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상 여행기. (14)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아침 8시 넘어서 일어났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첫 버스를 탈까 하다가 대용이도 오늘 오토바이 라이딩을 하러 간다기에 일찍 가도 별 소용없을 것 같아 침대에서 빈둥대다가 9시 30분 고속버스를 탔다. 언제부터인지 익산행 버스에 안산 경유지가 생겨 30분 이상 시간이 늘어났다. 그래서 요즘에는 장안까지 간 다음, 거기서 버스를 갈아타는 편이다. 고향집이 익산과 연무대 사이인지라 이러면 연무대로 갈아탈 수도 있어서 시간 절약도 할 수 있고 여러 차를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짐.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휴게소에서는 꽃놀이하러 차를 끌고 온 사람들이 많았다. 내려가는 동안 전날 일기를 휴대폰으로 작성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길 위에서조차 마치 의무처럼 할 것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버스 위에서는 요즘은 보통 잠을 청하는데, 오늘은 그 시간에 이렇게 글을 남기는 것이다.
지난번에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기약이 있는 기다림은 나에게는 즐거움이며 버스 위에서의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이리저리 갈아타서 목적지까지 바쁘게 가는 것보다 될 수 있으면 갈아타지 않고 목적지까지 편하게 갈 수 있다면 그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기차보다 고속버스를 선호하는 까닭 중의 하나는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반면에 버스가 싫을 때는 바로 오늘과 같은 때이기도 하다. 기차처럼 비교적 명확한 도착 시각이 있다기보다 차가 밀리면 시간이 상당히 지연될 수 있다는 점이다. 3시간 안팎이면 도착할 것을 거의 5시간가량 걸려 도착했다. 집에서 출발하여 고향까지 도착한 시간을 고려하면 6시간 이상을 버린 것이다. 그래도 마음의 여유가 있던 것은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했기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잘못된 선택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버스를 타고 내려오는데 어느 노인 한 분이 버스 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듣다 보니 상당히 짜증스러울 법한 내용이었지만 비교적 친절하게 답해주고 응답해 주신다. 기사분도 나이가 좀 있으시던데, 문득 그가 저리 응대하는 건 ‘자신의, 어쩌면 허망하게 돌아가셨을지도 모르는 아버지를 떠올려 그렇게 하는 것일까?’ 하는 상상을 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저 어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여 그러는 것일까? 혹은 그저 후에 고객이 별도로 클레임을 걸게 될 것이 귀찮아서 그러는 것일까?’ 여하튼 노인분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말을 걸고 훈수를 두며 때로는 목소리를 높여 통화했다.
우리는 나이 많은 어른에 대한 예의와 공공장소나 타인에 대해 행하는 예의나, 통칭해서 '예의'라는 말로 칭하고 있다. 그로 인해 둘을 같은 '예의'의 범주에 둠에 따라,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예의를 보여야 하고 그들은 예의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흔히 에티켓이라고 하는 것이 "어르신"이기 때문에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는 것인가? 이 사회가 나이 든 어르신에게, 지금껏 노력하여 사회를 일궈온 사회 구성원으로서 그 자체로도 존경과 예를 보여야 한다고는 생각하나, 다른 이를 존중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기가 존중받기를 바라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권위는 타인의 존경과 존중에서 비롯되어야 하며, 그것은 그 사람의 권력과 무관하게 그 사람의 과거 말과 행동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생겨나야 한다. 스스로 권위적이기를 바라기보다 타인의 자발성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권위만이 긍정적이며 나머지는 그렇지 않다. 존경을 강요하는 권위만큼 추한 것도 없다.
버스에 내리기 전 집에 연락해보니 아버지는 금산에서 일하고 계시고 어머니는 주말인데도 일을 하러 가셨다. 뭐, 따로 연락하고서 내려간 것은 아닌지라 크게 개의치 않았다. 적당히 기다렸다가 버스 타고 들어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때마침 동생도 논산에 도착하여 동생 친구 차를 얻어 타고 집에까지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집에 잘 안 가게 되는 까닭을 이야기하자면 바로 이러한 일 때문이다. 집에 일찍 가도 다들 일을 하시기 때문에 반겨 주는 이가 없을 때가 잦고 그나마 주말인지라 낮에 친한 친구인 대용이를 보는데, 그가 일하거나 오늘처럼 다른 일정이 있으면 그마저도 안된다. 더군다나 집까지 들어가는 길이 멀고 버스도 별로 없어서 예전 같았으면 짜증 날 수도 있다.
여하튼 요즘의 나는 다음 일정의 차질이 있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상황만 아니라면 기다리거나 걷는 게 익숙하다. 책을 보거나 이렇게 글을 남길 수 있는 기기만 있으면 된다. 이는 휴대폰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그마저도 없다면 생각이라도 하면 된다. 묘지명에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 나는 자유다.’라고 새긴 니코스 카잔차키스처럼 나 역시 그렇다.
물론 나는 휴대용 기기도 필요하고 함께 대화를 나눌 누군가도 필요하며 때로는 그것들과 지적인 무언가를 나누고 싶어 하지만, 그런데도 길 위에 있다가 보면 이따금 아무것도 없어도 내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자유로움을 느낀다. 그때만큼은 무엇도 필요 없이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고 다른 건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 그것으로 좋다.
집에 돌아와서 계속 잤다. 고향 집은 마법의 공간이다. 충분히 잠을 잤어도 집에 오면 다른 일을 제쳐놓고 종일 잠을 자게 된다. 이것이 고향을 자주 내려오기 꺼리게 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인천의 내 방과 마찬가지로 나의 게으름에 관한 치부를 그대로 볼 수 있는 곳이다. 문제는 고향 집에서는 자는 일 말고 다른 일을 하도록 자극하는 것이 없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저녁에는 대용이가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얼굴을 보니 예전보다 밝아진 듯하다. 아마도 즐길 수 있는 오토바이를 얻었기 때문이겠지 싶었다. 오토바이를 사고 나서 아주 신나서 여기저기 라이딩하러 다니는 중이다.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다가도 인생의 낙을 얻은듯한 모습을 보면, 잘 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용의 뒤에 앉아 익산 시내로 향했다. 오토바이의 속도감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내가 쓴 게 앞이 가려지는 헬멧이 아니었기 때문에 속도감을 느껴보고자 앞으로 바라볼라치면 풍압으로 인해 얼굴 전체가 일그러졌다. '부앙!' 하는 가속의 느낌도 좋았다. 타다 보니 오래전 대용의 뒤에서 오토바이를 타던 적이 떠올랐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일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녀석은 나를 데리러 오고 데려다주곤 했다. 단지 기종만 바뀌었을 뿐이다.
'나는 무슨 복이 있기에 이런 친구를 뒀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당연시된듯한 이러한 그의 모습에 매번 미안함을 느낀다. 나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보답해야 할 텐데, 언제나 그게 잘 안된다. 미안하고 고맙다 친구야!
대용과 효성을 만나 저녁을 먹고 소화나 시킬 겸 근처 공원에서 산책했다. 주변에 테니스공이 있기에 그걸로 캐치볼을 했다. 남자들은 공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심심치 않게 놀 수 있다. 효성이는 오래간만에 보는 건데 중학교 시절에 함께 춤 연습을 했던 게 떠올랐다. 중학교 시절 학예회에서 보여주려고 매일 모여서 H.O.T 춤 연습을 함께했었다. 나, 대용, 효성, 그리고 다른 한 명과 함께 매일 저녁 우리 집 앞 공터에 모여 함께 췄었다. 참 재밌었던 시절이었는데, 한창 대용이와 친해지기 시작한 무렵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친해진 것은 아마 중학교 2학년 때, 내가 인근 독서실을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그때 독서실에 들어가기 전에 매일 비행기 게임을 함께 했었다. 그리고 당시 내가 컴퓨터 조립이나 최적화하는 것을 제법 잘했는데, 대용의 컴퓨터를 고쳐준다고 여러 번 그의 집으로 다니다가 가까워진 인연이 지금까지 온 것이다.
수많은 친구 중 앞으로도 계속 연락할 친구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다. 가까운 미래에 돈을 번다면 가족 외에 제일 보답하고 싶은 친구이며 그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내게 중요한 일을 제치고서라도 달려갈 친구이다. 진짜 그렇게 될지는 앞으로의 일이겠지만, 그를 볼 때마다 매번 이 소중함을 잊지 말자고 다짐한다. 이렇게 커버린 우리지만, 아직도 우리는 20년 전의 우리와 같다. 나는 이들과 함께일 땐, 그때와 다를 바 없는 애들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