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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애할 권리 Apr 05. 2016

[Persona] 배우 '김준원'

섬세한 선을 가진 배우

뮤지컬 <명동로망스> 공연 장면 (사진: 공식홈페이지)

관찰

길게 늘어진 크고 낡은 코트. 느릿한 발걸음. 이중섭의 등장. 무채색 옷 때문인가, 수척해 보이기도 하고, 평소보다 더욱 몸집도 작아 보이고.

숫기 없는 듯 주변을 슬그머니 바라보다가 수줍게 웃더니, 자연스럽게 무대 한 구석에 푹 박혀 쭈그리고 앉는다. 아무도 넘보지 않는 편안한 제 자리인양, 언제나 비어 있는 그 구석 자리가 꽤 마음에 든다는 표정으로.

말투는 느리고 어눌하지만 제 의사는 종이 위에 꾹꾹 눌러쓰듯 또박또박 말한다. 우직하고 소신있는 모습이 순수하다. ‘소’를 닮은 가난한 그림쟁이, 이중섭이 된 김준원을 보았다.

이미지
김준원은 선이 가는 배우다. 외모는 선해 보이고 곱상한 편이다. (고로 선한 인상 속에 칼을 감춰둔 캐릭터라면 탁월한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외형적인 분위기 혹은 연기할 때 나오는 아우라? 태? (어떤 단어가 좋을까...) 그런 것들이 가늘고 섬세하다. 자연스럽게 몸에 입은 듯한 표현은 과장되지 않고 스크린으로 봐도 편안할 호흡과 깊이를 가졌다.

목소리
미성이 곱고, 차분한 말투가 특징이다. 성급하지 않지만 느리지도 않으며, 말과 말 사이에 주는 템포감도 적당하니 좋다. 무엇보다 상냥하다. 가만히 그의 말을 듣다 보면 계속 더 듣고 싶어진다.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목소리다. 배우로서는 굉장한 장점일테다. 그의 목소리를 타고 흐르는 방대한 대사는 수 차례 노력으로 완성했을 말이 되어 어물적 흐르지 않고 또렷하게 꽂힌다.

연극 <날보러와요> 장면. (사진출처: 플레이디비)


캐릭터
인텔리적인 캐릭터를 만날 때 상당히 매력적이다. 지성인, 논리적인 권력자… 또박또박 자기 의사를 전하는 ‘텔러’말이다. <보도지침>의 기자, <필로우맨>, <도둑맞은 책>의 작가, <날 보러와요>의 형사… 들이 그랬듯이. 그러고 보니, 광분자 ‘리’를 맡은 <트루웨스트>를 놓친 건 아쉽다! (문득, 정치인 역할은 어떨까 생각… ㅎㅎㅎ)


최근 맡는 역할들이 다소 이런 인텔리에 집중된 경향도 있다. 잘 어울리면서도 한편으로 이미지가 갇히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든다.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에서는 말 더듬는 언어 학자 역할도 했었는데… 아직까지는 ‘김준원 is 카투리안’의 인상을 떨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니까. 말 나온 김에 카투리안을 떠올려볼까.

연기
액팅에도 가볍고 예리하게 스치는 선이 있다. (춤을 잘 추는 지는… 모르겠으니 쓱 넣어두고) 상황에 맞게 몸을 잘 쓰는 배우다. <필로우 맨>의 ‘카투리안’을 본 관객은 아마도 백 번 동의할 것.


화술이 좋은 사람을 보면, 말을 할 때 움직임이 있다. 자기 이야기 속에 주인공으로 등장해 연기한다. 손짓, 눈짓, 움직임, 스킨쉽, 리액션을 이용하며… 목소리를 변환하기도 하고 보이스의 볼륨을 줄였다 키웠다 하며 미묘한 곡조를 만든다. 김준원의 카투리안은 그 조건을 다 갖췄다.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듯 시선을 뗄 수 없는, 매력적이고 똑똑한 (그 천재성에 가끔은 교활해 보이는…) 미워할 수 없는 스토리 텔러였다.  

다시 관찰
그런 측면에서 <명동로망스>의 ‘이중섭’은 그간 그가 맡았던 캐릭터와는 다소 다른 성격의 인물이다. 이중섭은 대사(언어)로 감정을 표현하고, 대화로 극적 상황을 리드하는 인물이 아니다. 뮤지컬이기 때문에 (솔로)노래로 표현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에 앞서 서브텍스트 적인 묘사가 더 중요한 캐릭터다. 다른 인물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오히려 포커스 밖에서 머무는 그의 리액션과 시선, 손짓이 그를 대변한다. 김준원의 이중섭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더하는 덧.글
뮤지컬 <명동로망스>는 이중섭을 비롯해 박인환, 전혜린이라는 1956년 시대의 예술가가 등장한다. 시대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처럼 등장인물은 수평적으로 그려진다. 실존 인물임을 감안해 단편적인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래서 배우들의 연기에 따라 캐릭터의 개성과 농도가 달라지는 작품이다. 김준원 배우와 더불어 박호산과 지현준 배우가 이중섭으로 분하는데, 세 배우의 개성이 뚜렷하게 달라 골라 보는 재미가 있다.

연극 <필로우맨> 장면. (사진출처: 공식홈페이지)

기억 & 상상
2012년,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한 <필로우 맨>에서 그를 처음 봤다. 해비한 텍스트를 빈틈없이 촘촘하게 엮은 연극. 잠깐의 ‘사이’가 극의 분위기를 좌우해버릴 연극. 그 중심에 선 ‘카투리안’ 김준원은 조명이 꺼진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잔상처럼 진한 여운을 남겼다. 카투리안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무대 위 김준원의 모습으로 말했을 것 같았다. 전설로 남을, 대체불가의 카투리안. 관객들은 여전히 그때의 그 모습을 기억하고, 나 역시 언제든 다시 보고 싶은 바람이 있다.

선한 이미지 속에 담긴 뒤틀린 욕망. 그런 인물을 만났을 때 김준원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악의 없는) 멜로 드라마 남자 주인공의 모습도 보고 싶다. 슬픔 없이 마냥 해맑은 시인도 좋고, 음악가도 좋겠고... 음색이 좋은 배우라 그가 읊어주는 달콤한 대사에 취해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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