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커피 한잔을 타 놓고 어제 하루 동안의 생각을 정리한다. 아침에 쓰던 것에 비해 기억을 좀 더 더듬어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차라리 자기 전 피곤하면서 매번 허튼짓을 하게 되는 시간에 글을 정리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다 보면 혼자만의 세계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자주 든다. 몰입의 기분일까? 글을 쓰는 일에 매력을 느낀 까닭도 바로 그 순간만큼은 시간도 공간도 중요하지 않고 바로 그 순간의 붕 떠오르는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저 뇌와 눈과 손이 전선처럼 쭉 이어져 글씨까지 맞닿아 있는 느낌이 매우 좋았다. 조바심 따위는 없었으나 내 몸을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게 하는 것은 오로지 그다음에 있을 다른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몽환적인 기분 때문에 글쟁이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나서는 오히려 모든 게 쉽지 않았다.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조바심이 계속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아니 어쩌면 나의 우유부단함과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도망치려는 마음이 이렇게 만든 것이겠지. 나는 정말 직업으로서의 작가를 꿈꾸는 것일까? 어쩌면 나는 소망을 말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철부지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는 것은 아닐까? 온 힘을 다해 해본 적이 있을까? 문득 값진 패배에 대해 생각해본다. 값진 패배는 창조적 파괴이며 시간을 질질 끄는 것보다 좋은 것이다. 끝이 흐지부지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패배를 통해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 것이다. 간신히 들어가는 항아리 입구 손을 넣고 그 안의 콩을 움켜쥐면 그는 아무것도 못 하고 시간만 보낼 수밖에 없다. 패배와 포기 후 시간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다.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시련은 우리를 강하게 한다."
많은 패배가 죽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패배 속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그 패배까지의 과정에도 온 힘을 다해야 한다. 이번이 아니라 그다음을 위해 값진 패배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패배가 두려워 지금껏 정면 승부를 도망쳐 온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내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계속 분칠을 해온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나의 목표에서만큼은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우유부단하게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물쭈물하다 보니 벌써 이 나이가 된 것이겠지. 그것을 끊임없이 잡고 아무런 시도도 하질 않았으니 결국 시간만 흐른 것이겠지. 삶을 살면서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또한 한 부분에서만큼은 아무것도 안 한 것이 되었다. 나는 항아리에 든 콩을 움켜쥔 상태에서 다른 손으로 많은 것을 했지만, 한 손은 계속 그곳에 두고 어떻게 할 생각도 안 한 채로 그저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왼손이 잠시 쉴 동안 움켜쥔 오른손을 보며 잠시 내려다볼 뿐이겠지. 차라리 항아리를 깨부수든, 콩을 하나씩 집어가든 했다면 이미 많은 것들을 집어 올렸을 건만…. ‘늦지 않았다. 조바심 내지 말고 이제부터 시작하자!’라고 다짐해도 한순간뿐이다. 어쩌면 나의 왼손이 모든 할 일을 멈출 때, 움켜쥔 이 오른손을 나의 왼손이 돕게 될까? 누군가가 어린아이를 바라보듯 애정이 담긴 두 눈으로 엉덩이를 두드려줬으면 좋겠다. 나는 한 손으로 항아리 속 콩을 움켜쥔 어린아이이며, 나를 지지해주고 지켜봐 줄 엄마이며 연인이며 또한 친구인 누군가를 기다린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고 단어 및 영어 회화 복습을 시작했다. 결국, 전날 저녁에 아침 8시 학습 모임에 대한 글을 지웠다. 신청자도 없었을뿐더러 거기에 박힌 비추천 4개가 가슴에 박혔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비추천을 별로 개의치 않았었는데, 모든 것을 다 준비하고 오로지 열심히 공부만 해달라는 글에도 비추천이 박히는 것을 보고 미움받는다는 느낌이 들어 서글퍼졌고 연이어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댓글이 아니라 단순히 비추임에도 이러한데 악플은 어떠할까?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다시는 이곳에서 생산적이고 좋은 것들을 이들과 함께하지 않으리라!' '그따위 자선과 선행은 무의미하다.' 비추천과 글 삭제 이후 찾아온 허탈감과 적의는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켰다.
성실하고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인간에 대한 신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로부터 긍정적이며 생산적인 에너지를 전달받는다. 영어 모임 가운데 가장 열심히 참여하는 성규님을 보면 그러하다. 박사과정으로 일과 학교를 병행하면서도 충실히 영어 공부를 해오며 참여가 어려울 때는 꼭 미안한 감정을 담아 연락을 주시는 모습을 보면 나 역시도 모임의 진행자로서 그들보다 열심히 준비할 마음을 먹게 된다. 그래서 이 모임은 나의 경제적 상태나 영어 실력 향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나의 자존감이나 인간에 대한 신뢰에도 영향을 준다.
모임이 끝나고 간만에 일중이와 수지, 성영 부부를 만났다. 야구장에 중계가 있던 차에 점심이나 먹자고 온 것인데 뜻밖의 소식을 들어 즐거웠다. 하나는 지혜와의 결혼 날짜를 잡았고 내게 축가를 요청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영의 형이며 내 친구이기도 한 정영이가 연애 중이라는 것이다. 역시 사람은 일을 해야 연애도 한다. 일중이가 밥을 산 터라 내가 커피를 사고 싶어 커피숍에 갔다. 어제는 수지, 성영 부부로부터 소고기, 오늘은 일중이로부터 타이 요리를 얻어먹어 미안함이 더 커졌다. 한쪽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받게 되는 혜택은 먼 사이에서는 부담감을, 가까운 사이에선 미안함을 느끼게 한다.
친구들을 보내고 커피숍에 남아 일기를 썼다. 5시가 거의 다 돼서야 글을 마무리하고 책을 보았다. ‘과학은 토론을 통해서 성립된다.’라는 하이젠베르크의 말에 독서 토론 모임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적인 독서' 모임을 또 만들어 볼까? '다시는 이들과 모임을 꾸리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이 채 몇 시간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려면 나 역시도 이 학교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추천이 달리는 곳일지라도, 이곳에서 사실 모집을 하는 게 더 익숙하고 편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일을 어설프게 하는듯한 다른 친구에게 다른 부분을 먼저 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기계 돌아가는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라도 큰 소리로 말한 것이지만, 내 감정이 한 톨도 섞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 고함을 지르는 놀란 영진이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오늘따라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돌아오는 길 위에서 오늘 '나는 왜 이렇게 민감할까? 평소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걸, 왜 이렇게 민감하고 신경질적인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고립감이 아닐까 하는 결론을 내렸다. 아무렇지 않게 불렀던, 소중하다 싶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났다. 특히 올해는 그중에, 내 주변에서 큰 부분이 더는 연락하기조차 어렵게 되었다. 싸워서 그렇게 된 것이라면, 혹은 정말 슬픈 일로부터 그렇게 된 거라면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기쁘고, 축하해줘야 할 일로 떠나버린 것이라 나는 그것으로 된 거라 스스로 자위했다. 그게 정말 아무렇지 않을 거라 자신했는데, 그렇지 않았나 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모든 모임을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독서 모임도, 캘리그래피 모임도…. 생각해 보면 과거 독서 모임을 더는 가지 않더라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모임에서 이해관계나 학습 목적을 떠나 마음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혹은 모임 밖에 다른 정서적 교류를 할 수 있던 다른 친구들이 있었던 것이겠지. 지금은 내 마음을 지켜줄 만한 따뜻한 것이 아무것도 없거나 있어도 약한 불씨로만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인간의 날카롭고 차가움만을 보게 되고 나 역시 그런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 마음을 지켜줄 공동체가 사라지자, 마음을 데워준 따스한 것들은 모조리 꺼져가고 투쟁만이 남은 차가운 세상만을 투영하고 있던 것이다. 내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나 가운데 가장 추운 곳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공격적인 나! 이 녀석이 내 육체를 지배할까 두렵다.
‘세상은 따뜻하며 아직 살 만하다.’라고 몇 번이나 되뇌었다. 그리고 어느 시절, 문득 오래전에 잊고 지냈던 한마디 말이 다시 떠올랐다.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나는 믿는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을. 그리고 메마른 내 마음의 토지 위에 단비를 뿌려줄, 그리하여 다시 어여쁜 꽃이 흐드러지게 필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