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나의 일상 여행기. (9)

by Chris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8시 30분쯤 학교에 도착했다. 바로 일기를 쓸까 하다가 아침 시간 활용을 위한 대책이 필요한 것 같아 어제저녁에 생각해둔 영어 단어 암기 관련 계획서를 작성하고 모집 글을 학교의 게시판에 올렸다. 학습에 필요한 자료와 테스트를 위한 프린트물까지 내가 다 준비할 예정이라 참가자들은 그저 열심히 공부하기만 하면 될 수 있게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학생들은 분명히 시험 기간 탓에 참여가 어려울 것 같아, 졸업생뿐 아니라 석사나 박사급, 혹은 일반인까지도 참여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구매한 단어장의 총 단어 분량은 300단어밖에 안 되지만 그 구성으로 볼 때 분명히 리딩 실력 향상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모집을 학교 게시판에만 한 터라, 몇 명이 신청할지 궁금했다. 그렇게 글을 써서 올리고 나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모임 준비를 하다가 생각해보니 오늘은 영어 회화 모임에 한 사람만 참여하는 날이었다. 그러나 왠지 낌새가 안 올 것 같은 느낌이 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10시가 지났는데도 연락도 없었다. 연락해봤더니 고향에서 올라가는 중인데 깜빡했다고 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는 있는데 연락은 줘야지. 가장 기본적인 것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싶었지만, 어차피 안 올 것 같은 낌새에 혼자 진작부터 공부하고 있었으니 “그냥 알았다고, 다음부터는 연락을 미리 주시라.”라고 한 다음 넘어갔다.

나는 기다리는 것을 잘하는 편이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그걸 즐기기까지 한다. 기다리는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책을 보거나 다른 일들을 여유 있게 더 할 수 있으니까 좋았다. 그래서 주말 같은 때에 서울에서 약속이 있으면 보통 한두 시간 일찍 가서 근처 커피숍에서 책을 보거나 다른 일을 하곤 한다. 커피숍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그 사람들이 조금 늦는다고 해도 계속 내 할 일을 할 수 있으며 오히려 업무에 필요한 시간을 더 확보하게 해줘서 고마운 느낌까지 들 때도 있다. 더욱이 그러면 타인의 미안한 마음을 여유롭게 웃으면서 받아줄 수 있고 내가 늦게 될 때도 그들이 이해해 줄 수 있는 일종의 쿠폰(?)을 확보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것은 기약이 있는 시간에 따른 것이지, 이번처럼 연락이 없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연락이 없으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르며 내가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 심지어 오지 않을 때에는 기다리는 것에 대해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마음이 넓다 하여 한없이 넓을 수는 없었다. 혼자 있는 넓은 스터디룸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일기를 썼다.

점심에는 지현 누나를 만나기로 했다. 그녀에게 안 쓰던 캡슐 커피 머신을 건네주고 점심을 얻어먹었다. 간만에 학교 근처의 쌈밥 집에 갔다. 다양한 쌈 채소에 반찬 가짓수만 해도 10개가 넘는 곳이라 자취생이 야채를 보충하는데 제격인 곳이었다. 그런데도 가격은 6,500원이었다. 이런 곳이 또 있을까 싶은 정도라 우리 둘 다 좋아하는 곳이었다. 음식 맛도 좋았고 간만에 누나와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번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바 있지만, 같이 식사를 한다는 것은 마음을 나눈다는 것이다. 식사 자리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하고 듣는 것만으로 위안을 얻게 된다. 그것을 노리고 회식도 하는 것이지만, 회식은 대체로 자발적인 것이 아니며 때로는 업무의 연장으로 느낀다.

서로 만나는 게 즐거운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전자는 서로에게 힘을 주고 동기부여가 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공유한다. 반대로 후자는 힘을 쏟아야 하고 마음에 실망감을 주며 부정적 에너지를 공유한다.

밥을 먹고 인근 커피숍에 갔다. BOGO쿠폰이 하나 있어서 내가 사려고 했지만, 누나 역시 기프티콘이 있다 하여 그걸로 아이스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를 마셨다. 아이스 커피를 머그잔으로 마시는 게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이젠 익숙해졌다.

자리에 앉아 있다 보니까 아버지의 제품 환불과 관련하여 분쟁 조정위에서 전화가 왔다. 거래 및 환불 요청 내역이 필요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분쟁 조정일 뿐이지 이게 강제 집행 등의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라 상대 측에서 환불을 거부하면 공정위에 다시 한번 신고해서 조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알았다고 한 뒤에, 아버지와 동생에게도 같은 말을 전달했다. 지리멸렬하게 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지금까지는 비교적 빠르게 처리되고 있는듯했다.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법대로 하라 했으니 끝까지 해볼 생각이었다.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이 일로 인해 법에 관심을 두게 된 점은 좋았다. 지금까지는 이와 유사한 일이 생기면 법보다는 인정에 기댔었다. 그 까닭은 법으로 행할 시에는 집행 과정에 따른 소명이나 인터뷰, 증거 제출, 방문 등이 참으로 귀찮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인정에 기대다가 발생하는 감정적인 스트레스를 면할 수 있으니 오히려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분쟁 이후 무감각해질 수 있다면 법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훨씬 좋은 듯했다. 일단은 서류만 준비해서 제출하기만 하면, 보험사가 처리하듯 분쟁 조정위에서 담당할 터였다.

일을 처리하다 보니 변호사의 일에 대하여 흥미를 느낀다. 변호사까지는 안되더라도 나를 방어하고 나의 권리를 취득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법률에 관한 공부를 하는 게 좋을 듯싶었다.

예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일이 초기부터 쉽게 될 것 같지 않아 법적으로 갈 생각까지 고려를 했다. 상대 쪽에 화를 내거나 전투적으로 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차분한 자세로 내 권리 주장과 더불어 상대방이 잘못한 부분 혹은 잘못 아는 부분에 대하여 인정하도록 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거자료로 만들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기록물은 언제나 공허하게 떠도는 말이나 감정적으로 오가는 고성보다도 힘이 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국가가 존재하는 한 가지 이유는 바로 만인의 투쟁을 막는 것이고 그 거대한 힘으로 말미암아 분쟁을 조정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쟁을 조정할 때 필요한 것은 증거 혹은 기록물이다.

통화 후 누나가 궁금해하기에 이 일의 경위를 설명했다. 말하다 보니 졸지에 아버지를 흉보는 꼴이 된 것 같기도 하나, 자기가 어떻게든 처리해보려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누나에게 주지시켰다. 아버지는 관련 법 지식이 없으시고 상대방과 그 나이대 사람들의 통념에 따라 행동한 것뿐이니 잘못이 없다. 다만, 아버지로서는 혼자 처리하려다 문제를 더 키웠을 뿐이다.

누나와 이야기하다가 데일리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책을 봤는지 물어보았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워낙 유명한 책이기도 하고 독서 모임을 할 때 간혹 참여자들이 가져와서 언급하던 책이라 생각나는 내용은 있었다. 그중에 가장 생각나는 건 "논쟁을 피하라."라는 말이었다.

논쟁은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사안에 대하여 공격적으로 설득을 시도하는 작업이다. 설득이라고 했지만 기실 상대편을 무력화시키는 작업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논리보다 감정이 앞서거나 서로의 마음에 심한 상처를 줄 수 있다. 인간관계는 논리보다 감정이나 마음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아무리 자신이 승기를 잡았어도 관계는 어그러지게 되어 있다. 나 역시 이러한 책을 소개해준 당사자와 비슷한 까닭으로 관계가 어그러진 적이 있어서 그때 이후로는 될 수 있는 대로 감정이 상할만한 상황은 안 만든다.

이러한 상황은 처음부터 토론이 필요한 상황에서 된다기보다 의도치 않게 대화 중에 나온 불씨 하나로 논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상대의 말에 불쾌함을 못 참고 갑작스럽게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때에는 그 사람이 앞으로도 오래 볼 사람이라면, 의견을 강하게 밀어붙일 게 아니라, 상대의 감정이 식을 때까지 말을 돌리거나 우선 불쾌한 감정에 대해 사과를 하거나 피하는 게 좋다.

이렇게 논쟁을 하더라도 서로 간에 오랫동안 볼 수밖에 없는 공통의 공간 안에 묶여 있고, 호감이 반감보다 많은 경우에는 이후에도 감정을 씻고 다시 잘 지낼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는 서로 쉽게 끊어버릴 수 있는 공간에 살고 있다. 이 경우 어제 친구가 내일이라도 당장 안 보게 되거나 적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봤던 책 중에 괜찮았던 걸로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를 추천했다. 책 제목대로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를 설명하는 책인데, 결국 그 지점의 많은 것들도 카네기의 인간 관계론과 맞닿아 있다.

책의 내용은 상호 윈-윈 한다는 느낌을 전달하거나 혹은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느낌을 전달하면 상대방도 마음을 열어 도움을 준다는 게 주를 이룬다. 마치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는 속담과도 유사하다.

논쟁하여 감정을 상하게 하면 도움을 줄 것도 안 주게 된다. 그러나 논의의 이면에 담긴 감정을 이해하게 되면 설득을 하지 않더라도 더욱 수월하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누나는 학부모 간에 있었던 일을 언급했다. 간단히 말하면, 학부모가 계속 시간을 바꾸고 명확한 약속 시각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짜증이 났지만, 고객을 유치해야 하는 을의 처지기 때문에 조금 짜증 난 기분으로 ‘알겠다.’라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스튜어트 다이아몬드나 데일 카네기식으로 한다면 그 상황에서 짜증을 내거나 그와 비슷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일시적 감정 해소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결코 자신의 이익에는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입소문으로 인해 더 큰 피해까지 만들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차라리 그럴 때 자신의 사정을 말하거나 이런저런 약속으로 언제까지 시간이 되는지 혹은 이만저만해서 더 배려해 드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음을 미안한 감정을 담아 이야기한다면 상대방이 배려의 감정에 대한 부채 의식을 갖거나 혹은 배려에 따른 호감을 느낄 수도 있다. 즉 마음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물론 다 가능한 것은 아니기에 분쟁이 해결이 안 된다 싶을 때는 나처럼 단호하게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건 마지막 수단이 되는 게 좋다.

언제나 현상 이면에 도사린 본질을 봐야 한다. 본질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정신, 마음, 생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인간관계가 어려운 까닭은 그것을 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멜 깁슨 주연의 'What Women Want.'처럼 그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그것을 대화와 행동 그리고 상황을 통해 추측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에 따른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한다. 안다고 해서 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모르는 게 약이라고 모르고 있으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소 뒷걸음질하다가 닭 잡듯이 그렇게 될 수도 있으나 알게 되면 생각도 많아져 오히려 행동을 그르칠 수도 있다. 그렇기에 행동에도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연애나 친구와 같이 가까운 관계가 필요한 까닭은 가까운 사이에서는 말과 행동의 이면을 더욱 쉽게 파악하고 그러한 과정 중에 훈련되기 때문이다. 이는 훈련은 사회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누나를 보내고 계속 커피숍에 남아 하이젠베르크의 책, ‘부분과 전체’를 보았다.

9시쯤 집에 들어와서 길 위에서 학습하던 기억을 되살려 학습을 했으나, 생각보다 잘 안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저녁 아르바이트가 없었음에도 간단한 체육복 차림으로 길을 걸으며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겸사겸사 슬슬 식단관리가 필요한듯하여 학교 정문에 있는 홈플러스에 들려 양배추, 냉동 아보카도, 냉동 블루베리, 양파 한 망을 샀다. 예전처럼 두유에 인터넷 주문한 호두, 아몬드 그리고 닭가슴살까지 곁들여 믹서기로 갈아 마실 생각이었다.

이렇게 건강한 음식을 모두 갈아서 마시면 시간 절약이 되어 쓸데없이 흘려보내던 식사 시간을 줄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11시가 되고 희찬을 데리고 운동을 나섰다. 그의 동아리 후배 한 명이 함께 따라왔다. 축구공을 가지고 나와서 축구를 하거나 자기도 같이할지 말지를 옆에서 본다고 했다. 가는 길에 희찬이 옆에서 계속 같이 운동을 하자고 종용하는데, 나한테 말도 없이 이렇게 하는 게 조금 불쾌했다. 그를 보면서 운동을 지도하고 부상에 위험이 없도록 지켜보고 있으니, 사실상 나로부터 PT를 받는 셈이었다. 옆에 내가 있는데도 충분한 사전 동의 없이 이러는 것은 무례한 행위처럼 여겨졌다. 별말은 안 했으나 평행봉을 가르치면서 그에게 다음부터는 데려올 때 내게 미리 말을 해달라고 말했다.

함께 운동하면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없다. 물론 참여할 의지를 보인다면 누구나 환영할 의사는 있지만, 그것이 사전 동의 없이 자기들 멋대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옆에서 보고 따라 운동한다고 하면 그것까지는 이해하겠지만, 그룹 안으로 들어왔을 때는 전적으로 코치를 따라야 한다.

만약 전처럼 돈을 받고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면 그는 저렇게 행동했을까? 혹은 이 친구는 나와 이 프로그램을 어찌 생각하는 것일까? 열심히 운동하기로 약속한 경진은 나에게 못 나온다는 문자 하나 주지 못하고 빠진 까닭은 무엇일까? 내가 이렇게 하는 게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이들을 값싸게 생각하거나 노력의 대가를 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도록 하는 건 아닐까?

나는 결코 그를 비난할 마음이 없다. 잘 몰랐을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나와 내가 만든 공동체가 그 내부 구성원으로부터조차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나는 어디까지 그들을 존중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괴로운 것은 어쩌면 나 역시 그 어딘가에서 그와 유사한 무례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내 가치를 타인이 인지할 수 있도록 제대로 증명하고 있는가? 그들은 내 가치를 존중하고 있는가? 혹 그렇지 않다면 내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고 주지시키지 못한 내 잘못인가? 존중하지 않는 그들이 문제인가?’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 날의 깊은 밤은 하늘의 별과 달마저 가리고 찬 바람은 끊임없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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