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서 벗어나기 / 결핍감의 전화위복.

나의 일상 여행기. (7)

by Chris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전날에 늦게 잔 여파로 9시가 넘어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생활패턴이 무너지는 것을 넋 놓고 있다가는 돌아갈 수 없게 되니 꼭 아침에 반복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놓아야겠다. 그러려면 취침 시간을 일정하게 만드는 게 필요했다. 예전처럼 매일 아침, 단어 시험을 보면 어떨까? 구매한 단어장을 한 달 과정으로 모임을 진행하면 재밌을 것 같다. 우선 지각, 결석체크를 한 뒤, 단어 테스트를 하고 끝나고 프린트해온 연습문제를 푼다. 풀고 나서 문제 채점하고 중간에 전체 테스트와 지각 벌금을 당일 다과비로 쓴다. 혹은 지난 학기에 진행했던 서양 미술사 모임을 르네상스 이후부터 해도 재밌을 것 같다. 주말에는 독서 모임이나 영화 모임을 다시 기획해 볼까? 고전 영화 모임을 다시 진행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침대에서 미적미적 대다가 헛되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보다 낫겠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진다. 모집에 따른 번거로움이나 참여자들이 열심히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노력이 조금 귀찮을 뿐이다. 사람을 만나고 모임을 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학생들과 모임은 재미있으나 몇 가지 사항에서는 제한적이다. 그중에 하나는 시험이다. 시험공부로 말미암아 꾸준히 참여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두 번째는 비용부담에 따른 문제이다. 돈을 버는 게 아니고 보통은 아르바이트로 충당하거나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모임에 관하여 내 노력에 따른 정당한 비용을 요구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스스로 공부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모임을 하지만, 때로는 시간과 노력의 양이 상당히 투여되는 경우에는 금전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다. 일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는 돈이 나온다면 내 능력을 다해서 가치 있는 모임을 만들어 줄 텐데! 가치 있는 생각의 공유를 위해 머릿속과 적어놓은 아이디어만 해도 수십 가지 이상이다. 이것을 다 펼치지 못하는 까닭은 시간이 많이 필요해서이고 시작하면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아질 게 예상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 계발에 따른 만족감보다 참여자들의 태도에 따라 흔들리는 마음도 불안 요소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그것을 그나마 어느 정도 보충하는 것이 소정의 참가비용이었다.

주말이기도 하고 보고 싶었던 피카소 전시회가 이번 달까지라 갈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서 뭐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의 가장 큰 문제는 어떤 행동을 하기까지, 특별한 약속이나 결단이 없다면, 쉬운 일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 쉬운 일은 대체로 번거로운 일을 피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일 가능성이 컸다.

게으름은 외로움이나 공허함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는 자발적인 휴식으로서의 게으름이라기보다 귀차니즘에 가까운 게으름이다. 내 삶을 제어하지 못할 때 생기는 게으름이다. 인생에 대해 적극적이지 못하고 스스로 인생을 좀먹는 게으름이다. 스스로 버러지 같은 삶이라고 자책하게 되는 게으름이다. 삶의 무료함이 피곤함이 되고 스스로 가누지 못하는 정신과 신체는 생각하기와 행동하기를 멈춰버린다. 그저 죽는 것과 같은 상태, 눕거나 멈춰 있기를 바라는 상태가 된다.

이를 벗어나려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무언가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삶의 중심을 자신에게 맞추고 스스로 돌릴 수 있는 톱니바퀴가 되어야 한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톱니바퀴가 움직여 자신과 맞물린 다른 톱니가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시계의 톱니는 계속 돌아가지만, 자아의 의지로 돌아가는 톱니는 시간의 상대적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 자신만의 의미를 새긴다.

쓰다 보니 또 오후 2시를 넘겼다. 삶의 무기력의 주된 요인은 기본적인 욕구의 실현이 안 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욕, 성욕, 수면욕. 이러한 욕구를 채우거나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혹은 부처가 되어 완전히 그 욕구들에서 벗어나거나…. 인간이 살려면 이런 기본적인 욕구는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에 충족하거나 다스려야 하는데, 무기력을 이런 것들마저 포기하게 한다. 혹은 이런 것들을 충족하지 못해서 무기력이 발생하기도 한다. 무엇이 원인과 결과라 할 것 없이 건강한 신체와 정신 사이의 관계처럼 상호작용한다. 아마도 지금의 무기력과 약간의 우울감은 바로 이러한 욕구를 채우지 못해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다. 특히 지금의 상황에서 성욕은 둘째치고 제때 식사를 챙겨 먹지 않고 먹어도 건강하거나 값어치 있는 것을 먹지 않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런 문제가 쉽게 발생한다. 이러한 근원이 제때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또한 부족한 수면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부족한 수면은 더는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고 대충 흘러가는 대로 살고 생각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비롯된 것이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어떤 신념도 없고 다짐들도 쉽게 꺾어버리는 삶은 자신을 동물과도 같이 만들고, 인간다움을 없애는 것이다. 인간다움은 자신과 사회가 만든 값진 믿음과 신념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자신 안에 있는 신념이 옳은지, 값진 것인지 계속 들여다보면서 가꿔나가야 한다. 생각하기란 바로 이렇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믿음의 꽃을 아름답게 가꾸고 쭉정이는 잘라내고 썩은 꽃은 뽑아내는 것이다.

식욕을 비자발적(?)으로 거부하다가 결국 또 가격파괴 전문점 이모한테로 갔다. 뭔가 지쳐 보이는 모습의 이모는 바쁘게 일하면서도 무언가 삶의 무료함이 느껴졌다. 강한 바람과 언제라도 폭우를 쏟아낼 것 같은 저 거대한 먹구름이 사람의 마음마저도 짓누르는 듯했다. 이모의 얼굴은 먹구름을 닮았다. 후라이 짜파게티와 김밥 하나를 먹고 돌아와 보니 4시가 되었다. 외로움이 가장 많이 밀려오는 시간이다. 3시가 아직 행복할 것을 기대하는 시간이라면 4시는 외로움을 견디는 시간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읽다가 문득 지금의 읽기 방식이 독서의 흐름을 방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글을 본다기보다 발췌한 글을 새롭게 각색해 보는 식으로 보고 있어서, 마치 글을 짓는다는 느낌으로 보고 있었다. 좀 더 고민하여 나의 스타일로 재창조하는 것이 이번 독서의 목적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길에 일전에 구매한 단어장 하루치를 암기했다. 단어 수준이 비교적 높은 편이라 여러 번 봐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일주일치 회화 패턴 복습도 했다. 큰소리로 빠르게, 반복적으로 내뱉는 양이 익숙함의 기본이라고 믿고 있다.

단어장은 어려운 단어 학습을 위해 재밌는 본문과 더불어 충분한 예문이 있었다. 그래서 원서를 읽는 기분과 영영 사전을 읽는 기분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원서와 영영사전으로도 이러한 효과를 접할 수 있겠지만,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해 그런 습관을 들이거나 또한 정리하는 것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시간을 줄여준다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 영진이를 봤는데, 문득 어제 생각이 떠올랐다. 만나자마자 대체로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그보다 먼저 떠오른 어제의 불쾌함으로 인해 인사할 타이밍을 놓치고야 말았다. 그 때문인지 일하는 동안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물론 끝날 무렵에는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지만, 초기 분위기 설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그날 처음 얼굴을 접할 때 어색한 감정이 일면, 원하든 원치 않든 그날 하루 내내 어색한 분위기가 쭉 이어졌다. 특히 나 같은 경우는 웃지 않으면 화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러했다.

어릴 때부터 웃지 않고 있으면 무섭고 화나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한 인상 때문인지 대체로 웃고 다녔다. 그것이 전화위복인지 몰라도 그 표정은 관계를 잘 만드는데, 대체로 도움이 되었다.

매번 웃는 얼굴 때문에 아주 가끔 진지하게 논쟁을 하거나 웃지 않을 때는 사람들이 놀라거나 무서워했다. 나도 아침이나 술 진탕 먹고 웃지 않은 채로 거울을 보면 무섭거나 불쌍해 보이는데, 오죽할까? 그게 콤플렉스일 때도 있었다. 쭉 찢어진 눈, 별로 없는 눈썹, 넓은 이마와 주름, 넓은 모공, 곱슬머리. '이 정도면 괜찮지.'라고 마음을 다잡다가도 거울을 보면 생각이 달라졌다. 남자는 거울을 보면서 '이 정도면 괜찮지.'라고 생각한다는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내게는 이것 또한 전화위복이 된 것 같은데, 그 덕분에 나 자신을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비교적 온 힘을 다했기 때문이다. 지성을 갖추고 매너를 배우며 운동을 통해 건강한 신체를 형성하는 것,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하고 내 자존감을 높이고자 노력한 것, 이를테면 인정의 욕구, 자존의 욕구였던 것 같다. 정진, 수양, 노력, 성실 등은 나를 가꾸는 최선의 노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세상에 누구도 나를 봐주지 않으며, 나는 그저 홀로 떨어진 외딴 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느낄 때는 나를 지탱하던 그 모든 신념과 노력이 무가치하게 여겨지곤 한다. 아무도 없이 혼자라 여기는 것, 고독과 고립이 두려운 까닭은 자신의 신념을 지켜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 인간을 지탱하는 것은 다른 인간이며, 인간은 타자를 의지해 살아간다. 배가 고팠으나 먹지를 않았고 사람이 그리웠으나 찾지를 않았다. 사실 어떻게 먹어야 하며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조차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자정을 넘어 밤은 깊었으나 잠이 오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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