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 맬서스 「인구론」의 사상적 토대

나의 일상 여행기. (18)

by Chris
그림: '사랑하는 이들의 회오리',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827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오래간만에 목표한 시간에 깨어났다. 아무래도 전날 알람을 맞추고 베개를 주먹으로 치며 주문을 외운 게 도움이 된 듯하다. 예전에는 아침을 깨우도록 매일 아침에 캡슐 커피를 내리는 의식적인 활동, 즉 나만의 '리추얼'을 가지고 있었다. 그 활동을 기준으로 식단을 먹고 7시 운동을 하고 9시 스터디를 가는 일상을 반복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리추얼이 되는 첫 단추가 없어서 그런지 하루의 기상 시간이 조금은 들쭉날쭉하다. 다시 뭔가 하루를 시작하는 단추를 만들어야겠다.

잠에서 깨어나 휴대폰을 보니 용철 씨로부터 점심 먹자는 연락이 왔다. 면접비를 받았다고 자기가 점심을 사겠다고 했다. 알겠다고는 했지만 보낸 시간을 보니 새벽 2시가 넘어서 보낸 문자라, 아마 아직 자고 있을 것 같아, 다음에 먹어도 되니까 깨면 연락 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씻고 다시 돌아와 보니 상윤이한테도 마찬가지로 밥 먹자는 왔다. 용철 씨가 저번처럼 늦게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아, 가능하면 이따 다시 연락해준다고 했다.

집에서 나와 어제 비 때문에 길 위에서 복습하지 못한 영어 공부를 하고 ‘오전 영어 모임’ 학습 인원 충원 글을 학교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임은 6명 이상은 참여해 줘야 원활한 모임이 되는 것 같은데 현재 평균 참여 인원이 3명에서 4명 정도였다. 그저 ‘내 공부만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에 홍보에 크게 신경을 안 쓰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참여하는 다른 분들을 위해서라도 홍보 채널을 확대해야 할까 고민이 들었다. 내 경제적 사정을 고려하는 것은 둘째치고 아무래도 회화 프로그램이다 보니 안정적인 인원이 확보되어야 학습하는 사람들에게도 좀 더 좋기 때문이었다.

학교의 스터디룸이 모두 다 예약되어 있어 오늘도 어쩔 수 없이 도서관의 스터디룸에서 모임을 진행했다. 도서관으로 들어오면서 도서관 100선이 생각났다. 도서관 100선은 도서관의 얼굴임에도 대학생의 수준에 맞지 않게 대충 건성으로 선정된 것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는 둘째 치고서라도 적어도 학생들이 제대로 된 번역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내 눈으로 볼 때 이 또한 엉망이었다.

현재 게재된 100선은 좋은 번역이 된 책들이 전시되어 있기보다 그저 추천된 책의 이름만 보고 출판사나 번역에 대한 고려 없이 무작위적으로 선택된 것이었다. 또한, 절판본도 적지 않았음에도 재학생 중 누구 하나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듯 했다.

도서관 100선을 누가 선정했느냐는 둘째치고 번역본의 무작위적인 선정을 보면 그 일을 진행하기까지 얼마나 무성의하게 처리했는지를 알 수 있다.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 이런 부분이 나를 분노케 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사, 보이기 식의 행정이며 그 안은 속 빈 강정인 게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저런 번역을 선정도서라고 비치하다니!

한때 100선에 관한 올바른 번역본 리스트와 그 까닭을 적어 전달하고자 했으나 그때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중간에 혼자 작업을 하다가 접었었다. 아마 올해까지는 쭉 이 책의 리스트를 유지할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혼자서라도 마저 그 작업을 진행해볼까? 도서관의 문을 지나면 바로 비치된 100선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예전 같으면 이에 대해 하나하나 민원을 넣고 지적을 했겠지만, 졸업하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으로서는 그저 바라보고 지나칠 뿐이었다.

모임이 끝날 무렵, 용철 씨로부터 다행히 연락이 왔다. 1시에 만나기로 하고 모임이 끝나고 남는 시간 동안 다음날 학습 자료를 보내고 대한법률구조공단 홈페이지에서 환불 업체와 관련된 일에 관한 글을 작성했다. 글자 수 제한 탓에 공정위 쪽에 보낸 글을 축약하여 1,200자 내외로 줄여야 했다. 작성하다 보니 시간이 다 되어 급히 약속 시각을 10분 정도 더 연장하고 글 작성을 마무리했다.

다행히 늦지 않게 그를 만나 인도 음식 전문점으로 향했다. 남자 둘이서 커플 세트를 시켰다. 그는 며칠 전 면접을 봤는데,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압박 면접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주어진 알고리즘 문제를 푸는 것과 졸업 프로젝트로 했던 것의 확장 가능성에 대한 질의가 오갔다고 하는데 문제는 긴장한 나머지 못 풀고 확장 가능성에 대한 답변도 제대로 못 해서 아쉬웠다고 자꾸 자신을 책망했다.

“용철 씨는 그래도 수상 경력도 많고 경력이 괜찮잖아요?”라고 웃으면서 안심을 시켜줬다.

순간의 임기응변으로 면접을 잘 보고 어떤 경력도 없는 사람과 좋은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면접을 망친 사람 중에 난 어떤 사람을 뽑을까? 더군다나 단체상이 아닌 능력 있는 개인의 실력을 우선시하는 상을 아주 많은 사람이라면? 나라면 후자 쪽을 좀 더 고려할 것 같다. 물론 그 회사에 온 사람들이 용철 씨를 제외하고 다 경력이나 경험이 부족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가 점심을 산 터라, 때마침 BOGO 쿠폰이 있어 그를 데리고 스타벅스로 향했다.

다른 커피숍과 비교하면 서비스 면에서는 단언 건대 스타벅스가 좋았다. 오래 있어도 점장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좋으며 당당히 할인 등을 요구할 수 있었다. 장터 등지에서 저렴하게 파는 기프티콘이 늘 있어서 다른 커피숍보다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더군다나 학교 앞 스타벅스는 제조 공간인 1층 뿐 아니라 2층이 별도로 있다는 점에서도, 점원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그 하나하나가 고객의 관점이 반영된듯하고 그 점들이 커피숍을 다시 찾게 하는 요소였다. 물론 개선해야 할 점도 보이지만 이러한 점들은 전체의 장점에 비하면 작은 부분이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을까?’ 보다 ‘어떻게 이러한 고객의 욕구를 찾을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해당 서비스는 다른 곳에서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서비스를 하기까지 그러한 고객의 욕구를 미리 알아채는 것은 노하우의 영역이 아닐까? 자체의 경영 노하우로부터 비롯되었든 컨설팅을 받았든 간에 스타벅스의 생각이 곳곳에 반영된 점이 커피숍을 안 가던 내가 그곳을 자주 가게 한 요인임은 분명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다시 법률구조공단 홈페이지에 다시 접속했으나 인터넷 에러가 떴다. 혹시 몰라 용철 씨 노트북으로도 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해당 서버 쪽 문제라 판단하고 잠시 접고 단어 책을 꺼냈다. 연습문제까지 쭉 보니 억지로 외울 필요 없이 머릿속에 대략적인 단어의 의미들이 떠올랐다. 당분간 제일 먼저 치워야 할 일로 지금 보는 단어 책을 매일 한 챕터씩 보기로 마음먹었다.

원하는 분량까지 다 보고나서 다시 홈페이지를 접속하니 잘 되기에, 상담 신청을 완료했다. 그 정도 규모의 사이트가 저런 오류를 뿜어내다니, '관공서, 학교는 다 이런 식인가?' 하는 편견이 생길 것 같았다. 문득 칼 폴라니의 책, 「거대한 전환」에서 말하던 ,맬서스의 인구론의 사상적 토대가 생각났다.

맬서스가 살던 시대는 스피넘랜드 법이라는 제도의 실패로 빈민의 수가 엄청나게 증가하던 시기였다. 더구나 빈민이 자식을 낳으면 자식의 수에 따라 생활비의 보조가 이뤄지던 시대라, 빈민들은 더 많은 수의 자식을 낳았다. 이때를 전후하여 널리 쓰이기 시작한, 프롤레타리아라는 말이 등장했는데, 자식 말고 가진 게 없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었다. 영국은 이들로 말미암아 국가 전반의 문제가 팽배하게 대두되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바로 이 '산업혁명' 전후의 시대를 심도 있게 설명하며 맬서스는 자신이 살던 한두 세대의 흐름을 보고서, 지방 정부가 나서서 생활비를 보존해 줄 게 아니라, 이들이 자연스럽게 감소되게 - 심하게 말하면 자연의 약육강식에 따라 죽게 - 내버려 둬야 한다는 인구론의 차갑고 섬뜩한 토대를 만들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생각을 조금 확장하다 보면 인구론을 저술하게 된 사고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관공서의 서버가 이렇게 쉽게 터지거나 공무원들의 안이한 대응들로부터 느끼는 불쾌한 현재의 경험은 대중의 시각에서, '이렇게 문제가 있는 까닭은 이들이 어떤 경쟁을 하지 않아도 적당한 임금을 받고 있기 때문이며 이것을 해결하려면 철저하게 시장의 경쟁 체제처럼 이들도 성과 중심이나 경쟁 상태로 두어야 한다고 여기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어제자 일기마저 다 쓰고 나니 벌써 시간이 5시쯤 되었다. 그제야 ‘부분과 전체’를 꺼냈다. 닐스 보어가 언급한 부분에서 우리가 흔히 객관이라 부르는 것과 주관이라 부르는 것에 대하여 비판하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이 노 과학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온도계를 볼 때 특정 눈금을 보고서 그 온도가 객관적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저 통계적인 평균치를 보는 것이다. 그것이 원자 수준의 미세한 사이즈를 가지고 있다면 그 온도계를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측정치를 말하게 될 것이었다. 즉 우리는 온도에 대하여 그저 그 에너지에 관한 확률분포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온도계라고 하는 하나의 측정 수단을 통하여 관찰자가 관찰한 온도에 대한 확률분포, 통계적 평균치만 말할 수밖에 없다. 보어는 고전적 열 이론과 통계 역학적 열 이론에서 볼 수 있는 ‘객관과 주관의 상보적 관계’로 고전 물리학과 양자역학의 관계를 유추하나, 다른 과학자들, 특히 다른 유추 대상(뉴턴 역학, 맥스웰의 장 이론을 표상으로 하는)을 가지는 아인슈타인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개념이었을 거라며 저자는 말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길에는 희찬 씨에게 연락하여 시험기간인데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지 혹은 언제부터 다시 가능한지를 물어봤다. 시험 기간이라 공부할 시간을 뺏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 그렇게 한 것도 있으나, 행여 자신이 하지 않겠다 하는데 매번 물어보는 것도 우습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나 역시 그의 운동 계획에 점점 의존하게 되는 경향이 생겨서이기도 했다.

그에게 억지로 운동을 시키기보다 스스로 자진해서 운동하길 바랐다. 의존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가 작용해야만 앞으로도 내가 없어도 운동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시켜서 하는 게 된다면, 운동을 그만두고 나서는 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내가 그를 이끌어 운동을 시키는 것은 그를 아껴서이고 그에게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는 뉘앙스를 은연중에 보내는 것도 그 자신의 의지를 기대해서였다.

나는 그의 부모가 아닐뿐더러 그저 자신을 위해 쉴만한 물가를 만들 따름이었다. 그가 오는 것을 막지 않을 것이며 또한 그가 오지 않는 것을 떠밀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저 나는 나만의 샘을 성의를 다해 만들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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