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마음을 둘 곳이 없으니 아침에 일어나는 게 쉽지만은 않다. 깨어나도 그저 누워서 멍을 때리거나 휴대폰을 본다. 간신히 오전의 할 일이 있어 일어난다. 역시 사람이 사람다워지려면 혹은 사람이라 느끼려면 할 일이 필요하다. 할 일이 없다면 그저 길가에 오늘이나 어제나 혹은 그제나 계속 그 자리에 있는 바위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무생물이나 죽은 뒤의 육신이라 다를 바 무엇이 있는가? 우리는 언제나 살아 있음을 느끼고자 발버둥 친다.
강한 생명력은 움직임에서 온다. 손발의 움직임, 심장의 움직임, 눈빛의 움직임! 신경계를 타고 외부로 전달되는 강렬한 움직임이 살아 있음을 느끼도록 한다. 그 움직임은 질서가 있으며 그 질서 속에서 생명은 살아 숨 쉰다. 나의 모든 것들은 무질서를 향해 가고 있다. 질서 있는 것들이 파괴되고 내 영혼이 거하는 집은 무질서함으로 모든 것이 널브러져 있다. 그곳에서 간신히 잠을 청하고 눈을 뜬다. 눈을 뜨면 방바닥에 제일 먼저 보이는 어지러운 감정과 무질서의 실체화된 증거들이 다시 일어날 의지를 가로막는다.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그래서 무섭다. 우리의 심리마저 무질서로 만들고 이윽고 절망 상태로 빠뜨리기 때문이다.
사랑이 강한 까닭은 그러한 절망 상태에도 믿고 의지할 타인이 있어 생의 의지를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이런 카오스적 공간에 홀로 머물러 있어도 나를 이곳에서 빠져나가 질서 있는 그 사람의 공간으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 카오스적이면 그것은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가학적-피가학적 사랑의 형태는 기형화 된 사랑이다. 물론 그것도 사랑이지만 일반적 의미의 사랑이라 할 수 없다.
아침에 일어나 질서가 무너진 방안을 보며 문득 외로움과 허망함을 느낀다. 나는 몸을 일으켜 간신히 밖으로 향한다.
밖으로 향하기 전 간단히 아침을 먹고 영어 모임으로 갔다. 요즘 시험 기간에 모집하는 시기를 놓쳐 인원 충원이 제대로 안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다른 한 명과 모임을 함께했다. '차라리 과외를 하는 게 낫거나 이 시간에 다른 공부를 할까?' 하다가도 무엇 때문인지 그 결정을 쉽게 바꾸지 못한다. 어쩌면 ‘내가 존재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공간이기에 그런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人間)이라는 한자어에서 '人'은 서 있는 사람 둘을 받치고 있음을 의미하고 '間'은 관계를 의미한다고 했다. 사람 사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생각해보면 사람 사이가 존재할 수 있는 공간, 공동체 또는 크게 보면 사회를 기반으로 인간이 성립된다는 말이다. 물리적 또는 추상적 의미에서의 공간이 둘 사이 이상에서 성립해야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필시 타인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존중받고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것이 공간에 자신이 있어야 하는 의미이다. 이 영어 모임은 그런 공간 가운데 내게 몇 개 남지 않은 공간이다. 나는 이곳에서 존중받고 내 의미를 찾는다. 홀로 잔인할 정도로 고독하고 격하게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이런 공간이 있어야 한다.
오후에는 지난번 아버지의 180만 원짜리 중고 물품 구매 관련하여 분쟁조정위원회로부터 상대측이 조정 의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연락이 왔다. 해당 업체에 행정 조치를 가하려면 공정위에 다시 신고를 해야 하고 돈을 돌려받으려면 법률구조공단에서 상담을 받고 소송을 진행하라고 안내를 받았다. 우선 환불 불인정과는 별개로 조정 과정 중에 알게 된 기계 외 소재 부품들에 대해 강매 사실에 대한 증거 확보 목적으로 해당 업체 측에 전화했다. 그쪽에서는 아버지가 먼저 요청했다고 주장하나 아버지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 요구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받고 통화 시에 관련 소재 품(작업에 필요한 재료)을 함께 보냈다기에 서비스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해당 업체와의 환불 조정 진행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그쪽에서는 순수 기계값과 재료비 및 배송비를 포함하여 180만 원이었다고 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전화통화를 하면서 재료비와 배송비를 빼고 환불을 진행하라고 하니 그것도 불가하다고 했다.
아버지와 일전에 통화했을 때에는 서비스로 받은 것이 고작 장갑 하나, 소재 한 포대였는데 그쪽에서는 두 포대 각 12만 원. 장갑 1만 원이라고 주장했다. 말도 안 되는 말에 기가 찼지만, 일단 증거 확보를 위하여 계속 통화했다.
이 사람은 통화를 하면서 나더러 젊은 사람이 그렇게 살지 말라고 했다. 강매까지 한 사람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누가 누구더러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하는지 어이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사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살지 말라니? 법대로 하라 했으니 어디 끝까지 한번 가봅시다!’ 어차피 한 번쯤은 공부 삼아 해당 부분에 대한 법률적 지식과 전반적인 과정을 알고 싶었는데, 잘 된 것 같았다. 잘 배워서 나중에 우리 가격 파괴 분식점 이모님들 법률적 문제를 도와줄 때 다시 써먹을 수도 있을 것 같은 기회라 생각했다.
진행하면서 느끼는 것은 돈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과 그 과정이 지지부진하여 사람의 진을 뺀다는 점이었다. 상담 한번 받고자 전화를 하면 10분 이상 기다리는 것은 다반사였다. 그나마 나는 시간이 비교적 자유롭기에 가능한 일이지 일이 있는 사람이 소송까지 진행하는 것은 만사를 제쳐놓고 해야 할 일인 듯했다. 더군다나 공정위나 소비자원은 분쟁 조정이나 행정 조치를 위한 곳이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해당 부분은 별도의 소송을 걸어 해결해야만 했다. 내가 하려는 일도 두 쪽 모두였다.
전자상거래 분쟁 조정위를 통해 해결하려고 했지만, 그쪽에서는 거부 의사를 밝혔고 나는 그에 걸맞은 법률 불이행에 따른 행정 조치 및 민사 소송을 함께 진행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이 다소 힘들더라도 한번 끝까지 가보자고 생각했다. ‘아버지께 악성 재고를 넘긴 것도 모자라 7일 이내 환불 요청에도 불응하고 나아가 소재까지 끼워 팔았다? 에라이!’ 속으로는 욕이 절로 나왔다.
이 일로 종일 신경이 쓰다가 다른 일이 손에 안 잡혀 코인 노래방에 갔다. 딱 500원만 가져가서 노래를 부르고 오는데, 마치 어린 시절 아버지가 출근하기 전에 딱 500원만 주던 그때가 떠올랐다. 아니, 300원이었던가?
아버지가 택시 운전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어머니를 졸래졸래 따라와 아버지한테 잘 다녀오라고 애교를 피우면서 내심 하루 용돈 받기를 기대했던 그때가 내가 기억나는 가장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다. 그때의 기억…. 그리고 그때를 생각하면 이후 생각하고 싶지 않은 다른 기억들이 연이어 떠올랐다…. 좋았던 시절에 이어 슬펐던, 그리고 일찍 철이 들 수밖에 없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아이가 얼마나 아빠가 보고 싶었을까? 그리고 엄마는 얼마나 눈물로 하루를 지새웠을까? 아빠가 그리워 동산 꼭대기 위에서 엄마, 아빠 돌아올 날만 기다리던 그때가 무척이나 생각난다. 꾸불꾸불한 길 위로 버스가 먼지를 날리며 들어오고 있고 그 앞으로는 포도밭과 벼를 자르고 밑동만 남은 빈 논이 있네! 멀리는 기찻길로 기차가 지나고 붉은 석양이 내가 있는 동산의 모종을 비춘다. 혼자서 아무도 없는 집을 지키는 것이 싫어 나는 혼자서 그 동산을 매일 올라갔고, 내일은 올 거라 믿으며 다시 집으로 내려갔다. 아이는 참을성이 강했고 태양은 뜨고 지고를 반복했으며, 외로움을 이겨내는 방법을 깨우치고 있었다. 그러나 아빠 등에 매달려 온갖 애교를 피우던 아이는 그 등이 그리울 때면 석양이 있는 동산에 올라가 마을 어귀를 바라보며 아빠를 닮은 따스한 석양의 온기를 느꼈다. 아주 오래된 기억이나 이제 육십도 훌쩍 넘은 아빠를 볼 때도 간혹 그때가 떠오른다. 아빠의 등은 그때나 지금이나 따스하며 나는 아빠를 사랑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길에 희찬과 함께 운동을 가르쳐줬던 후배를 만났다. 잘 참여하다가 한동안 빠지기에 운동을 계속 함께할지, 몸은 어떤지 물었다. 그럼에도, 별말이 없기에 웃으면서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하기 싫으면 나도 굳이 잡을 생각은 없었다.
감기 몸살로 한동안 고생한 희찬은 내일부터 다시 운동하겠다고 했다. 아직은 고정적인 날을 정해 하기보다는 이틀에 한 번꼴로 이들과 함께 운동을 했는데, 차라리 날을 고정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아니면 아침 운동을 이들을 데리고 다시 할까?
무엇이 되었건 간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사소한 비난에도 개의치 않고 좀 더 내 의지대로 뚝심 있게 밀고 나가야 할듯하다. 예전에 독서 모임을 만들고 운영하던 당시를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자신감의 일부가 내 지갑에서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과거에는 그래도 고정적인 수입을 나오는 곳이 있어서 자유롭게 애들과 교류를 하거나 친목을 위하여 돈을 쓰는 것을 개의치 않게 했는데, 일을 그만둔 이후에는 주머니 사정에 조금 더 신경을 쓰게 되고 나아가 심리적 불안정은 무언가에 대한 도전을 막기도 했다. 돈이 없는 사람이나 백수가 히키코모리가 되는 까닭을 이해할 것 같았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라. 모든 사람이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있지 않다는 것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타인의 조금 더 입장을 헤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적되는 경험 중에 타인의 입장이었던 자신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고 그 덕분에 전보다 폭넓은 시야를 확보하게 된다는 것이겠지. 혹은 나이를 먹고 나면, 그 많던 이들이 떠나가고, 이제는 마음을 나눌 사람이 별로 없어 스스로 자기 마음을 나눠 보는 것이겠지. 그러면서 다른 이들이 되어 보는 것이겠지.
그런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사람이. 그런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는 말에 떳떳하게 나는 내 인생을 값지게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나는 어떻게 사는 것일까? 나는, 언제 올지 모를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연민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괜찮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