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이면 충분해
좋고 싫음도 흐릿하고 그냥저냥 사는 게 삶의 모토였던 나에게도
선명하게 남은 기억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바로 반장선거.
국민학교였던 그 시절, 서로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학기 초에 반장선거가 열렸다.
성적에 따라 3~4명의 후보를 선생님이 임의로 올려놓고 반장이 되면 뭘 하겠다는 발표를 시키고
반 아이들이 투표를 하는 식이었다.
문제는 그 명단에 내 이름이 꼭 포함되었다는 사실이다.
MBTI 검사에서 내향형이 90% 이상 나오는, 그야말로 대문자 I인 나는 그때마다 괴로움에 휩싸였다.
"근데 저건 누구야?"
반 아이들은 칠판에 적힌 내 이름을 보고는 수군거렸다.
"반장이 되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쥐꼬리만 한 목소리로 진심이 단 1%도 섞이지 않은 말을 대충 던지고 내려왔던 것 같다.
(안 하겠다, 제외해달라 왜 말을 못 하니 과거의 나야.)
아이들의 무기명 투표가 진행되고, 각자의 이름 옆에 바를 정자가 그어져 나갔다.
내 이름 옆은 늘 텅 비어 있었다.
학기마다 반복되는 0표가 부끄러웠던 나는 어느 날 떨리는 손으로 투표용지에 내 이름을 적었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옆 친구에게까지 들릴 것만 같았다.
"야, 자기 이름 쓴 사람도 있나 봐?"
내 이름 옆에 한 일자가 그어지고 개표가 끝났을 때 내 뒤에서 말이 들려왔다.
화끈거리는 얼굴로 애써 못 들은 척했다. 차라리 0표가 나았다.
이 괴로움이 언제 끝난 건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너무 행복하고 후련했다는 느낌만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어딘가에서 사랑이나 주목을 받기보다는 주로 병풍 같은 역할을 하며 살았다.
있어도 없어도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고 믿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은 2학년 때 밖에서 인사하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어어. 그래. 근데 누구...?"
익숙한 패턴이었다.
대학교, 짧은 직장생활, 서울에서 기센 여자들 사이에선 말할 것도 없고, 결혼해서도 그 후 박사과정까지.
반장선거에 대한 생각으로 시작해 일생을 돌아보니 나는 항상 그런 위치였던 것 같다.
내 이름이나 존재를 누군가에게 각인시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 같고
그런 면에서 여러 사람에게 인기가 많은 사람을 보면 부러우면서도 신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조용한 존재로 살아오던 나에게 뜻밖의 반전이 찾아왔으니
그건 바로 지금 이 집에서 최고 인기녀라는 사실이다.
남편도, 아이들 셋도 모두 나와 함께 있으려 하고 나를 서로 차지하려고 난리다. 내가 안아주고 사랑해 주는 걸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한다(라는 나의 믿음인 걸까?라는 생각이 쓰면서 문득 들기도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짐이 너무 무겁고 힘겹게만 느껴지다가도 불현듯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이 아이들을 낳지 않았다면 이렇게 순수하게 나를 좋아해 주는 팬이 세상에 존재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예쁘거나 키가 커서, 하는 행동이나 태도가 멋져서, 혹은 지식이 뛰어나서,
어떤 면이 훌륭해서나 좋아서 아니라 그냥 내가 나라서
나를 이렇게 순전하게 좋아해 주는 관계가 있다는 게 새삼스럽다.
서운한 일도 있고 힘들게 하는 일도 있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존재다.
삶이 전쟁 같고 버거워도 변하지 않는 사실.
내 아이들은 나를 사랑한다. 아이들에게 나는 유일한 사람이다. 내 존재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힘이 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다.
물론 여전히 나는 병풍 같은 사람이다.
드라마로 따지자면 조연도 아니고 그냥 '행인 9' 정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지 않은가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의 대사가 생각난다.
"당신은 여주인공이야. 그런데 왜 자신을 조연 취급해?"
그렇다. 숱하게 들어온 그 말.
내 인생에서는 내가 주연이다.
맞는 말이다. 단지 장르가 조금 다를 뿐..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나 화려한 액션 영화의 주인공은 아닐지 몰라도
조금 우울하고 건조한 장르일지도 모르지만.
나만의 스타일과 방법이 있고 나는 요즘 그걸 찾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아마도 계속해서 찾아가겠지.
그래도 3명이면 성공한 거 아닌가?
(다산 장려 캠페인으로 마무리되는 듯한 오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