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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ul 25. 2019

우아한 거짓말 속에 담긴 소녀들의 심리학.

소설「우아한 거짓말」과 비소설「소녀들의 심리학」의 비교 읽기.

사진: 도서 「소녀들의 심리학」표지, 레이첼 시먼스 저, 정연희 옮김, 양철북.


  중학생 소녀 집단에서 은밀한 따돌림과 보이지 않는 폭력으로 인해 자살에 이르게 된 한 소녀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 「우아한 거짓말」과 따돌림에 관한 소녀들의 심리를 깊게 파헤친 최초의 책인 「소녀들의 심리학」 은 소설과 비소설이라는 차이를 제외하고는 많은 부분 유사점이 있다. 그 대상이 소녀라는 점, 둘 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은밀한 형태로 나타나는 경쟁심, 분노, 질투의 감정을 다루고 있다는 점, 피해자와 가해자, 가정과 학교를 중심으로 다각적으로 문제의 원인을 분석했다는 점 등이 그렇다.

반면에 이 둘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상황 묘사 등에 집중하는 소설과 연구서에 가까운 비소설이 갖고 있는 특성의 차이가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해, 소설의 경우 상황에 대한 묘사와 긴장감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그 특성상 한두 가지 사례에만 집중한다는 점, 구체적인 해결책 등에도 한계가 있고 직접적으로 알기에도 어렵다는 점, 소설의 극적 효과를 위해 사용하는 장치들에 대해 독자에 따라 공감하기 어렵다는 점 등이 한계로 작용한다. 반면에 교양서인 「소녀들의 심리학」은 그 내용이 인터뷰 중심에 비교적 쉽게 쓰였고 다양한 사례와 해결책이 제시되었다고는 하지만 소설보다 쉽게 접근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본 글에서는 이 두 책의 비교 읽기를 통해 문제를 조명해 보고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작성되었다.

글은 전체적인 소설의 흐름 가운데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소녀들의 심리학」에서는 어떤 식으로 해당 부분을 파악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비교하는 형식으로 구분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소녀들의 우아한 거짓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안에 담긴 사회적 관념가해자와 피해자-학교와 사회가 바라보는 관점다양한 해결책두 책의 감상 순이다.

  두 책에서 의도하는 바를 잘 잡아 비교 읽기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부족한 부분은 차차 수정을 통해 채워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 모쪼록 이 글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우아한 거짓말에 따른 문제를 인식하거나 해결책에 대한 혜안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1. 소녀들의 우아한 거짓말

1.1. 소녀의 죽음.

▶ 선입견이란 얼마나 무서운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퍼뜨린 악의적인 선입견이라면 더욱 그렇다. 흔히 쓰이는 선입견 조장 방법을 알아보자.

  1. 칭찬을 베이스로 깔고 모함을 포인트로 주기
  ― 사람들은 베이스보다 포인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 “쟤 공부 잘하잖아. 근데 알고 보면 되게 멍청하다.”
  ― 베이스 : 잘하다, 포인트 : 멍청

  2. 과거의 단점으로 현재의 장점 흠집 내기
  ― 실습으로 만든 파자마가 좋은 점수를 받았을 경우
   예) “초등학교 때는 박음질이랑 시침질도 구분 못했어.”

▶ 선입견의 부정적 효과와 긍정적 효과에 대한 설문
  1. 부정적 효과
  ·
  ·
  ·

〈우아한 거짓말, 13~14p, 김려령〉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이는 중학교 1학년 아이가 자살했다. 어떤 유서도 남기지 않은 채 자살을 했지만, 선생님도, 엄마도, 언니도 왜 그녀가 목숨을 버려야만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성적이 나빠 비관했다거나 학교 폭력 등의 흔적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녀의 모호한 죽음은 결국 신상 비관에 의한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왜 그녀가 자살을 선택해야 했는지. 그녀의 죽음의 원인이 바로 은밀한 거짓말 속에서 가까운 사람들은 모르게 그녀를 수년간 괴롭히는 것이었다는 것을. 


1.2 우아한 거짓말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소녀들의 심리학」의 저자인 ‘레이철 시먼스’에 따르면 남자아이들의 공격 방식과 여자아이들의 공격 방식은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그녀가 조사한 바로는 남자아이들은 자기들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눈에 보이는 행동이나 폭력 행위를 통해 해결하는 반면, 여자아이들의 경우 은밀한 모습으로 공격한다는 것이다. 그 패턴은 보통 한 집단에서 인기 있는 아이로부터 비롯된다. 인기 있는 소녀는 어떠한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한 아이에 대해 험담을 자기 집단에 쏟아낸다. 다른 소녀들은 인기 있는 아이의 말에 동조하게 되고 점차 험담의 대상인 아이를 은밀하게 공격한다. 대체 공격이라고 불리는 이 행동은 물리적인 싸움이 아닌, 뒤에서 험담하기, 노려보기, 같이 놀지 않기, 자기들끼리 속삭이기 등을 통해 이뤄진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면 대상이 된 소녀는 집단에서 소외감이나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것들은 기존의 무리에서 벗어나 있었거나 남들보다 튀는 아이들이 주로  표적이 된다. 자살한 천지는 바로 그러한 아이였다. 그녀는 전학을 왔으며 또래에 비해 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아이였다. 무리의 중심에 있던 화연은 이런 그녀를 잘 대해주는 척하면서 은밀하게 비난하고 험담하여 다른 또래들로부터 멀어지도록 유도했다. 이러한 대체 공격은 물리적 공격과는 달리 해당 집단의 밖에서 볼 때는 별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겉으로 드러나는 멍이나 상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들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계속해서 안겨준다는 의미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멍보다 더 위험했다. 더군다나 사춘기 전후 아이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또래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친구라는 존재는 부모-자식만큼이나 중요했다. 그래서 화연의 은밀한 대체 공격과 또래 아이들이 자신을 투명 인간처럼 대하는 것은 견디기 힘든 괴로움이었다. 천지의 언니 만지는 그녀의 무던한 성격 등으로 친구가 많은 편에 속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감수성이 예민하고 섬세한 천지가 가진 관계성을 바탕으로 한 폭력을 이해하지 못했다. 친구가 뒤에서 날 욕하거나 또는 주변에 그런 친구밖에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만지는 “그런 친구는 만나지 마.”라는 대답을 한다. 만지는 친구가 많았기에 그러한 아이들이 있든 없든 그것이 크게 영향력을 끼치진 않았다. 그러나 천지는 달랐다. 없는 것보다도 있는 게 그래도 나은 것이 바로 친구였다. 그러한 친구마저 없으면 자신은 투명인간처럼 고립되고 누군가와 함께 감정을 나눌 기회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농담이야! (농담이라는 데 꽁해 있기는!)’ ‘미안해! (난 미안하다고 말했다. 받아주지 않은 것은 네가 나빠서야!)’와 대체 공격을 반복하는 삶 속에서 수년간 숨막히는 생활을 한 것이다.

 



2. 우아한 거짓말 속에 담긴 사회적 관념.

2.1 착하기를 강요받는 사회.


  소녀들은 언제나 ‘착하기’를 강요받는다. 남자아이들이 주먹을 쥐고 함께 싸우는 것, 욕하는 것은 다소 용인되더라도 여자아이들이 그러면 정말 노는 아이로 낙인찍힌다. 그리고 그러한 낙인은 남자아이들보다 오래간다. 마치 수경처럼, 문제아이기 때문에 천지에게 체육복을 빌렸다는 것이 빼앗은 것처럼 되어버리고 자신의 말은 선생님조차 믿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레이첼 시먼스는 우리 사회의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착한 아이의 기준은 나대지 않는 것, 시끄럽지 않은 것, 소란을 피우지 않는 것 등등으로 볼 수 있는 관념이다. 이러한 관념은 소녀들이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고자 할 때 부모나 선생 등 집단 밖의 사람들이 잘 모르도록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그들 사이에서 처벌은 물리적 폭력이 아니다. 관계를 지배하고 소위 ''찍힌 아이''를 그 관계 밖으로 내쫓는 행위이다.

  인기 있는 아이는 집단 안에서 경계를 지배하고 또래 집단의 압력을 통해 소녀를 괴롭힌다. 그것은 레이철 시먼스가 ‘경계 유지’라 부르는 소문 내기, 험담하기와 같은 보이지 않는 공격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학교 폭력의 범위를 물리적 폭력 등의 영역에 초점을 맞췄기에 소녀들의 대체 공격과 같은 행위를 파악하고 논의할 공통된 언어가 없다. 그렇기에 천지의 자살 등을 해결할 수 있는 학생 폭력 방지 대책은 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2.2. 아이의 사회적 기술과 통과 의례.

  이러한 대체 공격을 당한 아이들의 경우에는 피해자인 아이들 자체가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첫째로, 그들은 때때로 사회적 기술이 부족하다는 평가나 오해를 받는다. 천지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녀가 공부를 좋아하고 말이 없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때로는 말이 없다는 것이 사회적 관계를 맺는 기술이 부족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만지나 화연은 오랫동안 가깝게 지내왔던 자신들보다도 옆집 오 대 오 가르마의 아저씨가 그녀의 진실에 더 가깝게 접근해 있는 것에 놀란다. 

  둘째는, 대체 공격의 경우 집단의 은밀한 거짓말은 많은 이들은 소녀가 사회화 과정을 겪기 위해 거쳐 가야 하는 통과 의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 봐야 한다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춘기 시절에는 왕따를 미리 당해봐야 사람이 보는 눈이 생기고 그것을 이겨낼 힘이 생긴다는 것, 어릴 때는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라는 인식. 이러한 인식은 부모로 하여금 가해자에게는 폭력 사실을 인정하지 않게 하고 피해자에게는 당하는 것을 아이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도록 한다.

  또한, 통과 의례 측면에서 대체 공격은 친밀한 사이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이 보이는 둘 사이에서 화연은 자신의 인기를 얻기 위한 도구로 천지의 비밀을 이용한다. 그녀는 유일하게 말을 걸어주는 친밀한 적이었고 천지는 죽기 전까지 도무지 헤어 나올 수 없는 곳에서 고통을 받았다. 그 안에서 화연은 친구라는 이름의 적이었고 아이들은 동조자였다. 
 



3. 자살인가타살인가?

3.1. 천지의 자살 원인

  천지가 자살하기 까지는 단순히 하나의 원인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과정 상의 우연과 필연이 서로 뒤섞이면서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게 한 것이다. 그녀의 자살의 직접적 원인이 화연과 또래 집단의 왕따였다면 궁극적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책에서는 다섯 장의 유언지가 각각의 인물에게 전달된다. 그 인물들은 천지의 주변에서 그녀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다. 그들을 중심으로 궁극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정리해 보았다.


― 피해자와 가해자의 엄마는 자기가 낳은 딸이기 때문에 자기가 잘 안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어떠한 낌새를 눈치챘음에도 의례 자라오면서 생기는 것이겠거니 하는 안이한 생각을 했다.

― 천지의 언니 만지는 그녀의 고립이나 성격에 따른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다. 타인의 관점이 아닌 자신의 관점에서만 해석하려고 했었고 그녀의 대화에 공감하지 않았다.

― 대체 공격의 밖에서 방관자로 있었던 천지의 친구 미라는 집단 안에 있으면서도 마치 내 일이 아닌 듯이 행동했고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더 멸시했다. 알면서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천지에게 미치는 화연의 영향력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한심해 보였다.

― 화연은 어떠한가? 화연은 정작 자신이 기대고 있고 자신을 다 받아주는 것이 바로 천지임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상대적 열등감으로 인해 그녀보다 권력의 우위를 점하려 하였고 그녀 하나를 희생물로 삼아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대체 공격에 대한 교육 역시 아이들에게 이뤄지지 않았다.

― 천지의 초짜 담임선생은 교육에 대한 사명의식은 있었지만,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무엇인지 몰랐다. 마찬가지로 교육 기관도 학교 폭력이나 왕따 문제에 관해서만 관심이 있을 뿐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체 공격이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다.

― 끝으로 천지 자기 자신도 따돌림의 고통을 견딜 수 없을 때 도움을 청하는 방법을 잊고 있었다.


  「소녀들의 심리학」에서 나오는 열한 살짜리 디나는 이렇게 충고한다. “뭔가 문제가 생기고 혼자 해결할 수 없으면 믿을 수 있고 자기편이 되어줄 사람과 친구가 되어야 해요. 친구가 없다면 부모님에게 말해야 하는데, 부모님도 무슨 일인지 알아야 하니까요. 어쩌면 부모님도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니까 혹시 도움을 줄 수도 있잖아요. 학교에 전화할 수도 있고요. 구석에서 처박혀서 혼자 끙끙 않으면 안 돼요.” 같은 책에서 수지 존스턴은 자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좀 더 일찍 부모에게 말하지 않는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엄마가 그 애들 엄마들에게 전화하면 더 힘들어질까 봐 두려웠어요. 그래서 부모님에게 털어놓지 않았어요. 이따금 후회스러워요. 그랬다면 더 일찍 학교를 옮길 수 있었을 테니까요.” 학교를 옮기자 수지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소녀들의 거짓말 356p, 레이철 시먼스〉


3.2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가정과 학교.

  이러한 곤경에 처해 있는 아이들을 도와주고 구제해 주어야 할 이들은 무엇보다 가정과 학교일 것이다. 그러나 레이철 시먼스의 인터뷰에 따르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가정과 학교를 신뢰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된 까닭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주된 요인을 살펴보면 가정에서 소녀들은 부모가 개입하면 문제가 더 이상하게 커질까 두려워한다. 말을 하고 오히려 소문이 나서 아이들의 일을 부모에게 전가한다는 비난을 사게 되고 ‘착한 아이’로서의 역할에 흠집이 나게 된 것을 분해하기도 한다.

  또한,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도 열린 마음으로 공감대를 이끌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천지는 공부를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어느 정도 성적을 유지해야만 했던 까닭이 “공부를 잘해야 자기 말을 믿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체육복을 빌려 간 수경이가 ''선생님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인식한 것은 바로 교사가 이미 자신은 나쁜 아이라고 낙인을 찍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는 좋은 아이, 나쁜 아이를 가르는 관점이 대개 성적이다. 이럴 경우 아이들과 진정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게 된다.
 



4. 소녀들의 심리학을 통해 보는 2의 천지를 구하기 위한 대안’.

  「소녀들의 심리학」은 단순히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소녀들의 대체 공격에만 초점을 둔 책이 아니다. 대체 공격의 심각성을 대중에게 인식시켜 줄 뿐 아니라 끝에 가서는 여러 가지 대안들을 다각적인 관점에서 제시한다. 그중 몇 가지를 발췌 및 요약했다.

규정 
  그 첫 단계로는 규칙을 바꾸는 것이다. 소녀들의 대체 공격을 부인하는 문화에서 단순히 괴롭힘과 따돌림을 금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학교의 따돌림 방지 정책과 지침서는 대체 공격에 대한 연구를 반영하여 개정해야 한다. 학교는 모든 학생들이 알 수 있게 대체 공격이 무엇인지 분명히 정의해야 한다. 소문 내기, 동맹 결성, 비밀 말하기, 비언어적 공격의 심각한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가족, 사회적 지위, 인종, 성별과 상관없이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규칙이 필요하다.〈소녀들의 심리학 p. 347, 레이철 시먼스〉

교육
―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주먹질하는 것이 폭력이라고 배우듯이 친구가 되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것 또한 폭력임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 이 같은 가르침은 일찍 시작되고 해마다 계속되어야 한다. 대체 공격자들이 소리치거나 주먹으로 치기보다 흉보고 코웃음치고 눈을 흘긴다는 이유로 처벌을 면해서는 안된다. 

― 소녀들을 사회화하는 것은 도덕 교육에 있어서 다른 어떤 가르침만큼이나 중요하다. 여학생 따돌림에 대한 우리의 무지는 희생자에게만큼이나 중요하다. 여학생 따돌림에 대한 우리의 무지는 희생자에게만큼이나 가해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들이 한 일을 가볍게 여기면서 ‘별 것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고, 돌아서서 흉보는 것을 ‘괜찮은’ 일로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 대체 공격을 잘 알아차리는 교실을 만들려면 교사가 공격의 여러 형태를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 대체 공격을 중심으로 따돌림 방지 커리큘럼을 짜는 것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 교장이나 장학사의 지지 없이 교사 혼자 할 수는 없다. 교사는 여기에 쏟은 시간이 낭비한 시간도 빼앗긴 시간도 아니며, 이 시간이 학생들의 삶과 발달에 중요하다고 느껴야 한다.

소녀들에게
― 서로 말을 삼가는 가장 큰 이유는 우정을 잃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말을 하면 상대가 뒤에서 흉볼까 두려워서다. 그런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속마음을 말하지 못한다. 그러면 무수히 많은 소문과 분노가 생기고, 이는 또 다른 소문과 분노를 부른다.

소녀들에게 제안하는 훈련
1. 한 명이든 여러 명이든 친구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라. 어떤 방식이든 괜찮지만 조용한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2. 갈등의 두려움에 대해 말하라. 서로 확인하라. “나 때문에 화나거나 속상하면 말해줄 거니?”라고. 말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봐라.

3. 감정을 가슴속에 담아두거나 숨기면 어떻게 되는지 말해보라. 감정을 쌓아두는 것이 일어난 일을 직접 다루는 것보다 더 나은가? 상황을 구체적으로 탐색하라.

4. 공격하는 자기 얼굴을 상상하라. 분노, 비열함, 경쟁, 질투를 느낀 순간에 대해 말하라. 살면서 느낀 감정이나 서로 느낀 감정들이 포함될 것이다. 그것을 터놓고 서로에게 말하라.

5. 친구들이 친구를 잃기 싫고 집단 따돌림이 두렵다고 말하면 몇 가지를 약속하라.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어떤 일이 있어도 버리지 않겠다고 말하라. 노력하겠다고 하라.

6. 서로 격려하라. 자기감정이 중요하며 갈등은 두 사람을 가깝게 한다고, 서로 터놓고 말하고 싶다고 친구들에게 밝혀라.
 
따돌림의 고통을 견딜 수 없을 때
1. 도움을 청하라. 혼자 노력하지 마라. 도와줄 사람을 찾아라.

2. 마음을 접어라. 인기를 얻으려고 애쓰다가 비참해지면, 친구에게 따돌림을 당하면 마음을 접어라. 인기가 행복을 준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3. 내어놓아라. 일기에 감정을 기록하라.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춰라. 킥복싱을 배워라. 빗속에서 달려라. 샌드백을 쳐라. 작곡을 하거나 드럼을 쳐라. 가슴속에 담아두지 마라. 문화는 우리더러 숨이 막힐 때까지 고통을 참으라고 한다. 맞서 싸우는 방법은 내어놓는 것이다.

4. 활동에 참여하라. 학교 신문사에 들어가라. 워크숍에 참여하라. 동아리에 들어가라. 미술 수업을 들어라. 자원봉사를 하라. 일을 구하라. 온라인 대화방에 들어가라. 담요를 뒤집어쓴 채 처박혀 있지는 마라. 날마다 하루 종일 그런다면 정말 곤란하다. 새로운 단체에 속하면 확실한 변화가 생긴다. 하고 싶은 것을 찾아라.

5. 언젠가 끝날 것이다. 울며불며 엄마를 찾는 세 살짜리 아이에게 5분 뒤에 엄마가 올 거라고 말해본 적 있는가? ‘5분 뒤’가 무슨 뜻인지 묻던 아이가 몇 년 뒤에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 이름을 줄줄 외울 것이다. 누가 우리 삶이 파멸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 같을 때도 마찬가지의 일이 일어난다. 믿어도 좋다. 언젠가는 이 모든 괴로움이 끝난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갔는데 나를 따돌리던 아이들이 전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따돌림이 아닐 때
  따돌림이 없는 세상에도 배제는 늘 존재했다. 관계가 친밀해지면 배제는 자연스레 발생한다. 배제와 따돌림은 다른 말이며, 대체 공격과도 다른 말이다. 그러니까 내 말을 배제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중략〉 한 아이가 친구들과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지 못할 때 따돌림을 당한다고 결론 내리기 전에 더 조사해보아야 한다. 한 소녀가 배제되었다고 당사자나 부모가 괴로워하면 그 이유를 조사해보라. 인기를 얻겠다는 욕망 때문에 아이가 세상을 보는 눈이 흐려져서 우정의 일상적인 변화를 다르게 해석하는지도 모른다. 아이의 사회적 기술이 부족하면 개발해야 하지만, 부족한 부분을 다른 아이들이 보상할 책임은 없다. 〈중략〉

  소녀들이 모든 친구들과 잘 놀 거라고 기대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지양해야 하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소녀들에게 “친절함과 상냥함의 폭압”을 강요하는 골이다. 이런 폭압이 소녀들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소녀들의 이상적이면서도 소외적인 관계로 몰아넣고, 소녀들에게 자신의 욕구를 희생하고 다른 사람들의 욕구를 들어주어야 한다는 믿음을 주입한다.

〈소녀들의 심리학 345~360p 일부 발췌, 레이철 시먼스〉

 



5. 끝으로 두 책의 감상.

5.1. 어린 시절의 추억.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필리핀 어학연수 인솔 교사를 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약 서른 명의 아이들과 약 한 달간 함께 생활했었다. 그 안에서 나는 여자아이들을 상대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저기 나오는 담임 선생님처럼 난 언제나 아이들이 내 진심을 알아주기를 바랐고 또 그렇게 생활했다. 하지만 갈수록 쌓여만 가는 사춘기 여자아이들 사이의 갈등은 점점 깊어져 갔다. 갈등은 이 책 「우아한 거짓말」 에서와같이 또래 집단 사이에서 주로 일어났다. 당시에 대체 공격에 대해서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아니 나는 적어도 우리 아이들만큼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는 어김없이 험담, 거짓말, 은따 등의 일들이 벌어졌다. 당시의 나는 나이도 어렸을 뿐 아니라 남자들 사회에서 벗어나 중학교 이후 처음 많은 여자를 상대해본 것이라 해결 방법을 잘 몰랐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고쳐보고자 손을 댈수록 문제는 점점 더 꼬이는 것만 같았다. 이러한 경험 때문인지 나는 이 책과 「소녀들의 심리학」을 보면서 절실히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진즉 보았더라면 그때 아이들에게 한 행동처럼 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5.2. 관계와 공감.

「소녀들의 심리학」에서 두 가지 키워드를 찾는다면 또래 집단 사이에서의 ‘관계’와 가족 사이의 ‘공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소녀는 집단 속에서 자신이 우위를 점하고 관계를 조종하기 위해서 대체 공격을 한다. 또 다른 소녀는 집단 관계에서 멀어지게 될까 봐 두려워 그러한 대체 공격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한다. 집단 안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이러한 공격은 집단 밖 제3의 인물이 볼 때에는 별일이 아닌 것과 같고 통과 의례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제자들, 자녀들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그들이 말로써 전하지 못하는 것들을 발견하지 못한다. 우아한 거짓말 속에서 사람들은 거짓말은 보지 못하고 우아함만을 생각한다. 


5.3 잘 지내니

“잘 지내니?”

「우아한 거짓말」의 작가 김려령도 비슷한 일이 었었던 것일까? 그녀는 자신의 아픈 기억을 더듬어 볼 때 저 평범한 말로 인해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평범하지만 진심이 담긴 말, 무미건조한 것 같은 안부지만 관심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말. 우리는 얼마나 누군가에게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것일까? 또 나는 누군가에게 아픔이 되진 않았을까? 우리는 소년, 소녀 시절을 이미 오래전에 건넜지만, 아직도 우아한 거짓말 속에서 파묻혀 사는 것은 아닐까? 혹 어떤 선입견 속에서 누군가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난 나의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세월 동안 있었던 무수한 우아한 거짓말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이 새벽안개가 걷히고 동이 트면 잊고 지냈던 사람들에게 담백한 인사를 건네야겠다. 




6. 추신.

새벽을 보내고 나서야 두 책의 비교 읽기에 관한 짧은 글에 마침표를 찍었다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천지 엄마가 화연의 엄마에게 건넨 말이 떠올랐다. 왜 이 말을 뱀다리까지 만들어가며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모르겠다.

 "사과하실 거면 하지 마세요. 말로 하는 사과는요, 용서가 가능할 때 하는 겁니다. 받을 수 없는 사과를 받으면 억장에 꽂힙니다. 더군다나 상대가 사과받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일방적으로 하는 사과, 그거 저 숨을 구멍 슬쩍 파놓고 장난치는 거예요. 나는 사과했어, 그 여자가 안 받았지, 너무 비열하지 않나요?"〈우아한 거짓말 210p, 김려령〉

  우리 사회에서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고 제멋대로 용서를 하는 이들, 특히 어른들에게 이 말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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