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동생에 대한 추억
나의 일상 여행기. (4)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8시 30분쯤 집을 나섰다. 전날 영진이와 길 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영어 복습을 못 해서 아침에 부리나케 복습해야만 했다. 이제부터는 길 위에서 복습하기 이전에 틈나는 대로 미리 해둬야겠다 싶었다. 길 위에서는 최종 복습이나 탁월해지기 위한 보충학습 정도로 끝내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 싶었다. 책을 좀 진득하니 보고 싶었는데 복습한다고 소중한 아침 시간을 빼앗겨 아쉬웠다.
영어 모임을 마치고 서희와 함께 점심을 했다. 대리 구매를 해준 책이 너무 새 책 같았고 쿠폰까지 적용해줘서 싸게 살 수 있었다. 그에 대한 보답 겸 동아리 후배 겸, 아끼는 동생인 진서의 친동생이라 그에 겸해서 한번 사고 싶었는데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바로 약속을 잡았다. 함께 밥을 먹으면서 진서의 이야기도 했다. 둘이 9살 차이 나는데 싸운다는 이야기, 오빠 공부 안 한다는 이야기, 자기 합격했을 때 울었다는 이야기 등등…. 듣다 보면 유명 가족 시트콤 보는 느낌이라 재밌었다. 티격태격해도 서로 아끼고 사랑한다는 증거겠지.
식사하고 학교의 IT 카페에 들려 책을 보았다. 책이 엊그제부터 손에 잘 안 잡혀서 읽는 둥 마는 둥 했다. 점점 읽는 양보다 쓰는 양이 더 많아지고 있는 것도 영향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하루의 일과를 간단히 정리하는 것이었는데, 이제 여기에 스토리텔링을 조금씩 넣고 있었다. 그리고 이에 더해 ‘이것을 어떻게 하면 각색을 더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구성을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런 방식으로 글쓰기 연습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상당히 좋은 콘텐츠가 될 것 같았다.
월말이라 적립해놓은 도서 쿠폰과 적립금이 있어서 겸사겸사 학습에 필요한 이북을 샀다. 하나는 300 word라는 유명한 단어 책이고 또 하나는 일본어 라디오 방송 교재였다. 단어 공부는 그전부터 고민하던 것이었는데, 때마침 생각이 나서 책을 구매했다. 책 구성을 보니 원서 읽기 방식과 단어장이 조합이라 매일 학습하기 적당했다.
책은 단지 표면적으로 단어를 외우게 설계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예문을 담고 있어 적당히 어려운 편이었다. 하루 15단어 분량이라 많지도 않고 많은 작가가 주로 쓰는 단어라 원서 읽기에 앞서 시작하기 좋을 것을 판단해서 선택했다.
일본어는 올해 계획에 포함한 이상 하긴 해야 할 것 같아 구매했다. 20분, 주 2회~3회 정도의 라디오 프로그램이라 심야 시간을 활용해 집중하면 기초는 잡을 것 같았다.
책을 구매하고 잠깐 인터넷을 하는데, 예능 프로그램에서 안현모라는 사람이 나왔다. 라이머라는 가수의 아내이자 동시통역사인데, 그녀가 국제회의 통역을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짧은 영상을 보고 지금의 나의 영어 실력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나도 영어를 잘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뚜렷한 목표가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를 본 순간, 나도 저 정도로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동시 통역사가 되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기왕 내가 시간을 들여서 하는 것이라면 어디서나 저 정도는 할 능력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물며 결코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다니는 영은이도 동시통역 공부를 하고 있다는데 나라고 못할쏘냐?’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 실력으로는 많이 부족했다. 그래도 영어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몰입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듯하여 기뻤다.
저녁에는 계속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보았다. 책으르 보면서 발췌를 하고 그에 관한 생각을 기록했는데, 그 양이 제법 되는듯 했다.
저녁이 되고 아르바이트 가기 전에 동아리에 들려 영진의 노트북을 챙겼다. 동아리 방에 들어와도 전처럼 반겨주는 느낌이 없었다. 사람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는 것 같아 아쉽지만 어쩌랴, 간혹 오는 사람이 그럼 걸 기대한다는 게 우스운 거였다. 저들도 내가 어색하고 생소할 것이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아마 톨스토이와 같은 종교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라고 할 것이다. 이 말이 무신론자들에게 우스운 말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측면, 어쩌면 그것이 의미하는 본질적 측면이라고 여기는 부분 혹은 그 '말씀 자체가 아니라 어떤 심리가 그러한 것에 매료되는가?'를 두고 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말하자면, ‘무엇으로 사는가?’는 자기 마음에 ‘어떠한 충만감을 남기느냐?’ 에 관한 질문일 수 있다. 종교주의자에게는 자기 마음이 그릇이라고 한다면 그 그릇에 채운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무신론자 가운데 행복함, 충만감을 느끼는 사람은 또 다른 것을 자신의 마음의 그릇에 채우고 있는 것이다.
대체로 그것은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나와의 관계라는 호스가 달려 있고 그 호스로 들어와 우리를 채우는 게 말씀이다. 그래서 톨스토이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이며, 다시 말해 마음이라는 그릇에 채워진 내용물이 그런 말씀이며 마음은 삶의 행위를 이끄는 것이니 말씀대로 살게 되는 것이다.
무신론자는, 혹은 일반적인 삶을 사는 이들은 어떠한 호스를 마음에 꽂고 있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서로가 그런 관계라는 호스를 마음에 달고 있는데 그것을 통해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
동아리의 사람들이 저러한 모습으로 사람을 대할 때 결국 채워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마음의 그릇에 공허함만 남을 것이다. 비워진 그릇을 채우는 것은 누군가의 따뜻한 말이며 선한 행동이다. 무신경하게 대하는 이들은 마음을 채워줄 호스를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모두의 그릇에 사랑과 연민 등과 같은 온기 넘치는 것으로 채워질 수 있길. 그 따뜻한 마음의 그릇을 연료로 하여 계속 삶을 살아가기를. 그리고 그 그릇에 담긴 연료를 다 소진했을 때 이곳에 와서 다시 채워나갈 수 있기를 바라고 바란다. 혹은 '바랐다'라고 해야 맞는 것일까? 그 공간이 어떠한 공간이 되느냐는 그 공간을 규정하는 이들과 그 공간을 이용하는 이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되는 것인데, 알아서 잘하겠지. 나는 이미 이곳에서 마음이 떠난 사람이었다.
길 위에서 원대한 꿈을 안고 영어를 공부했으나 머리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여러 상념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중에서도 현재 동아리와 나 사이의 어정쩡한 관계가 많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동아리는 거리를 두어야 할 것 같았다. 날씨가 좋아지니 골프공이 점점 많아진다.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상념만큼이나 많다.
돌아오는 길에는 영진이와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가족사까지 여러 대화가 오고갔다. 허물없는 대화는 서로의 마음에 온기를 채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에게 어린 시절 동생을 혼내려던 적이 떠올라 이야기해 주었다.
동생과 나는 네 살 차이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집에서 나와 살았고 주말에만 간신히 집에 들어갔다. 집에 올 때마다 동생은 부모님 말씀을 안 듣거나 컴퓨터를 계속하는 등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를 바로 잡는 게 형의 의무라 생각하며 혼을 내곤 했었다.
내가 군대를 갔다 오고 나서도 그는 집에서 똑같이 게으른듯한 행동을 반복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그를 차에 몰아넣게 방죽 근처로 데리고 갔다. 거기서 주먹질을 해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하고 싶었다. 원하는 조용한 장소에 도착하고 내리려던 찰나, 왜 도대체 그가 이런 행동을 보이는지 궁금했다.
"너 이새끼, 도대체 왜 그러냐? 말이나 한번 들어보자!" 그랬더니 그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나는 형이 정말 싫었어."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진심으로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 하는 내 모든 행동이 그를 위해서라고 믿고 있었고 그는 나를 이해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며, 나는 동생을 여전히 사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생은 그 동안 자신이 겪었던 모든 일을 남김없이 말했다. 형이 자리를 비웠을 때, 엄마와 아빠 사이의 불화, 돈 때문에 깡패 같은 남자들이 아빠를 찾으러 온 일, 집에 압류 딱지가 붙었던 일, 형과 비교당한 일 등…. 그의 이야기는 내가 거의 모르고 있거나 모른 척 해왔던 것이었다. 그는 형이 없을 때부터 집에서 장남의 자리를 지켜온 것이었다. 그동안의 고뇌가 담긴 수많은 말들을 들으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영진이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가 심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우선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그 자신이라기보다 그를 감싸고 있는 주변이라고. 마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제일 먼저 부모부터 치료해야 하는 것처럼, 제일 취약한 사람을 직접 치료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을 개선하고 치료하는 게 급선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다 안다고 생각했다. 아니 모두라는 아니지만, 그를 사랑하며 어느 정도는 거의 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가족이라는 같은 세계에서 서로를 이해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가 현실의 문제로 고통받는 가족이 존재하는 세계의 일원으로 있었다면, 나는 가족이라는 존재의 의미가 갖는 행복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있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가족은 이래야 해.'는 그에게는 '가족이 왜서이래야 되는데?'가 되었고 '우리는 제법 괜찮은 가족!'은 '왜 우리는 이렇게 힘든 가족인가!'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동생의 눈물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른 세계에서 그들의 사정이라곤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감히, 그를 혼낼 수는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던 직후 나는 그와 급격히 가까워졌다. 나는 그로부터 형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낼 수 있었고 오로지 내 편이 되어줄 피를 나눈 친구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혈관과 같은 마음의 호스를 그렇게 함께 드리웠을 때 우리는 힘든 세상을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그가 마음의 연료가 필요한 때 그 호스를 따라 내 것을 조금 전해 주고 내가 필요할 때면 그가 호스로 따뜻한 피같이 붉은 연료를 전해줬다. 그는 친애하는 내 동생이며 형이며 그리고 친구이다. 이는 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학교까지 온 영진이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결국 오늘도 영어 복습 및 듣기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밤 깊은 어느 날 가로등 아래에서 했던 우리의 대화 역시 서로의 마음을 채우고 삶을 움직이는 연료가 될 것이다. 그 안에 나라는 연료가 있고 내 안에 그라는 연료가 있어, 그것이 연소할 때마다 좋은 향기를 낼 수 있겠지. 또 다른 이에게 전달할 좋은 연료가 되겠지. 밤은 길었다. 나는 동아리 방에 들려 내 흔적이 있는 것들을 모두 챙겨 집으로 들어갔다. 때는 이미 12시가 넘은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