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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y 04. 2020

도복을 입지 못한 시간에 한 일들

나의 주짓수 도전기 18.

도복을 입지 못한 시간에 한 일들


코로나가 전보다 안정세에 접어들자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른 다중 이용 시설 이용제한 조치도 완화되었다. 이에 따라 한동안 운영이 중단되었던 도장도 다시 수업을 재개하였다. 거의 2달 만에 시작하는 운동이었다. 정부 시행으로 다중 시설 이용 금지 조치가 되기 전부터 먼저 거리 두기를 시작한 것을 고려한다면 거의 그 이상의 기간에 주짓수를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구청에서 운영하는 헬스장은 아직도 폐쇄조치를 하는 중이고 주짓수 도장도 그렇게 막힌 상태였기에 그동안은 집에서 운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혼자 좁은 집구석에서 꾸준히 운동한다는 건 나로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번번이 운동 시간을 놓치기 일쑤였고 이러한 나태함은 이내 내가 정해놓은 다른 삶의 규칙에도 여러 영향을 미쳤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코로나는 그전부터 자연스레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고 있었던 내게도 많은 변화를 끼쳤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여러 모임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따라 목표를 수정하거나 혼자서도 할 수 있도록 계획을 조정해야만 했다.

이러한 조치가 비단 내게 부정적으로 작용한 것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여러 일을 중단하게 되자 그것을 고려하며 소모하던 에너지를 줄일 수 있었고 진정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좀 더 많아졌다. 아니 그 일을 하는 시간은 크게 변하지 않았으나 쌓아놓은 목표들에 심리적으로 쫓기던 게 줄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말하자면 겉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어떤 것에 숙고할 시간이 좀 더 많아졌다고 해야 할까?

처음에는 코로나로 인해 붕 떠 버린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스러웠지만, 이내 이 시간은 이렇게 다른 의미 있거나 새로운 시도로 채워 나갔다. 기존에 해왔던 일을 제외하고 새로운 시도를 말하자면 대략 이렇다.

우선 아주 예전에 쓰다가 만 소설, 그리하여 마음속에는 마치 짐처럼 남아있던 소설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내보자고 다시 시도하게 되었다. 작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쓰기 시작한 장편 소설이었는데, 여러 사정으로 중단한 소설이었다. 그 이후로 계속 외면한 채로 두었지만, 마음에는 항상 무겁게 자리하고 있었기에 이것을 다시 들추어낸다는 것은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둘째로 SNS를 끊었다. 사실 잘 하지도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사람들의 SNS를 들여다보면서 시간을 낭비하거나 상념에 젖기가 싫었다. SNS에 드러나는 타인의 행복은 단순히 순간의 즐거움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 싫었다. 허울뿐인 모습을 부러워하고 계속 내 지금 상태와 비교하게 되는 것보다 나 자신을 깊게 들여다보고 좀 더 단단히 사랑하는 게 필요했다. 그러한 까닭에 나는 과감히 탈퇴했다. 그러고 나자 한동안 불편함은 있었으나 속이 후련했다.

셋째로 중고급 이상의 단어를 꾸준히 외우기 시작했다. 영어로 된 전문 잡지나 신문을 보려면 일상회화 수준의 영어 단어보다 좀 더 수준이 있는 단어를 많이 알아야 했다. 영어 공부를 하면서 계속 단어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코로나 이전에는 단어 암기에 시간을 할애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미 2~3시간가량을 영어 회화를 위한 스크립트나 패턴 암기, 영어 모임 운영에 할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모임을 중단하자, 중고급 단어를 암기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물론 이것을 혼자 하려고 했다면 홈트레이닝처럼 흐지부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함께 하는 한 사람 덕분에 꾸준히 할 수 있었다. 계획에 동참해줄 사람이 있다는 건 언제나 고마운 일이다.

넷째로 새로운 집필 작업을 위한 사전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예술로 인정받을 만한 글을 작성하기 위한 사전 작업인데, 지금 하는 작업이 향후 만들어질 소설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섯째로 주식을 시작했다. 3월 18일 주가 대폭락 이후 동학 개미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내 문제 중 하나는 미래에 관한 대비, 특히 노후에 관한 물질적 준비에 관해서는 전혀 해두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 나이에 남들만큼 재산이 있거나 저축조차 해두지 못한 것이 앞서 말한 미완성 소설만큼이나 마음에 짐으로 남아있었고 때로는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주식 투자는 친구의 투자 조언에 따른 충동과 더불어 이러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손실 위험이 큰 주식이 미래에 대한 투자로서 적절한지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래를 위한 투자의 한 가지 방법으로서 알고 있거나 도전해본 경험이 있는 것과 아예 모른 척하고 사는 것과는 천지 차이일 것이다. 나는 지금껏 자본 증식을 위한 투자는 아예 모른 척, 선비처럼 살아왔다. 주식 투자는 그러한 기존의 나를 깨부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투자에서 삶의 원칙을 발견하다.


친구는 내게 소액의 돈을 빌려주면서 잃어도 되니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하였다. 거기에 내 돈 소액을 포함해 주식에 도전했다. 대학 시절 모의주식투자 이후 처음 해본 주식이었다. 처음에는 다른 친구들의 투자방식인 테마주에 들어갔다. 한 친구가 키트 테마주에 들어갔다가 꽤 거액의 이익을 실현했기에 솔깃한 마음에 들어갔다. 그러나 들어간 이후 종합주가지수는 오르고 있음에도 내가 보유한 주식은 폭락을 거듭했다. 한번 폭락했을 때 다시 반등하겠지 싶어 두면 또 떨어지길 반복했다. 어떤 전략도 없었고 주식 투자의 기본 법칙인 포트폴리오 투자도 아닌 묻지마 몰빵 투자였다. 도저히 이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투자 금액의 20% 이상의 손실을 맛보고 나왔다.

이 시기에는 주식 투자 기법과 원칙에 관한 몇 가지 책을 보고 있었는데, 그 책에서는 내게 중요한 두 가지 원칙을 이야기했다. 하나는 투자에서도 원칙을 잃지 말 것과 다른 하나는 감정에 휘둘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눈에 들어온 것이 퀀트 투자, 즉 계량 투자방식이었다. 소문이나 감정으로 투자를 하는 게 아니라, 기업가치나 몇 가지 측정지표로 원칙과 여러 공개된 기법을 바탕으로 계산을 통한 기업들의 순위를 정해 분산투자를 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이러한 작업의 자동화를 위해서 파이썬이 주요한 툴로 사용되곤 했는데, 이는 작년에 조금 공부해뒀던 파이썬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사실 실제로 응용해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더욱 이 투자 방식에 관심이 갔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 파이썬으로 자동화된 나만의 주식 전략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몇몇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툴을 통해서 투자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었고 가지고 있던 소액을 저평가된 주식 20개 정도에 일정하게 분산투자를 했다. 리밸런싱은 6개월 후에 하되 하루에 커피값 정도의 소액을 저축 삼아 괜찮은 종목이나 새로 발굴되는 종목에 넣어보기로 했다. 지금은 그렇게 한지 약 3주 정도의 시간이 지났는데, 그 이후 장이 좋아서 그런지 혹은 워낙 저평가된 주식이어서 그런지 나쁘지 않은 수익을 보이는 중이다.

얼마 되지 않은 경험이라 단언할 수는 없으나 퀀트(계량) 투자방식의 좋은 점은 신경을 덜 쓸 수 있다는 점이었다. 테마주, 소문을 따라 투자하던 며칠 동안에 무엇보다 견딜 수 없던 것은 온종일 주식만 쳐다보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오르면 오르는 대로,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주식 시세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손해를 보고 있음에도 과감히 나오게 된 까닭은 사실 그러한 이유가 더 컸다. 계량 투자는 투기나 도박보다는 한 번에 큰 수익을 올릴 수는 없으나 안정적인 기대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었고 분산투자로 인해 어느 한두 종목이 떨어지더라도 다른 종목의 수익으로 지탱할 수 있었다.

이 방식은 삶의 원칙을 중시하는 내게도 딱 알맞고 감정을 다스리기에도 적합한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초반에 잃은 묻지마 투자방식이 나름의 원칙에 따른 투자방식을 찾게 만든 수업료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슬프긴 했으나 아깝다는 생각이 크게 들지 않았다. 물론 지극히 소액이라 실제 손실 금액도 지금의 수익도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떠한 고통과 시련이 한 인간을 단련시키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 그것을 통해 뼈저리게 느끼고 다시는 그런 고통을 받지 않도록 생각하고 노력한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신체적 공통뿐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 측면에서도 그렇다. 그리고 다른 유사한 어떤 것에서 받은 그런 시련은 인간의 유추가 다른 비슷한 일에서도 쉽게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토록 한다. 그렇기에 경험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사고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유추의 범위를 넓혀주기 때문이다. 투자방식과 원칙에 관한 지금의 경험뿐 아니라 새로운 시도들과 그에 따른 여러 크고 작은 통증 역시 나를 더욱 건강하게 단련시키리라 믿는다.

이렇게 과거에는 시도해보지 못한 도전과 기존에 해왔던 일들 가운데 코로나 시대에 가능한 의미 있는 일들을 계속했고 동시에 다시 세상이 안정되면 해보고 싶은 새로운 계획들은 짜임새 있게 정리했다. 그렇기에 돌이켜보면 이러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바쁘게 달려온 시간 속에서 잠깐 멈춰 서서 인생의 지도를 다시 살펴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몇 달 동안의 혼란 속에서 느낀 점도 있었는데, 생각하며 살기를 바란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느냐와는 상관없이 생각하며 산다는 것이다. 특히 잠깐의 기간에 알게 된 주식 투자의 원칙은 삶에도 배울점을 주었다. 그것을 명문화하면 다음과 같다.     


삶을 도박이 아닌, 자신이 설계한 원칙대로 살자.
그 원칙에 따라 삶에도 적절하게 분산투자를 하자.
그 투자의 수익(?)을 객관화할 수 있도록 하고 일정 기간마다 리밸런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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