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전날 좀 늦게 자서 피곤한 것인지 7시에 일어났다가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잤다. 8시 넘어서 일어나 씻고 간단하게 방을 정리한 후 집을 나서니 벌써 9시 20분가량이 되었다. 영어 공부에 조금 더 뚜렷한 목적이 생겨서 심화 단어장을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암기가 쉽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효율적인 방법을 찾고 매일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어 모임은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참가비를 일주일에 참여 횟수에 따라 1일 1만 원씩 조정할까도 했으나 기존 구성원들 대부분이 계속 참여 의사를 밝혀서 기존 참가비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지금보다 더 영어 실력을 좀 더 높이면면 무엇보다 시간 관리를 대단히 잘해야 할 것 같았다. 더불어 혼자 공부하기 어려우면 다른 별도의 모임으로 나를 계속 시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을 듯 싶었다. 중요한 것은 꾸준한 연습과 지속적인 피드백이었다. '남들의 평가를 두려워 말고 당당해지자!' 모처럼 사람들 앞에서 어제부터 다짐한 통역사만큼을 실력을 키우고 싶다는 꿈에 대해 당당히 밝혔다.
모임 후 홍진이네 가서 밥을 먹었다. 빈손으로 들고 가기 뭐해서 필요한 게 있느냐고 물어보니 계란이라기에, 계란 한판과 더불어 오렌지 주스를 챙겨갔다. 나도 실수하는 게, 초대를 받은 곳에 생각없이 빈손으로 가는 것이었다. 비싼 건 아니더라도 마음의 표시 정도는 항상 필요했다.
밥을 먹고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책상 위의 전공 책들을 보니 문득 학창시절이 떠올라 그때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그 때는 참으로 많은 일을 했었다. 수업은 물론이거니와 아르바이트, 근로, 대외활동, 공모전, 봉사활동, 인턴십, 운동, 토익 등등. 열심히 살 땐 정말 6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친구도 많았다. 교문을 나서기 전 계단 아래에서 내려다보면 5분에 한 번꼴로는 아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국토 대장정 같은 프로그램도 재밌었고 공모전도 즐겁게 했었다. 최고는 같이 토익을 공부했던 구성원들과 공모전을 해서 수상하고 그 사람들과 다시 국토 대장정을 떠난 일이었다.
당시 매일 아침 8시에 도서관에서 모여 영단어 시험을 봤었다. 우리는 미리 보증금을 걷었고 틀린 개수당 100원씩 보증금에서 차감을 했다. 공부의 재미와 동기부여를 위해 한가지 규정을 설정했는데, 1등의 틀린 개수와 꼴찌의 틀린 개수를 뺀 1/2을 1등에게 그날그날 상금을 현찰로 주는 것이었다. 보통은 1등 하는 사람이 거의 1등을 했다. 그러면 대체라 1등은 그 상금으로 지하 매점에서 먹을 것을 사서 나눠 먹었다. 돈을 걷어 간식을 사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상금을 받은 1등이 주로 샀는데, 때로는 벌금보다 자기가 내는 돈이 더 많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하곤 했었다.
그 사람들과 죽이 잘 맞아 이후 함께 공모전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거의 없어진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주최한 서비스 아이디어 공모전이었다. 당시 마케팅 관련 쪽으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기도 했고 관련 경험도 많아 사람들에게 함께 할 것을 제안했다. 밤낮으로 빠지는 사람 없이 꽤 열심히 준비했는데, 다행히도 우수상을 받았다.
또 구성원 중 한 사람의 삼촌이 당시 국토 대장정 프로그램 사무총장이었다. 그 덕분에 남은 자리에 구성원 중 일부가 함께 참여했다. 7박 8일 정도의 목포에서 여수까지 가는 코스의 짧은 프로그램이었는데, 좋은 인연을 만들고 더불어 우수 대원 표창도 받았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이처럼 좋았던 추억들이 많았다. 그리고 여러 사람에게 도움도 많이 받았다. 생각해보면 준 것보다 더 얻은 게 많은 학교생활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따금 그 사람들이 졸업이나 취업 등으로 먼저 떠날 때마다 아쉬움이 클 수 밖에 없었다. 특히 그 많았던 소중한 인연들이 대거 떠나갈 때, 가슴 한 켠에서 느껴지는 텅빈듯한 공허감이 꽤 오랫동안 날 짓누르곤 했다. 물론 가끔 연락을 하지만, 과거에 어깨동무하면서 캠퍼스를 활보하던 추억들은 모두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난 지금까지도 학교 근처에 남아 미래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갔다. 그러나 친구는 오래 두고 사귄 벗이라 자신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게 하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좋은 친구는 잘 숙성된 와인만큼이나 시간과 인내, 노력을 해야 했다. 과거의 인연이 그러한 숙성된 와인이라면 새로운 친구는 새로운 와인이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해가 바뀔수록 와인 창고에 새로운 와인을 숙성시키는 양이 적어진다는 점이었다.
사실 이 점은 와인의 문제라기보다 나라는 저장 공간의 노후화가 문제였을 것이다. 다시 새로운 와인을 만드는 데 따르는 부담감이나 열정의 감소, 언젠가 이처런 떠나갈 것들이라 여기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는 그들이 멀어져갈때 받을 상처를 대비하여 내 주변에 예전보다 더 큰 철조망을 쳐두고 못들어오게 막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칼 융은 20대는 관계를 찾아가는 일을 중요하다고 여기지만 30대는 자기를 찾아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20대까지 자신의 여러 페르소나(가면)를 만들어 여러 관계를 형성하는 게 결코 무가치한 게 아니며 사회화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과정이라고 했다. 그는 자기실현을 위한 노력을 너무 빨리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늦게 해서도 안된다고 했다. 그리고 이는 30대 중반부터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 역시 이십대 시절에는 많은 관계를 맺으마8 살아왔지만, 동시에 자신이 가면을 쓰고 있다고 느끼며 진짜 내가 누구인지 고민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청소년기를 넘어서면 그 이후부터는 스스로 관계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청년기는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는 시기이며 누가 지정해주는 것 없이 자신이 사회 속에서 여러 관계를 전보다 더 폭넓게 형성해 나가야 하는 시기이다. 그렇다 보면 상황에 따라 가면(페르소나)을 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가면이 자기 스스로 생각한 자아가 아니라고 느낄 수도 있다. 가면을 덮고 억지로 자기 자신인 척하는 거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인생이라는 거대한 연극 무대에 있는 주인공이다. 그 주인공은 때로는 아들, 딸의 역할을 해야 할 수 있으며, 어리석지 않은 멋진 친구 연기를 해야 할 때도 있고, 누군가의 멘토가 될 만한 선배의 역할을 해야 할 때도 있다. 당신에게 주어진 사회는 하나가 아니다. 당신은 여러 세상에 살고 있으며 그 세상 하나하나는 당신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그 세상을 사는 당신은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절대 벗어날 수 없으므로 여러 역할이 표시된 가면을 써야 한다. 그리고 그 관계 중에 잘 숙성된 와인과도 같은 누군가가 생길 때, 그들은 그 관계 속에서 가면 뒤의 당신조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마치 무대 위에서 서로의 연기가 끝나고도 그 뒤에 남아 개인 대 개인으로 술잔을 함께 기울일 친구가 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친구의 의미가 '오래 두고 사귄 벗'이라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대가 그런 시절이 있었듯 나 역시 빛나던 그 시절이 있었다. 뜨겁게 사랑했으며 서로에게 목말라 하던 그 시절, 잊혀지지 않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피곤함이 밀려와 잠시 홍진이네에서 낮잠을 청하고 3시쯤 학교 안의 IT 카페로 왔다. 영어 자료를 만들고 모임의 구성원들에게 보내주고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생각을 천천히 써 내려가다 보니, 6시가 넘었다. 독서 시간의 확보를 위해서는 꼭 일찍 일어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만에 유튜브 채널에서 영어 관련 콘텐츠를 보았다. 통·번역을 주로 하는 전문가와 한 영어 콘텐츠 관련 유튜버와 인터뷰였는데, 인상에 남는 것은 '영어 학습은 꾸준하고 성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단기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아무것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 점은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탁월해지려면 습관화된 반복이 필요하다. 마치 운동처럼 꾸준히 해야만 영어에 대한 근육이 생기는 것이다. 조바심 내봐야 될 것도 안된다. 이와 더불어 연관 영상으로 다른 유튜버의 영어 콘텐츠도 보았다. 영어의 뉘앙스에 대한 설명을 잘 해서 감탄을 하면서 보았다. 보고 배울 점이 많으며 학습한 영어 패턴을 좀더 열심히 복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입으로 배운 패턴이 아무렇지 않게 나오려면 단지 외웠다고 끝내서는 안 된다. 달달 외우고 살짝 운만 띄워도 나올 만큼 연습해야 간신이 자기 것이 된다. 회화는 결국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함께 입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즉응성이 강하다. 천천히 한국어로 생각하고 하나하나 번역하듯 할 수 없다. 즉 이는 반사신경과도 같다. 그렇다 보니 아무리 연습했어도 깊게 생각해야 하는 주제나 혹은 잘 이야기 하지 않던 주제가 나오면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회화에서 비교적 자주 사용하는 표현을 암기할 필요가 있다. 암기 이상으로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자동반응화해야 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돌아가는 찰나에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영진이는 반농담식으로 현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말을 했다. 나도 모르게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조금은 장난식으로 손을 들어 때리는 듯한 몸짓을 했다. 사실 그는 이전 대통령도 문제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사는 게 힘들면 대통령 욕을 한다고 장난스레 말한 것이라고 했다. 그가 이야기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근거나 생각 없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
집에 도착할 무렵에는 아주 오래전 그 친구가 언급했던 대통령 치매설 같은 것마저 생각이 나서 불쾌한 감정이 증폭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이렇게 과민에 가까운 반응을 하는 것은 확증 편향적 지지로부터 비롯되는 것인가?’ 라고 되물었다.
'그가 걸어온 인권변호사의 길과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의 향수, 그리고 전 정권 등에 대한 미움 등의 감정이 겹쳐서가 아닐까? 만약 그가 전 정권의 수감자들을 저런 식으로 인격적 모독을 했다면, 나는 지금과 같은 반응을 했을까?'
'누군가를 판단할 때는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을 보면 된다.'라는 게, 인격의 판단에 관한 나의 한가지 기준이다. 그러나 아웅 산 수 치와 같이 과거의 길은 존경받아 마땅하나, 이것이 현재 그녀의 행동과 결정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막는 요소가 되어선 안 된다. 물론 그렇게 걸어온 길이 어떤 정책의 결정에 대하여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모든 정책은 누군가에겐 이득이 되나 다른 누군가에게는 해가 될 수 있다. 정당은 전체 대중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표를 통해 선출된 행정부의 수반 관리들은 한 정당이나 특정 이익 집단만을 대표할 수는 없다. 다음 투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거니와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특정 정당이 과거 그토록 지역 정당의 색을 놓지 않고자 한 까닭을 보면 그중에 하나는 그 지역의 인구가 다른 지역에 비해 압도적인 투표수를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거대한 텃밭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다른 쪽에서 비판을 하고 반대를 하더라도 투표에서는 질 수밖에 없다. 즉, 민주주의에 투표방식에 따라 한쪽은 묵살하고 해당 이익집단 또는 지역의 이득만을 계속 추구할 수 있다. 거대한 인구를 보유한 지역 또는 집단의 이기주의가 권력과 결탁할 때, 민주주의는 힘을 잃고 만다.
영진이의 농담을 잠시 생각하면서, 나 역시 전 정권들을 비난 할 때, 내 앞에 있는 사람을 고려하며 말했는지 되물었다. 그리고 어떤 근거를 들었는지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이 볼 때 이 친구처럼 쉽게 그들을 근거 없이 비난한다고 볼 여지는 없었을까?
정치인에 따라 칭찬이나 욕을 먹는 수준이 다른 까닭은 그들 중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혹은 민주주의나 도덕에 명백히 저해될 행동을 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가짜뉴스와 황색저널리즘은 이러한 개인의 판단 기준을 흐리게 만든다. 그렇기에 개인은 자신의 판단 기준의 확립을 위하여 ‘그 저널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누가 이익을 얻는지, 진정성의 근거가 무엇인지, 어떤 근거로 저런 식으로 말하는지, 그 정보의 소스는 신뢰할만한지’를 전반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그것을 하지 않고 그거 텔레비전, 신문, 유튜브에서 떠들어대는 원색적이며 인격 모독적인 것들을 앵무새처럼 떠들어대면 교양이 없거나 무식하거나 혹은 가십을 좋아하는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밖에 안 된다. 권력과 정책 그리고 그 그물망 있는 사람들을 '이해'한다는 것을 자신이 만들어 놓은 여러 우상에 맡기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잘 알지 못하는 무슨 '설'에 대해서는 될 수 있으면 침묵하거나 거리를 두는 편이 좋다. 자신은 그저 누군가에게서 들었다고 하나, 그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순간부터 똑같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확신을 하고 전할 때 그것은 입으로 죄를 짓는 것이다.
'침묵은 금이며 은은 할 말만 하는 것'이다. 사실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침묵만 할 수는 없다. 그럴 땐 사실로서 아는 것만 전달하며 화제를 바꾸는 편이 좋다. 만일 계속 그런 유언비어, 가십을 좋아해 전달하고 싶어 하는 이가 있다면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그는 당신이 없을 때 당신에 대한 유언비어를 하게 될 것이다.
돌아가는 길에는 어제 통화를 못한 효진이와 통화를 나누었다. 목소리만 들으면 영락없는 소녀인데 이제 나랑 같은 앞자리를 보유하게 되었다. 직장 생활도 벌써 4년 이상이다. 세월이 참 빠르다고 느낀다. 그녀와 요즘의 근황, 직장생활에 대한 괴로움, 옛날이야기, 앞으로의 계획, 가족 이야기 등 소소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집까지 도착했다.
잘 숙성된 와인은 언제 와서 그 뚜껑을 따더라도 그 아득한 향기가 공간을 채운다. 그녀는 잘 숙성된 와인이며 그 향기는 변함없이 날 그녀와 함께했던 시점으로 안내한다.
저녁이 늦었으나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고 집 앞 치킨집을 들러서 치킨 반 마리를 샀다. 점점 재미가 없어져 봐야 할지 말가 고민되는 드라마를 의리로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화에 실망스러운 것들이 이번 화에는 좋아지고 있었다. 드라마를 잘 안 보기도 하지만 이렇게 꾸준히 재미있고 없음을 반복하는 드라마는 처음 봤다. 드라마를 보고서 금요일 밤을 떠나보내기가 싫어 요즘 인기있는 다른 드라마까지 몰아봤다. 연기자들이 보여주는 연기, 특히 전 한 조연의 교활함을 보여주는 연기나 의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날카로움이 인상에 남았다. 또한 치밀하게 구성된 플롯이나 은유를 이용한 대화법으로 인해 처음으로 작가가 궁금해졌다. 더 좋았던 점은 카메라의 움직임이었다. 어떤 감독인지는 몰라도 카메라의 각도나 명암의 사용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신경을 썼다. 캐릭터 자체도 단순하지 않지만, 카메라의 앵글이나 표독스러운 얼굴 일부를 그림자로 가려버리는 등은 캐릭터의 심리묘사나 입체성을 더욱 부각했다. 누아르나 스릴러 영화와 같은 느낌이랄까? 화면비도 기존의 드라마와는 달리 영화에서 주로 쓰는 비율을 쓴다거나 그 디지털 필름의 색감 역시 드라마에서 주로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음향 역시 드라마 전체의 무게감을 충실히 전달하고 있었다. 드라마를 안 본 사이에 한국 드라마가 이렇게 발전했는가? '방송국이 칼을 갈았구나.'를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다. 인터넷을 보니 다른 드라마들도 대단하다고 하던데 시간을 내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가 잘 모르던 또 다른 세상으로부터, 이처럼 좋은 것을 발견하게 될 때면, 문득 아득함을 느끼며 내가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선, '나는 과거의 좋은 것(고전)들만을 쫓다가 어쩌면 현재의 가장 좋은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되묻는다.
집에 들어가 누워 왜 내가 그렇게 불쾌하게 느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분명 그것은 감정으로 분출되는 적의였다. 일순간에 찾아온 강렬하고도 충동적인 적의! 주먹으로 그의 배를 치고 싶어 하는 폭력적 충동이었다. 도리어 나는 내 마음에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에게 침을 뱉으려 하는 자에게 달려들어 주먹질을 퍼부어주거나 목을 조르고 싶어 하는 충동이 마음 깊은 곳에서 강렬히 솟구쳤던 것이다. 온화한 눈빛 뒤에 있을 경멸감이 그러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이를 통해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교양과 도덕으로 억압된 속에 숨겨진 힘에 대한 강한 욕망이 응징이라는 껍데기를 쓴 채, 드러나려고 했던 순간이었다. 어쩌면 해소하지 못한 스트레스를 모조리 태워버릴 수 있는 욕망이었을지도 모른다. 폭력의 충동, 힘을 쓰고 싶은 욕망, 입을 틀어막을 수 있는 강한 지배욕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적의는 금세 마음속 깊이 숨어버렸지만, 그가 남기고 간 흔적에는 욕망의 껍데기들이 덕지덕지 남아 그날의 생각을 되새김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