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고독의 그늘 / 적당함의 함정

나의 일상 여행기. (2)

by Chris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바랍니다.




근래에 조금씩 늦어져 9시가 다 되어서야 방에서 나왔는데 오늘은 다시 8시 정각에 학교에 도착했다. 예전에 6시 30분 운동은 어떻게 하고 5시 기상은 또 어떻게 했을까? 지금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는 있다만 그때만큼 열심히 산적도 드문 것 같다. 그러나 삶의 질적 측면에선 지금 더 만족한다.

글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주저리주저리 쓰다 보니 의식 깊은 곳에서 있던 생각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나오는 거겠지. 아침 책을 좀 보다가 바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9시 50분까지 쓰다가 시계 보고 영어 모임 준비를 했다. 미리 전날 길 위에서 외워 놓았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영어 모임에 피해가 갔을 것이다.

모임이 끝나고 계속 일기를 쓰다가 거의 2시가 다 되어 마무리했다. 가격파괴 분식점에 가서 밥 먹을까 하다가 포기하고 집으로 가서 간단하게 라면에 닭가슴살과 함께 먹었다. 식단 관리를 하려면 장 좀 봐야 하는데, 그게 귀찮아서 안 하고 있다. 뭔가 조금 더 예전처럼 동기 부여가 될 만한 어떤 게 있어야 할 듯하다. 프로필 사진이라도 찍자고 마음먹거나 여름을 대비하자는 마음도 없으니 '적당히'가 되어 버린듯했다. 혹은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럴 것이다.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서 거리낌 없이 사람을 대하던 게 언제이던가? 업무나 모임의 관계에서 좀 더 친밀한 관계로 이어진 것이 언제이던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조심스러워지고 늘 가던 곳을 제한하게 된다. 그러면 새로운 쉼터를 만들어야 하는데, 과거에 했던 일들을 다시 한다는 것을 의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혹은 누군가가 옆에서 할 수 있도록 부추겨주거나. "네가 필요해!" 라는 말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 말을 솔직히 꺼내는 것은 그 말을 하기도 어렵지만 듣기도 어려운 말이었다. 그렇다 보니 서로 필요로 함에도 그저 모두 침묵할 뿐이었다. 지레짐작과 자존심 등으로 침묵할 뿐이었다.

‘우리에게 입은 있으면 뭐하나? 정작 하고 싶은 말들은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둘 뿐인데….’ 오해의 씨앗은 진실하지 못하고 타인을 열린 마음으로 이해해보려 하지 않고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헤아려 보지 못함에 있다. 내 마음을 헤아려 내 가슴속에 있는 진실함을 꺼내어 타인에게 보이고 그 사람의 진실함을 거짓 없이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이후의 침묵은 그전의 침묵과 다르고. 우리는 눈빛만으로도 안다.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당신이 진정 타인을 이해하고 싶다면, 온몸으로 표현해야 한다. 당신이 진정 타인을 필요로 한다면 온몸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저 입으로만 "난 당신이 필요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가는 말로 "밥 한번 먹자!"와 다를 바가 없다. 온 마음과 몸을 다해 진실로 말하는 것은 힘이 세며, 그 에너지는 둘 모두를 살찌운다.

그러나 나는 그저 내 안의 테두리를 높게 세워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을 나만의 좁은 공간에만 있을 뿐이다. 감정 소모가 싫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진정으로 필요하다고 손을 내밀 때까지 고집을 피우면서, 그렇게 언젠가 저 문을 열고 나를 우러러보며 필요하다고 소리칠 그날을 기다리면서.

‘내가 먼저 나올 수는 없는가?’ 나 나이 먹도록 살면서 그런 적이 왜 없던가? 그러나 결국 시간이 흐르면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을느끼고 또 경험했으니 이제는 쉽게 시도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심리적 우월감보다도 반복적인 행위와 노력에 대한 심리적 보상의 미흡인 것이다.

우울과 고독의 그늘이 익숙해진다는 것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행위지만 그 안에 언제나 값진 보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독은 홀로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허기진 배와 같은 고독을 채우는 음식은 언제나 가슴 따뜻해지는 것들이다. 사랑, 우정, 희망, 평화 등등. 이런 음식은 혼자서 가꾸기는 어렵다. 그래서 인간은 함께 살아가야 한다. 우리 안의 고독을 채우기 위해서.

빨래를 빨고 잠깐 앉았다가 잠들었다. 따스하고 조용했고 조금은 피곤했던 터라, 의자에 앉은 상태로 잠이 들어버렸다. 일어났더니 5시가 넘어서 부리나케 IT 카페로 갔다. 기력이 달리는 것 같아 매일 양파라도 하나씩 먹어야 할 듯 싶다.

나를 지키는 것은 매일매일 자신을 세심하게 돌보는 것이다. 집을 잘 관리하려면 매일 같이 여기저기 돌보듯,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귀찮다고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어느 순간 문제가 발생한다. 내 관리를 누가 대신해줄 수 없으니 스스로 잘하자!

파이썬을 좀 보고 이내 지루해졌다. 문득 근 2년간 쳤던 기타를 그만둬버린 게 생각났다. 그만두고 한 석 달 정도가 지나고 처음 다시 만져봤을 때 내가 한 2년 가까이 쳤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생소했었다. 파이썬도 그렇게 될까? 내가 당장 지루하다고 손을 놔 버리면 다시 잡을 일이 있을까? 혹은 들였던 시간이 무의미한 것처럼 될까?

잠깐 손을 놓고 엔도 슈사쿠의 책 ‘침묵’을 마저 보았다. 나는 이것을 통해 무엇을 찾는 것인가? 발췌보다 생각이 길어지고 이것이 과연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나의 생전의 꿈이 있다면 세계적인 문학상의 수상이다. 그게 진정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 그것을 계속 꿈꿔왔다. 물질적인 것은 소용없다고, 내 가치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그 상상을 해보고 나서야 이쪽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왜 그걸 몰랐을까? 차라리 그 생각을 부정하지 말 것을…. 어쩌면 마음으로는 저것을 원하면서도 겉으로는 그저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추상적인 생각을 했으니, 안 되는 수밖에….

마치 내가 가장 열심히 운동하던 때가 '바디 프로필을 찍을 정도로 만들어 봐야겠다.' 생각했을 때였고 그러한 계획이 있고 나서 실제로 열심히 운동하고 어느 정도는 이루지 않았던가? 지금의 '적당히'는 결국 내 꿈을 그저 '운동하자'로 놓아서 그렇게 된 것 아닌가?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은 결코 '적당히'를 통해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온 마음을 그곳에 집중할 때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이 그릴 수 있는 구체적일 때 그 실체에 좀 더 접근한다. 나는 무엇을 하는가? 적당히는 안된다.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눈에 보이는 길을 그리고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라!

다시 저녁을 두유로 때웠다. 때마침 두유가 배달와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시간 낭비하지 않도록 누구 챙겨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기 전에 간만에 코인노래방을 갔다. 답답한 마음을 없애는 데에는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 가장 좋은 건 물론 나를 믿어주는 연인 앞에서 위로를 받을 때이다.

아르바이트를 가는 길 위에서 영어 공부를 끝냈다. 외우는 속도는 책상에 앉아 집중할 때보다는 좀 느리지만, 앉아서 헛생각으로 허송세월 보내거나 소리 내어 읽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면 길 위에서의 영어학습은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버스를 타는 시간은 기다리는 것까지 고려하면 30분, 걷는 건 대략 1시간인데, 버스 위에선 사실 뭘 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걸으면서 하는 게 이동시간을 활용하고 비용 절약하며, 별도의 공부 필요 복습이 필요없는 방법이었다. 차밖에 다니지 않는 거리에서는 눈치 보지 않고 영어 공부를 위해 별짓을 다 해도 되었다. 이러한 장점 덕분에 요즘에는 그래서 반경 5km 정도는 걸어 다닌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아버지가 작업에 필요하신 중고 물품을 인터넷에서 잘못 구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 즉시 환불을 요구했으나 중고물품이라는 핑계로 환불을 안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가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이제야 듣게 된 것이다.

중고 물품이라 하더라도 온라인 구매시 구매자가 일주일 이내에 환불을 요구하면 해주게 되어 있다. 더군다나 그곳은 그러한 중고기계를 전문 수리 및 판매하는 법인 사업자였다. 개인 간 거래도 아니고 판매처라 엄연히 존재하는 사업자 간 거래이기 때문에 해주는 게 의무였다. 아버지는 판매자의 거부를 사실처럼 믿고 어떻게든 쓸 방법을 찾았으나 안되어 재환불 요청했다.

구매한지 일주일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기도 하거니와 판매 제품에 대한 설명 미비로 구매자가 오해해서 구매한 것이므로 환불 조건이 엄연히 성립했다. 그런데도 상대측은 전화를 미루고 환불도 안 해주는 등의 불성실한 자세를 보였다.

이야기를 듣고 너무 화가 났으나 시간이 늦어 내일 좀 더 확인해보고 그곳에 직접 대응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자기 전 동생에게도 알렸다. 진작 말하지 않고 전전긍긍 시간만 끌고 있던 아버지에게 조금 화가 나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실수가 창피하고 부끄럽고 또한 스스로 자존심 때문에 어떻게든 해보려 한 것 같아, 자식들이 그것을 헤아리지 못한 것 같아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조금은 원망의 마음도 들었는데, 그 기계를 산다고 나는 내가 가진 얼마 안 되는 돈을 전부 보내드렸기 때문이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그 돈은 내 통장의 전부였다.

문득 오래전에 봤던,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이 생각났다. 영화에서는 아버지의 직업 활동을 위해, 가진 것을 모두 팔아 자전거를 구매해준다. 그러나 안되어 눈앞에서 그것을 도둑맞고 어떻게든 찾으러 다니다가, 안되니까 결국 타인의 자전거를 도둑질하는 비극적 상황을 보여준다.

아버지는 저 기계를 사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하여 우리는 통장에 있던 돈을 털어 보내주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결국 사기 아닌 사기를 당하고 혼자서 전전긍긍해온 것이다. 그리고 혼자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악화만 될 뿐이었다.

영화에서 경찰과 사람들에게 도둑으로 붙잡혀 비난을 받은 아버지를 바라보며 울 수밖에 없는 아들이 생각났다. 나는 그런 불쌍한 아버지의 마지막 상황을 알게 된 아들이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러니 부디 당신의 짐을 솔직히 털어놔 주세요. 부디 빨리, 당신의 자존심을 덜고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주세요. 그래야 서로 조금이라도 고생을 피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것, 아버지가 자신의 문제를 혼자 해결해보려는 것,

누군가에게 짐을 넘기고 싶지 않아서 고름이 차고 또 찰 때까지 버티는 것은 모두를 더욱더 슬프게 만드는 최악의 해결책이다. 사실 그 순간이 오면 해결은 더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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