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ris Dec 28. 2019

행동경제학의 '넛지'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 리처드 세일러(탈러)』리뷰.


과거 201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넛지'의 저자인 리처드 세일러(탈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행동 경제학이 인정을 받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과거 그의 책인 '넛지'에 대한 감동이 다시금 떠올랐기 때문이다. ‘넛지’를 읽을 당시에는 나는 대학 수업에서 '합리적 인간'의 전제와 수식으로 표현되는 경제학에 대해 끊임없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 미시와 거시라는 세상에서 나와 같은 인간과 그러한 인간이 모여 있는 집단의 경제 활동을 토대로 만들었음에도 그 전제가 '합리적 인간'이라는 사실은 납득할 수 없었으며, 수식에 존재하는 한정적 변수들 이외의 것들을 사소하게 치부하는 데에는 알 수 없는 반항심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주식 시장의 변동이나 경제 위기 등의 현상들을 제대로 예측하거나 막지 못한 경제학자들에 대해서 불신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경제학은 시험용이거나 경제 신문의 용어를 이해하기 위한 사전 지식일 뿐이었다. 물론 이기적 인간, 또는 합리적 인간에 대하여 애덤 스미스가 말한 '푸줏간과 빵집의 주인은 어떠한 이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판매한다.'라는 전제는 강력하며 유용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나 역시 그렇게 믿는다. 대체로는…. 더군다나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시장에서의 경제활동이 그가 단 한 번밖에 말하지 않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할 것이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따금 어떤 물건을 판매할 때 그 주인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시장에서 자신의 재화를 생산하고 판매하기도 하지만, 어떠한 심리적 이유로 하여금 그러한 욕망을 꺾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가령, 이 책에서 나온 택시 기사의 사례처럼, 날씨가 좋은 날에도 자신이 벌어야 하는 기준 선 이상의 돈을 벌 수 있음에도 그 기준에 도달하면 일을 빨리 종결짓고 오히려 날씨가 나쁜 날에는 택시를 타는 사람이 없더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더 오랫동안 일을 하는 것은 이익의 극대화라는 경제학의 측면에서 보면 비합리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인간의 심리라는 측면에서 보면 충분히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역시 공부를 하면서 공부가 잘되는 날에도 할당량을 채우고도 시간이 남을 경우, 추가적인 공부를 하는 것을 포기하고 공부가 안될 때에도 미련하게 끝까지 자리를 지켜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안의 만족감이라는 심리 상태와 관련된 것이며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다.


행동 경제학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심리 상태를 고려하는 경제학이다. 합리적 인간이라는 전제 위인간 집단의 경제 행위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이 가진, 기존에 사소한 변수로 치부하던 인간의 비합리성을 고려한다. 말하자면 경제학이라는 학문에 심리학이나 사회학, 생리학적 관점을 통섭하여 실제 인간의 경제 행위를 분석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기존의 시장에서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사소한 변수쯤으로 취급하던 인간의 비합리적, 비이성적 판단 행위를 포함하려는 노력을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에 비견한다면 과한 것일까? 1,000년 이상을 천동설의 세계관 속에서 살고 있던 시절에도 그 이론에 맞지 않던 것들을 사소한 것으로 취급하며 그것에 따라 다른 이론을 주장하던 이들을 이단시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포함하는 이론을 코페르니쿠스가 만들게 되었을 때,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을 더욱 확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어쩌면 21세기에 행동 경제학이 경제에 대한 우리의 인식 폭을 넓혀 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이유로 리처드 탈러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으며, 이러한 수상이 행동 경제학이 기존 경제학의 패러다임을 바꿔버릴 수 있는 요인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일종의 이정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동 경제학이 국내에 관심을 사게 된 것은 저자의 '넛지' 때문이기도 하나, 행동 경제학과 관련된 인물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것은 리처드 세일러가 처음은 아니다. 행동 경제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대니얼 카너먼이 이미 2002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사실, 경제학보다 심리학 분야에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이러한 까닭에 그의 책 곳곳에는 대니얼 카너먼과 그의 친구인 아모스 트버츠키의 이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책은 행동 경제학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시대적으로 구분하면서 그 안에 행동 경제학과 관련된 굵직굵직한 사건이나 지금의 행동 경제학의 핵심이 되는 논문을 쓰게 된 배경을 자세하게 기술하기 때문에 그의 스승이자 친구인 카너먼이 빠질 수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원제: Thinking of Slow and Fast)에도 리처드 탈러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경제학계에서 큰 비판 중 하나는 이러한 행동 경제학이 가정 경제 등을 다루는 미시적 경제학에는 어울릴지라도 국가 규모의 거시 경제, 즉 화폐 정책이나 재정 정책과 같은 거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에서도 비슷하게 언급하고 있다.) 저자 역시 그러한 점을 인정하고 있으나 점차 빅 데이터 기반의 실증적 데이터가 확보되는 한 행동 경제학이 이 분야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실 저자 행동 경제학자이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모든 경제학 분야의 학문들이 행동주의적 학문이 될 것으로 낙관하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전작인 '넛지'는 그 제목 자체가 '팔꿈치를 살짝 쿡 찌르다.'라는 말처럼 사소한 개선을 통해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키거나 그에 따른 비용을 절약한 사례들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반면, 이 책은 행동 경제학 자체가 어떠한 흐름을 통해 발전해 왔는지를 핵심적인 생각이 등장하게 된 사건 등을 기반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넛지라는 책이 소비자 행동 등에 초점을 두는 경영학, 마케팅에 가까운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면 이 책은 좀 더 행동 경제학적인 느낌이 든다. 이는 과학의 거대한 역사 가운데 물리학의 역사를 논할 때 특정 인물의 특정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하게 되는 것처럼, 경제학의 거대한 학문 속에서 행동 경제학이라는 소수 인물을 중심으로 완성되어온 행동 경제학의 지금까지의 역사를 사건을 중심으로 살펴보게 되는 느낌과 같다. 다만, 경제학 자체가 그 역사가 짧고 행동 경제학도 그 역사가 약 40~5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등장인물은 몇몇 안된다. 그래서 앞서 언급했던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에 좀 더 빗대어 보면 행동경제학이라는 학문은 마치 르네상스 시대, 지동설이 등장할 무렵의 물리학과 비슷하지 않을까?


책 자체의 수준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넛지'보다는 어렵게 좀 더 느껴지는 까닭은 행동 경제학의 기반이 되는 여러 심리학적 이론들이 함께 제시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넛지'도 뒷부분에 금융, 의료 보험 등의 공공 정책 부분의 사례에 들어서게 되면 약간의 지루함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앞장에는 경제학 책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게 남자 화장실 소변기에 붙어 있는 파리 스티커의 사례 등이 흥미롭게 제시되면서 넛지 개념(선택 설계)에 대해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다소 어렵지 않게 책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현재로선 행동 경제학의 교과서와 같은 책이기 때문에 아무리 지루하지 않게 책을 만들려는 저자의 노력과는 별개로 어렵게 느낄 수 있다. 이는 마치 아무리 쉬운 교과서라고 하더라도 문제를 풀기 위한 지식이나 공식을 공부해야만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기에 앞서 '넛지'나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먼저 읽기를 추천한다. 물론 추천한다고 해서 그 책의 두께가 얇다던가, 이 책의 입문서 개념이라던가 하기 때문은 아니다. 넛지의 경우,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매우 흥미로운 사례를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행동 경제학의 개념에 더 쉽게 접근하거나 혹은 경제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하다못해 자기 계발서로서도) 자신이나 주변에 적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의 책, '생각에 관한 생각' 경우 행동 경제학의 기반인 여러 심리학적 이론들에 대해서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리처드 탈러가 이 책에서 인간을 경제학적 인류 혹은 플라톤의 이데아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 같은 인류인 '이콘'과 실제 세계의 보편적 인류인 '인간'으로 구분을 지었듯이, 그의 책에서는 생각을 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구분을 지어 행동 경제학이 어떠한 심리적 원형을 바탕으로 하는지 보여준다. 이 때문에 이 책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이론들이 좀 더 알기 쉽고 자세히 설명된다.  


물론 이 두 책을 보지 않는다고 해서 이 책을 못 읽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저 두 책 역시 그 두께나 지식이 방대하기 때문에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원제: misbehaving)'을 보려고 호기롭게 저 두 책을 먼저 들었다가는 본론으로 가기도 전에 뻗을 수도 있다. 다만, 모든 책은 서로 간에 크건 작건 다른 책들과 생각을 공유하기 때문에 함께 추천하는 것이다. 특히 생각에 관한 생각은 앞서 말한 것처럼 행동 경제학에서 다루는 심리학을 다루며 그 저자나 이론이 책 전반에 두루 나오기 때문에 인내를 가지고 읽으면 분명히 이 책을 비롯하여 행동 경제학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견으로, 주류 경제학은 왜 합리적 인간인 '이콘¹'을 전제로 한 학문을 수립하였을까? 아마, 나는 그 까닭이 이 학문을 만든 이들이 지나치게 똑똑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말하자면, 그들은 이미 이성을 기반으로 한 과학적, 합리적 사고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다수 사람의 비이성적인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애덤 스미스는 '도덕 감정론'이라는 책을 통해 열정이나 공정한 방관자 사이의 갈등에 의해 인간의 행동과 태도가 결정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지만, 어쨌거나 최적 선택이라는 그의 생각과 그의 지적 후손들은 마치 자연이 그대로 두어도 그 순환을 자연스럽게 하듯, 시장이 그렇게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러한 시장에 뉴턴 물리학과 같은 어떠한 일정한 법칙이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어떤 법칙이 있을 수도 있다. 우주 형성의 기본 원리를 완벽하게 밝힐 이론을 아직 발견하지 않은 것처럼 이것도 그런 단계일 수도 있지 않을까?)


다른 까닭으로는 이러한 학문이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이콘화를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것이다. 학문은 어떠한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기도 하지만, 어떠한 실천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유교라는 학문이 개개인의 선천적인 선함의 이해를 바탕으로 그것을 개발하고 노력하는 것을 근간으로 두고 있지만, 그러한 유교적 인간인 '군자'의 완성을 위한 실천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듯 어쩌면 이러한 경제학을 교양이나 생활양식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사회에 합리적 인간관이 널리 자리 잡도록 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말하자면, 주류 경제학은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분석하여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인간’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행동 경제학이라는 학문이나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이에 대하여 관심이 있다면, 혹은 '넛지'라는 말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권하는 바이다.



1: 리처드 세일러는 넛지와 이 책에서 합리적 인간인 이콘(Econ)과 보통 사람인 휴먼(Human)을 구분하여 설명한다. 이콘은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ㆍ경제적 인간)에서 따온 말로 합리적 사고를 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휴먼은 감정에 쉽게 휘둘리며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존재, 사랑 그리고 고독에 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