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오래간만에 고향 집에서 마음 편하게 일어났다. 집에 있으면 이토록 나태해지는 까닭은 평소와는 다르게 그날의 할 일을 따로 생각해도 되지 않거니와 먹을 것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아침에 일어나 점심을 무엇을 누구와 먹을까도 고민이 된다. 물론 사소한 고민이지만, 이마저도 때로는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혼자 다이어트식으로 뚝딱 해결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음식을 즐긴다는 기쁨을 찾을 수는 없다. 집에서는 고민하지 않고서도 그것이 가능하다. 가정을 꾸리는 일은 어쩌면 모든 이들이 떠나가도 내 옆에서 밥을 함께하며 말 한마디에 미소 지어 줄 사람이 필요하기에 만드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가정이 지옥인 사람도 있겠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어머니가 김밥을 싸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분식점이 없긴 하나 조금만 나가도 1,500원에 한 줄을 손쉽게 살 수 있는 김밥을 새벽부터 싸고 있길래,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사실 먹으면서도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져 고마웠다. 문득, 소풍을 하러 갔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소풍 때만 되면 어머니는 오늘처럼 새벽같이 일어나 김밥을 만드셨다. 그때는 김밥 전문점도 없어서 김밥은 소풍 때나 한번 먹어보던 음식이었다. 동네 근교의 산으로 소풍하러 가서 점심때 도시락을 열어보면 차갑게 식은 김밥이 그때는 어찌나 그렇게 맛있던지…. 그때의 어머니는 지금의 어머니와 같다. 다만, 그 어여쁜 시절을 지나 우리 어머니도 이제 환갑이네. 아버지한테 시집와 고생, 고생만 하던 우리 어머니! 크면 고생 안 시켜 드리겠다던 약속 지키지도 못하고 매일 내 걱정한다고 새벽잠도 못 이루시네. 네가 어머니를, 아버지를 생각하면 잠이 오느냐?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하여 사는 것인가?
쟁반 위에 하나 가득한 김밥을 두며, 어머니는 “너만 잘살면 된다.”라고 말한다. 우리 걱정하지 말고 우리 아들만 잘살면 된다고, 엄마가 우리 아들한테 아무것도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새벽부터 만들어 놓은 찬거리를 몰래 가방에 넣어두고 쟁반에 담긴 김밥을 하나라도 먹이려고 억지로 입에 넣는 어머니. 집에 돌아와 잘 열지도 않는 냉장고에 짓이겨 넣을 것을 아시면서도 그렇게 어머니는 매번 무언가를 가방에 넣으신다. 그리고 나는 못 이기는 척 그 가방을 들고 올라가는 차편에 몸을 싣는다.
올라가기 전 아버지는 전날 미처 다 끝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했다. 석재 일을 하시는 아버지는 묘비 일도 함께하신다. 어제 맡은 일은 17년 된 묘를 이장하는 일이었다. 보통은 기존의 묘를 파고 거의 남지 않았을 시체의 뼈들을 추슬러 화장하고 가묘를 만드는 일이었다. 대체로 17년이 된 시체는 흙과 같이 된다. 단단한 뼈 일부만 남아있거나 그것마저도 남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관을 여는 순간 17년 된 시체가 살까지 붙어 있는 상태로 미라처럼 고스란히 누워 있었다. 사람들은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된 까닭을 아버지께 물으니 안에 물이 고여 있었다고 했다. 보통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물이 빠지라고 오동나무 관의 밑을 빼고 묻는데, 이 묘는 관 전체를 다 가둬둔 상태에서 물이 내부로 들어가 그대로 고여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살은 썩어 풍화작용을 거친 것이 아니라 공기가 잘 통하지 않는 무덤의 관 속에서 물에 불어 그대로 있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와 동료는 이 일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며 이 정도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장의사를 불러 화장터에서 따로 화장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화장터에서 화장하려면 열흘 이상이나 기다려야 했다. 무덤을 다 파헤쳐놓은 상황에서 열흘을 기다리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이에 묘 주인의 아들들은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아버지와 주변 어른들께 물어보았다. 아버지의 동료분은 이를 해결하려면 일단 커터 칼로 미라가 된 시체의 살을 다 발라내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 아들은 그 말을 듣고 이미 달아난 상태이고 그 집의 둘째 아들이 남아서 직접 커터 칼로 시체의 살을 발라내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간 동료가 그 시체의 뼈를 추슬러 화장작업을 진행했다. 17년 된 시체가 멀쩡히 있는 것을 아들들이 봤을 때 어땠을까? 아버지를 살을 칼로 발라냈을 때 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것을 보고 집안에 그간 있던 많은 불행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런 시체와 살을 발라내는 둘째 아들, 도망을 친 첫째 아들을 보며 아버지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옛날 사람들이 이런 일을 겪었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버지는 무슨 생각으로 이 이야기를 나에게 했고 나는 왜 보지도 않은 둘째 아들의 얼굴이 자꾸 어른거릴까? 이 이야기는 참 재밌는 소재였다. 꼭 훗날 소설에 쓰고 싶은 이야기라 생각했다.
문득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이 생각나, 열차를 타고 올라가는 길에 다시 전자책으로 읽어보았다. 류노스케의 '라쇼몽'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와는 다른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영화는 단지 소재만 가져왔고 그의 다른 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죄악을 그리는 지점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라쇼몽'이 떠오른 까닭은 어쩌면 그 ‘미라가 된 아버지를 통해 그 자식들이 자신들의 죄악을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말하자면, 이승에서 눈을 감지 못하고 썩지 않은 시체에 부여되는 이상한 감정과 죄의식 때문은 아니었을까? 분명히, 미신인 줄 알면서도, ‘아버지는 왜 저렇게 이승을 떠나지 못했을까?’ 하는 비통한 감정이 거기 모인 이들의 마음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과학의 시대 임에도 좋은 묏자리를 쓰고 뼈도 제대로 남지 않은 조상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까닭이 바로 우리가 가진 문화적 미신에서 연유한다. 그리고 그 관습은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이 관습에서 부정적이라고 할 법한 것이 그들에게 일어난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녀들에게는 실로 말할 수 없는 죄의식이 자리 잡지 않았을까?
기차를 타고 올라오며 못다 한 일기를 쓰고 있는데 지체 장애가 있어 보이는 한 남성이 옆자리에 앉아 계속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어디까지 가요? 여기가 어디예요?" 이런저런 물음에 친절하게 응답해주다가 이내 휴대폰에 집중했다. 뭔가 더 이야기하기를 원하는 것 같았으나, 딱히 할 말도 없어 그저 질문이 있으면 단답형으로만 간단하게만 말하고 계속 내 일을 했다.
잠시 후 다른 한 사람이 와서 이 자리가 자기 자리라고 하여 자신의 표를 잠시 물끄러미 보더니, 자리를 비켜주고 자신의 자리를 찾으러 떠났다. 그러나 한 10분 정도가 지났음에도 아직도 그는 자기 자리를 못 찾고 계속 객실 앞쪽 주변에 서서 서성거렸다. 나는 일어서서 확인해줄까 하다가 그가 객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알아서 찾겠지.’ 싶어서 다시 그냥 일기에 집중했다. 잠시 뒤에 승무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멀리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나는 그에게 저기 지체장애인 듯한 사람이 밖으로 나갔는데 표를 본듯한데 자기 자리를 잘 못 찾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그 생각을 말할까 생각했을 때에는 그는 이미 내 옆을 스쳐 지나가 버렸다. ‘그는 자기 자리를 찾아 잘 앉았을까? 그가 목적지까지 잘 찾아갔을까?’ 계속 머릿속에 잔상처럼 남았다.
그가 떠난 문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혹시 그가 다시 자기 자리를 찾으러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가 앉든 그렇지 않든 기차는 그를 목적지까지 안내할 것이다. 제자리에 앉아 있는 나 역시 내 목적지까지 제시간에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나 역시 다시 내 일에 집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