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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Feb 09. 2020

홀가분하게 도복을 입다.

나의 주짓수 도전기 3.

이 이야기는 이제 막 주짓수에 등록하고 운동을 시작한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기록을 시작한 까닭은 첫째, 내가 배운 지식과 기술에 대해 잊지 않기 위함이며 훗날 어느 정도 성장을 했을 때 나 자신을 뒤돌아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둘째, 나와 같은 초심자들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지식을 찾는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서이다. 마지막은 그 과정 중에 만나고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  

주짓수와 같이 시작한 이 이야기는 시작은 있지만, 언제 끝날지는 나 자신도 알지 못한다. 어떤 사정에 의해 도중에 수련을 그만둘 수도 있고 혹은 바쁜 나날이 이어져서 기록을 중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쓸 수 있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써보고자 한다. 이야기는 경험, 그 당시의 생각이나 느낌과 지금 시점에서의 생각, 그리고 그 당시에 배운 기술이나 알게 된 용어의 정리 등이 중심이 될 것이다. 참고로 주짓수에 관한 여러 기술과 관련된 용어는 간단히 정리하되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한 이들이나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해 될 수 있으면 출처를 기재할 것이니, 관심 있는 사람은 확인하기 바란다.

알다시피, 이야기의 힘은 세다. 이야기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사회를 바꾸기까지 한다. 내 글이 사회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릴지 모를 이 주짓수를 보면서 누군가 그 어떤 영감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다.


※ 참고로 글은 완성본이 아니므로, 틈틈이 수정될 수 있다.


 




불꽃을 정리하고 충동으로 시작하다.


실제 주짓수를 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더 지나서였다. 그 시작은 그 사람에 대한 내 마음을 표시하면서 비롯되었다. 그 사람 때문에 타오른 불꽃은 충동과 열정만은 아니었다. 그 충동의 불꽃 속에서는 다른 미묘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고 어느 순간 불순물이 섞여 있음을 알아보게 되었을 때, 당황스러웠다. 놔두면 분명히 커질 이 미묘한 감정을 확실히 하거나,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안 그러면 불꽃이 예전에 그러했듯, 불꽃이 잠잠해질 무렵에 극심한 공허함에 빠져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그 사람이 좋았다. 그러나 어떤 관계 진전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여러 이유로 내게는 그럴 자격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그 마음조차 전하지 못하면, 자기 마음의 통제 따위는 못하고 계속 힘들어할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꺼트리고 싶은 충동이 컸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이제는 날 멀리한다는 생각이 들자,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그 사람이 좋았지만, 그렇다고 게츠비가 되기는 싫었다. 나는 더는 웃음거리가 되는 게 두려워 마음을 숨기고 싶지도 않았을뿐더러, 그 사람에게 기대던 마음을 다시 바로 세워야 할 때라고 여겼다. 그러려면 그 사람이 거리를 두는 것 이상으로 나 역시 어느 정도는 그 사람과의 심리적인 거리를 확인해봐야 했다. 그 거리를 친구 정도로 원한다면 나는 그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려 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 사람은 멀리 떨어져 지내길 원했다. 한 번의 고백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의 인연을 묻어두기를 원하는 게 서운했다. 어떤 때에는 '그렇게 쉽게 쳐내버릴 관계였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생각을 존중했다. 아니, 내가 존중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달라질 건 없었다.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 다시 편하게 볼 수 있겠지. 그때의 난 지금보다 당당하고 성장한 사람이 되었으면, 뭔가 달라진 사람이 되었으면 싶다.

 

홀로서기


베르세르크라는 일본 만화가 있다. 주인공 커츠는 ‘매의 단’이라는 용병 부대의 단장인 그리피스에게 지고 나서 그와 함께 가장 가까운 동료가 된다. 언제까지 함께 할 줄 알았지만, 수많은 전쟁이 끝나고 매의 단이 새로운 곳에 정착할 무렵 그를 떠나 홀로서기를 한다. 그리피스는 그를 막고 서서 결투로 그를 얻었던 것처럼, 다시 결투를 신청한다. 주인공은 망설임 없이 결투를 받아들이고, 그를 이기고 나서 미련 없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길을 떠난다.

돌이켜 생각하면, 나는 그 만화의 주인공처럼 그 사람으로부터 홀로서야 될 때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 사람에게 미묘한 마음으로 기대고 있을 수는 없었으며, 그것을 나 또한 허용하기는 어려웠다. 더는 우물쭈물할 수 없었다. 결국, 언젠가는 멀어질 관계일 뿐이었음을, 그 끝을 제대로 맺지 못하면 그 주변에서 맴돌기만 할 뿐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러한 마음은 점점 갈망이 되고 그것이 어느 순간 나의 의식을 압도해버렸다. 그 사람이 절대 바라지 않았을, 마음을 털어놓은 행동은 특별한 상황을 만나 이뤄진 결과였다. 그 상황과 기회가 아니었다면 늘 그러했듯, 아마 마음은 가라앉고 평범한 관계로 계속 이어졌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 그렇게 내 마음을 털어놔 버리고 나서, 초반에는 홀가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좋은 친구라도 될걸.’ 하는 생각이 빈번하게 들었고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 사람으로부터 예상한 답변을 받았을 때, 미안함이 앞섰다. 나야 원래부터 혼자 지내던 시간이 익숙해서 사실 조금 참고 나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기계처럼 살아왔고 일상의 수많은 유익한 습관 속에서 나를 젖어들게 하면 그전처럼 안정을 유지할 것이었다.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이 좋은 까닭 중 하나는 감정을 묻어둘 줄 아는 것이었고 나 역시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갑자기 솟아오른 감정을 묻어두면 되었다. 물론 그 사람 역시 주변에 토닥거려 줄 좋은 사람이 많을테니, 이미 나를 기억의 심연에 묻어버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 사람을 향한 불꽃을 스스로 꺼뜨린 날, 나는 주짓수에 등록했다. 그 사람 덕분에 아직 남아 있던 불 같은 열정에 내 의지를 발휘하여 과감히 3개월 등록을 하고 도장을 방문했다. 그 등록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로서는 실로 크나큰 결단이었다. 그것은 마음의 홀로서기였다. 그렇게 만들어준 그 사람이 아무튼 고맙고 어디서 무엇을 하든 늘 건강하고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도복(Gi)을 입다.

 

첫날 옷을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준비한 옷이 없다기에 비치된 연습용 도복을 입었다. 익숙하게 걸쳐 입고 띠를 맸다. 문득 동아리 방에 우연히 방문하여 처음으로 그 사람과 주짓수라는 것을 하던 날, 그 사람이 옷을 입고 띠를 매는 법을 알려줬던 게 떠올랐다. 그리고 문득, 탈의실에서 바지를 거꾸로 입고 나왔던 게 생각나 웃음이 났다. 혁대를 맬 때 보이는 고리가 있는 부분이 마치 일반 바지의 허리춤에 있는 고리 같아서 거꾸로 입었다.  

"바지를 반대로 입었어요."

그 사람은 그것을 보더니 반대라고 이야기했고 끈은 묶고서 바지 안쪽으로 넣으라고 말했다. 그 사람이 알려준 대로 상의를 왼쪽 깃이 쪽으로 위치하게 입은 뒤에 깨끗한 흰 띠를 맸다. 띠 중앙을 잡아 배에 대고 한 바퀴를 돌려 뒤 중앙쯤에서 교차하게 한 뒤 다시 앞에서 양쪽의 길이가 일치하도록 정렬했다. 그리곤 오른쪽있는 띠가 위로 가게 두고서 그냥 묶으려고 했더니 그 사람은 띠가 안쪽까지 들어가 묶여야 단단하게 묶인다며 끈을 빼앗아 두 번 감아진 부분 안쪽으로, 아래에서 위로 휘감고서 위쪽으로 뺐다. 그리고는 단단하게 잡아당기고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위쪽 띠와 아래쪽 띠를 그대로 붙이되 위쪽 띠가 앞으로 향하게 두었다. 말하자면 양쪽의 띠를 뒤집지 않고 오른쪽에 있는 띠가 앞쪽을 향하게 두었다. 세배할 때 오른손 등이 올라가 있는 형태였다. 그다음 위쪽 띠를 감아 위로 통과시키면 되었다. 그러나 희미한 기억은 마지막 부분을 헷갈리게 하였고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띠 묶는 법의 강의를 듣고 나서야 제대로 맬 수 있었다.  

 

도복(Gi) 입는 법과 띠 매는 법.
 
1. 바지는 고리와 끝이 앞쪽에 있는 곳이 앞이다.  
2. 끈은 묶고 나서 롤링(대련) 시 거슬리지 않도록 바지 안쪽으로 넣는다.
3. 상의는 입었을 때 왼쪽 깃이 앞에 있도록 입는다.
4. 띠를 맬 때에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띠의 중앙을 잡아 배에 대고 한 바퀴를 돌려 뒤 중앙에서 꼬이지 않게 교차하고서 양쪽의 길이가 서로 일치하도록 정렬한다.
5. 오른손에 잡인 띠가 앞쪽으로 가게 두고 그 띠를 두 번 감아진 부분 안쪽으로, 아래에서 위로 잡아 뺀다.
6. 위쪽 오른편에 존재하는 띠와 아래쪽 왼편에 존재하는 띠 중에서 위쪽에 있는 띠를 앞에 교차시키지 않고 붙인 다음에 위쪽 띠를 아래에서 위로 통과시킨다. (세배할 때 오른손 등이 위로 향하도록 두는 것과 유사하다.)


창으로 비치는 흰 도복에 흰 띠를 입은 모습이 어색했다. 대학 주변의 도장이다 보니 대체로 학생이 많았고 흰띠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중에는 오른편 띠 끝에 여러 그랄이 붙어 있었다.

저 흰 줄이 그랄(Grau, stripe)이다. <그림 출처 : 위키백과 주짓수 항목>


그 사람은 그랄은 위의 띠에 있는 줄을 의미한다고 했다. 영어로는 'stripe'였다. 우리는 흔히 ‘그랄’이라고 발음하지만, 구글링과 유튜브 검색을 해보니 ‘Grau’였다. 브라질은 과거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포르투갈어 특유의 굴리는 발음 때문에 우리나라에 그랄로 익히 알려진 것이었다. 유튜브에서 ‘jiu jitsu grau’로 검색하면 브라질인들의 영상들 볼 수 있었다.  


유튜브에서 ‘jiu jitsu grau’로 검색해서 번역하니 확실히 Grau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글 번역기로 돌려보면 대략 이렇게 나오는데, degree를 나타내는 ˚를 사용하여 1˚, 2˚로 표시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grau [그라우]
남성형 명사 급. 등급. 정도. 도(度). [三角] 도(度). 차(次). 친등(親等). 촌(寸). 계(階). 급(級). (학교의) 점수. <출처: https://dict.naver.com/ptkodict/portuguese/#/search?query=grau>


정확한 발음과 뜻을 알고자 네이버 사전에서 포르투갈어로 검색하니 다음과 같이 나왔다. 발음이 궁금한 분은 링크를 통해 확인해보길 바란다. 우리가 얼핏 듣기에는 ‘그랄’처럼 들리긴 하니, 일상생활에서 그랄이라고 발음을 하더라도 크게 이상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gral' 이 아니라 'grau'임은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브라질 주짓수의 띠 체계는 꽤 흥미로웠다. 태권도처럼 한 달을 다니면 흰띠에서 바로 다른 띠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월과 상관없이 관장님이 인정하면 흔히 말하는 ‘그랄’을 하나씩 주 4개를 채우면, 그다음 벨트로 넘어가는 형태였다. 그러면 검은띠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일까 궁금하여 알아보니, 대한 주짓수회에서 2017년에 공표한 승급 규정에 따르면 다음과 같았다.


벨트 승급 규정
* 화이트벨트 ~ 블루벨트 / 최소 1년 6개월
* 블루벨트 ~ 퍼플벨트 / 최소 2년
* 퍼플벨트 ~ 브라운벨트 / 최소 2년
* 브라운벨트 ~ 블랙벨트 / 최소 2년
최소 승급기간은 총 7년 6개월이고, “일반인 평균 승급기간은 관례적으로 10년 이상”입니다.
1. 최소기간 승급은 일반인 가운데 ‘대규모 국내 대회의 연속 우승’이나 ‘무제한급(앱솔루트) 우승’의 경력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2. 타 종목 엘리트의 경우라도 최소 승급기간을 넘겨서는 안 됩니다. (화이트벨트는 제외)
3. 문디알, 팬암, 아부다비프로와 그에 준하는 수준의 브라질 현지 대회의 ‘성인부(어덜트)’ 부문에서 입상하는 경우, 최소 승급기간을 줄여서 승급이 가능합니다.
4. 대한주짓수회의 벨트 인증은 벨트를 수여한 스승의 서명과 대회 경력, 수련기간을 검토하여 인증하고, 허위사실로 인증받거나 승급 기준을 어긴 경우 제명 처리합니다.
5. 이 규정은 공표한 날로부터 적용하며. 공표일 이전에 획득한 벨트 레벨에 대해서 소급 적용하지 않습니다. 다만, 명확하게 단기속성 승급의 혐의가 있거나, 스스로 벨트를 바꾸는 등의 전력이 입증되는 자는 예외로 합니다.

2017년 10월 15일 대한주짓수회 중앙이사회 <출처 : RANK5(랭크5)(http://www.rank5.kr)>


만 16세 이하의 청소년의 경우 띠 체계가 좀 더 다변화 되어 있는데, 그 까닭이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renojiujitsu.com에서 설명하기로는 그 까닭이 첫째, 아이들은 결과 지향적이라기보다 보상지향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참을성이 어른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에 띠가 변화하는 것을 느끼면서 성취감을 한다는 설명이었다. 둘째로는 5세에서 15세 사이의 아이은 정신적, 감정적, 그리고 체력적으로도 다양성을 보이는데(더군다나 어른과 달리 학원처럼 매일 다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빨리 숙달된다.), 4개의 띠 체계로는 광범위한 특성에 걸쳐 숙달도를 분류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의 위치가 어디 쯤인지 좀 더 정확히 인식하기 위해서 세분화 한 것이 그들의 답변이었다. (출처: http://www.renojiujitsu.com/845/bjj-belt-ranks-kids-quick-lesson-guerrilla-bjj/

)이와 더불어 아마도 점점 더 많아지는 아이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대회를 할 때에도 세분화하여 아이의 등급에 따른 경기를 넓히려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주짓수의 저변 확대에는 성장기 아이들의 참여가 분명히 필요했는데, 그를 위한 한가지 전략으로 보아도 될 것 같았다.


출처: https://ibjjf.com/wp-content/uploads/2016/11/20150210_GraduationIBJJF_EN_vs2.pdf



참고로 검은 띠 이후의 붉은 띠는 주짓수 역사에 족적을 남긴 이들에게 수여되는 명예 띠이다. 이들은 그랜드마스터(Grandmaster) 라는 칭호로 불린다. 주짓수 계의 권위있는 선수 렌조와 호일러 그레이스는 이 붉은색 벨트를 두고 ’무도의 영향력과 명성을 가져다주는 예술적 정수’라고 표현한 바 있다고 한다.(출처 : https://www.bjjmagazine.co.kr/archives/733, 참고: https://mookas.com/news/16725)


꽤 엄격한 규정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또한 띠를 남발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여 꽤 마음에 들었다. 충분한 경험이 있는 자, 누구라도 인정할만한 사람에게 띠를 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글을 보면서 여러 번의 기회가 왔으면서 시도하지 못하고 이제야 늦게 운동을 시작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아마 주짓수에 대해서 처음으로 ‘해볼까?’ 고민하던 시기에 도전했더라면 아마 지금쯤이면 퍼플이나 브라운에 준하지 않았을까? 내 장점 중 하나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성실함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일들에서 내가 보여주었던 성실함을 주짓수에 쏟았더라면 분명히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한 아쉬움 때문인지 첫날부터 조금은 열심히 하도록 했다.

사실, 그러한 아쉬움이 아니었더라도 열심히 했을 텐데, 자신이 못하더라도 열심히 하는 것이 가르치는 사람에 대한 예의이며 내게 주어진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뿐 아니라, 잡생각, 슬픔을 줄여주는 데 온 힘을 다해 운동하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기본 숙지 사항


대체로 나는 사교성이 좋은 편이며 어떤 대화라도 잘 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우울함으로 온하여 그다지 말하고 싶지 않았고 그런 기분 상태에서 도장 안의 사람들과 살갑게 인사를 나누는 게 어색했다. 아마 안에 있는 사람은 낯가림이 심하거나 혹은 사교성이 꽝인 사람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관장님은 처음부터 내가 무리하는 것처럼 보였는지, 주짓수는 무리하면 다친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 이 정도 준비운동은 크로스핏이나 내가 하는 다른 운동에 비해서 수월한 편이었다. 그래도 여럿이 한 공간에서 운동하니 꽤 땀이 났는데, 안에 반소매를 받쳐 입은 게 다행이었다.

오기 전에 알아보니, 타인을 배려하고 뻣뻣한 도복에 쓸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래시가드를 착용한다고 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운동용 래시가드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이 있어서 상·하의를 두 벌씩 구매했다. 도장은 3개월 등록 시 이벤트로 등록비를 할인해주고 도복과 띠, 마우스피스를 준다고 해서 어차피 운동할 생각이었으니 그렇게 하기로 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거의 흰띠가 대부분이라 보통은 사범님이 이 체육관을 담당하고 관장님은 다른 도장과 왔다 갔다 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날은 사범님이 휴가라 관장님이 직접 지도를 하고 있었다.

주짓수 도복은 여러 색으로 발매되는 것 같았는데, 내가 본 적 있는 것은 흰색, 파랑, 검정이었다. 그밖에도 네이비, 분홍, 회색, 그린, 라일락, 아쿠아색 등의 다양한 색의 도복들이 출시되는 듯했다. 그러나 IBJJF에서 공인한 시합에 참가할 수 있는 도복의 색은 흰색, 표준 파랑, 검정으로 명시하고 있었다. <출처 : ">https://ibjjf.com/uniform/>

참고로 IBJJF는 국제 브라질리언 주짓수 연맹(International Brazilian Jiu-Jitsu Federation)의 약자로 세계에서 가장 큰 브라질리언 주짓수 단체라고 한다. 참고로 현재 우리나라에 전파된 주짓수의 계보를 살펴보니 ‘브라질리언 주짓수’와 ‘유러피언 주짓수’로 나뉘는 듯했고 관할 단체도 여럿 있는 듯했으나 별로 관심은 없었다. 또한, 대련 방식에 따라 주짓수 도복을 입고하는 기(Gi) 시합과 도복을 벗고 대련을 하는 노기(No gi) 둘로 나뉘었다. 보아하니 이 도장은 기Gi 전문 도장인 듯했다.  


이 도장의 운동은 30분 워밍업이나 드릴(drill), 30분 기술 시연 및 연습, 30분 롤링(rolling)이라는 것을 하는데, 초심자는 부상의 위험 때문에 한 달 이후부터 롤링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드릴’은 ‘반복 연습, 훈련’이라는 사전적 정의처럼 주짓수에서 사용하는 동작이나 기술이 익숙해지기 위해서 하는 반복 연습이었다. 검색해보니 새우 빼기와 같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연습을 솔로 드릴(solo drill)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롤링’은 스파링의 한 형태로 수강생들이 그들의 기술과 능력을 다른 팀 동료에게 테스트하는 것이라고 한다. (“Rolling,” as we call it, is a form of “sparring” and is a way for students to test their skills and abilities against their teammates. https://evolve-mma.com/blog/the-ultimate-guide-to-rolling-in-bjj/) 내가 참가한 도장은 성인부의 경우 오전 10:30~12:00, 오후 6:30~8:00, 8:00~9:30, 9:30~11:00 시까지 있었으며, 여러 번을 들어도 무방하다고 했다. 일정을 고려해보니 6시 30분부터 9시까지가 적당한 듯싶었다. 그렇게 일정을 잡고 도장에서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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