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ris Feb 23. 2020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구요.

나의 주짓수 도전기 12.

이 이야기는 이제 막 주짓수에 등록하고 운동을 시작한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기록을 시작한 까닭은 첫째, 내가 배운 지식과 기술에 대해 잊지 않기 위함이며 훗날 어느 정도 성장을 했을 때 나 자신을 뒤돌아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둘째, 나와 같은 초심자들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지식을 찾는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서이다. 마지막은 그 과정 중에 만나고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  

주짓수와 같이 시작한 이 이야기는 시작은 있지만, 언제 끝날지는 나 자신도 알지 못한다. 어떤 사정에 의해 도중에 수련을 그만둘 수도 있고 혹은 바쁜 나날이 이어져서 기록을 중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쓸 수 있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써보고자 한다. 이야기는 경험, 그 당시의 생각이나 느낌과 지금 시점에서의 생각, 그리고 그 당시에 배운 기술이나 알게 된 용어의 정리 등이 중심이 될 것이다. 참고로 주짓수에 관한 여러 기술과 관련된 용어는 간단히 정리하되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한 이들이나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해 될 수 있으면 출처를 기재할 것이니, 관심 있는 사람은 확인하기 바란다.

알다시피, 이야기의 힘은 세다. 이야기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사회를 바꾸기까지 한다. 내 글이 사회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릴지 모를 이 주짓수를 보면서 누군가 그 어떤 영감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다.


※ 참고로 글은 완성본이 아니므로, 틈틈이 수정될 수 있다.




내가 바뀌어야 한다!


나를 주짓수로 입문하게 한 그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잠깐 볼 수 있느냐는 문자였다. 메시지 너머로 그 사람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그 몇 안 되는 글자 너머로 여러 생각이 오갔다. 무슨 이유로 보자고 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모종의 기대 따위는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보자. 다음에 만나거든, 좋은 친구가 되어 준다고 했던 것처럼…. 언제 보아도 반가운 오랜 친구를 보듯이 그렇게 반갑게 인사를 하면 되고 행여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웃으며 도와주고 이내 거리를 두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언제나 좋은 사람이니, 나는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약속 날짜가 되고 만나기로 한 커피숍에 지하로 가니 그 사람이 먼저 와 어두운 자리 한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꼿꼿한 자세로 상념에 젖은 듯한 무표정한 왼쪽 얼굴이 옅은 불빛에 어른거렸다. 거기에는 로트렉의 그림에 나오는 상념에 젖은 한 여인이 호퍼의 어두운 침묵의 공간에 들어와 앉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그 두 그림을 상상하는 것으로도 가슴이 조금은 아렸지만, 정말 아무렇지 않은 듯 인사를 건네고 다시 올라가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를 가져와 자리에 앉으면서 다시 인사를 하고 미소를 보였다. 맑고 앳된 그러나 무표정했던, 그래서 먹먹해지던 그 얼굴에 전처럼 조금의 미소가 생겼다.  

잘 지냈느냐는 사소한 인사와 근황을 물어보는 질문, 한참 주짓수에 빠져 살았다는 대답, 그대의 삶을 위해서 다른 것도 게을리하지 말라는 교과서적인 응답, 생활 방식을 다시 잡도록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하라는 말…. (아! 나는 또 이런 말로 한참을 주저리주저리 하고 말았다.) 그래도 그날 우리는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커피숍에서도, 식당에서도, 그리고 산책을 하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나누었다.

그 사람과 전처럼 대화를 하며, 나는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을 동생이나 후배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구나 싶었다. 그 사람이 나를 이상화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과 달리, 나는 그저 어떤 하나의 존재로 인식하고 허물없이 대한 게 문제였다. 그러나 이제는 나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조금은 동생처럼 생각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그저 필요로 한다면 선의로 도와주되 선이 있는 사촌 동생처럼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서로 좋은 사람으로 남다가 남들처럼 자연스럽게 잊혀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 사람이 원하는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언제나 그렇게 하지 않았던가?

내 마음에 단단히 매듭을 매려면, 나만을 아껴줄 사람을 이제는 찾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아니면 ‘좋은 사람으로 남겠다.’라는 그 다짐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조금은 관대하며 여유로운 마음이 있어야만 그 사람을 더 편하게 대할 수 있으리라. 주짓수도 그 사람에게도 나는 좀 더 여유롭고 관대한 마음이 있어야만 했다. 그러려면 그 사람을 바라보던 내 시선과 시간과 마음을 다른 곳으로 분산하는 게 필요했다. 이러한 생각을 하니, 확실히 조금 홀가분해졌다.

그동안 누군가를 곁에 두지 않은 까닭은 나의 자격지심이 사실 큰 몫을 했다. 심지어 나를 좋아해 주던 사람에게도 마음을 끝내 열지 못한 까닭은 바로 그러한 자격지심에 있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을 숨기도록 나도 모르게 ‘열심히’라는 가면을 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런 것을 생각할 틈이 없도록….  

“오빤, 연애에 관심 없죠? 하는 일이 많으니까, 연애할 시간도 없을 거 같아요.”, “하는 걸 보면 외로울 시간이 없을 거 같아요.”, “만나는 사람 없어요? 만나는 사람도 많으니까 있을 거 같은데….”

그 덕에 사람들은 나를 통해 ‘열심, 열정, 바쁘게 산다, 자기 일을 잘한다.’라는 단어를 보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을 나를 보면서 언제나 자신감이 있고 할 일이 많고 연애 감정 따위는 모르는 사람이었고 그냥 알아서 잘할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주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도 도움을 청하는 것도 익숙한 일이 아니었다. 실로 심각한 모범생 병이었다. 나는 그 앞에서 외롭다고 하소연하거나 도움을 청하지 않았고, 누구를 소개해달라고 말하지도 않았고, 마음이 있으면서도 흔한 고백조차 하지 않았고, 때로는 누군가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저 도망치려고만 했었다. 그 속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던 내 상태에 대한 극심한 자격지심이 있었다. 그러나 그 자격지심을 깨뜨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것이 만성화된 무감각으로 바뀌어 그저 현실에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잘하는 게 있어도 그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거나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게 부끄러웠다. 그것을 겸손, 겸양이라고 여겼고 한편으로는 세상에는 나보다 멋지고 뛰어난 사람이 많고 나는 그들에 비하면 한참을 노력해야 한다며 굴레를 만들어버렸다.  

‘내가 바뀌어야 한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게 된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이었다. 이대로는 안되며, 누구도 대신하지 않을, 나 자신이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임을 알려야 했다. 그리고 나 역시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알리고 또한 노력해야 했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이상화한 나 자신을 깨부수고 현실의 나를 마주하며 내가 만들어놓은 ‘적당한 거리’라는 울타리를 허물어 누구라도 즐겁게 찾아오게 해야겠다 싶었다. 물론 울타리 안에 만들어놓은 비무장 지대에 누군가 발을 들이게 하면 스트레스도 받을 것이다. 지금처럼 할 일을 하며 바쁘게 하루를 보내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내 그 누군가에게 적응하고 또한 전에 없던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더는 저 길 위에서 팔짱을 끼고 걷는 연인을 보면서 혹은 슬픈 노래를 부르면서 불현듯 우울감에 빠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날, 주짓수에서 처음으로 사람들과 길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도복의 깃을 잡으면서 나를 내세울 직업도 돈도 움켜쥐기로 마음먹었다.


먼 목표만을 생각하면 눈 앞을 보지 못한다.
 

전보다 나은 내가 되려면 내적인 성장뿐 아니라 분명히 외적인 성장이 필요했다. 자신은 글을 쓸 타자기와 작은 공간만 있으면 된다고 하던 어느 노 작가의 인터뷰에 감동하여, 돈은 무가치하며 나 역시 글을 쓸 수 있는 공간과 이 노트북만 있으면 된다고 여겼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작가와 나의 궁극적인 차이점이 몇 가지 있었다. 그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이고 나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나는 내 꿈을 잡는 데 게을렀고 그는 부단히 노력했다.  

‘잘해야 하는데….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열정이 무너졌음에도 잡은 목표를 놓지 못할 때, 입으로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정작 중요한 일에 꾸준히 노력하지도 도전하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면 최고의 작품을 쓰겠다는 마음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차라리 지금처럼 습관에 묻혀서(생각할 것도 없이 당연하게) 매일 똑같은 시간에 글을 써 내려가면서 작품이 완성되는 법인데, 그때는 그저 저 생각에 꽂힌 나머지 오히려 현실을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방황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었다. 인생의 많은 방황은 목표가 없어서 못한다기보다는 나 자신이 그 목표를 지나치게 생각하고 있어서 생기는 문제였다. 거기에 더해 기존의 태도나 나쁜 습관을 깨뜨리지 못해서 생기는 게 더 컸다. 마치 너무 먼 거리에 있는 목표 지점을 보고 ‘아! 저기를 가야 하는데….’라고 발만 동동 굴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 것이었다. 차라리 그럴 때 저 목표는 보지 않고 그 목표 지점까지 길게 나 있는 이 길의 앞만 보고 한걸음 씩 디디면 전보다 나아지는 것인데 말이다. 다른 길로 접어들 위험이 있을 때 선택만 잘하고 꾸준히 앞으로 가면 되는 데 말이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조금 천천히 걸으면 되고 내리막길이 있으면 조금 조심히 걸으면 된다. 평지가 있을 때는 때로는 뛰어보기도 하면 되고 너무 힘든 길일 때에는 한숨 쉬면서 목을 축이고 다시 길에 오르면 된다. 굳이 그 길을 바라보다가 지루해지거나 답답해질 것 같으면, 그 부정적인 생각을 버릴 수 있는 다른 일을 하면서 걸으면 된다. 그리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동료를 얻으면 된다.  

한때, 그 사람을 그러한 동료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 사람에게 이따금 공부를 하라고 다그칠 때에는 그것은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나 다를 바 없었고 어떤 습관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도록 종용할 때에는 나 자신이 그 행위를 통해 습관을 얻어가고 있었다. 일종의 ‘넛지’와도 같은 정책이었다. 타인을 통해, 혹은 스스로 어떤 책임감을 만들어내어 끊임없이 내가 해야 할 일을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타인은 돕는다는 말로 때로는 그것을 포장하고 있었지만, 실로 그것은 나 자신을 돕는 행위였다. 많은 일이 그러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나는 성장했다.  

지금껏 그러한 방식으로 나를 만들어왔기에 책임을 공유한다는 것이 익숙지 않았다. 많은 경우 모범을 보여야 했고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했다. 실로 외로운 일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서는 모든 일은 그렇게 처리해왔고 그렇게 하는 게 익숙해졌다. 그런 나에게 주짓수는 다른 의미였다.  


주짓수 한번 배워봐.


“형이 그렇게 체육관에 다니고 지도를 받는다는 게 신기하고 놀라워요.”

요즘 주짓수를 다닌다니까,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나 자신도 조금은 놀라워. 뭐랄까,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자신이 모임이나 단체에 대한 책임을 버리고 사람들하고 어우러지면서 배우는 거잖아. 물론 배우는 것은 전에도 해보긴 했지만, 사람들하고 많이 어우러질 수 있는 종목이라는 점에서 아주 좋아. 그 안에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길을 걷는 동료가 있는 느낌이랄까? 기존에 내가 모집한 프로그램들은 내가 앞에서 끌고 가는 거였다면, 이것은 같이 가는 느낌이야. 그래서 즐거워.”

그는 나의 말에 좀 더 관심을 보였다.

“실은 저도 운동을 뭔가 하나 배우고 싶은데,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면, 주짓수 한번 배워봐. 시비를 거는 상대를 타격이나 폭력 없이 제압할 수 있는 운동이기도 하거니와 덩치가 작은 사람도 큰 사람을 이길 수 있는 운동이기도 해. 개인적으로는 정신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운동 같고. 물론 체력 운동이라기보다 기술 운동 중심이라 헬스처럼 몸을 만들기는 어려울 수 있어. 그러나 대부분의 도장에 기본적인 운동 기구가 있을테니 그것을 활용하면서 주짓수 운동을 병행하면 분명히 몸도 만들 수 있으리라고 봐.”

도장 구석에 있는 운동 기구를 활용하고 배 밀기 100개씩 3세트를 하면서 땀을 뻘뻘 흘렸던 기억이 나서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수업시간을 피해 도장의 넓은 매트와 운동 기구를 적절히 활용하면 분명히 헬스 체형은 아니지만, 체력적으로나 체형적으로 멋진 몸을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특히 덩치가 작은 이 친구는 마동석이나 김종국 같은 체형보다 이소룡 같은 체형을 그곳에서 기르기 적합했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기술 운동 시간을 제외한 시간에 체력 운동을 해야 하므로 시간이 필요하고 부지런해야 할 것이다. 또한, 체력과 체형을 위한 식단 관리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내 말에 관심을 두더니, 알아봐야겠다고 말했다. 나도 어느덧 그 사람처럼 주짓수 전도사가 되어 가고 있는 듯싶어서 조금 웃음이 났다.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구요.’


슬램덩크라는 일본의 유명한 농구 만화가 있다. 한 여자 때문에 농구부에 가입한 한 고등학생이 점점 농구라는 스포츠에 매력을 느끼게 되고 성장해 가는 만화이다. 그 만화의 남자 주인공인 ‘강백호’는 처음에는 그녀에게 잘 보이고자 농구를 시작했지만, 점차 농구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치열했던 어느 시합이 끝나고 나서, 탈진하다시피 지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때, 문득 농구에 입문하기 전에 그녀가 자신에게 물었던 목소리를 떠올린다.  


(검은 화면에 오로지 그녀의 얼굴 등장) ‘농구… 좋아하세요?’

(오로지 검은 화면) ‘농구….’  

(오로지 검은 화면) ‘좋아하세요?’

강백호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구요.”

이 뜬금없는 고백이 왜 자꾸 떠오르는 걸까? 알게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좋아한다고 감히 자신할 수 있을까?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자. 이제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독이 될 수 있어.'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빠르게 불타올랐다가 빠르게 식게 될까 봐. 다른 것들처럼 어느 순간 너무 깊게 빠져서 또다시 나중에 후회할까봐 조심스러웠다.

어린 시절 나는 평행봉을 하는 걸 너무나 좋아했다. 쉬는 시간만 되면 운동장에 달려가서 평행봉을 했다. 근력 운동도 좋았고 평행봉에서 남들이 못하는 묘기를 보여주는 것도 좋아했다. 문제는 다른 운동도 골고루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 덕분에 특정 근육이 다른 부분보다 상대적으로 더 커져 버렸다.

요는 균형이 중요했다. 어느 하나를 열심히 하고 나면 다른 것들도 그에 따라 함께 했다면 나는 좀 더 나은 체력과 몸을 유지했을 것이다. 오로지 하나만을 생각하는 것은 다른 것을 퇴보시킬 수 있다. 이런 생각에 한가지 원칙을 세웠다.

'내 삶의 다른 일도 무시할 수는 없어. 할 때만큼은 전력을 다하되 다른 일을 할 때에는 다른 일에 몰입한다.'


“형, 주짓수 관장님들은 바보들이야. 주짓수밖에 모르는 바보들…. 이야기를 해보면 때로는 ‘상식이라는 게 있는 사람일까? 뇌에 주짓수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찬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니까. 뭐 그러니까 블랙벨트가 되겠지만….”

동생이 어느 날 이런 말을 했다.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들처럼 주짓수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길 위에서 주짓수를 우연히 알게 된 것 뿐이다. 주짓수를 계속 좋아하려면, 그리고 계속 관심을 두려면 지나친 열정보다도 중요한 것은 꾸준히 도장에 가는 것이며 그 도장에 있을 때만큼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일을 할 때에는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려면 균형이 중요하다.  

이러한 생각이 이르자, 시간을 통제하는 게 정말 중요한 일임을 새삼 느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충실히 해내려면, 내 미래를 위해서 어느 시간에 어느 상황을 만드는 게 중요했고 그 상황이나 장소에 맞게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하는 게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 소중한 시간을 결코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다! 정말 좋아하는 것들을 위해서!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려면 모든 날 모든 시간에 그것을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시간에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몰입을 하느냐의 문제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지금, 나는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마음이 앞으로도 거짓이 아니길 바다. 언젠가 나라는 사람이 성장하여 누구에게라도 인정받을 만한 실력이 되고도 이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 마주하며 할 수 있기를....

말 좋한다고.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

매거진의 이전글 자존심은 문 앞에 두어라.(feat 흰띠를 위한 예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