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 - 수전 손택
슬픈 추억을 되살리는 힘을 지닌 이 수용소 앞에서 살아남은 우리들은 모두 서로 다른 태도를 보였지만 대개 두 부류로 나뉘었다. 첫째 부류는 이곳으로 돌아오기를, 혹은 이런 주제로 이야기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어서 악몽에 시달렸던 사람들도 여기에 속한다. 그래서 결국 다 잊어버린 사람들, 모든 것을 지우고 제로에서부터 다시 시작한 사람들이 여기 속한다. 나는 대개 이런 사람들이 불운 때문에, 그러니까 정치 활동과는 전혀 무관하게 살다가 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에게 고통은 사고나 질병 같은 트라우마일 뿐, 의미나 가르침이 전혀 없는 경험이었다. 그들에게 기억은 낯선 어떤 것, 그들의 삶에 난입한 고통스러운 물체였다. 그들은 그 기억을 지우려고 애썼다(혹은 아직도 애쓰고 있다). 둘째 부류는 반대로 ‘정치적’이었던, 혹은 어찌 되었든 정치적 경험이 있거나 종교적 신념 또는 강한 도덕성을 소유한 포로들이다. 이 귀환자들에게는 기억하는 것이 의무다. 그들은 잊고 싶어 하지 않는다. 특히 세상이 잊어버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들의 경험에 의미가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수용소는 사고가 아니라는 걸, 단순히 예기치 못한 우발적인 역사적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284~285p, 2007. 돌베개〉
그는 그 대신에 고통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수치심을 느끼도록 마음을 쓴다. 참으로, 나는 연민의 정이라는 것을 베풂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저 자비롭다는 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너무나도 수치심을 모른다.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