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관계가 없을지도 몰라
글쓰기를 시작하며 가장 놀란 건 수많은 공모전의 존재였다.
'오, 이거 상금만 받아도 수입이 쏠쏠하겠는걸?'
알고 싶지 않았다. 이게 순진한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조금만 공부하면 금방 서울대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던 과거의 나는 여전했다.
쓴 입맛을 다신다. 역시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인가(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오늘은 그중 한 공모전에 글을 내며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글을 완성하고 유튜브의 첨삭 영상까지 보면서 글을 다듬고 또 다듬었다.
'여기까지만 고치고 이제 내버리자!'
하지만 제출 후에도 결국 마감까지 두 번이나 다시 제출했다.
A4 2페이지 분량의 글이었지만 거의 외우다시피 할 정도였다. 틈만 나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글이 꽤 마음에 들었다. 공모전 결과 발표일이 내심 기다려졌다.
'좋은 결과를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아냐, 그러다가 괜히 실망만 하지.'
자꾸만 부풀어 오르는 마음을 애써 눌렀다. 낙선으로 끝날 시나리오를 재생하며.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하지도 않을 테니까.
그렇게 공모전 발표 이틀 전.
기대감이 생기면 겁을 내기보다는 충분히 기대하려고 한다. 기대를 걸어 잠그는 버릇 덕분에 실망을 덜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덜 행복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감정을 막는 것에 쓰는 에너지는 결코 적지 않았다. 실망하는 삶이 두렵지만 기대 없는 삶도 두렵다. 기대가 보내는 행복 신호를 소중히 여기는 삶도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 레몬심리,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기대를 걸어 잠근다."
이 문장에 나는 정곡을 찔린 채 멈춰 섰다.
우리가 실망감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이유는 실망의 힘이 크기 때문이다. '막연한 슬픈 감정' 보다 '확실한 실망감'은 우리를 공허하고 무력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대를 하지 않으면 실망도 하지 않지만 행복감도 덜하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었다.
그래. 기대하면서 행복할 수 있잖아.
나는 책을 덮으며 마음껏 기대해 보기로 했다. 열심히 썼고, 내 글도 만족스러웠으니까. 표현이 떠오를 듯 말듯하다가 어느 순간 생각나면 느껴지는 시원한 쾌감도 좋았다. 제출 후에는 좋은 꿈까지 꿨다.
그래서 남은 이틀간 성실히 기대했다.
잘 될지도 모르잖아. 1등 받는 거 아냐? 시상식에 참석하면 좋겠다. 5만 원 쇼핑몰 상품권은 애매한데.
마음껏 김칫국물을 마시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드디어 결과 발표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결과 발표 팝업창을 봤을 뿐인데 심장 소리가 밖까지 울리는 듯했다.
떨리는 손으로 클릭. 두 눈과 손으로 바쁘게 이름을 찾았다.
... 없다.
혹시 놓쳤나 싶은 마음에 한번 더 찾아봤지만 이변은 없었다.
실망감.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그것이 빠르게 뛰던 심장을 순식간에 가라앉혔다.
더 허무했던 건 기대를 하며 엄청난 행복감을 느낀 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럴 바엔 그냥 원래대로 기대하지 않는 게 나았으려나 싶었다.
"나 공모전 떨어졌다ㅠㅠ"
"이런, 아쉽구먼!"
"응, 열심히 했는데ㅜㅜ"
동생과의 짧은 대화를 나누고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무언가 조금 낯설었다.
생각보다 실망감이나 우울감이 크게 나를 감싸지는 않는 것 같았다.
기대한다고 해서 특별히 더 행복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기대를 많이 했다고 그만큼 실망감이 더 큰 것도 아니었다.
기대를 하지 않으면 실망도 덜 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역시 그렇지 뭐, 이럴 줄 알았어.'
별 일 아니라는 듯 넘어갈 수 있다. 쿨한 척, 의연한 척 스스로를 다독인다.
하지만 실망감을 갖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 자체가 이미 기대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실망하지 않은 척한 것일 뿐이라는 걸.
기대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었다. 열심히 했으니 결과를 기대하는 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오면 실망하는 것도 역시나.
기대를 걸어 잠그지 않으려는 이유는 그만큼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자연스러운 감정을 흐르게 두기 위해서였다.
기대 여부나 정도는 어쩌면 실망감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차피 실망하는 거 솔직해지기라도 하는 건 어떨까.
충분히 기대하고 충분히 실망하고, 그 한두 번의 결과로 확대해석하지 않기.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꾸준히 가는 것.
다음에도 기대를 걸어 잠그기보다는 마음껏 춤추게 해야지.
오늘도 나를 사랑하는 방법 하나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