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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Sep 04. 2019

텍스트의 진실을 알아내는 여섯 가지 툴.

도서『빌코바치의 텍스트 읽기 혁명』을 통한 텍스트 읽기 방법 정리.

미디어가 발달을 하면서 가짜 뉴스도 연일 더 많아지고 있는 세상입니다. 사람들을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떤 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쉽게 판단하기조차 어려운 지경이죠. 피로감에 쌓인 독자는 결국 확증편향 ¹, 자기가 좋아하는 기사를 지지하며 같은 생각을 가진 집단 간 대화를 통해 점차 그 기사를 확신하게 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쭉정이 같은 기사는 버리고 단단히 여문 알곡 같은 기사를 찾아내는 것은 비단 지식인뿐 아니라 연일 미디어를 접하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능력이 되었죠. 텍스트의 진실을 어떻게 하면 읽어 낼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는 저열한 저널리즘의 유혹과 흑심에서 멀어질 수 있을까요? 이 책 『빌코바치의 텍스트 읽기 혁명』은 바로 우리 스스로 기사와 정보를 가려 볼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 줍니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라는 책을 보면 이러한 말이 나옵니다. "경제는 경제학자들에게만 맡겨 두기에는 너무 중요한 문제다. 〈중략〉 우리 모두가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면 민주주의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 우리 손으로 뽑지 않은 전문가 집단에게 우리 사회를 맡겨 두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경제학을 배워 전문 경제학자들에게 도전해야만 한다."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론인, 기자 등의 전문가에게만 맡겨두기에는 우리 삶에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는 너무 중요한 문제입니다. 언론, 이제는 우리가 세심한 눈으로 감시해야 합니다. 적어도 그들이 허튼 짓은 못하게 우리가 눈을 뜨고 관찰해야 합니다. 이 책은 그러한 다짐을 하시는 분에게 꽤 적절한 책입니다.

아래는 도서『빌코바치의 텍스트 읽기 혁명』을 통하여 「텍스트의 진실을 알아낼 여섯 가지 방법」을 정리한 것입니다. 조금이나마 기사나 여러 형태의 텍스트를 읽어나가는 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시간이 되시는 분은 이 책의 일독을 권합니다.




1. 진실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매일매일 수많은 매체를 통해 새로운 텍스트를 접한다.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발달하고 스마트폰이 활성화되면서 이러한 매체들의 전달 속도는 급속도로 빨라졌고 또한 방대해졌다. 비단 언론사뿐 아니라 블로그, 트위터나 페이스 북 등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매체들이 등장함에 따라 개개인이 언론을 표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 따른 부작용도 생겨났는데 그중에서도 제일은 너무나도 많은 정보로 하여금 독자들은 정보 선택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또한, 한쪽 견해가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과 맞는다면 비판적 사고 없이 쉽게 받아들이는 확증편향 ¹ 역시 하나의 문제로 남는다. 물론, 종이나 텔레비전으로만 텍스트를 전달하던 시대에서도 한쪽 견해만 받아들이는 행위는 존재했었다. 더군다나 일제 강점기를 거쳐 군부 독재의 시대를 벗어나기까지 언론은 그들을 옹호하고 권력에 아첨하여 왜곡된 기사를 쓰기도 했다.

그때에는 정보의 폐쇄성과 언론에 대한 억압으로 말미암아 정보의 왜곡이 있었다면, 지금은 대중에게 노출된 수많은 정보를 편향적으로 해석하고 전달함 ²에 따라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 더군다나 특정 포털 사이트와 거대 사이트들을 중심으로 활용되는 인터넷 ³과 손쉽게 텍스트를 전달받을 수 있는 스마트폰 탓에 오히려 어떠한 개인적 기준에 따라 선택한 제한된 폭 안에서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정보가 기하급수로 늘어난 세상에서 사람들을 어떠한 사실을 보면서 그것이 확실한 진실일 것이라고 믿는 경우도 생겨났다.⁴ 에리히 프롬이 그의 책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말했던 것처럼 사실과 정보의 나열 속에서 혹시나 그 안의 현실마저 다 안다고 생각⁵하고 비판하는 것조차 멈추고 그대로 수용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이로 인해 인터넷 시대에 문맹률은 거의 제로에 수렴하고 있음에도 오히려 문해력은 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⁶

이러한 사회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고민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혹시 사실들을 나열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 진실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과연 진실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 마을에 일어나는 사건조차도 많은 경우 직접 겪어보지 못한다. 많은 경우 언론을 통해 전달을 받고 그마저도 수많은 사건 중 언론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건들만 몇 가지 추려서 전달받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독자들이 진실이 무엇이냐를 인식하는 것은 결국 언론이 무엇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진실이라는 것은 진정 무엇일까? 이 책 『빌코바치의 텍스트 읽기 혁명』에서는 진실이라는 개념을 “증거에 비춰 봤을 때 가장 그럴듯한 것에 대한 진술”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진실은 결국 증거에 따라 움직인다는 실증주의적 관점을 따라가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실증주의에 따라 가장 합리적인 것이 진실이 된다는 관점은 합리주의와 연관된다.

이 책은 이러한 실증주의와 합리주의적 관점이 언론이 진실을 알리는 가장 기본이 됨을 이야기하며 회의적, 비판적으로 언론을 바라보기 위한 6가지 도구를 제시한다. 그러한 도구를 통해 언론이 팩트와 더불어 중요한 맥락 Context으로 파악해야 할 진실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 것인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전달한다.



2. 언론은 왜 잘못된 혹은 왜곡된 정보를 여과 없이 전달하는 것일까?



위의 사진은 2014년 4월 16일에 있었던 세월호 침몰 사건의 뉴스이다. 세월호 침몰과 관련하여 뉴스가 나오고 얼마 있다가 “학생 전원 구조”라는 속보가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대중들은 이 뉴스를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결국 오보로 판명되고 아이들을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와야 했다. 왜 언론은 정보를 제대로 파악해보지도 못하고 이러한 기사를 내보냈던 것일까? 아래는 2014년 9월 14일 경향신문에서 보도한 세월호 사고에 관한 기사⁷이다.


"‘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는 행정관료들의 보고 경쟁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졌다. ‘전원 구조’라는 잘못된 ‘윗선’ 보고가 방송보도로 이어지면서 결국은 ‘골든타임’을 갉아먹어 살릴 수 있었던 생명을 수장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전형적인 행정관료의 타성에 젖은 ‘적폐’가 청와대를 비롯해 정부·국회에 대혼란을 초래한 것이다. 행정관료들이 세월호 유가족에게 더 큰 아픔을 주고 국론 분열까지 만든 셈이다.
특히 감사원이 사고 책임을 물어 관련 부처 행정관료를 ‘엄중 문책’ 하겠다고 보고서에 적시했지만 정작 중징계를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14일 ‘경향신문’이 단독 입수한 감사원의 ‘세월호 침몰 사고 대응실태 감사 진행 상황’을 보면 지난 4월 16일 사고 당시 팽목항 현장에서 진도군청 ㅂ과장이 인명구조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전파한 것이 시발점인 것으로 드러났다. ㅂ과장은 낮 12시부터 오후 1시 사이에 190명이 추가 구조돼 오후 1시 20분쯤 팽목항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현장에서 브리핑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해경과 전남도청·중대본 상황실(안행부)은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고 청와대에 보고를 했다. 진도군청과 해경의 잘못된 상황보고가 상부로 보고됐고, 중앙재난대책본부가 이를 근거로 언론 브리핑에 열을 올리는 상식을 넘는 ‘무능정부’를 그대로 드러냈다. 〈중략〉"


“우리가 점점 더 많은 뉴스를 간접적으로 얻게 되면서, 기자들은 커뮤니케이션 ‘매니저’에 의지해 원래의 정보원과 멀어지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빌코바치의 텍스트읽기 혁명 63p〉” 저 세월호 뉴스 속보는 그러한 ‘매니저’들에게 전달받은 것을 언론인이 어떠한 회의적 시각도 없이 받아들이면서 발생한 참담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책에서는 ‘서기주의’라고 부른다. 그러한 ‘서기주의’가 만들어낸 참상은 언론이 어떠한 ‘회의’도 없이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고 확인의 절차를 거치지 않는 ‘속보’ 중심의 기사들을 쏟아내면서 발생한다. 이러한 쓰레기 더미와 같은 기사들에 의해 언론은 오염되고 진실을 더 어둡게 만든다.



3. 텍스트에 담긴 진실을 어떻게 읽어 낼 것인가?


“얘야, 엄마가 널 사랑한다고 하면 정말 그런지 확인하렴.” 73p

텍스트에 담긴 진실을 우리는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위의 말은 그것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한다. ‘엄마가 널 사랑한다.’라는 주장이 진실인지 밝히기 위해서는 증거가 필요하다. 확인의 절차는 바로 그러한 텍스트에 담긴 진실을 읽어내는 방법일 것이다. 이것은 회의적인 자세로서 언론인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지식인으로서 텍스트에 접근하는 가장 올바른 방법이리라 생각한다.

책에서는 이러한 자세를 ‘회의적으로 이해하는 길’이라는 말로 대신한다. 이 스킬을 통해 보다 진실에 가까운 언론에 접근하거나 텍스트를 좀 더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

‘회의적으로 이해하는 길’은 일련의 체계적인 6가지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6가지 툴은 순서를 가지고 있으며 책에서는 각각의 순서마다 다양한 기사와 사례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어떤 종류의 콘텐츠인가?
    2) 그것이 포함하는 정보는 완전한가? 그렇지 않다면 빠진 것은 무엇인가?
    3) 정보의 출처나 소식통은 무엇이며 그것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4) 제시된 증거는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 검증되거나 확인되었는가?
    5) 대체할 만한 설명이나 해석이 있는가?
    6) 나에게 중요한 것을 알아내고 있는가?


각각의 순서는 그에 따른 세분화된 방법을 담고 있다. 다음 장에는 각각의 툴에 있는 세분화된 방법을 간단히 소개하겠다. 각각의 툴은 불가피하게 겹칠 수도 있다.



4.회의적으로 이해하는 6가지 툴.

    1) 텍스트의 종류가 무엇인지 알아내라.

    텍스트의 종류는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 정확성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전통적인 ‘확인의 저널리즘’
        - 즉각성과 정보량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주장의 저널리즘’
        - 독자(혹은 시청자, 청취자)의 신념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며,
           그러한 목적에 맞는 정보만 골라서 선택하는 ‘단언의 저널리즘’
        - 이익 집단이 자금을 대는 ‘이익집단 저널리즘’


전통적인 언론의 경우 대체로 확인의 저널리즘에 가깝다. 그러나 미디어의 발달과 속보, 생방송 등이 늘어나면서 ‘주장’이나 ‘단언’의 저널리즘이 증가하고 있다. ‘확인의 저널리즘’과 이 둘의 차이점은 전자의 경우 ‘증거가 명확하거나 정보가 믿을만한가’에 따라 접근하지만 후자의 경우 그것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에 있다.

블로그, 소셜 네트워크, 트위터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는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형태이지 새로운 콘텐츠의 모델은 아니다. 이러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형태에서는 작성자에 따라 위의 모델이 복합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2) 텍스트가 완전한지, 무엇이 빠졌는지 알아내라.

우리는 모든 뉴스 콘텐츠를 접할 때마다 완전성에 관한 질문을 던지면서 접근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을 얻고 있을까?


"언론 전공 학생들은 대체로 입문 수업 첫날에 완전성에 관한 기본적인 원칙들을 숙지하게 된다. 이것은 ‘육하원칙’으로 정리될 때가 많다. 이것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좀 더 풀어 말하면, 모든 뉴스 기사들은 누가 그 일을 했고, 그들이 무슨 일을 했으며, 어디에서 했고, 왜 어떻게 했는지를 말해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본적이긴 하지만 훌륭한 시작점이다. 113p"
"육하원칙은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수도관 파열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질문이 하나 더 있다. 이 사고가 일어나기 몇 달 전, 워싱턴 D.C와 인근 카운티들이 침수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토록 많은 파열이 갑자기 일어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이 같은 일련의 사건과 관련하여 관계 당국은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취할 수 있었던 조치는 무엇이었을까?
이 같은 의문들은 이 뉴스 기사에서는 다루어 지지 않았다. 따라서 어떤 이야기나 뉴스 기사, 혹은 콘텐츠가 얼마나 완전한지를 설명할 때는 육하원칙 외에 다른 요소 하나를 추가해야 할 것이다. 이것을 ‘Q(Question)’라고 부른다. 그 사건과 관련하여 독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의문들이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되었는가? 115p"


초등학생 때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 배울 때 가장 먼저 익히는 기술(?) 중 하나가 바로 이 육하원칙일 것이다. 문제는 우리는 이러한 대단히 유용한 툴을 많은 경우, 단순히 시험을 위한 것으로 사용할 뿐이지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에는 사용하지 않는다.⁸ 이 방법은 어떠한 기사를 쓸 때에도 항상 기본이 되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에 더불어 바로 Q라는 것이 존재해야 한다고 한다. 기사를 보고서도 어떠한 의문이 들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의문이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되었는지가 없다면 완전한 기사라고 할 수 없다.


     3) 텍스트의 출처, 정보원에 대해 알아내라.

우리는 어떠한 기사를 볼 때, 그 정보의 출처가 어디인지, 정보원은 누구인지 확인해야 한다. 정보에 대한 출처나 정보원을 확인함으로써 그가 가지는 색깔(?)이나 성향을 판단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정보원에 대한 유형을 확인함으로써 그 기사가 정확한지 애매모호한 정보원을 확실한 증거인 것 마냥 포장하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정보원의 성향이 어떠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결격사유이거나 꼭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독자로서 비판적으로 글을 보고 평가하며 또한 받아들일 때에는 기사를 점검해 볼 수 있는 하나의 툴이 될 수 있다.

해당 부분의 마지막 단락에는 이러한 글이 써져 있다.


“우리는 뉴스에서 인용된 정보원이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일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언론인은 자신의 정보원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선입견을 공유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 뉴스가 믿을 만한 것인지를 알려 주어야 한다.
정보원의 문제는 뉴스에 대한 평가를 논할 때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이 아니다. 정보원이 제공하는 증거, 그리고 그것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검증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다음 장에서 다룰 문제가 바로 ‘증거’의 문제이다.” 166p


     4) 증거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라.

“진실로 가는 유일한 길은 증거뿐이다……. 그리고 진실이라는 개념은 탐구의 결과와 관련이 있다.”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어떠한 용의자의 죄를 입증할 때에는 그가 범인이라는 심증만 가지고는 안된다. 바로 물증이 있어야 한다. 물증이 없다면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단지 용의자일 뿐이다.

어떠한 기사에는 그것을 입증할 증거가 있어야 한다. 증거가 없는 기사는 단순히 주장일 뿐이다. 그러나 주장의 저널리즘이나 단언의 저널리즘의 경우 때때로 주장과 단언만 보일 뿐 그것에 대해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꺼내지 못한 상태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언론이라는 교묘한 이름으로 덮고 여론의 정서를 등에 입어 강력한 힘을 형성한다.⁹

저자는 사실과 신념, 실증주의와 선입견 사이의 경계에서, 증거를 탐색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자기가 틀릴 수도 있다는 열린 마음과 겸손함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귀무가설과 같은 사고방식을 통해 ‘주장이 옳은지 입증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귀무가설을 통한 증거 접근 방식은 다음과 같다.


“귀무가설 과정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연구자들은 자신이 실험하고 싶은 가설에서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의 가정이 옳음을 입증하는 실험을 준비하거나 증거를 모은다. 그러나 그 과정에는 자기 자신도 틀릴 수 있음을, 자신의 생각과 정반대인 것도 진실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여기서 자신의 가정과 정반대인 가정이 귀무가설이다. 204p”


     5) 주장과 단언만이 넘치는 텍스트를 경계하라.

때때로 증거자료들은 사건의 다각적인 시각을 조망하기보다 한쪽에 치우쳐져 있기도 한다. 이런 경우, 정보 소비자로서의 우리는 한쪽의 증거만을 토대로 성급한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이러한 것은 앞서 말한 ‘주장과 단언’의 저널리즘에서 많이 보인다.

기사의 정확도를 기하기 위해 사실을 꼼꼼히 조사하기보다 이해집단과의 관계나 경제적 문제 등으로 인해 왜곡된 시각을 전달하는 미디어들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최근의 거대 언론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종합편성 채널(이하 종편 ¹⁰)의 경우에는 방송 미디어라는 특성상 속보나 생방송 인터뷰가 많고 또한 한쪽 시각을 가진 게스트를 초빙하여 대화하는 등의 방법들을 부분적으로 사용하곤 한다. 책에는 이를 경계하는 다음과 같은 글귀와 다양한 유형의 문제점을 가진 사례를 제시한다. 여기에서는 글귀만 인용하도록 하겠다.


“사회자나 언론인, 콘텐츠 제공자가 사실 확인이나 증거를 요구하려는 노력도 없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건 그대로 넘어가는 장면을 본다면, 당신은 전문가조차 잘 깨닫지 못하는, 또 다른 영역으로 들어간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것은 주장의 저널리즘으로, 그곳에 당신이 얻게 되는 내용은 완성품이라고 할 수 없으며, 정보에 대한 검증을 끝낸 것도 아니다. 당신은 독자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230p”


     6) 정말로 나에게 중요한 것인지 숙고하라.

"나는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을 알아가고 있는가?"

연예인 관련 루머들이 신문 기사나 포털의 전면에 등장할 때면 ‘이것이 과연 중요한 기사인가?’라는 의문이 들곤 한다. 그리고 기사의 댓글에는 ‘다른 중요한 정치권 이슈를 감추기 위한 연막작전’이라는 음모론 ¹¹과 비슷한 비아냥이 항상 따라붙는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대개는 이슈 덮기용 기사는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무엇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을 따라가는 경향 때문일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뉴스를 얻는 제일 큰 이유(72퍼센트의 성인이 응답)는 친구나 가족, 동료들과 함께 대화를 즐기기 위해서다. 이것은 사교적 행위로서의 뉴스다........ 이것과 비슷한 비율의 미국인들(69퍼센트)은 뉴스를 보는 이유를 시민의 의무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말은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공동체 생활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생각되는 일들을 찾아보려 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뉴스를 보는 세 번째 이유(61퍼센트)는 삶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다.〈중략〉 259p”


이슈 덮기 용으로 터뜨리는 기사인지 실제로 중요한 기사인지는 모르지만, ‘이 기사가 중요한가?’라는 의문에는 언제나 ‘우리의 삶에’라는 숨겨진 수식어가 담겨 있을 것이다. 다만, 많은 경우 수많은 기사 중에 우리는 우리의 삶에 무엇이 중요한지 잘 모른다. 이에 대해 저자는 ‘중요한 뉴스를 얻고 있는지 확인하는 네 가지 질문’을 해보라고 전한다.
                    

  ※ 중요한 뉴스를 얻고 있는지 확인하는 네 가지 질문

  (1) 나는 어떤 뉴스를 얻었는가? 어떤 주제에 관한 것이었는가? 어디서 얻었는가? 중요한 뉴스였나? 보고 싶었지만 보지 못한 것이 있었는가?
  (2) 내가 알게 된 뉴스가 내 지식을 발전시켜 주는가? 아니면 큰 의미가 없는 것인가? 그저 메모한 내용을 전달하는 판에 박힌 보도인가? 아니면 중요한 세부 사항들을 알려 주고 있는가?
  (3) 나는 새로운 지식을 전달해 주는 뉴스를 소비했는가? 아니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보강해 주는 소소한 정보들을 발견한 것에 불과했는가?
  (4) 나는 가장 우려하거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는가?


"우리가 접하는 정보가 판에 박힌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중요한 정보를 얻고 있다는 증거이다. 284p"


5. 비판적으로 세상을 살아야 하는 이유.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건을 접한다. 그 사건 중에 어떠한 것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수백 년 이상을 우리의 자손과 함께 살아갈 것이고 어떠한 사건은 사소한 기사로 남아 사람들의 뇌리에서 하루도 되지 않아 사라져 버릴 것이다.

오늘의 세상에서 텍스트를 본다는 것은 세상의 흐름을 읽는다는 말과 같은 말일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그날 벌어지는 일들을 1분도 채 안 되어 알 수 있는 세상이기에 정보는 흔한 것이면서도 동시에 귀중한 것이 되고야 말았다. 그것은 무엇보다 텍스트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단순히 주장만 하거나 입증할 수 없는 정보로 구성된 것이라면 그것은 무가치한 것이 될 것이다.

어떠한 텍스트에 가치를 담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정보라고 부른다. ‘아랍의 봄’¹²을 이끌어 냈던 트위터나 페이스 북이 저널리즘의 창구로서 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몰랐던 사실을 일깨워 주고 우리의 시각을 변화시켜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정보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의 역할은 무엇보다 그러한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언론과 함께 사는 우리는 언론의 권력화와 저널리즘을 핑계로 자신의 주장과 단언만 담는 것들을 경계해야 한다. 이 책은 텍스트를 접하는 지식인으로서 그러한 기술을 가르쳐 주는 좋은 책이다. 더불어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뿐 아니라 자신의 글을 튼튼하게 만들고자 하고자 하는 이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추천하고픈 책이다. 《2015. 01》



주.  

1 의식적으로 건 아니건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맞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  「에릭 슈미트, 새로운 디지털 시대 64p에서는 이것에 대해 대체로 낙관하고 있다」


2 네이버 뉴스 유통 주도권에 대한 통계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0669


3 포털 사이트 점유율 https://news.einfomax.co.kr:444/news/articleView.html?idxno=118339


4 나는 사실과 진실을 이야기할 때마다 두 가지 그림이 떠오른다. 하나는 루벤스(Rubens)의 작품인 Cimon and Pero(키몬과 페로)이며, 또 하나는 how the media can manipulate our viewpoint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작품이다. 시간이 되면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보길 바란다.


5 . 「나는 오늘날 쓰이는 교육 방법 가운데 독창적인 생각을 실제로 방해하는 몇 가지를 잠깐 언급하고 싶다. 하나는 사실에 대한 지식, 아니 그보다는 정보를 강조하는 것이다. 사실을 많이 알수록 현실도 잘 알 수 있다는 한심한 미신이 널리 퍼져 있었다. 아무 상관도 없는 산발적인 사실 수백 개를 학생들의 머릿속에 주입한다. 학생들은 점점 더 많은 사실을 배우는 데 시간과 정력을 빼앗기기 때문에 생각할 짬이 거의 없어진다. 물론 사실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생각은 공허하고 허구적이다. 하지만 '정보'만으로는 정보가 없는 것만큼이나 생각을 방해할 수 있다.」〈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255p. 휴머니스트〉


6 한국의 문서 해석 능력에 관한 기사 http://www.ejanews.co.kr/sub_read.html?uid=97512


7 세월호 오보 관련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9141932371


8 여러분의 기억에 시험용이 아닌 비판적 지식을 위한 방법론으로써 육하원칙을 가르쳐 준 선생님이 있었다면 정말 멋진 교사를 만난 것이다. 혹은 학교는 학생들에게 너무 일찍 육하원칙을 가르쳐 준 듯싶다. 루소(에밀)의 교육론에 따라 12세까지의 교육을 고려해보면 우리는 육하원칙이라 표현된 사물에 대한 기호만 배웠을 뿐이지 그것이 담고 있는 관념까지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셈이다.


9 언론의 마녀사냥에 관한 사설 http://www.pac.or.kr/webzine/22_autumn/contents/sub_4.html


10 http://ko.wikipedia.org/wiki/대한민국의 종합편성 채널 선정 논란
종편 채널 문제의 경우 반대편 언론사에서 종편을 비판하는 경우가 많고 보수 언론의 경우 종편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아, 비교적 중립적 시각으로 보기 위해 위키피디아를 인용함.


11 디스패치 연예 7대 뉴스에 파묻힌 진짜 7대 뉴스 http://www.dispatch.co.kr/r.dp?idx=23956


12 「http://ko.wikipedia.org/wiki/아랍의 봄」 참조.
이 반정부 시위에서는 파업 참여 운동의 지속, 데모, 행진과 대집회뿐만 아니라,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같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한 조직, 의사소통, 인식 확대를 통해 광범한 시민의 저항 운동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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