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불 업체 분쟁기 / 화폐 이야기

나의 일상 여행기. (3)

by Chris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8시쯤 일어나 8시 45분에 집을 나섰다. 깨어 있거나 반쯤 몽롱한 상태에서 미적거리는 때가 잦아졌다. 심야 모임은 이참에 정리하고 저녁에 오자마자 잘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야 할 듯하다. 오늘 영어 모임은 다들 참여가 어렵다고 하여 전날에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일을 처리하기 위해 환불을 요구할 업체와 통화를 했다. 일단 녹음을 켜고 청약 철회에 따른 물품의 환불을 요구하자 역시 중고를 환불하는 곳이 어디에 있느냐고 도리어 따졌다. 나는 "중고 물품이라도 재물에 손상을 가하거나 감가상각이 크게 발생하지 않는 이상 가능하고 개인 간 거래가 아닐뿐더러, 아버지와 온라인으로 거래한 중고 전문 업체이시지 않느냐?"라고 되물었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받으시고 4-5일 만에 환불을 요구하셨으니 일주일 안에 환불 조건도 맞지 않느냐고 따졌다. 그러나 그쪽에서는 중고 상품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여 소비자 보호법에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자는 법대로 하라는 식으로 대응했다. 물론, 법으로 바로 할 수도 있었으나 도의적 책임을 들어, 합의로 끝내고 싶었다. 그러나 상대는 완강하게 저항했고 결국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법적으로 진행하기에 앞서 몇 가지 알아봐야 할 부분이 있었다. 아버지가 관련 규정을 잘 모른 탓에 처음 환불 요청으로부터 계속 전화로 환불을 요구했지만, 이미 구매한 지 3달이 넘어간 상태라 나 역시 법률적으로 해결 가능성이 있는지 잘 몰랐다.

그 때문에, 너무 괘씸했지만, 아예 못 받을 가능성보다 어르고 달래서 반품비 명목으로 좀 달라고 하는 게 맞는 건지 알아봐야만 했다. 나는 지금까지 아버지가 이렇게 질질 끌어온 태도에 대하여 조금은 화가 나기도 했으며 동시에 안쓰러웠다. 미리 말했더라면 환불을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을 길게 끌어서 결국 불투명하게 만든 셈이니 더욱 그러했다. 더욱이 나도 그런 모습이 간혹 있어서 내 그림자를 보는 듯해서 더 기분이 안 좋아졌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거나 해결책을 찾으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했더라면 쉽게 해결될 것을 결국 혼자 어떻게 해보려다가 잘 안되니까 뒤로 미뤄두고, 간혹 생각나면 잠깐 해보다가 미루고 마는 행동들, 문제는 그대로인데 그냥 눈에서, 마음에서 안 보이게 하는 것… 나 역시 그러한 습관이 있었다. 링컨의 말대로 절대 오늘의 책임을 피함으로써 내일의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온종일 일이 손에 안 잡혔다. 분식집에 가서 친한 식당 이모에게 답답함을 조금 토로하고 나서 다른 방편을 고민했다. 법과 가까워져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중이었다.

이해관계에는 명확한 과실을 증명하지 않으면 서로의 이익을 주장하거나 이익을 빼앗기지 않도록 꼼수를 부리게 된다. 이럴 때 다른 것을 찾지 말고 국가가 명시한 법을 찾아야 한다. 특히 환불과 같은 분쟁은 일정 기간이 판단을 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기간이 지나면 구매상품에 문제를 발견해도 법적 구속력을 잃게 된다. 이런 것을 알려면 법을 알아야 한다. 아버지가 관련 법을 미리 알았더라면 이렇게 피곤하게 끌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참에 생활 속 법률 상식 정도는 알아가는 게 좋을 듯했다. 나는 바로 소비자원 사이트에 들어가 전후 사정이 담긴 글을 남겼다. 그러나 해결될지 어떻게 될지 몰랐다. 서글픈 일이나 해결이 안 될 수도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가는 길에 동생에게 블록체인 토큰과 코인에 대해 물어보고 그것의 보안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지는 블록체인 차체는 그 정보가 분산 저장되기 때문에 해킹이 거의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보안 문제가 터지는 곳은 대체로 거래소 문제였다. 말하자면 문화 상품권과 그것을 등록하는 사이트가 있다면 문화 상품권의 핀 번호는 해킹이나 복제하여 돈을 막 찍어내는 것은 안 된다. 그러나 사이트의 아이디와 비번을 해당 서버를 털어 알아낼 수 있었다. 거래소 문제는 후자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코인은 개인 하드디스크에 암호화된 형태로 저장 보관할 수 있으나 은행에 돈을 맡겨두듯, 거래소에 맡겨 둘 수 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맡겨둔 거래소에서 마치 예전 농협 해킹 사태처럼 털리게 되는 것이었다. 더 자세히 말하면 거기에 저장된 사용자들의 계정이 털리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와 더불어 비트코인을 만들게 된 배경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들었다.

요약해보면, 사토시라는 사람이 헤지펀드나 몇몇 금융 권력을 소유한 집단이 자본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반대해 오로지 국가나 권력이 아닌 시장의 의해 조정되는 화폐를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듣다 보니 얼마 전에 읽은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라는 책에서 언급한 상품화폐 전반과 금본위제 폐지를 둘러싼 이야기가 떠올라 흥미로웠다. 이를테면 마을단위의 화폐가 아니라 국가 간 거래 가능 화폐를 만들 무렵 그것을 양국 거래 당사자 간에 통용되며 신뢰할 수 있는 화폐가 되려면 금본위제가 필요했다. 그러나 금본위제 화폐가 가진 한계(상품화폐이고 더구나 금이 기반이라 그 희소성으로 말미암아 거래량이 제한적임, 대량으로 가지고 있을 때의 무거움 등등)로 인해 금본위제를 폐지하게 되고 자체적으로 공인할 수 있는 화폐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 화폐에 대한 공인은 해당 국가가 했다.

문제는 해당 국가가 경제 위기 등의 문제를 겪게 되면 금본위제를 폐지한 상태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화폐를 찍어낼 수 있게 되어 환율 시장을 교란할 수 있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강대국과 주변국은 그런 행위를 하는 국가를 물리력과 자본력 등을 활용하여 강력히 제재했다.

일부 이런 내용이었는데(추후 파시즘의 발흥이나 나치의 등장도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설명했다.), 하고 싶은 말은 시장 경제론자들이 지대, 노동, 화폐마저 거래 가능 대상으로 놓고 시장에 의해 자율적으로 거래되길 바랐지만, 완벽히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정되는 것은 없으며 화폐의 가치를 강력한 제재하는 집단이 생겨 조정된다는 점이었다. 또한, 화폐 가치를 공인해주는 것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아니라 국가나 국가를 기반으로 한 신뢰할(?) 만 한 거대한 권력 기구이고, 그 통제는 일부 강대국을 제외하고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강대국들의 일부 권력집단들이었다. 시장이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없게 하는 것도 정보의 불균형 등에 다른 거대 권력이나 자본과 결탁한 세력이 시장을 교란하기 때문이며, 화폐시장을 안정적으로 만들고자 강대국과 관련 기구들이 제재를 가하는 시점에도 월가나 강대국을 등에 입은 헤지펀드와 같은 거대 자본을 가진 자들은 영국과 조지 소로스의 사례처럼 화폐시장을 교란했다. 이것을 가상화폐라는 국가 개념을 벗어나 컴퓨터 사용자라면 누구나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맞기고자 했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도 문제가 있는데, '가상 화폐의 가치에 대한 신용을 무엇으로 보장해 줄 것인가?'라는 점이었다. 또한, 만일 그것이 금본위제와 같이 사이버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공통화폐라면 그것만으로도 신뢰할 수 있겠지만, 수백, 수천 개의 화폐가 존재한다면 시장에 뿌려져 있는 화폐의 비중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현실 세계의 다양한 화폐 간의 가격 차와 다를 바 없다.

가상화폐에 대하여 화폐 가격 변동을 대비하기 위해 돈을 시중에 풀거나 혹은 사들이는(또 때로는 찍어내는) 조정기구가 없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만 조정한다면 해당 시장의 거대 자본가는 수요와 공급을 이용하여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 더군다나 가상 화폐 시장에 참여한 인원이나 물량이 충분히(?) 많지 않기 때문에 시장은 몇몇 자본가에 의해 놀아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지금의 가상 화폐의 급격한 상승과 폭락의 사태는 시장에 의해서만 운영될 수 있다고 믿었던 18-19세기 경제학자들이 소망이 다시 불가능에 가까운 것임을 입증하는 사례가 아닐까? 물론 거기에는 권력과 욕망이 존재하고 정보의 비대칭이 있기 때문, 또 하나는 비합리적 직감이나 충동 같은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과 더불어 거래소 서버가 털림에 따라 발생하는 피해를 이야기할 때 들었던 거래소의 거래 구조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마지막 부분에서 말한 전산 시스템이 신용카드가 등장하고 나서 실제 화폐가 아닌 장부(숫자)로만 왔다 갔다 하는 화폐 구조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가상화폐에서도 실물 경제처럼 가상의 거래 개념이 생긴 다랄까? 금본위제라 폐지되고 상품화폐가 아닌 명목 화폐가 등장하고 은행은 발행한 명목 화폐만큼 금을 보유할 필요가 점차 없어진다. 그저 충분히 보유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믿음만 주면 된다. 그리고 전산화와 카드가 등장하고선 거래량이 어마어마하게 증가하게 되고 명목 화폐도 필요 없이 장부 거래로 바꾸어간다.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현재의 거래소의 형태를 들어보니 그와 유사한 점이 많은 듯싶었다. 비트코인과 가상화폐 거래소에 관한 이런저런 내용과 더불어 아버지 이야기도 잠깐했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나 닮고 싶지 않은 부분, 그럼에도 닮아 있어 때때로 흠칫 놀라는 부분이 바로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것, 문제를 미뤄두다가 더 크게 만드는 것, 같이 하면 쉬울 일을 혼자 해보려다가 망치는 것'이었다. 나 역시 아버지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테니 매일 나를 살펴 문제를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영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영어 학습과 도구 그리고 공부 목적 등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에게 "목적은 구체적이어야 하며 적당히 한다 생각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 전력을 기울였다고 여길 때 간신히 뭐라도 쟁취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을 하는 까닭을 찾기를 바랐다. 이것은 내 인생에 대한 바람이기도 했다. 내게 지금 당장 소망이 있다면, 내 값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발을 내디딘 한 발자국, 한 발자국에도 어김없이 꽃이 피기를! 모든 순간이 의미로 피어나길. 그 의미에 값진 진주가 깃들길!'을 진심으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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