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우직하게 나아가는 일상.

나의 일상 여행기. (17)

by Chris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마지막 남은 아보카도를 털어 넣고 믹서기를 돌렸다. 처음에는 이상한 맛이라고 생각했는데, 먹다 보니 은근히 손이 가는 맛이다. 저녁에 마트에 들러 더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나와 스터디룸으로 향했다. 아침 영어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이 없어서 집에서 해도 되지만, 집에서는 아마 안 할 게 뻔한지라 아무도 오지 않을 그곳으로 갔다. 근래에 스터디를 안 하니 마음이 해이해졌다. 오전 영어 모임이 굳이 필요할까 싶다가도 그 모임을 잘 이끌고자 하는 책임감에 또한 열심히 공부를 하니 있는 게 다행이라 여기게 된다.

모임이 있고 내가 거기서 감투를 쓰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나는 모범이 되고자 노력한다. 나는 이 공동체로부터 단순히 돈을 얻고자 있는 게 아니라, 공동체를 통해 나를 지탱할 수 있는 정체성을 얻는 것이다. 과거 아침 운동모임을 통해서 하루 시작의 기준을 얻고 매일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며 모범이 되는 나를 만드는 것처럼 이 영어 모임 역시 나에게는 그러한 의미가 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어떤 것을 할 시간은 자동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그 시간을 의식적으로 확보하려는 노력을 통해 주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경우에는 어떠한 ‘리추얼’이 필요하다. ‘반복적으로 행하는 의식’이라는 이 의미는 내 경우 공동체를 만들고 그 시간을 나태로 도망칠 수 없게 시간을 가둬두는 데에서 시작한다. 시간은 흘러가는 물과 같은 것이라 그렇게 구분을 짓고 충분히 가둬둬야, 튼튼한 벼를 키울 수 있다.

다만, 그런 공동체에 의지하다 보니 개인 혼자서 무언가를 하면 그만큼 효율이 나지 않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실제로 그러한지는 객관적으로 측정을 해봐야겠지만, 느낌상으로는 과거보다 더 혼자 있는 공간에서 집중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 같다.

매일 일상의 기록을 하는 까닭 중 하나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 있었다. 나와 글만이 존재하는 세계에서는 비교적 집중이 잘 되었다. 자판 속도가 좀 더 빠르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비교적 만족하는 편이다. 더구나 아주 좋은 점은 시간의 흐름 순대로 기록하고 있으나 쓰는 도중에 의식의 흐름에 따라 언제든 자유롭게 글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손은 제2의 두뇌’라고 했던 칸트의 말처럼 손, 엄밀히 말하면 엄지손가락이 제2의 두뇌로서 두뇌의 생각을 바로 말로 전달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만족스러웠다. 자세를 바로잡고 컴퓨터에 앉아 특정 시간을 정해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글을 자유롭게 남기는 것을 꿈꿔왔는데 그것이 이뤄진 것이다. 글을 쓰기 전에는 얼마나 많은 생각이 그저 강물처럼 흘러가 버렸던가.

어제의 일기를 완성하고 다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단어를 예습하고 전날의 패턴을 테스트하고 나서 그날 분량의 방송을 들었다. 이 일도 2년 가까이했지만,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다. 기억력이 좀 더 좋았으면 좋겠다. 또한, 외운 거라고 해도 꾸준히 복습해야 함을 절실히 느낀다. 하긴 노래도 다 암기했어도 꾸준히 불러봐야 느는 건데, 한 번 두 번 외웠다고 그게 노래처럼 흥얼거리기를 바란다면 그게 바로 욕심일 것이다.

아무래도 길 위에서 그전 일주일치 패턴을 복습하고 지난달 복습 못 했던 것들을 꾸준히 차례로 봐야겠다.

자체 모임이 끝나고 점심을 먹으려고 오랜만에 가격파괴 분식점으로 향했다. 손님이 아직 많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가 들어오고 많은 사람이 뒤이어 들어왔다. 이모 혼자 하기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인 것 같아, 홀 서빙을 도왔다. 밀리는 시간대에는 단 한 사람만으로 식당을 관리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상태였다. 테이블이 6개인데 포장 손님도 있고 김밥 외에도 다양한 음식을 판매하는 분식집이라 메뉴도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었다. 문득 백종원이 이곳에 왔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싶었다. 서빙을 하면서 보니 어떤 테이블은 근 20~30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백종원 솔루션은 메뉴 가짓수를 줄이라고 했겠지. 음식 조리, 서빙, 설거지, 계산까지 다 해내는 이모를 보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이번에 법적인 지식과 더불어 분쟁과 소송까지의 과정을 철저히 알고자 하는 까닭도 바로 이것이 내 아빠를 돕는 것과 동시에 앞으로 이 이모가 사장과 분쟁을 겪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온갖 불법과 탈세를 저지르는 이 식당의 사장에게 온당한 법 집행이 뭔지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근 30-40분가량을 도와주고 2시 넘어서야 식당을 나와 집에 잠시 들르고서, 곧바로 월천 라운지로 향했다. 조금은 쌀쌀하지만 비교적 넓은 공간이 있어 IT 카페보다 편한 듯싶었다. 한쪽에 앉아 부분과 전체를 보았다. 책을 본지 잠시 지나지 않아 창문 밖에서 강한 바람을 동반한 비가 내렸다. 날씨라 흐려 집을 나설 때 우산을 가져갈까 하다가 귀찮아져 우산을 안 가져온 게 조금은 아쉬웠다. 상황을 보니 비가 계속 내릴 것 같아 비가 조금만 떨어진다고 느껴질 때 얼른 집으로 뛰어갔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그 많던 우산들은 다 어딘가에 버려두고 마지막 남은 우산은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두고 온 것이 떠올랐다. 낙심하고 있다가 혹시 몰라 침대 밑을 찾아보니 예전에 친구 이사할 때 안 쓴다고 해서 가져온 새 우산 하나를 발견했다.

고작 해야 2,000원, 3,000원 정도이나 요즘에는 이런 거 하나하나에 돈 쓰는 것 자체가 아깝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문득 작년까지 살던 집에 두고 왔던 아이스 트레이가 생각났다. 이런 것들은 가격은 저렴하나 사기는 싫고 없으면 아쉬운 것들이었다.

정작 비싼 것들 혹은 술을 마시거나 한턱낼 때는 1천 원, 2천 원 따위는 아깝게 생각지 않던 것들도 이러한 사소한 것들을 구매할 때에는 참으로 아쉽게 생각하게 된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살 때도 그랬다. 어떻게든 싸게 사려고 최저가를 검색하고 거기에 쿠폰까지 하는데, 그래 봐야 몇백, 몇천 원 저렴할 뿐이었다. 예전에는 이러한 최저가를 찾으려고 한두 시간을 소모하기도 했다. 그 자체가 게임 같아 재미있기도 했으나, 그 행태 자체만 보면 시간 낭비였다.

저녁에는 오래간만에 파이썬을 보았다. 근래 너무 안 본 나머지 앞부분이 기억이 안 나 차근차근 기억을 더듬어 학습했다. 그러나 1시간도 채 하지 못하고 지겨운 생각이 들어 다시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를 보았다.

과학 진보에 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게 있었는데, 그의 생각의 많은 부분은 '과학 혁명의 구조'에 나오는 토머스 쿤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 같았다. 특히 정밀과학의 특징으로서 설명하는 엄정성과 그 자체가 공리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 더불어 과학 진보가 연속성을 가지는 게 아니라 불연속적이라는 대답은 쿤의 책을 떠올리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이 책의 다양한 토론들은 그 하나하나마다 이후 다른 과학자들이 두꺼운 책으로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부분을 보면 토머스 쿤이 생각나고, 닐스 보어가 말하는 ‘상보성의 원리’ 를 보면 프리초프 카프라의 책이나 칼 융의 ‘분석 심리학’ 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독일 과학자로서의 변명(?)을 보면 ‘아이히만의 변명’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한 장, 한 장이 쉽게 넘어가는 책은 아니다.

반면, 그런 책이라 부분 부분마다 과학계뿐 아니라 우리의 지성사에 하나의 거대한 담론을 엿볼 수 있으며 책 전체는 한 인간과 그 주변을 둘러싼 입자 물리학의 발전을 볼 수 있다. 그러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책이란 말인가?

또 하나 재밌는 것 중 하나는 입자 물리학의 특이성이라 할 수 있는 불확실성은 그가 과학의 특징을 주장할 때 언급한 ‘정밀과학으로서의 엄정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관측자와 측정수단이 달라질 때 그 측정값도 달라진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들이 얼마나 놀랐을까? 또한, 그게 수학적 공리에서 절대 틀린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꽤 당황했을지 상상하면, 어설픈 미소마저 지어진다.

아인슈타인이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라고 했을 때는 바로 이러한 양자역학의 이상 현상을 두고 이야기한 것이다. 고전 물리학이 추구하던 정밀과학으로서의 엄정성이 와르르 무너진 일대 대사건이었다. 객관적 실체가 아닌 관찰자의 주관이 반영되기 된다니!

이러한 견해는 동양적 사고관으로는 서양보다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선과 악, 천사와 악마, 존재와 무, 1과 0으로 구분 짓는 서양의 사고관, 특히 엄정성이 원칙이었던 고전 물리학에서는 더욱더 그러했을 것이다.

9시가 넘어도 비가 계속 내려 아르바이트는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고 갔다. 비가 내려도 우산을 쓰고 휴대폰으로 길 위에서 영어 공부를 할까 했지만, 도저히 그럴만한 비가 아니었다. 버스를 타니 회화를 큰 소리를 내어 읽지를 못해 너무 아쉬웠다.

하루 중 길 위의 시간만큼 소중한 시간도 없다. 모든 시간이 이처럼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는 없는가? 혹 다른 시간도 이처럼 길 위에서 하면 어떨까? 때로는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결과적으로 보면 효율적일 수 있음을 이 길을 통해 깨닫는다. 그것은 생각이 아니라 실행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시간이나 노력이 더 효율적일 수 있으나 다른 유혹이 많다면, 시간과 노력은 많이 드나 다른 유혹이 없는 일을 택하는 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때로는 우직하다 싶은 것들이 좀 더 멋진 결과를 만든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언제나 갈망하는 것이며 현재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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