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상 여행기. (5)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오늘은 8시 40분에 집을 나섰다.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해도, 저녁 아르바이트 후 걸어오기까지를 생각하면 12시가 넘는지라 일찍 자기가 쉽지 않다. 영어 공부를 위해 학교 스터디룸을 갔다가 생각해보니 오늘은 다른 곳에서 진행한다는 것을 깨닫고 장소를 옮겼다. 안 그래도 전날 장소를 착각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되었다. 몸에 익었다는 것이 참으로 무서운 것임을 다시금 느낀다.
전날에도 영진이와 길 위에서 대화한 터라 문장 암기를 다 못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침에 암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영어 모임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일기를 쓸 수 밖에 없었다.
모임 시작 전에 문화 컨텐츠 전공의 박사 과정인 진규님께서 전시에서 작품의 수가 많은 게 좋은지를 물어보았다. 작품의 수가 전시회 선택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것 같았는데, 나 역시 그러하다고 했다. 물론 작품 수가 적더라도 충분히 시간을 들여 볼 수 있고 핵심적인 작품들이 충분히 있다면 상관없었다. 그러나 그런데도 비슷한 두 유명세의 작가 둘을 두고 오로지 작품 수 만으로 선택을 하라고 하면 많은 것을 택하지 않을까 싶었다.
작품을 가짓수를 말하면 식당의 상차림이 생각난다. 핵심적이고 대표적인 메뉴가 있는 곳이라면 다른 반찬의 가짓수는 크게 중요지 않다. 그것은 그 핵심 음식이 맛있고 우리는 다른 반찬보다 오로지 그것을 먹으러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백반집 같은 경우에는 반찬 가짓수가 많은 게 좋게 느껴지지 않을까? 물론 백반집에도 대표적인 음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전문점의 음식과 다를뿐더러 이곳에서 밑반찬은 상당히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대중에게 어떤 식으로 각인 시키느냐? 혹은 이를 위하여 어떤 식으로 구성하느냐?’ 인데 아무래도 '국내 최대 전시 규모' 라는 문구는 마케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너무 지나치게 많으면 다 보는데 힘들지 않겠느냐?’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많은 사람은 많은 게 좋다고 여기지 않을까? 15,000원이라는 돈을 내고 전시회를 간다면 본전을 뽑고 싶어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으로 여행을 가면, 빡빡하게 일정을 잡아 보다 많은 것을 보려고 한다고 하는데, 그런 감정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작품들의 질도 중요하나, 이런 글귀에 흥미가 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가령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전시되는 작은 규모의 전시회라고 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는 전시회와 인지 기호학에 관한 논문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인지에 관한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우리의 인지 능력을 자극하는가? 외부로부터의 수많은 자극 가운데에서 우리의 눈에 띄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언가를 인지하고 또 인지하지 못하는 까닭은 학습에 따라서인가? 어떤 기호가 인지 능력을 일깨우는가?’ 그것은 일차적으로 인상에 남는 것이며 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보편적인 것보다 우리를 자극할 수 있는 특수한 것이어야 한다. 최대, 최초, 마지막, 유명한, 비싼, 거대한, 상을 받은, 기타 등등.
전시회는 대체로 우리의 의지에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팸플릿이나 광고 인터넷을 검색해 보는 것이 최초의 인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한 가운데 눈에 띌 수 있는 것은 바로 텍스트의 형태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러한 텍스트를 통해 전시회를 선택할 때, 그들은 텍스트에 담긴 진실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한 인지를 자극하는 추상화된 언어는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형성되고 비슷한 범주에 저장된 언어이다. 그리고 비슷한 경험의 빈도가 높을수록 인지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경험의 빈도가 낮을 수 밖에 없는 것들에 우리는 특별한 느낌을 담고 그것을 더욱 쉽게 인지한다. 그것이 바로 아까 말한 ‘최대, 최초, 유명한, 가장 비싼, 위험한’ 등과 같은 경험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가급적 안전한 범위에서 경험할 수 있기를 원한다.
뒤샹의 ‘샘’이나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는 배반’은 그러한 우리의 인지를 뒤틀면서 일반적인 통념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화장실의 변기나 파이프의 그림은 일반적인 인지(ordinary)일 뿐이며 그것에 대해 크게 다른 관념은 없다. 그 그림에 대한 기호는 그저 볼일을 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어디에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다. 파이프 그림 역시 파이프는 담배를 피울 때 쓰는 것이며 어렵지 않게 보거나 특징 없이 보거나 접할 수 있다. 어쩌면 단어 공부를 하는 아기 시절 때부터 그림과 문자로 매칭 연습을 했던 것이다. 바나나, 코끼리 등과 같은 카드 그림같이 아주 오래전부터 접해온 것이다. 그러나 아기 때부터 문자와 함께 학습을 통해 배운 인지가 뒤틀리게 되면서 이 그림과 변기는 특별한 것이 된다. 그것은 '내 마음은 호수요'와 같은 시처럼 그 표상의 일부 특징, 그 전제에서 뻗어져 나온 새로운 상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그전의 표상과 그 범주 안에 있는 의미의 결합을 끊어버리고 그 표상에 전혀 새로운 의미를 결합하는 행위이다. 혹은 보편적 상상과 특수한 상상을 넘어선 전혀 연관될 수 없는 극단의 상상(out of ordinary)이라고도 할 수 있다. 통계 분포 곡선의 맨 끝 꼬리에 존재하여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는 고정 관념의 고리를 끊어버려 상상의 한계를 무제한으로 바꾸는 것이다. 근대 이후 인간은 예술의 도구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예술적 상상의 제한 역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보는 사람의 입장으로는 기존의 평범한 것(ordinary)들을 표상과 기존의 관념을 끊게 됨에 따라 특별하게 인지(out of ordinary)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예술적 시도와 실험이며 그래서 실험실 밖 현실에서는 아직 적용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인간은 아직도 통념에 따라 움직이며 그 통념은 사물(기표)의 보편적인 관념(기의)과 연관된다.
그분이 인지 기호학에 따라 어떤 질문으로 글을 쓰게 될지 궁금하다.
‘무엇을 질문하겠는가?’ 르네 마그리트가 쓴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단순한 답변은 자신의 그림에 "이것이 파이프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실제로도 그림일뿐더러 파이프가 아니기도 하지만, 이러한 질문을 통해 우리는 근원적인 물음과 답변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파이프라는 것은 누가 설정했는가? 이 기능은 보편적인가? 왜 형태는 이렇게만 되어야 하는가?' 등등. 원시 부족이나 이것을 처음 본 이들에게도 '동등하게 받아들여질 것인가?'를 생각게 하며, 이는 기표와 기의 사이가 교육을 통한 사회화 과정일 뿐임을, 우리 문명이 설정한 단순한 고정관념일 뿐임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좋은 질문은 예술과도 같으며, 그것은 수많은 철학적 물음과도 같이 우리의 지성에 불을 밝혀주는 것이다.
오후에는 파이썬 책 반납 및 재대출을 위하여 정석도서관에 갔다가 경빈이랑 같이 밥을 먹었다. 교직원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서관 식당이 식수가 적어 폐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때때로 학생들이 학교의 일들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고 그러려니 하는 게 아쉬울 때가 있다. 가령 지금과 같은 사안이다. 기존에 학생식당을 자체적으로 운영하던 곳은 학생회관 식당을 제외하고는 생활협동조합이었다. 이 생활협동조합의 존립 목적은 이윤을 창출하는데 있다기보다 조합원들의 권익향상과 더불어 그 이익이 조합원 모두에게 고루 돌아가게 함에 있다. 그래서 식당의 가격이 물가에 비해 예전에는 저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협동 조합에게 할애되던 장소에 사적 이익 추구 집단인 기업이 자리하고 있다. 심지어는 협동 조합은 이들에게 임대를 해주기까지 한다. 해당 기업과 협동조합 사이의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나 그러한 이익 집단이 학교 안을 장악할 때, 그것을 감시하고 비판적 목소리를 내주거나 모아줄 수 있는 집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학생들은 그런 집단을 형성하는 것을 포기했다.
물론 포기하는 것도 선택이다. 그러나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의 포기를 하는 것은 자신의 권리 행사는 포기해도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견제 집단이 없는 상태에서 벌어질 일들은 전적으로 집단 구성원의 책임이다. 누구도 이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이지 않게 행하는 이상한 징후를 파악하려 하지 않는다면, 혹은 그 이상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때 시민들을 하나로 규합해줄 공신력 있는 기구가 존재하지 않을 때 그들은 교묘하게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게 될 것이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학교 행정은 단지 학교의 운영을 위해 잠시 위임을 받은 이들일 뿐이다. 학교가 세워질 때, 교민들은 결코 학교가 이익집단이 되길 바라며 소중한 성금을 내놓은 것이 아니며 국가 역시 바르고 건강한 정신, 지성을 갖춘 학생으로 자라기를 바라며 학교를 세운 것이다. 그 목적에는 학교의 기업화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식사 후 도서관 6층 복도에 올라가 학교의 전경을 보았다. 옛 생각이 나서 잠시 과거 학교에 대해 이야기를 함. 여기에는 무엇이 있었고, 저기엔 무엇이었고. 잠시 이야기하던 찰나에 복도에 자리한 의자에 누워있는 교수로 보이는 한 사람이 이곳 연구소 직원이냐고 말을 건냈다. 아니라고 했더니 왜 연구소 직원도 아닌데 올라와서 시끄럽게 하냐고 물었다. 경빈이가 예전에도 잠깐 쉬러 올라오곤 했다니까, 자기 쉬고 있는데 왜 시끄럽게 하냐고 짜증을 냈다. 그곳이 누워서 자는 장소도 아니고 2시 30분 경이었으니 자는 시간도 아닐뿐더러 컨벤션 홀 로비 앞 복도였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가벼운 담소 정도는 괜찮을 장소였다. 정말 학생들이나 출입증을 가진 일반인은 통제되는 구역인가 확인해보려고 사이트를 뒤졌지만 그런 말도 없었다. 자신이 마치 그곳 주인인 양 행사하는 게 어이없었지만, 말다툼하기 싫어 죄송하다고 하고 그냥 나왔다. 만약 내가 총장이었어도 같은 말을 했을까? 사람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는 왜 내게 연구소 사람인지 아닌지부터 물어봤을까? 그가 만약, 아마도 그렇겠지만, 교수라면 그로부터 교육을 받은 제자들이 조금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원으로 그곳 복도가 통제 구역인지, 로비의 푹신한 의자들이 신발을 벗고 올라가 낮잠을 자라고 만들어 놓은 것인지, 그 장소가 2시 30분이 되어 예상으로는 연구나 혹은 근무를 하고 있어야 할 교직원만을 위해 자라고 만들어놓은 비밀스러운 공간인지 궁금하여 글을 쓰고 싶었으나 참았다. 어차피 나는 이제 오래된 졸업생이며 이방인일 따름이다.
오후 5시 이후까지 못 쓴 글을 도서관에서 쓰다가 월천 라운지로 넘어가 부분과 전체를 보았다. 사실 보는 둥 마는 둥 했는데, 양자역학에 관한 과학적 내용과 더불어 시대에 따른 철학적 고찰, 그와 더불어 여러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무거운 질문과 대답 속에서 한장 한장을 쉽게 넘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며칠 전부터 마음에 있던 이상한 빈 공과 같은 상념이 머리부터 가슴까지 얌체공 튀는 것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녀 집중이 안 되는 것도 있었다. 그중 하나는 아르바이트를 가는 길 위에서까지 계속되었는데, 전쟁의 소용돌이에 어쩔 수 없이 군인으로 참여해야만 했던 이들에 관한 생각이었다.
하이젠베르크는 독일인이었으므로 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어쩔 수 없이 참여했으며 싫어도 거부권 따위는 없었던, 결국 전사자로 기록되었던 이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 같은 생명 희생의 요구는 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야 합니까? 어느 법정이 이와 같은 말을 할 권리를 가질 수 있습니까?"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특히 그 당사자가 아이히만과 같은 존재이며, 만약 그가 법정에서의 그의 주장대로 '자신 역시 거대한 국가의 요구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며 자신의 직업에 따라 성실히 응할 수밖에 없었다'라는 말이 진실이거나 혹은 이것 외에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면, 그리고 이자에게 결코 인간 혐오에 따른 살해의 정황이나 증거가 없다면, 이자에게 어떤 근거로 심판을 내릴 수 있을까?
'누구도 당신과 이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는다.'라는 판결로 사형을 내릴 수 있을까? 불법적인 납치에 의해서 심판대에 세운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판단의 정지, 사고의 마비. 골치 아픈 문제와 이해하기 어려운 해답이었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생각들…. 답! 답! 답! 나는 골똘히 생각하며 답을 원하고 있었다. 길 위에서 나는 그가 되고 그를 바라보는 심판관이 되었다. 그리고 그 둘을 바라보는 분노한 유대인과 하이젠베르크와 같은 독일인이 되기도 했다.
이 끝이 없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어 언젠가 나름을 길을 발견하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더는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나를 위하여 그리고 이들 모두의 비극을 위하여 울어줄 한 여인을 만나 서로를 품에 안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만을 감사하며 살기를 바랐다.
돌아오는 길에는 홍진이가 내일 점심을 하자고 카톡을 보냈다. "내일 점심때 오시려면 오세요." 그 말을 보는데 어떤 끈이 머리에서 끊어지는 것 같았다. '올 거면 오고 말 거면 마라'와 같은 말, '오든지 말든지'…. 그의 진짜 마음을 알기에 그저 한 번의 조언과 사과를 받아들이고 내일 식사를 약속했지만, 그전부터 마음속에서 공허한 공간 위에서 이리저리 튀던 얌체 공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예의 없음, 무례함’ 에 따른 불쾌함이었다. '꼰대가 되지 말자.' 한숨을 쉬며 몇 번을 생각했지만, 그 이면에는 무례함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례하고 선후배의 의미는 차치하고서라도 공동체 안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서조차 예의를 갖추지 않는 이들에게 나는 언제까지 꼰대가 되지 말자며 나름의 관용을 보여야만 하는가? 너희들이 사소하게 취급하는 그 행위를 그저 가벼이 웃어넘겨야만 하는가? 너희야말로 사람에 대한 존중이라곤 턱없이 부족하며 무언가의 의미 따위는 가볍게 여기지 않는가?
암체공 같은 마음의 실체의 원인은 그들인가? 그것의 진짜 실체는 그들의 만들어낸 것이라기보다 나 자신이 만들어낸 소외감이었을는지 모른다. 인간으로부터의 소외, 집단으로부터의 소외, 네가 있던 자리에 나도 있었고 너보다도 더 노력했다는 자부심과 그로 인한 존중이 박탈됨에 따른 소외. 그 모든 소외라는 얌체공의 겉에는 그런 무례와 불쾌, 불쾌함을 참는 나의 모습이 영상처럼 기록되어 있던 것이다.
나는 꼰대인가? 꼰대이런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침에 일어나고 공부를 하고 모임을 하고 책을 읽고 밥을 먹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운동을 하고, 그리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 나는 외로울 따름이며, 그들에게는 결코 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