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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Feb 08. 2020

주짓수, 처음으로 접하다.

나의 주짓수 도전기 2.

이 이야기는 이제 막 주짓수에 등록하고 운동을 시작한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기록을 시작한 까닭은 첫째, 내가 배운 지식과 기술에 대해 잊지 않기 위함이며 훗날 어느 정도 성장을 했을 때 나 자신을 뒤돌아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둘째, 나와 같은 초심자들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지식을 찾는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서이다. 마지막은 그 과정 중에 만나고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  

주짓수와 같이 시작한 이 이야기는 시작은 있지만, 언제 끝날지는 나 자신도 알지 못한다. 어떤 사정에 의해 도중에 수련을 그만둘 수도 있고 혹은 바쁜 나날이 이어져서 기록을 중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쓸 수 있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써보고자 한다. 이야기는 경험, 그 당시의 생각이나 느낌과 지금 시점에서의 생각, 그리고 그 당시에 배운 기술이나 알게 된 용어의 정리 등이 중심이 될 것이다. 참고로 주짓수에 관한 여러 기술과 관련된 용어는 간단히 정리하되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한 이들이나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해 될 수 있으면 출처를 기재할 것이니, 관심 있는 사람은 확인하기 바란다.

알다시피, 이야기의 힘은 세다. 이야기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사회를 바꾸기까지 한다. 내 글이 사회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릴지 모를 이 주짓수를 보면서 누군가 그 어떤 영감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다.


※ 참고로 글은 완성본이 아니므로, 틈틈이 수정될 수 있다.


 



가까웠던 사람이 주짓수를 한다.


통계에 의하면 남성의 경우 만 33세쯤이면, 사람들은 새 노래를 듣지 않는다고 한다.(여기선 이것이 진화적 문제인지 사회 문화에 기인한 문제인지를 다루지는 않겠다. 참고로 여성은 대중음악에 대한 관심이 만 13세부터 49세까지 이어졌다. 출처 : https://skynetandebert.com/2015/04/22/music-was-better-back-then-when-do-we-stop-keeping-up-with-popular-music/) 하지만, 비단 새 노래만 찾아 듣지 않을 뿐인가? 아마도 대부분 해왔던 일을 하게 되고 새로운 도전은 기피하게 될 것이다. 아마 그것 역시 통계는 없으나 30대 중반을 기점으로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 사람이 결혼하고 가정을 꾸릴 시기, 혹은 아이를 낳아 모든 인생의 중심이 아이에게 맞춰지는 시기, 혹은 누군가에게는 삶의 열정 따위는 점점 없어지고 직장 생활과 술 그리고 집이 전부인 시기일 것이다.

인간에게 의지라는 것은 에너지와 같은 것인데, 이러한 의지는 매번 일정하게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처럼 소모되는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직장 생활, 아이, 결혼 생활 등에서 나오는 스트레스, 선택의 복잡성, 젊음이라는 에너지의 감소 등이 맞물려 의지가 필요한 새로운 선택보다 보수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내 인생도 아마 그러한 시점에 들어서부터 전혀 새로운 시도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즐기는 것들도 기존에 하던 것을 중심으로 할 뿐이며, 나 자신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습관적인 선택이 거의 다수를 차지할 뿐이었다. 혹은 어쩌면 칼 융이 말했듯 자기실현의 시간으로써 요동치는 열정보다는 잠잠해지며 바로 서는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와중에 한 사람을 알게 된 것은 내게는 어쩌면 행운과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사람 덕분에 내가 주짓수에 등록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날 존중을 넘어 존경으로 바라볼 때, 나 역시 그러했다. 점점 삶에 무감각해지던 내게는 게츠비에 나오는 초록빛 등불 같은 존재였다.  

고귀하게 풀어내지 않고 말하자면, 나는 어쩌면 어린애 같은 마음으로 그 사람을 대했던 것 같다.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고 그러한 생각이 내 나름의 진지한 시도와 노력을 하도록 이끌었다. 내가 어떤 일에 열심히 하는 모습을 칭찬하면 그 일에 고무되었고 삶을 충실히 보내고 있다고 말해주면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다. 더욱이 현실에서 살짝 벗어나 있던 나에게 현실인식을 하게 만든 장본이기도 한데, 그로 말미암아 내가 하는 모든 일을 뒤돌아보며 가시적 성과를 내려는 방법을 궁리토록 하게 만들었다. 물론 나는 그 사람을 위대한 게츠비에 나오는 데이지와 같이 이상화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 사람을 통해 적어도 열정 가득했던 시기의 나를 문득 발견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정신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끼치던 사람이었기에 그 사람의 관심사가 궁금하기도 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주짓수였다. 그 사람이 주짓수를 한다는 사실은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주짓수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이미 본 바와 같이 그저 ‘나도 해보고 싶다.’라고 지나가는 투로 말한 정도였지 그 시기가 지나면 내 관심은 사그라졌다. 그만큼 일시적이었으며 오래전부터 해오던 말이었던, ‘나는 바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엔, 그 사람으로부터 단순히 자신이 주짓수를 하고 있다는 말만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계속적인 부추김이 있었고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픈 욕구가 있었다.

그 속에서 아마 내가 잊고 있었던 것, 무언가 내가 해보지 못한 것을 도전해 보려는 충동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잔잔하게 타고 있던 마음속의 숯불이 그 사람이라는 횃불에 닿자 점점 충동은 커졌다. 동경하던 것들, 부러워하던 것들을 손에 잡고 싶었다. 속마음 한편에 ‘나는 안돼.’라며 수많은 이유를 들어 심리적으로 거부하고 있던 것들이 점차 ‘할 수 있다.’로 바뀌고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쉽게 도전하기란 어려웠다. 그전까지 있던 심리적 장벽이 단번에 부서지기란 어려운 법이니까.  


주짓수 롤링(대련)을 직접 해보다.


“무슨 일 있어요? 얼굴이 왜 이렇게 우울해 보여요?”  

어느 날이었다. 함께 점심을 하고 나서도 그 사람은 무언가 우울해 보였다.  

그 사람은 그에 관해서 별말이 없었다. 일시적인 기분 탓인가 싶었지만, 속에는 말하지 못한 무엇인가가 있는듯했다. 눈앞에 있는 그 사람의 그 기분을 풀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성공한 게츠비가 아니었기에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일밖에 없었다. 점심 후 헬스장에 가려던 생각을 접고 그 사람에게 산책을 제안했다. 그 사람도 흔쾌하게 수락을 했고 우리는 캠퍼스로 들어갔다. 캠퍼스 초입에는 그 사람이 다니던 주짓수 동아리가 있었는데, 그곳에 이르자 생각이 난 듯 그 사람은 내게 동아리에 가서 운동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그 사람의 관심사가 궁금하기도 했거니와 주짓수도 점점 더 궁금해지던 차였기에 가려던 방향을 틀어 동아리 방으로 들어갔다. 방학 때라 동아리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조금은 황량해 보이는 매트와 약간의 운동기구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 사람이 건네준 주짓수 도복을 입고 매트에 섰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사람은 기본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가볍게 롤링(대련)을 시작했다. 힘을 세게 하면 다친다는 말을 평소에 동생에게서 들은 바 있기에, ‘세게 잡으면 위험하겠지?’라고 잠시 생각했지만, 그 생각도 정말 잠시였을 뿐, 어느새 나는 바닥에 깔려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롤링을 하기 전까지는 서로 부둥켜 있는 게 조금 부끄럽다는 생각도 하기도 했는데, 그것도 잠시일 뿐, 몇 번의 기술이 걸리자 이내 그런 생각 따위는 할 겨를 따위는 없었다. 바닥에 깔릴 때마다 오기가 생겼지만, 벗어나기 쉽지 않았다. 기술을 알고 있느냐 모르느냐는 정말 큰 차이였다. 몇 분간 계속 함께 대련을 하면서 혼자 하는 헬스에서 느끼지 못하는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배운 기술을 쓴다는 점이 내게는 정말 매력적이었는데, 마치 철권 같은 게임에서 커맨드 기술을 반드시 배워야만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으며, 단순히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뿐 아니라, 앞서 말한 바처럼 몸을 부딪치며 대련을 한다는 것은 혼자 운동할 때 느끼는 외로움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대화할 상대가 있었고 그 상대와 기술을 교류하고 몸을 부딪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셋째는 답답하기는 했으나 경기 중간에 아프지는 않다는 것이 좋았다. 타격을 중심으로 하는 격투기는 한 대 맞으면 아플 수밖에 없지만, 주짓수는 그런 타격으로부터 오는 아픔은 없었고 답답함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관절이 꺾이면 그저 탭을 치면 될 뿐이었다.  

대련을 마치고 나자 그 사람의 얼굴을 이내 밝아져 있었다. 갑작스러운 충동에 이끌려 주짓수를 하기는 했지만, 진짜 목적은 그 사람의 우울한 기분을 달래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한 것인데, 그런 얼굴을 보여주니 산책 대신에 대련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점이 정말 그날 운동에 대한 마지막 기억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 기쁘다.  

“배우면 정말 빨리 늘 것 같아요. 움직임이 빨라서 잘할 거 같아요.”

운동이 끝나자 그 사람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빈말로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한 탓에 부끄럽기만 할 뿐이었다. 물론 나름 최대한 힘을 빼고 한 까닭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은 그 사람과 처음 롤링을 했기 때문에 운동에 대한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만약 전혀 모르는 누군가와 대련을 했다면, 자존심에라도 힘 겨루기로 이기려고 했거나, 그로 인해 주짓수를 가볍게 보았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럼에도 졌다면, 그 사실에 불쾌해져서 하지 시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람과 대련을 하고 나자 졌어도 마음에 어떤 만족감이 차 올랐다. 무언가 격렬한 논쟁 이후 돌아오는 후회나 불쾌함 같은 기분이 아니라 존경하는 사람과의 토론 속에서 자신을 인정하고 백기를 들었을 때 느끼는 배움 같은 것이랄까?  

운동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계속 머릿속에 주짓수 운동에 대한 잔상이 남았다. 그립 방법에서부터 그 사람이 보여줬던 테크닉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암바, 삼각 조르기, 가드 방법, 이스케이프, 가드패스, 스파이더 가드 그리고 그 사람이 보여줬던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기술들…. 잘 알지도 못하고 어떻게 기술이 들어가야 할지도 몰랐지만, 어렴풋하게 그려지는 그 사람과 대련했던 인상들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렇게 처음으로 경험하고 나서 집에 들어가 주짓수를 검색했다. 유튜브에는 내가 당했던 기술부터 대련하는 영상까지 수많은 영상이 있었다. 복잡해 보이는 연결 동작과 한 기술에서 파생된 여러 변형 동작들을 아무리 봐도 눈으로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그 부드럽게 들어가는 그 기술들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였다.  


용어 정리

암바 - 팔꿈치 관절을 가동범위 이상으로 꺾어서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는 기술
삼각 조르기(트라이앵글 초크) -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 삼각형을 만들어 그 안에 상대방의 목을 조르는 기술
가드 - 상대방이 사이드 컨트롤이나 노스 사우스 컨트롤을 쓰지 못하도록 본인의 다리로 막는 것.
이스케이프 - 풀 마운트, 사이드 마운트/사이드 컨트롤, 스카프 홀드, 니 온 벨리, 백 마운트를 당했을 때 탈출하는 것.  
가드패스 - 가드 중인 상대가 스윕이나 서브미션을 걸기 전에 가드를 풀고 상대의 가드 밖으로 나와 유리한 포지션을 차지하는 것
스파이더 가드 - 1980년대 후반에 스포츠 주짓수(타격을 배제하고 상대가 도복을 입고 있는 상황에서 룰에 따라 진행되는 그래플링 시합)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가드. 그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양손의 소매 깃을 잡고, 양다리로 상대의 이두근을 밟아서 양손을 컨트롤하는 것.
 ※ 영어로 된 기타 전문 용어들은 다음에 안내할 예정임.


문학적인 이야기를 좀 보태서 그때의 마음을 들춰보면, 조금 과장해서 그 사람은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와 같은 존재였다고 생각한다. 이룰 것들을 충실히 이루고 이제는 열정보다 삶의 충실한 습관으로 여생을 살아가던 파우스트에게 메피스토펠레스는 젊음을 주고 전과는 다른 삶을 살도록 이끈다. 그땐 그 사람이 실로 그러했다. 내 젊음이 기울어가면서 열정이 점점 사그라지고 있을 때, 어린 시절 가지고 있던 신선한 충동을 주었고 가까이에 있어도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다.

뭐, 그렇다고 하여 운동을 바로 시작한 건 아니다. 그저 잠잠해지기를 바라는 이성과 지난 삶의 관성이 예외적인 것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간신히 붙들어 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약한 끈은 이내 다른 끈들과 함께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배운 운동

스파이더 가드에서 오모 플라타, 스파이더 가드 회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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