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기억일수록 의심해야 해
사과를 깎을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초등학교(정확히는 국민학교) 실과 시간, 사과 껍질을 깎아 접시에 놓아보는 수업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초등학생에게 칼을 쥐어줬다니 싶지만 그땐 그랬다.
나름 열심히 깎았지만 모양은 엉망이었다. 더 심각한 건 사과 꼭지에서 나온 까만 부스러기들이 사과 여기저기에 묻어버린 것. 선생님은 내 사과를 보더니 못 볼 거라도 본 듯 놀라며 걱정스레 말했다.
"세상에! 이게 뭐야? 사과 껍질 하나 제대로 못 깎으면 앞으로 어떻게 하니?"
그때 느꼈던 수치심이 이상하게 뇌리에 박혔다. 그리고 반발심도 함께.
그까짓 사과 껍질 못 깎아도 지금 잘만 산다고, 이제는 그때보다 훨씬 잘 깎는다고. 나는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선생님에게 괜히 콧방귀를 뀌곤 했다.
그저 한마디 던지고 스치듯 사라진 그 선생님의 말이 왜 그렇게 인생 내내 쫓아다니는 건지. 그다지 중요한 사람도, 진지한 말도 아니었는데. 사과를 깎을 때마다 떠오르고, 누가 쳐다보고 있으면 손이 떨릴 만큼 부담스럽다. 도대체 그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영향을 받는단 말인가.
오늘도 사과를 깎으며 선생님의 놀라던 숨소리와 비아냥 거리던 말투가 생각났다. 잘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한 노력을 인정받지 못한 좌절감, 내지는 제대로 해내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 때문일까. 무표정한 얼굴로 사과를 깎으며 복잡한 심정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오늘은 문득 질문이 떠올랐다.
'정말 그때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을까?'
며칠 전 놀이터에서 본 꼬마 아이의 눈빛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집에 가기 싫어어! 엉엉"
엄마가 억지로 데려가자 세상이 망한 듯 우는 작은 아이가 너무 귀여웠다. 나도 모르게 웃으며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아이고, 집에 가기 싫어요?(우쭈쭈)"
그 작은 소리를 귀신같이 듣고 아이가 갑자기 나를 확 째려봤다.
"아! 악!!"
그렁그렁한 눈에는 원망이 가득 차있었다. 하지 말라는 강한 표시였다.
“어머, 미안. 귀여워서 그런 건데. 놀린 거 아닌데. 하.. 하...”
어찌나 맹렬하게 쳐다보던지 급하게 사과를 했지만 조금은 민망했던, 뭐 저렇게까지 무섭게 반응을 하나 싶었던.
그 아이의 기억에는 (물론 내가 기억에 남을 만큼은 아니겠지만) 내가 어떤 색깔로 남아있을까.
어쩌면 그날 선생님은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냥 “어? 이렇게 깎으면 안 되는데.”라고 가볍게 말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건 까만 게 묻어서 좀 보기 안 좋네.”라고만 했을지도?
아니다. 분명히 기억한다. 선생님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아주 기분 나쁘고 불쾌하게.
인정하기 어려운 내면의 대화가 오고 가는 동안 남편과 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남편은 서운한 일이 있으면 그 상황을 재연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곤 한다. 그의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했다. 모두 다른 상황과 인물인데 묘사되는 말투는 항상 비슷하다. 하나같이 비아냥 거리고 으스대는 말투. 상대방을 깔보고 무시하는 억양과 태도. 다소 과장되고 뒤틀린 해석. 그런 그를 항상 비난했지만 과연 나는 얼마나 달랐을까.
기억은 조금씩 모두 왜곡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날 그 사과껍질 실습 시간의 선생님도 어쩌면.
마음속에 오래된 껌처럼 달라붙어 있는 원망이나 억울함 같은 끈적한 감정들이 조금은 말랑해지는 느낌이다. 여전히 인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작은 여지를 가져본다.
어쩌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