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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ul 15. 2019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가?

도서「이것이 인간인가 - 프리모 레비」에 관한 단상.

사진: Photo by Severinus Dewantara on Unsplash (Auschwitz, Poland)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이라면 무엇이 있을까? 쉽게 생각할 때에는 인간이 가지는 기본 욕구에 대한 충족, 즉 의식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필요조건이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충분조건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왜냐하면 ‘이것이 인간이다.’이라고 말할 때에는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 이상으로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특성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철학자들 사이에서 도대체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유명한 철학자 플라톤은 인간을 ‘깃털 없는 두발짐승’이라고 정의했고 이에 디오게네스는 깃털을 모조리 뽑은 닭을 데려와 응수했다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가 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사회적, 사회적 동물이라는 표현이 유명하고 많이 쓰이지만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사회적이라는 말이 아닌, 정치적 동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동물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하나의 사회를 이루는 개체 중에서도 이성을 사용하며 권력을 이용할 줄 알고 또한 정치적이기까지 한 동물은 지구 상의 인간뿐이기에 이 정의는 2,3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널리 쓰이고 있다.
  인간에 대해 그 물리적 형태를 보고 정의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인간 집단이 가진 보편적 특성을 잡아 정의하기도 쉽지 않다. 그 때문에 여러 철학자가 그토록 고심하여 인간이 어떤 동물인지 규정하려고 노력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을 무엇이라 확고하게 규정하기 어렵더라도 우리가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가치들이 무엇인지는 법과 도덕, 이성과 경험을 통하여 알고 있다. 그러한 가치들은 인간의 존엄성, 보편적 인권과 연관된 것이며 이는 인간이기 때문에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이다.

  인류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다양한 인종으로 분화해왔다. ‘넓고 평평한 손톱과 발톱을 지닌 깃털 달린 두발짐승’의 형태를 띠고 있음에도 환경적 영향 등으로 말미암아 흑인, 백인, 황인 등으로 구분되었고 혈족으로 구성된 부족집단이 거대해지면서 국가와 민족의 개념이 등장하였다. 특정 민족을 중심으로 결집된 국가는 이웃 민족 또는 국가와 부딪히는 일이 많았고 영토 분쟁 등으로 서로의 집단을 우위에 두고 상대를 지배하려고 하거나 상호 간에 적대감을 드러내었다.
  이것은 민족과 국가로부터 비롯된 민족주의, 국가주의가 대체로 등장하게 되는 배경이다. 이러한 민족주의가 강해질수록 자기 민족 또는 국가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일이 많아지게 되었고 그 이외의 집단을 무시하거나 복속시키려는 일도 많아지게 되었다. 이러한 복속의 과정 중에는 주종 관계로서 자신의 국가에 공물을 바치는 행위부터 전쟁을 통한 식민지화, 노예화하는 것까지 다양한 모습을 띠었다.
  이러한 차별적인 조치 안에는 어떤 집단이나 민족이 가진 강인한 육체와 정신은 신이 자신들에게만 부여한 특권*이라는 환상이 있었다. 또한, 신의 대리자인 왕이 부여한 권능으로 말미암아 민족 안에서 계급을 합리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비과학적 신념 또는 신앙은 자기 자신 이외의 다른 민족을 복속하고 노예로 삼는 것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과학은 전 지구의 모든 인간이 동일한 핏줄에서 나왔고 인종의 색이나 능력 등은 환경과 우연의 결과라는 사실을 점차 밝혀내었다. 이에 따라 서구 유럽 사회에서는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생각이 보편화되고 있었다.
  과거 유럽 사회에서 평등하다는 생각은 단순히 외관상 보이는 인종의 범위 이전에 지배층과 피지배층(프롤레타리아)의 계급 사이에서 적용되었다. 달리 말하면, 왕후 장상의 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똑같은 피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그와 관련된 과학적 증거들과 부르주아 계급을 중심으로 한 사상적 기반이 사회 저변에 등장하게 되면서 프랑스 대혁명 등의 결과를 이끌어 내었다.  
  평등을 위한 민주주의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갈 무렵, 1863년 미국에서는 노예 해방이 일어나고 보편적 인권은 한 단계 진일보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민족 안에서의 평등을 넘어서 인종 간에도 평등을 찾게 된 것이다.
인간의 조건을 이야기할 때에는 이처럼 평등·자유를 위한 저항의 과정에서 발생한 보편적 인권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적용되어야 할 가치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가 충분히 무르익었어야 할 20세기에 사상 초유의 어이없는 특정 인종에 대한 말살 정책이 계획된다. 그것이 바로 반유대주의로부터 비롯된 나치의 유대 민족의 강제 이주 및 학살 정책이다.

  1935년, 나치는 뉘른베르크에서 반유대주의를 공식화하는 법안을 발표한다. 이에 따라 유대인들은 독일을 비롯한 그들의 점령지와 동맹국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이러한 유대인 차별정책은 초기에 유대인의 강제 추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1939년 9월 1일,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유대인에 대한 혐오는 차츰 범죄적 성향을 띠었다. 그들은 두 번째 해결책으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등을 비롯한 수용소로 유대인을 이송하게 된다. 그러나 그 수가 수백만에 이르게 되자 그들은 최종 해결책인 학살을 감행한다.



  프리모 레비의 책 『이것이 인간인가』는 나치가 절멸이라는 최종 해결책을 수행할 무렵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모조리 걷어내어야만 했었다.

  그가 겪은 경험에 대해 감히 비슷하다고 말하기가 부끄럽지만, 그가 수용소 안에서 느꼈던 경험은 2년의 강제 군 생활을 경험한 우리에게 조금 더 가깝게 다가온다. 훈련소에 들어가던 첫날 우리는 가진 모든 것을 빼앗겨야만 했다. 가지고 있던 팬티마저 빼앗기고 조교들의 화난 모습과 기합 소리에 놀라 허둥지둥했던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또한, 그러한 강압적 모습 이외에도 군 생활 동안 우리는 모욕적인 언사와 구타를 가운데에서도 감히 저항하지 못했다. 훈련소와 자대에서 적응하기 전까지 우리는 사회에서 느꼈던 자유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지만, 누구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잘못된 것에 대해서 잘못되었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우리는 아우슈비츠에서 언제 살아 돌아갈지 기약이 없던 프리모 레비가 아니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고 우리는 2년이라는 시간만 버티면 이곳을 빠져나가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군대 안에서 우리는 수많은 부조리를 경험했고 때로는 그 부조리를 당연시하거나 이용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계급이 오르면 우리 역시 계급의 특권을 누리게 될 것을 기대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러한 부조리를 견디지 못하는 이병, 일병 후임을 보면 도리어 ‘군 생활 적응 못 한다, 고문관이다.’라는 말로 무시하거나 나아가 멸시하기조차 했다. 그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지 어렴풋하게 알았지만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알아도 나의 특권을 위해서라면 모른 척하는 것이 더 좋았다. 그리고 그것을 군대라는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말로 포장하기까지 했다.

  그뿐만 아니라, 레비는 그의 유작인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 구조된 자들은 대부분 아우슈비츠 수용소 안에서 특권을 가진 자였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같은 해프틀링(죄수) 임에도 이발사, 구두 수선공, 가스실에서 시체를 처리하는 유대인 특수 부대, 유대인 포로 관리자였던 카포, 화학자로서 라거의 화학 공업 업무를 도왔던 자기 자신이 바로 특권층이었다. (그는 그 안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직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인간임을 인식했다고 한다.) 그러한 특권은 그 안에서 재산이 되는 것들을 축적할 수 있도록 했다. 빵 한 덩이, 숟가락, 철사 하나를 더 가진 것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를 구분 짓는 기준이 되었다. 이러한 특권은 많은 경우 내가 아닌 내 옆의 특권을 가지지 못한 자가 가스실로 가게 되는 결과를 만들기도 했다.

  살아남으려면 옆 사람의 물건을 도둑질해야 했고 다른 사람의 죽음을 외면하고 불의에 저항하지 말아야 했다. 그것이 아우슈비츠의 도덕률이었다. 물론 그가 수용소 안에서 한 이와 같은 행동들은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살아남은 자들은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버릴 수는 없었다. 의로운 죽음이 아닌 수치스러운 삶을 선택해야 했고 나 이외의 다른 이들을 외면해야 했던 사실은 구조된 자들에게는 평생의 얼룩으로 남았을 것이다. 바로 괴로움과 슬픔이라는 비관의 얼룩으로 말이다.




  한홍구의『지금 이 순간의 역사』라는 책을 몇 장 펼치다 보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도청을 지키다가 죽어간 자들을 보면서 외면해야 했던 광주 시민과 다른 대학생, 지식인들이 겪는 슬픔을 뜻한다. 그들은 살아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고 의롭게 죽인 이들을 보며 슬퍼했다. 이들이 죽은 이들을 대신해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그들의 뜻을 밝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80년대 민주주의와 노동운동을 이끈 장본인이 되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지켜보았던 살아있는 자들이 ‘민주주의의 투사’가 되었다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구조된 프리모 레비는 그 시대를 증언하는 대표적인 작가가 되었다. 그가 죽은 자들을 대신해 할 수 있는 일은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나치의 만행을 세상에 적극적으로 증언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일은 물론 딱지가 진 상처를 다시 뜯는 행위였을 것이 분명하다. 너무 괴로워 잊고 싶어 하는 일을 다시금 들춰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행위였을 것이다.

  그의 책 『이것이 인간인가』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그의 통찰이 담긴 책이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지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보다 수용소의 삶을 이야기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인간다움 또는 인권에 대한 생각을 던진다. 그것은 훌륭한 철학자의 대단한 철학이나 이론이 아니더라도 이야기가 가진 놀라운 힘으로 우리에게 그에 대한 답변을 요구한다.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를 빼앗긴 인간이고 저항을 할 수 없는 인간이다.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살 수밖에 없는 인간, 소중한 것을 빼앗기고 시키는 대로 복종만 해야 하는 인간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과 죽음을 외면하고 살아남은 것을 기뻐하는 인간, 수치심을 버린 인간, 생각을 하지 않는 인간이다.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은 모든 생물이라는 개체가 유전자의 생존 기계라고 하더라도 인간이기에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그들은 빼앗겼다. 그리고 그들이 구조되고 다시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사회에서 끊임없이 그 시절을 괴로워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48>


  누구나 익히 알고 있고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 중 하나인 윤동주의 『서시』이다. 레비는 살아남았고 죽은 자들을 생각하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윤동주가 괴로워한 것은 아마도 그 역시 레비와 같이 그 당시 살아남은 자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부끄러움이 없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과도 같은 길을 외면하지 말고 끊임없이 걸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것이 살아있는 자의 부끄러움에 대해 속죄하는 길이었을 것이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적극적인 행위였을 테니까. 그가 가야 할 길은 끊임없이 시를 쓰는 일이었고 레비는 글을 쓰는 행위였다. 그것이 고통스럽고 설령 죽음을 향한 길이라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위험을 무릅써야만 했고 자신의 상처를 들춰야만 했으리라.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도 70여 년이 넘었다. 세계 대전을 경험한 사람들의 대다수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설령 살아있다고 해도 꽤 어린 나이에 경험하여 전쟁을 증언하기조차 어려운 이들일 것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은 더욱 많지 않을 것이다.
  프리모 레비와 같은 이들이 존재함으로 우리는 아우슈비츠와 나치의 만행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 그만큼 아우슈비츠와 나치 역시 역사로만 희미하게 기억될 것이다. 그 당시 사람들의 그 엄청난 고통에 대한 공감은 점차 사라지고 단지 ‘그랬었구나!’라는 식의 판단만이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 기억과 통찰이 사라져 갈 때쯤 다시 어두운 역사가 되풀이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망각은 시작되었다고 과언이 아닐 것이다. 캄보디아 킬링필드, 518 군부의 학살,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침공 등, 세계 대전 이후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학살이 그것을 방증한다. 차별, 혐오, 폭력, 민족주의가 카리스마를 가진 권력자의 의지에 반영된다면 또다시 아우슈비츠나 반유대주의와 같은 기형적인 특징을 가진 일들이 전 세계를 강타하지 말라는 법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도 역시 뼈아픈 고통을 겪었다. 일본의 폭력적 식민지 지배 및 학살, 종군 위안부, 731부대의 인간 생체 실험 등은 인간의 존엄성을 극도로 떨어뜨리려고 했던 일본의 만행이었다. 물론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일본인들에게는 직접적 잘못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책임을 외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자기 민족과 국가가 행한 악의 역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다룬 또 다른 작품 중에 아트 슈피겔만의 『쥐』라는 만화가 있다. 그 만화는 아버지가 겪은 수용소의 참상과 현재의 아버지의 삶을 번갈아가며 보여주고 있다. 만화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프리모 레비와 마찬가지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지옥과도 같은 나날을 보냈다. 그 역시 유대인이었기에 나치로부터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랬던 그가 흑인을 보며 멸시하고 혐오한다.
  자신도 차별의 희생자였음에도 자기가 누군가를 차별하는 이중적인 모습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바로 누구든 생각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대해 의문을 던지지 않으면 잘못된 사실을 바로 보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치 내가 ‘폭력’은 당연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군대 안에서의 폭력은 용인했던 것처럼 모순적인 모습들은 어느 때고 등장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스스로 ‘악’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바로 인간 고유의 조건인 ‘생각하기’로부터 비롯된다. 우리의 이성을 일깨우고 통찰을 하도록 이끄는 것이 바로 이 ‘생각’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하기를 멈출 때 우리는 단지 동물일 뿐이다.


‘생각하지 않는 인간’


  나는 우리가 우리 눈 속의 들보를 보려면, 보다 깊이 있는 생각, 즉 ‘숙고’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자신의 특권마저 포기하면서까지 숙고하는 이들을 ‘지식인’이라고 이름 부르고 싶다. 이 사회가 그러한 지식인들이 많기를 바란다.



*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태어날 때부터 어떤 존재는 특권을 갖고 태어난다며 다음과 같은 말로 노예제도를 옹호했다.
“이런 원칙에 따라 소유는 존재하기 위한 수단이며 부(富)라는 것은 수단의 다양성을 의미하고 노예는 생명이 있는 재산일 뿐이라 말할 수 있다. 게다가 가축과 노예의 유용성은 거의 똑같다. 둘 다 육체적 힘을 통해 우리 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돕기 때문이다. 어떤 존재는 복종하기 위해, 또 어떤 존재는 지배하기 위해 태어난다. 물론 서로 미묘한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또한 자유인과 노예는 육체도 다르게 타고나는데 그것은 자연이 원하는 바라 볼 수 있다. 자연은 노예에게는 사회에 필요한 노동을 할 수 있게 육체적 원기를 줬고 반대로 자유인에겐 노역에 몸을 굽히지 않는 대신 전쟁과 평화를 지키는 중요한 시민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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