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대: 배수구 막힘과 누수

후회 콤보와 충분한 물의 필요성

by 뤼더가든

여느 때처럼 설거지를 정리하고 마무리하려는데, 싱크대에 물이 차올라왔다.

그나마 물이 아주 느리지만 다시 내려가는 걸 보니 완전히 꽉 막힌 건 아닌 듯했다.

당장 그럭저럭 사용할 수는 있겠다 싶었다.

그러면서 조금만 손보면 금세 해결될 것 같아 온갖 것을 시도해 보기 시작했다.

배관 세척제도 넣어보고, 뜨거운 물도 부어보고, 변기 뚫는 것까지 동원했다.

(미리 고백하자면, 나처럼 하면 안 된다.)

물이 빠져나가는 속도는 조금 빨라지는 것 같다가도 또다시 같아지고 반복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저녁,

저녁 식사 후 모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관리사무소 호출음이 울렸다.

층간소음으로 종종 호출이 울렸던 터라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러다가 '우리 다 앉아 있는데 왜?' 반감이 먼저 올라왔다.

"늦은 시간 죄송합니다. 아랫집에서.."

조용히 해달라고 하면 한마디 해주겠어! 혼자 괜한 전의에 불타 설레발을 떠는 데

"... 천장에서 물이 샌다고 해서요."

의외의 말에 눈이 번쩍 커졌다.

전화를 끊자마자 열심히 작동 중인 식기세척기부터 껐다.

한창 그릇을 씻다 멈춘 기계처럼 나도 그 앞에 엉거주춤 서고 말았다.


잠시 후 관리사무소 직원이 와서 싱크대 아래쪽을 열어보니 시멘트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아랫집도 문제지만 우리집 바닥이 젖어 마룻바닥이 부풀어 오르는 것도 일이라며

관리사무소 직원분은 고맙게도 물을 최대한 닦아주셨다.

그렇지만 내 머릿속은 걱정으로 웅성거려 제대로 말이 들어오지 못했다.

안 그래도 우리집을 썩 좋아하지 않는 아랫집에 또 피해를 준 같아 마음이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가만히 둘 걸.


다행히 알아보니 일상배상책임보험이라는 게 있었다.

아랫집과 직접 마주칠 일도 없이 생각보다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다.

스트레스받으며 애들한테 괜히 까칠해지기나 하고

그냥 신경 좀 덜 쓰고 편안하게 생각할걸.


이제 문제는 우리집.

주말에 온 남편과 쭈그리고 앉아서 고군분투했다.

배관을 풀고, 스프링 청소기까지 사다 직접 뚫어보려 했다.

우리는 어수선한 주방 안에서 오물을 뒤집어쓰고 땀을 뻘뻘 흘렸고,

옆에는 애먼 젖은 수건만 잔뜩 쌓였다.

그래도 고생 끝에 해결됐으면 다행인데 또 막혀버리고 말았다.

다시 시작해야 하나 싶었는데 보험에서 우리 배수구 문제까지도 된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런 줄 알았으면 진작 업체를 부를걸. 후회 3단 콤보였다.


업체 사장님은 내시경과 청소기 등 엄청난 기계를 동원하고 오셨다.

"수건 한 장만 주시겠어요?"

잔뜩 들고 온 수건 중 가볍게 한 개를 가져가시더니 더 이상의 수건은 더럽히지 않았다.

역시 전문가. 허둥대던 우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오래된 배수관에 껴 있는 찌꺼기들이 눈에 보였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신기해하며 난생처음 싱크대 배수관 구경을 했다.


"우리가 보통 설거지 하고 그냥 바로 끄잖아요? 그런데 마지막에 물을 담아서 한번 확 부어주세요. 그런 습관이 막힘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배수구를 뚫고 청소까지 마친 사장님이 해준 말을 듣는데, 아빠의 국수가 떠올랐다.


전에 부모님은 국수 가게를 하셨다. 아빠는 정성스레 육수를 직접 끓였고 그 맛이 일품이었다.

뜨끈하고 비릿한 멸치 육수와 함께 하얀 면발을 후루룩 먹으면... 아, 떠올리니 또 군침이 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엄마가 아닌 아빠가 국수를 해주면 맛이 덜했다. 같은 육수와 면, 양념인데도 말이다.

이유는 국물 양이었다. 우리에게는 손님들과 다르게 육수를 조금 부어주었던 것이다.

우린 면을 다 먹고 국물을 남겨 버리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렇지만 버리더라도 국물이 넉넉해야 맛이 사는 건데.

구시렁거리며 은근슬쩍 아빠 대신 엄마에게 국수를 끓여달라고 요청하곤 했다.

그런 아빠의 자작한 국수 그릇. 그 국수가 떠오른 것이다.


아끼는 게 습관인 기성세대에게는 당연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비단 음식뿐만이 아니었다.

귀가 아프게 들었던 허송세월 보내지 말라던 말도 마찬가지겠지.

쉴 때조차 가성비를 따지고, 아깝지 않게 쉬어야 하는.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하는 우리.


며칠을 괜히 버둥거리며 수건만 잔뜩 버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어떤 일은 억지로 붙잡고 매달릴수록 더 꼬이기도 한다는 것을.

맛있는 국수를 위해서는 넉넉한 국물이 필요하다. 비록 다 먹지 못하더라도.

결국 좁고 어두운 싱크대 배수관이 막히지 않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아깝지만 흘러 부어주는 마지막 한 그릇의 물이었다.


싱크대에 충분한 물과 국수에 넉넉한 국물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 삶에는 흘러 보내는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깝긴 하지만 결코 불필요한 낭비가 아님을.


물을 잔뜩 담았다 확 부어준다.

꾸르르륵.

물과 함께 쏟아져 내려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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