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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애할 권리 Jul 26. 2016

영드 입문기 (수사물)

해외 드라마 10년 차 시청자가...


지금은 넷플릭스나 케이블 방송을 통해 쉽게 해외 드라마를 접할 수 있지만,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해외 드라마는 마니아, 미드 덕후들만의 문화였다. 고화질의 파일이 있는 어둠의 경로를 찾아, 잘 된 자막을 제공하는 유저들을 찾아 떠도는 덕후들의 바쁜 손놀림.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일찌감치 미드를 기본으로 일드와 영드에 입문한 지 이제 10년 차.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은 그야말로 실크로드가 열린 천지창조 신세계!!!


짱짱한 스케일의 미드, 매니악한 영드를 나름의 취향을 가지고 섭렵하였던 경험을 바탕으로 일부 소개한다. (본 게시글은 2011년에 블로그에 썼던 글로 다소 올드한 부분도 있다)




<셜록 Sherlock : 2010 BBC>

미드 수사 물 덕후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안겨주며 ‘영드 붐’을 선사한 주역. 영국 현지에서도 시청률이 30에 달한 인기 작품이다. 공중파 KBS에서도 방영되고, DVD로도 출시되고, OCN에서도 방송된... 이제 국내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히트작, '셜록'이다.


시즌 1. 90분짜리 3편으로 구성된 짧고 강렬한 드라마다. 동명 소설인 <셜록 홈즈>를 모티브 삼아 현대적으로 각색해 재탄생시켰다. 니코틴 패치를 붙이고, 블랙베리로 검색을 생활화하며, 아이폰으로 사건 현장의 증거를 채집하는 진화된 셜록. 블로그를 운영하는 감성 유저 왓슨. 드라마 오프닝에서부터 고급 지더니, 첫 씬에 등장하는 캐릭터에서부터 매력 터지며 올킬이다.


수사 장면마다 그래픽을 이용해 세련된 화면 구성을 보여주고, 모던하고 리듬감 있는 카메라 워킹으로 장면마다 디테일에 신경 쓴 흔적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영화 <셜록홈즈>의 음악을 맡은 한스 짐머는 이 드라마에서도 확실한 효과음과 분위기를 살리는 멜로디를 넣어 귀를 즐겁게 한다. ‘닥터 후’의 작가였던 스티브 모펫과 마크 게티스는 ‘셜록’에서도 빛나는 실력을 발휘. 착착 떨어지는 안정된 스토리 속에 재치 넘치는 해프닝을 넣어 범죄 수사 극이 갖는 딱딱함을 없앴다.

‘셜록’으로 흥한 배우가 바로 주연인 ‘베네딕트 컴버배치’. 영국에서는 상당한 내공을 쌓아온 배우다. 시트콤, 드라마, 다큐멘터리, 영화 등 다양한 장르작에 출연했고 연극 무대에서도 활발하게 활약했다. 딕션도 좋고 캐릭터를 소화력이 무척 뛰어난 배우다. 화면에 꽉 찬 그의 원샷 모습을 보면 빨려 들어갈 수밖에...


많은 인물들의 상관관계, 화려한 액션, 긴 호흡의 에피소드 위주로 끌고 가는 구성이 미드 수사물이라면, 영드는 단발적인 이야기를 치밀한 구성으로 단숨에 펼쳐낸다. 그만큼 흡입력 있다. 이제는 정석 같은 말이 있다. 영드의 시작이자 그 끝은 셜록.


<화이트채플 White chapel : 2009 ITV>

제목 그대로 영국 화이트채플 지역에서 벌어지는 범죄 사건을 다룬다. 화이트채플은 런던의 연쇄 살인마 ‘잭 더 리퍼’가 활동한 무대로 유명한 지역. 많은 추리 소설의 배경이 된 이 지역에서 ‘잭 더 리퍼’가 부활한다. 19세기 당시 시민들을 공포에 휩싸이게 한 살인사건의 수법이 현실 속에서 그대로 재현된 것. 모방범죄다.


낙하산으로 발령받아 사건을 맡게 된 반장 ‘챈들러’는 지역 경찰들의 불협화음 속에서 어렵게 수사를 진행시켜간다. 밤샘 야근에도 청결과 정리는 기본이고, 항상 세정제로 손을 닦으며,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로마 액을 바르는 모습을 보인다. 예민해도 너무 예민한 그와 대조적인 팀원들. 며칠 동안 씻지 않는 건 기본이고, 사무실에 쓰레기와 조사 자료를 잘- 뒤섞어 늘어놓는 등 팀장이 보기에 눈엣가시가 한둘이 아니다. 이렇게 행동 방식에서부터 극과 극을 보이던 이들은 사건을 해결해가며 점차 융합된다.


주연을 맡은 루퍼드 펜리존스는 반듯한 외모와 다부진 몸이 돋보이는 배우다. 국내에서는 ‘스푹스’로 더 잘 알려졌을 듯. 빠른 전개와 짜임새 있는 사건 구성이 일품이다. 시즌 1이 특히 재미있다.

 


<라이프 온 마스 Life on mars : 2007 BBC>

영드의 바이블 같은 드라마를 소개한다. 2007년 BBC에서 방영된 후, 미국에서 리메이크로 만들 정도로 인기와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 우연히 사고를 당한 형사가 깨어나 보니 70년대로 시간을 초월해 살고 있다는 ‘공상과 망상 돋는’ 소재도 재미있고, 과거를 실감 나게 표현한 연출도 훌륭하다. 화면의 색감 자체가 의도적으로 클래식하고 올드한 복고적인 스타일. 이 드라마의 결정적인 매력은 주인공인 ‘존 심’에 있다. 각설하고, 볼매 오빠...


시즌을 이어가는 에피소드가 상당히 밀도 있다. 작은 연결고리들을 모아 큰 덩어리를 옹골차게 구성하는 형태다. 화려한 액션이나 자극적인 사건이 없어도, 충분히 분위기 있고 드라마틱한 긴장감을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휴머니즘도 곳곳에 녹아있어 감동도 있다. 8편씩 시즌2로 종영. 시작부터 단숨에 보게 만드는 매력적인 작품인지라 끝날 무렵에는 아쉬움이 들 터.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오프닝 타이틀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어머, 이건 꼭 봐야 해!!!!!!




<루터 Luther : 2010 BBC>

이 작품은 얼핏 지나칠 뻔하다 발견한 명작이었다. 보통 이렇게 주인공의 이름을 전면으로 세운 극은 작품의 특징이 잘 안 보이니. 제목만 보면 클래식한 고전 같지만, 전혀. 네버. 지극히 현대적인 수사 물이다.

루터라는 이름의 주인공은 꽤나 결과주의적인 형사다. ‘내가 사건을 해결하겠다는데, 그 과정이 조금 잘못된들 어떠하리!’하는 식. 그에게는 속임수와 뒷거래도 수사의 방법 중 일부분이다. 현실적이고 어찌 보면 트렌드 한 인물이라 볼 수 있다. 각 등장인물 간에 얽히고 꼬인 관계가 반전에 반전을 물며 시즌 1이 끝날 때쯤에 팡 터진다. 이런 극적인 흐름이 상당히 재미있다.


다만 사건 자체로 보면 다른 작품에 비해 잔잔하다. 사건 사고의 에피소드로 풀어가기보다는 등장인물들의 ‘스토리’에 더 집중하기 때문. 대신 심리묘사를 그리는 과정이 치밀하고 섬세해서 드라마적 집중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취향이 맞을 듯.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State of play : 2003 BBC>

마지막으로 추천하는 드라마는 6부작 깔끔한 마무리로 다 보고 나면 청량한 기분을 주는 작품.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다. 2009년에는 원작을 바탕으로 영화도 제작되었다. (아마 검색 창에 치면 러셀 크로우와 레이철 맥아담스가 나오는 영화가 먼저 딱 뜰 터)


우선, 연기력 충만한 배우들! 이제는 인기 스타가 된 익숙한 얼굴의 배우들을 만나볼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존 심’과 젊은 층이 좋아하는 훈남 ‘제임스 맥어보이’, ‘데이빗 모리시’ 등이 나온다는 사실. 지금은 주연급인 배우들이 조연으로 활약한 모습도 찾아볼 수 있어 눈이 점점 커진다.


작품의 장르는 수사물이 아닌 저널리즘이라 볼 수 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난 한 여자의 죽음. 단순한 자살이라 여겼지만 알고 보니 빙산의 일각이었다. 이 사건에는 많은 인물들이 얽힌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고, 헤럴드 기자인 ‘칼’은 자신의 정보력을 총동원해 사건을 풀어가며 동료 기자들과 함께 특집기사를 기획한다. 외부로부터 오는 취재의 압박과 여러 가지 난항이 계속되는 가운데, 편집장은 결국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정치적 비리, 부패의 폭로가 쏟아지는 이 드라마를 BBC에서 만들었다니! 저널리스트의 자존심과 자부심, 그리고 진실을 향한 사회적 은폐를 고발하는 목소리가 강한 작품이다. 하나의 사건을 6부작으로 풀어가다 보니, 중간에 약간 신파적인 멜로가 뒤섞이며 노선을 빗나갈 뻔하지만! 그래도 결국은 확실한 스토리 완성을 종 찍는다. 드라마 타이틀로 나온 한 문장이 작품의 매력을 대변한다.


‘Sometimes you have to read between the l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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