휴게 공간은 에어컨도 켜지지 않아 찜통이었다. 더 큰 난관은 내가 혼자가 아니라 공포에 휩싸인 아이 셋과 함께였다는 것이었다.
긴급출동 서비스를 부르고 차 상태를 살피느라 바쁜 남편과 졸음 쉼터의 어수선한 분위기, 그리고 불안한 눈빛으로 질문 공세를 퍼붓는 아이들 사이에서 드는 생각은 오직 한 가지였다.
아까 휴게소에서 멈춰서 서비스 부를걸.
그곳은 훨씬 쾌적하고 안전한 분위기였는데..
이상이 감지되었을 때 무리하지 않고 바로 쉬어가는 것, 무작정 괜찮을 거라고 넘기지 않고 한번 더 확인하는 것.
그 단순한 원칙의 중요성을 그제야 깨달았다.
결국 레커차로 우리 차를 이동시키고, 멀쩡히 전주로 잘 올라가던 동생네를 불러서 아반떼에 우리 가족까지 구겨 넣었다.
운전석의 제부, 보조석의 남편과 둘째, 뒷좌석 중 카시트에 앉은 어린 조카, 그 나머지 자리에 동생과 나. 그리고 각자의 위에 막내와 첫째.
차가 흔들릴 때마다 구겨진 이들의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가장 명당자리에 앉은 조카만이 홀로 편안했다. 이게 대체 뭐지 하는 눈빛으로 우리 꼴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미안, 괜히 이모네가 껴서 못 볼 꼴을...
근처에서 그냥 하룻밤 자고 차를 고쳐서 올라갈걸 그랬나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그런데 후회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내 무릎 위에 앉은 아이가 바로 당시 초등 6학년 첫째였다. 이미 나보다 키도 덩치도 커버렸는데 내가 아래 자리를 자처한 것이다. 무거운 건 둘째치고 시야가 가려져서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아이는 이미 많이 커버렸는데 별 고민 없이 하던 대로 해버린 나를 탓해야지 누굴 탓하랴. 내 위에 앉은, 쑥쑥 자란 아이는 잘못이 없다. 그런데 그렇다고 초등학생인 아이의 무릎 위에 엄마인 내가 앉아 갔어야 했나 하면 그것도 애매하다.
여기서 잠깐, 독자의 의견은?
1. 아무리 키와 덩치가 작아도 성인인 엄마가 아래, 아이가 위에 앉아야 한다.
2. 아무리 초등학생이어도 키와 덩치가 큰 아이가 아래, 엄마가 위에 앉아야 한다.
아직도 이건 잘 모르겠다.
(언제 이렇게 컸니.. 기특하다 우리 딸.
너 무겁다고 디스 한 거 아니다. 진심이다.
제발 믿어줘.)
그렇게 후회를 통한 깨달음과 함께
우리의 추억이 하나 쌓였다.
조금 후텁지근하고 무거웠지만
또 조금은 우습고 요란했던.
그 여름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