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관한 생각 / 오언주의와 랭커스터 교육방식

나의 일상 여행기. (12)

by Chris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식단이 이제 제법 익숙해졌다. 모든 것을 갈아 먹는 방식의 좋은점은 무엇보다 먹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맛도 나쁘지 않고 건강한 식단이라는 점도 마음에 든다. 먹는 낙이라고들 하는데, 그걸 느낀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물론 뭐든 가리지 않고 맛있게 잘 먹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행복감을 느껴본 적은 별로 없다. 오히려 누구랑 먹느냐가 더 중요할 뿐이었다. 이렇게 먹는 것의 단점은 갈아먹으면 배가 빨리 꺼진다는 것뿐이었다. 아무래도 중간에 간식으로 계란 정도나 견과류를 섭취해주면 좋을 것 같다.

오전에는 영어 단어 학습을 하고 모임을 진행했다. 영어 단어 실력을 높여야 하는 데 어느 시간을 할애할까 고민이 들었다. 영어 학습은 크게 원서 읽기를 위한 단어, 영어 회화 패턴 연습, 유튜브 청취 정도였다. 영어 패턴을 달달 외우는 것처럼 단어와 청취를 공부해야 하나 시간을 할애하기가 쉽지는 않다. 오전 중에 저 모든 것을 끝낼 방안을 고려해봐야겠다.

오후에도 마찬가지로 양배추, 아보카도, 블루베리, 양파 반쪽, 호두, 아몬드, 닭가슴살, 구운 계란, 두유를 갈아 만든 셰이크를 먹었다. 식사를 하고 시간 여유가 있는 듯하여 침대에 누워 좀 쉬다가 3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차라리 쉬어도 나와서 쉬는 게 좋겠다 싶었다. 혹은 오후에 나를 묶어줄 별도의 모임을 만들든가 해야 할 듯하다.

3시가 되어 IT 카페를 가니 시험 기간이 다가와서인지 자리가 없었다. 방향을 돌려 학교에 있는 월천 라운지로 향했다. 그때부터 앉아서 일기를 5시가 될 때까지 썼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글을 쓰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일 약간의 시간을 들여 쓴 글들이 이제는 제법 분량이 된다. 나중에 별도로 수정해서 정리해둘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오래전에 글쓰기 모임을 계획한 적이 있는데, 지금의 이 방식은 조금만 수정하면 글쓰기 테크닉을 길러줄 수 있는 굉장히 좋은 방식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개요를 짜고 쓰는 방식은 아니지만, 하루의 일과를 시간의 순서와 의식의 흐름대로 쓰게 됨에 따라 자기와 결부된 다양한 사건과 그 의미를 추적하게 되니 나름 괜찮은 방식이었다. 이는 개요를 짤 정형화된 방식으로 넘어가기 이전에 소재를 발견하거나 생각의 확장을 꾀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앞서 말한 게 글쓰기 테크닉에 대한 생각이라면 습관화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려해 봤는데 바로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개설하는 것이었다. 오프라인 모임도 좋지만, 우선은 매일 모이기 어려울 테니 온라인으로 매일 글을 쓰고 인증을 받는 것은 꾸준한 글쓰기 연습에 좋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글쓰기 도구에 대해 생각도 했는데, 바로 펜이나 자판이 아닌 휴대폰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어느 한 노 작가는 컴퓨터로 작업하는 작가들이 겪는 문제 중 하나는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글을 쓴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글이 먼저 나간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어떤 한 실험에서는 작가들에게 한 손으로만 타자를 치도록 했더니 더 좋은 성과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지금처럼 휴대폰으로 글을 쓰는 것이 한 손 자판 치기와 같은 효과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일기를 쓰던 와중에 소비자원 분쟁조정위원회 조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상대 측에서는 자재비, 배송비 포함 180만 원이고 그것을 빼면 100만 원이라, 제품 가격에서 10만 원을 뺀 90만 원만 돌려주겠다 했다고 전했다. 조사관과 지난번 통화 후 제품 가격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 같아 아버지께 물어보니 배송비도 당신이 냈고 오로지 제품 가격만 180만 원으로 알고 구매했다고 했다. 중간에서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 차라리 조사관이 당사자인 아버지랑 직접 통화를 해보는 게 좋을 거 같아 아버지 번호를 알려드리고 잠시 후에 나는 따로 아버지와 통화했다.

들은 바로는 아버지는 기계 외 받은 것이라곤 장갑 하나와 같은 한 포대의 자재였다. 그들이 말한 제품 가격을 제외한다고 해도 해당 부자재의 가격이 90만 원 되는 셈이었다. 또한, 아버지는 기계만 구매한다고 의사를 표시했다고 하니 이것은 부자재의 강매나 다를 바 없었다.

아버지는 소비자원 담당자에게 자신이 구매 당시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구매한 실수도 있으니 180만 원에서 130만 원에 합의하겠다고 말했다. 아버지 뜻이 그러하면 그렇게 하시라고 말하고 대신 배송료는 그쪽 부담으로 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저 부당함을, 사회의 부조리함을 인정하는 꼴이지 않은가?

글을 어느 정도 쓰고 나서는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마저 읽었다. 이 책도 거의 다 봐서 이제 몇 페이지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긴 호흡이 필요한 책은 아니지만, 발췌하고 생각하고 그 아래에 발췌 부분을 각색한 나만의 소설을 쓰느라 읽는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이런 과정이 지루하거나 힘들기는커녕 너무 재미있었고 소설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도록 했다.

독서를 하며 그 내용 중에 흥미로웠던 점은 그가 신실한 가톨릭 신자였음에도 그의 다른 책인 ‘깊은 강’에서도 드러난 종교에 관한 일종의 범신론적 관점에 대해서였다. 그 종교적 관념을 높이 존중하나, ‘기독교 인들은 이것 또한 기독교로 여기고 이 저자의 관점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가 주장하는 기독교는 오히려 불교적인 냄새마저 나는 기독교였기 때문이다.

저자의 주제 의식에는 신은 다양한 형태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범죄자나 배교자에게도) 존재한다고 여긴다. 이런 사상은 현재까지 내려온 기독교의 틀에는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나 상상에 의해, 시대의 요구로 만들어진 그 형식과 틀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뀔 필요가 있다고 본다.

수학적 언어 혹은 과학 언어로 서술되지 않았거나 틀렸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달을 가리키지 않아도 달은 존재하며, 우리의 감각기관에 닿지 않아도 달은 존재한다.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 만들어지고 규정된 것이 그 실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실제 표상은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 과학의 시대에 종교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면 감각 인상과 관념을 통해 만들어진 대상의 주관적 실재성을 수정해야 한다. 그래야 객관적 실재를 다루는 과학과 결합하여 모순 없는 진정한 길을 걸을 수 있다.

바로 이웃 나라임에도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퍼지고 일본은 그렇지 않게 된 차이를 비교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 권력과의 결탁으로 발생한 차이 말고도 문화적 차이나 관념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토론해보면 마찬가지로 재밌을 것 같았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영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어 단어 학습과 방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중고등학교 때 영향을 미친 국어 선생님과 중학교 시절 수학 과목에 대한 교수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인생에 영향을 끼친 선생님이 두 분 계시는데, 다 국어 선생님이었다. 이들로 말미암아 내가 지금의 길을 선택했을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분은 자유로운 영혼의 젊은 기간제 여교사였고 다른 한 분은 시인이었다. 이들의 교육 방식은 지금 보면 전인교육 방식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시험과 학습 위주의 교수법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도록 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가르쳤다.

나는 수학도 비교적 잘했다. 내가 중학교 때까지 수학을 잘했던 까닭 중 하나는 그 범위가 넓지 않기도 하지만 또 다른 교수법 때문이었던 것 같다. 수학 선생님은 한 반의 인원을 6개의 그룹으로 묶고 각 자리에 1등부터 6등까지의 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시험이나 테스트를 통해 각 그룹의 1등과 꼴찌를 각 배치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각각의 그룹은 연대책임이 있어서 1, 2등은 다른 이들을 가르쳐야만 했다. 그리고 이에 따라 만들어진 그룹 중 성적이 좋은 그룹은 상을 주고 나쁜 그룹은 벌이 따랐다. 그뿐만 아니라 그룹 구성원들도 역시 각각의 성적에 따라 별도의 상과 벌이 존재했다.

이런 시스템에서 나는 비교적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다. 한 그룹을 거의 매번 담당했기 때문에 꼴찌를 책임졌고 그를 가르치려면 어떻게든 쉽게 전달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방식 덕분에 어려운 개념을 쉽게 전달하는 방식을 배운 것 같다.

일전에 '리처드 오언' 전기를 보았을 때, 국어와 수학의 두 방식이 ‘오언주의 교육방식’과 ‘랭커스터 교육방식’과 유사하다고 느꼈다. 오언주의 교육은 루소의 ‘에밀’이나 독일의 ‘발도르프’와 같은 전인 교육방식이다. 반면, 수학은 산업 혁명 시기에 유행했던, ‘랭커스터’ 방식과 유사했다. 이 교수법은 일종의 조교 제도로 성적이 상위인 사람이 하위의 사람을 가르치는 제도이다. 이런 교육 방식을 통해 교사에 대한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으며 교사로서도 교육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경쟁을 심화하고 인격과 도덕성을 갖춘 인간을 양성하기보다는 엘리트 교육, 비용 절감 등에 초점을 맞춘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여하튼 둘 다 내게는 효과가 있었던 교육 방식이었다. 더군다나 바뀌지 않는 수능체제와 달리 교육법에 대하여 고민한다고 느껴지지 않는 다른 선생에 비하면 학습 효과 차원에서는 분명히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자리를 배치하고 연대책임을 지게 하며 집단 내에서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상황은 어릴 때부터 권력의 욕구와 엘리트와 비 엘리트의 간격과 계급을 느끼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공부 못하는 애들이 열심히 하면 되지 않느냐?” 라고 누군가 물을 수도 있다. 참고로 나는 아주 어쩌다 2등으로 내려가 본 적은 있어도 거의 1등을 빼앗기지 않았다. 그건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5, 6등이 1, 2등이 되기란 그 집단 안에서 별 따기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일상 언어를 통해 배울 수 있고 음미하는 것으로 학습할 수 있는 국어와 달리 수학은 수학적 언어 형식을 배우고 연습문제 풀이를 통해 익혀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어 선생님이 가르친 방식으로 수학을 가르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더군다나 현재의 경쟁 체제 교육 시스템에서는 수학교육에서만큼은 수학 선생의 방식이 최선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 내포된 사고방식을 생각해보면 조금은 섬뜩한 감정마저 든다.

국어든 수학이든 내겐 두 분 다 좋은 선생님이었다. 어쩌면 이들 모두가 경험을 통해 최선의 교육법을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궁금한 점은 어쩌면 그들로 하여금 최선이라고 여길지도 모르는 교육 방법이 ‘교사 개개인의 특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앞서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혹은 과목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일까?’ 하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각각의 방식이 ‘단일 과목이 아닌 교육 전체의 패러다임이 되었다면 어떤 인간이 만들어졌을까? 또한, 현재의 성과주의 교육 시스템에서 무엇이 더 좋은 성적(?)을 거두었을까?’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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